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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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載瑋
1921년 8월 23일 ~ 2009년 2월 25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종교는 원불교이다.

1921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광주서중학교, 연희전문학교 상과(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및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식산은행에 근무하였다.

8.15 광복 후 대한올림픽위원회 감사, 대한체육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5년 12월 이병홍 국회의원의 별세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산청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안준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자유당 경상남도당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사퇴하였다. 1961년 초 3.15 부정선거 연루자라는 이유로 공민권이 제한되고 피선거권이 상실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 제5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4년 자유민주당이 민정당에 흡수되어 민정당 소속이 되었다가 1965년 민정당과 민주당이 통합하여 민중당이 되자 민중당이 속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강력 반발하여 민중당을 탈당하고 1967년 전국구 국회의원직이 상실되었다. 이후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대한석유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거창군-함양군-산청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정우식 후보와 신민당 김동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4년 해금되었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선여부비고
19551955년 재보궐선거 (경상남도 산청군)무소속-낙선
1958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산청군)자유당-당선
1963제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국회의원)자유민주당-당선
1973제9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거창군-함양군-산청군)무소속-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