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을 무시한 인용

文脈을 無視한 引用
(영어)quoting out of context; quote mining; contextomy

1 개요

Incivile est nisi tota lege perspecta una aliqua particula eius proposita iudicare vel respondere.[1]

(법률 전체를 통관하지 아니한 채 그것의 어떤 특정한 규정만으로써 판정하거나 해답하는 것은 야만이다.)
- 켈수스(Celsus)[2]. 위 문장은 로마법 대전에 나오는 법해석에 관한 금언이지만, '문맥을 무시한 인용'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우리가 포합어를 써야하는 이유
어떤 문장이 쓰인 문맥과 맥락을 무시하고 인용하는 논리적 오류. 어떤 문장이라도 앞뒤의 문맥을 따라 읽어야 제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하여 이루어지는 오류이다. 다음 두 가지 오류와 관련이 깊다.

  •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논박하고자 하는 상대의 주장을 좀 더 공격하기 쉽게 왜곡하는 효과가 있다.
  •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 권위자나 유명한 사람 역시 토론하는 사람을 지지한다고 왜곡하는 효과가 있다.

2 설명

서로 다른 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서로 다른 양의 빛을 받아들이고, 구면수차와 색수차를 보정하는, 모방할 수 없는 경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눈이 자연선택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고백하건대 전혀 터무니없어 보인다. - 찰스 다윈, 1872년

이 예문을 보면 마치 찰스 다윈이 자신이 주장한 자연선택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생략된 문장들을 보면 다윈의 의도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뒤의 몇 문장을 생략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맨 처음 태양이 제 자리에 있으며, 지구가 그 주위를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인간의 상식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철학자가 알듯, 민심이 천심이라는 옛말은 과학에 통하지 않는다. 이성은 내게 말한다. 단순하고 불완전한 눈에서 복잡하고 완벽한 눈으로 가는 수많은 계층이 존재하며, 뒤에 있는 것이 앞선 것보다 생존에 유용하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면 어떨까? 확실히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눈이 계속 변화하며 변이가 유전될 수 있다면?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 변이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어떤 동물에게도 유용하다면, 자연선택으로 복잡하고 완벽한 눈이 진화하는 것의 어려움으로 이론을 전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3 예시

3.1 종교

  • 성경의 구절 중 하나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기독교 신자들은 물론이고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표현이며, 흔히 번창이나 성공을 기원하는 구절 정도로 여겨져 창업이나 개업 등에서 해당 문구가 쓰인 액자를 벽에 걸어두는 경우가 간혹 있다. 하지만 원래 이 구절이 나오는 욥기에서 이 구절은 여러모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였으며, 원래의 문맥을 생각하면 현재 쓰이는 축복과는 정 반대의 표현이다. 결정적으로 이 말은 신(하느님)이 아니라 욥의 친구가 한 말이다. 재미있게도 의미가 거의 유사한 사자성어인 "대기만성" 역시 문맥을 무시한 인용 사례에 속한다.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는 사도 바울의 어록으로, 오늘날 많은 개신교인들에게 "근거는 없지만 어쨌든 나는 믿음이 있으니까 뭐든지 할 수 있어, 잘 될 거야, 만사형통할 거야" 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 직전의 바울의 어록을 읽어보면 이 역시 잘못된 용례. 실제로는 "가 지금껏 이런저런 말 못할 고통과 역경을 참 지지리도 많이 겪었는데, 그래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 정도쯤은 버텨낼 수 있으니 성도 여러분은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의 의미다. 현대에 와서 완전히 정반대가 되어 버린 것.
  • 신약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한 가난한 과부가 동전 몇푼을 헌금으로 내는 모습을 보고 예수가 '저 과부가 가장 많은 헌금을 냈다. 저 과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헌금으로 바쳤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걸 가지고 예수쟁이들은 '아무리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꼭 헌금을 내야 천국에 간다.'라는 식으로 억지를 부릴 때가 있다. 하지만 예수의 의도는 그 과부의 신앙을 칭찬하는 동시에, 그런 가난한 과부마저 헌금을 내게 만드는 부패한 유대교 교단을 비판한 것이었다. 참고로 이 구절 바로 앞에서 예수는 부패한 유대교 교단에 분노한 나머지 예루살렘 성전을 뒤엎었다.
  •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의 천지 창조에 의심하는 부류에 대해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냐고 묻는 놈들을 벌할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라고 쓴 것을 두고 일부 예수쟁이들이 '그러니 창세기 내용을 의심하지 마라'라고 주장할 때가 있다. 하지만 원문(고백록 11권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구절을 명백히 농담이라고 말하며, 천지창조에 대해 이런식으로 농담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원래 질문에 대해 그가 내놓은 답은, 시간 자체가 천지 창조의 한 부분이므로 창조 이전에는 시간 또한 없었다는 내용.[3] 더 아이러니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을 이미 호되게 깠다는 점이다.
  • 그 외에도 문맥을 무시하고 인용하는 것은 악마가 광야에서 예수를 유혹할 때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3.2 문학

  • 셰익스피어 - "과거는 미래의 서막이다." 이 말은 사실 희곡 폭풍우에서 형을 쫓아낸 협잡꾼 안토니오가 또 다시 동료를 배신하려 하며 내뱉는 말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인용인 셈.
  •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 흔히 운동을 통한 신체 단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하는 문구이지만, 실제 내용은 다르다. 로마 제정기에 유베날리스가 자신의 풍자시10편에서 사용한 문구로서, 로마인들이 신체의 강건함만을 추구하고 정신적인 단련을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고 한 말. 그 완전한 문장은 “Orandum est ut sit mens sana in corpore sano”로, 번역하면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들면 바람직할 것이다”이다.뇌까지 근육이 들어차겠다. 운동만 좋아하지 말고 공부좀 해라. 앞뒤 문맥을 볼 때 이는 신체와 정신에서 어느 한쪽의 발전만 치우치지 말고 균형있게 추구하라는 주장이다. 운동을 권장하는 경구가 아니였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토머스 칼라일의 '영웅숭배론'에서의 발언. 아무리 셰익스피어의 위상이 크다고 해도 인도라는 거대 문화권의 가치를 일개 문학가보다도 낮게 취급하는 서구 우월주의적 발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문맥을 무시한 것으로, 본래 칼라일의 발언은 '영국에게 인도는 없어도 상관없지만 셰익스피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였다. 즉 인도가 상징하는 경제적 가치보다 셰익스피어가 상징하는 정신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주요 무역국이었다. 즉 인도와 무역해서 얻는 경제적 이익은 포기하더라도 문화적 정신은 포기할 수 없음을 주장하기 위한 것 뿐이다.

3.3 영화/드라마/광고

  • 평론가 마이크 라이언은 매거진 배니티 페어(Vanity Fair)에서 드라마 LOST에 대해 "비록 꽤나 중독성 있고 대단하지만, 사상 최고로 혼란스럽고,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드라마"(the most confusing, asinine, ridiculous —yet somehow addictively awesome — television show of all time.)라고 썼다. 이것은 제작진들에게 "사상 최고로 중독성 있고 대단한 드라마"(The most addictively awesome television show of all time)라고 인용되었다.
  • 심형래뉴욕 타임스에서 D-WAR를 "재미없이 볼 수 없는 영화"라고 호평했다고 주장했지만, 심형래 문서에도 나오듯 그 평은 반어법을 사용한 혹평이었다.
  • 국민은행은 희망찬 내용의 CF에 MIKAHappy ending이란 노래를 사용했다. 노래의 제목과 발랄한 멜로디와 반대로 가사는 밝고 희망찬 내용이 전혀 없다. Happy ending의 내용은 이별 후 엄청나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대 기쁜 척, 행복한 척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 부당거래에서 나온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는 상당히 자주 인용되는 말인데, 사실 작중에서 류승범이 이 대사를 한 것은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강짜를 부린 것인데다, 작중 상황도 개인 대 개인도 아니고 공공기관 대 공공기관이므로 절대 호의 같은 게 오간다고 볼 수 없어 이 말은 절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대사가 아니었다.

3.4 유사과학

3.5 역사학계

  • 김현구 임나일본부학자설
  • 김대중 직선제 반대발언 모함사건
  • 5.18 민주화운동/왜곡세력은 김영택전 기자 겸 박사의 증언을 교묘하게 편집해서 폭동설이나 북한간첩설로 조작하기도 한다.
  • 1998년 최장집 교수에 대한 월간조선의 사상검증 논란 : 최장집의 글 중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 '한국전쟁은 북한이 믿었던 바의 민족해방전쟁'이란 문구를 가지고 최장집이 북한의 남침을 찬양했다고 몰아갔다.
  • 정조(조선)의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이덕일을 비롯한 노론 음모론자들은 이 발언이 '정조는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하고, 노론을 자신의 원수로 규정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내가 비록 사도세자의 아들이긴 하지만 영조께서 효장세자의 아들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것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라는 원칙론에 가까운 주장이었다. 실제로 일부 인사들이 즉위 직후 사도세자의 신원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정조는 오히려 이들을 아첨하는 부류로 규정하고 처벌했다.
  •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커티스 르메이의 발언 중 '석기시대' 드립과 함께 유명한 발언. 이 때문에 르메이는 잔혹한 전쟁광이란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르메이의 의도는 '민간인이고 뭐고 적대국 소속이면 죽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민간인 또한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총력전이란 개념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다. 특히 당시 일본 제국은 더더욱 그러했다.

3.6 정치

정치에서도 특정인의 발언이 문맥과 상관없이 인용되는 예가 있다.

3.6.1 투표독려

  • 플라톤의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는 일반 대중의 정치 참여를 독려한다기보다는 사회 엘리트 계층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것에 가까웠다. 쉽게 말해서 "너희들 같은 고급진 사람들이 정치를 외면하다간 너희보다 덜 고급진 사람들이 정치를 맡게 되니까 정치에 꼭 참여하라" 정도의 뉘앙스.
  • 프랭클린 애덤스의 "선거 투표는 누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누가 싫어서 하는 투표에 그 승패가 결정된다" 는 흔히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뽑자는 의미로 선거철에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후보를 찍어주지 못하는 선거 시스템상의 한계를 지적하는 말이다.

3.7 철학

  • 파스칼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 일단 파스칼은 수학자나 철학자로서 유명하지만 사실은 철학자라기보다는 당대의 저명한 신학자였다. 파스칼은 굉장히 종교적인 사람이었고 팡세에 쓰여진 해당 글의 원문부터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말을 축약한 말이다. 애초에 해당 문장이 쓰여진 파스칼의 팡세부터가 철학을 다룬 작품이 전혀 아니고, 오히려 시대적 상황에 맞는 매우 종교적인 작품으로 실제 의도는 종교에 대해서 비판하는 당대의 철학자들, 합리주의 철학자인 데카르트, 몽테뉴들에게 너네가 생각할 줄 알아봐야 갈대에 불과하니까 하나님을 따르라는 글이고, 이렇게 당대의 인간들을 비판하는 작품이지 인간의 지성을 칭찬하는 글이 아니다. 이 문장의 경우 생각하는이 강조되고 있는데 실제로는 생각을 할 수 있는갈대에 불과하다.라는 부분이 사실 중심내용.
  •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 개인의 이기심이 모든걸 해결해준다는 식의 자본만능주의를 상징하는 너무 유명해진 관용구이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유명한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튼 프리드먼등은 실제로도 그런 식으로 인용하고 있지만 실제의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자인 동시에 당대 가장 유명했던 윤리철학자였으며, 윤리학을 다룬 도덕감정론 등을 저술하였다. 실제 '보이지 않는 손' 발언 역시도 도덕감정론 등 아담 스미스의 사상 전체를 따져서 해석할 경우 어디까지나 "누구든지 정의의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신중과 정의의 범위 안에서 자기이익 추구는 비난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다" 라는 발언하에서 합법적인 행동+정의로운 행동+신중한 행동이라는 윤리학을 기본으로 깔아두고서 해석해야하는것이지 단순히 '자본주의가 모든 걸 해결해줄거야!'라는 발언이 아니다.[4] 특히 스탠퍼드 경제학 교수이자 2010년 이후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인 제프리 페퍼 등은 실제 아담 스미스를 비롯해서 고전 경제학은 윤리학과 함께 발전했는데 현대 경제학은 윤리와는 괴리되어 있다며 비판하기도 하였다.[5]
  •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 - '시녀'라는 개념과 중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철학은 신학 따까리나 하는 격이 낮은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녀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시녀는 결코 천한 개념이 아니었다. 아퀴나스의 이 표현은 물론 신학이 철학보다 더 중요하긴 하지만, 철학은 그 신학을 뒷받침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3.8 인터넷

  • SNS 허세글, 명언집에 나오는 명언 역시 이 오류를 범하고 있을 수 있다.
  • 흔히 연장자에게 복종하라는 의미로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많이 들먹인다. 장유유서는 삼강오륜(三綱五倫) 중 오륜의 하나로서, 오륜(五倫)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倫]에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五] 원칙을 말한다. 오륜은 유교의 오상(五常)과 서로 호응하는데, 오상의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에서 '예'가 장유유서에 대응한다. '예'란 위와 아래의 구별이 있고, (가족 간의 나이, 항렬 등의) 서열에 따른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어 세상이 무질서에 빠지고 혼란해진 것은 여러 제후국들[幼]이 주나라[長]를 존중하지 않고 서열관계를 무시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춘추시대 당시의 공자가 말한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예(禮)'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그 '예'로, 개인의 욕심을 억제하고 '예', 즉 위아래 서열에 따른 '질서'[序]를 회복하자는 뜻이다. 여기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장유유서는 어디까지나 지위ㆍ서열ㆍ가족 간의 항렬 등의 위아래와 높고 낮음을 구별하고 행동할 때 '차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 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말과 행동에 무조건 정당성이 부여되고, 나이 적은 사람은 이에 일방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장유유서에는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이를 존중ㆍ배려하라는 뜻은 있어도 '복종'하라는 뜻은 없다.
  1. Digesta 1.3.24. 테오도르 몸젠 편집.
  2. Publius Juventius Celsus, 67 ~ 130, 고대 로마의 법학자.
  3. 재미있는 건 현대 물리학에서도 시간과 공간이 우주의 탄생과 함께 생겼다고 본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걸 가지고 현대 물리학 자체가 신의 뜻이라고 우기는 답없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는 것.
  4. 다만 이 발언의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술한)도덕적 요소들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케이스도 간혹 보이곤 한다.
  5. 배종석 저 인적자원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