김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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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玉仙
1934년 4월 2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이석(異石)이다. 종교개신교이다.

남장여자 정치인이다. 남장을 하는 이유는 "어머니가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 죽은 오빠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라 밝혔다.

1934년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서울특별시 정신여자고등학교중앙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서천군 - 보령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처음에는 민주공화당 이원장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으나 선거소송으로 재검표 끝에 당선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서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상익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서천군-보령군-부여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김종익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 김영삼계에 소속되었다. 1975년 인도차이나 반도 공산화 이후의 안보데모를 관제데모라고 하였다가 민주공화당, 유신정우회 의원들이 그에 대한 징계를 결의하였다. 결국 김옥선 자신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 총재가 나몰라라 하는 태도를 보여서 당내에서 비판을 받았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서천군-보령군-부여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상익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 해 말 조연하 국회부의장 선출 당시 이용희 후보로 내정된 것에 반기를 들고 조연하의 국회부의장 선출을 지원하였다는 이유로 신한민주당에서 징계를 받았다. 이후 김영삼, 김대중 양 김과 거리를 두었다. 이후 30년이 넘게 충청 지역에서는 지역구 여성 국회의원이 나오지 않고 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서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50년대 전후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에 전쟁으로 인한 모자결손가정을 보호하는 에벤에셀모자원을 설립했다. 정의여중, 정의여고의 이사장이었다. 지금은 폐교되었다.

2011년 사기혐의로 투옥되었다. [1]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67제7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서천군-보령군)신민당-당선
1971제8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서천군)신민당-낙선
1973제9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서천군-보령군-부여군)신민당-당선[1]
1985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서천군-보령군-부여군)신한민주당-당선[2]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남도 서천군)무소속-낙선
1992제14대 대통령 선거무소속-낙선
  1. 민주공화당 김종익 후보와 동반 당선
  2. 민주정의당 이상익 후보와 동반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