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1 개요

처음에는 보잘것없겠지만 나중에는 훌륭하게 될 것일세. (공동번역성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개신교 성경 개역개정판)

 
욥기 8장 7절.

왠지 간지나는 문구로서 이곳저곳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 사업가나 수험생들에게 특히 자주 사용되는 말. 이를 4글자로 줄인 말로 대기만성이 있다. 기독교 신자들 중에서는 이 말을 조각해서 벽에 걸어두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식으로 좌우명으로 삼은 사례 중 유명한 것이 바로 프랜시스 드레이크. 특히 가게 개업식 단골구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본의는 절대로 축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2 수아 사람 빌닷

일단 이 말의 화자는 욥의 친구 중 빌닷이라는 사람이다(욥기 8장 1절 참고). 이 친구가 욥기 8장 전체에서 욥에게 뭐라뭐라 위로하는 척하면서 은근히 그를 탓하는 말투로 얘기를 한다.

재산과 혈족을 모두 잃고 부스럼병까지 걸려[1] 병상에 눕게 된 욥은 3장에서 자신의 탄생을 저주한다. 4~5장은 허무주의에 빠진 엘리바즈의 안 하느니만 못한 위로이며, 6장부터는 그에 대한 욥의 대답으로 하느님께 매를 맞는 건 차라리 즐거운 일이라 하면서도, 하느님에게는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사 탄식하며 고통을 호소한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자네들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나무라지만 말고 말해달라"며 자신의 결백을, 자기가 죄를 지어서 병을 얻은 게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말이다.

(전략) 언제까지나 살 것도 아닌데 제발 좀 내버려두십시오. 나의 나날은 한낱 입김일 따름입니다. 사람이 무엇인데, 당신께서는 그를 대단히 여기십니까? 어찌하여 그에게 신경을 쓰십니까? 어찌하여 아침마다 그를 찾으시고 잠시도 쉬지 않고 그에게 시련을 주십니까? (중략) 어찌하여 나의 죄를 용서하시지 않으십니까? 죄악을 벗겨주시지 않으십니까? 나 이제 티끌 위에 누우면 당신께서 아무리 찾으신다 하여도 이미 없어졌을 것입니다. (욥기 7장 7~21절 '욥의 기도', 공동번역성서)

 
그러던 와중에 빌닷이 조롱하는 말투로 던지는 말이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빌닷이라는 친구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주장하며 욥이 받는 고난에 대해 인간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자네 아들들이 그분께 죄를 지었으므로 그분께서 그 죗값을 물으신 것이 분명하네. (욥기 8장 4절, 공동번역성서)

 
빌닷은 데만 사람 엘리바즈(엘리파즈), 나아마 사람 소바르(초파르)과 함께 욥을 문병 온 세 친구 중 하나인데, 엘리바즈와 함께 하느님의 섭리를 인본주의의 선두주자인 인과응보의 논리를 펼치며 위로는커녕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격으로 사람 속을 은근히 긁는 것이다.[2] 설상가상으로 이 와중에도 욥이 계속 기도를 하자, 욥기 11장에 나올 소바르의 충고는 아예 "넌 말이 너무 많아. 입만 나불댄다고 죄가 용서되는 건 아니야."라고 대놓고 빈정대기까지.

3 욥의 고난

하지만 성경 속에서 욥의 고난은 인과응보와는 관계가 없다. 욥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욥이 어떤 자인지,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나와있다. 욥은 흠 없고, 정직하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미워하는, 동방에서 으뜸가는 부자였다. 욥이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존재하기 어렵다는 의로운 부자였다! 게다가 욥은 '등 따시고 배부른 부자들이란 교만하기 마련'이라는 통상적 룰을 당당히 깨고, 항상 자녀들이 아무도 모르게 지었을 죄마저 염려하며 자녀의 수대로 번제를 드리는 등 매우 신앙적인 삶의 의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1장 6절에서 갑자기 사탄이 나타난다. 그리고 야비한 습성대로 이간질성 농후한 고자질을 해대어 시작된 고난이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당신께서 친히 그와 그의 집과 그의 소유를 울타리로 감싸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주셨고, 그의 가축을 땅 위에 번성하게 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보십시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욥기 1장 9~11절, 공동번역성서)

 
그러니까, 이 대목의 이전 부분까지 함께 연결해서 읽으면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이 된다.

하느님께서 바른 것을 틀렸다고 하시겠는가? 전능하신 분께서 옳은 것을 글렀다고 하시겠는가? 자네 아들들이 그분께 죄를 지었으므로 그분께서 그 죗값을 물으신 것이 분명하네. 그러니 이제라도 자네는 하느님을 찾고 전능하신 분께 은총을 빌게나. 자네만 흠이 없고 진실하다면 이제라도 하느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자네가 떳떳하게 살 곳을 돌려주실 것일세. 처음에는 보잘것없겠지만 나중에는 훌륭하게 될 것일세. (공동번역성서)

한마디로 애초에 욥이나 욥의 자녀들의 죄 때문에 벌어진 고난이 아니라는 얘기인데, 친구라는 작자들이 찾아와서 처음엔 위로해주는 척하다가 책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욥이 고통받는 원인을 알지도 못하고(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니가 어떻게 했으니까 하느님이 벌주셨겠지? 하는 넘겨짚기인 것이다. 이는 욥에 대한 폭력임과 동시에, 신앙적으로 하느님에 대한 신성모독으로 볼 수도 있다.[3] 이게 친구인가 웬수인가

이 갑론을박은 욥기 31장까지 이어지고, 하느님이 직접 등장하여 욥의 무죄함을 밝히자 결국 세 친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4 클리셰

아래는 이런 타입의 캐릭터나, 프로젝트, 작품 등을 기술한다.

반대로 시작은 원대했으나 끝이 흐지부지한 경우를 비꼬기 위해 러시아식 유머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하리라라고 비틀어서 말하기도 한다.

  1. 욥기 2장 1~10절 참고.
  2. 해당 대목의 11~15절에서는 아예 대놓고 저주를 하고 있다.(…)
  3. 이를 두고 기독교 근본주의기복신앙으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례로 자주 거론된다. 어찌 보면 문맥을 무시한 인용.
  4. 퍼스트 싱글의 초기 판매량은 고작 464. 그리고, μ’s의 마지막 라이브는....
  5. 상술했듯 주인공 네이선의 선조인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좌우명으로도 쓰였으며, 나아가 게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