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 아메리칸 T-6 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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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미군 항공기
전투기육군 전투기P-26 피슈터, P-36 호크, P-39 에어라코브라, P-63 킹코브라, P-40 워호크, P-43 랜서, P-47 썬더볼트, P-51 머스탱, XP-75 이글
함재기F2A 버팔로, F4F 와일드캣, F4U 콜세어, F6F 헬캣, F7F 타이거캣, F8F 베어캣
쌍발 전투기P-38 라이트닝, P-61 블랙위도우, XF5U 플라잉 팬케이크
제트기P-80 슈팅스타, FH 팬텀A, XP-81
뇌격기TBD 데버스테이터, TBF(M) 어벤저, XTB2D 스카이파이렛
폭격기공격기/급강하 폭격기SB2C 헬다이버, SBD 돈틀리스, BTD 디스트로이어, A-20, A-26, A-29, A2D 스카이샤크, A-31 벤전스, SB2A 버커니어(A-34)
中폭격기B-18, B-25 미첼, B-26
重폭격기B-17 플라잉 포트리스, B-24 리버레이터, B-29 슈퍼 포트리스, B-32 도미네이터, YB-35, B-36A, YB-49
수상기OS2U 킹피셔, SOC 씨걸, SO3C 씨뮤, SC 씨호크
비행정PBY 카탈리나. PB2Y 코로나도, PBM 마리너, Hughes H-4 허큘리스
기타 항공기C-46, C-47, T-6 텍산, L-5 센티넬
취소선: 계획되었다 취소된 기종, A: 전후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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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American T-6 Texan

1 제원 및 성능

제원T-6G
승무원2명
탑승인원0명
길이8.84 m
익폭12.81 m
기고3.57 m
익면적23.60 m²
자중1,886 kg
적재중량2,548 kg
최대이륙중량2,620 kg
엔진1× 프랫 & 휘트니사 R-1340-AN-1 와스프, 600 hp
성능
최대속도335 km/h
순항속도233 ㎞/h
상승고도7,400 m
항속시간?.? hr
항속거리1,175 km
행동반경??? km
익하중??.? kg/m²
추력중량비0.?? / 0.??
무장
브라우닝 기관총 3정

2 개요

노스 아메리칸사에서 NA-16을 기초로 제작한 본격적인 2인승 훈련기이다. 1935년 1월에 첫 비행이 시작되었고, 이후 미 육군 항공대와 영국 공군에 공급되었고, 특히 30년대 후반 영국 공군파일럿 양성 계획의 중추로서 쓰이기도 했다.

3 상세

하지만 그것 말고 끝(…). 사실 유별날 거 없는 기체다. 30년대 중반에, 그것도 훈련기로 개발된 기체라 선회도나 속도 등 전투기로서 중요한 그 어느 부분도 좋다고 말할 수가 없다. 최대속도가 400km/h에도 미달했으니…. 대전기에는 랜드리스영연방 국가에 열심히 공급되었으나 딱히 한 건 없다. 대전 중반기로만 넘어가도 미국이나 영연방이나 파일럿 양성용으로 구형 전투기를 써도 될 정도여서 T-6는 조종간 처음 잡아보는 초짜들이나 잠깐 모는 기종이 되었다.

그래도 이걸 어떻게든 전투용으로 팔아먹어 보겠다고 노스 아메리칸사가 만든 것이 A-27 공격기로 미 육군 항공대가 채용하여 필리핀 주둔군이 운용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초기 필리핀 방어전에서 제대로 뜨지도 못한채 폭격받아 다 파괴(…)당하고 그나마 이륙한 기체들도 제로센에게 학살당했다. 1941년 시점으로도 도저히 일선 전투에서 써먹을 수 없는 기체였던 것. 대전 중 교전기록은 이게 전부다(…).

총 15,459기가 제작되었으나 대전기 항공기치고는 상당히 적은 편(…)에 속한다.

그래도 일단 만대 이상 찍어냈고, 미군에게 가장 불필요한 기체 중 하나였던 덕에 군소국가들을 중심으로 헐값에 공여되었다. 주로 중남미 국가들이 운용하여 주력기나 관측기로 운용하였다. 이후 한국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용 관측기로 쓰였고 그리스 내전에서도 실전에 투입되었으나 유의미한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이렇게만 보면 나무 위키에 특별히 작성될 일이 없어보이는 기체지만….

4 대한민국 공군 최초의 항공기

이 항공기는 대한민국 공군이 최초로 운용한 제대로 된 항공기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깊은 기체이다.

한국 공군은 건군 초기에 제대로 된 항공기가 없었다. 미군이 선심쓰듯 10기씩 원조해준 L-4/5는 연락이나 포병 관측용으로나 쓸 수 있는 비행기였고, 그 이외에는 일본이 버리고 간 구닥다리 기체들[1] 몇 대로 공군이라고 자처하는 실정이었다. 아무리 건군 초기라지만 이런 기체로는 도저히 공군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유사시 제대로 된 항공작전도 불가능했다. 때문에 미군에 전투기 지원을 요청했으나 한국이 북침할까 걱정한 미국은 한국에 대한 항공기 지원은 커녕 돈주고 사겠다는 것마저 불허했다. 김정렬 장군의 증언에 따르면 공군이 발족할 때 김포 비행장에 퇴역이 결정된 B-26 폭격기 30대가 있었다. 미군에게 이 폭격기들을 달라고 사정했지만 미군은 이를 거부하고 몽땅 해체, 고철로 매각해버렸다. 일설에 의하면 "우리가 상부로부터 지시받은 것은 절대로 이걸 당신들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이에 한국은 공군 장병들과 국민들의 성금까지 긁어 모아, 캐나다에서 퇴역해 민간에 넘어간 T-6 10기를 구매했다. 이때 도입한 T-6은 기존 T-6을 기반으로 최소한의 대지공격능력을 부여한 AT-6이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남선전기, 체신부, 전매청 등당시 회사나 공공기업에서 단체 기부를 한 것으로 보인다. 기체 이외에도 비행기에 탑재하기 위한 M2 기관총 20정과 탄약 5000발, 1년분 부속품과 연료도 함께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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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5월 14일, 캐나다에서 들여온 전투기 명명식을 통해 각 기체에 교통, 전남, 전북, 전매, 충남, 체신, 국민, 농민, 남전, 경북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며 드디어 제대로 된 공군의 기틀을 갖췄음을 선언하고 김포기지를 메인 베이스로 삼았다. 그리고 40일 뒤….

개전 직후, 공군은 모든 기체를 총투입해 북한의 침략에 맞섰으나 워낙 숫자가 부족해[2] 김포 비행장이 공습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 와중에도 한국 공군 AT-6들은 서울 사수를 위해 의정부, 파주 축선에서 남하하는 적 지상군을 향해 공습을 가했다. 당시 병기창에서 시험 제작한 15kg 폭탄을 탑재했는데, 재고가 고작 274발이었다. 이를 개전 첫날 모두 소진할 정도로 폭탄 재고 및 폭장량 모두 빈약하였고, 여기에 제대로 된 표적 관측조차 되지 않아 제대로 된 타격은 주지 못했다. 육군 항공대의 L-4/5 관측기들조차 수류탄이나 박격포탄 등을 싣고 날아가 파일럿이나 후방 관측사들이 직접 손으로 던져서 공습을 가하는 판국이었다. 원래 L-4/5 관측기들이 적 지상군을 관측한 다음 포병이나 공군이 때려야 원칙이지만 건군 초기라서 현대전에 대한 이해도 능력도 부족했던 한국군은 그러질 못했다.

결국 한국 공군의 AT-6 운용은 6월 27일부로 끝났다. 그나마 그동안 격추된 기록은 없었으나, 대신 미국이 AT-6 파일럿들에게 F-51 머스탱 줄테니 모두 일본으로 보내라고 지시했기 때문.진작 좀 주지 그래도 전쟁 도중 공군 규모가 확대되자 신참 파일럿들이 운용하면서 다시 일선에 복귀했다. 사천의 1전비 예하 제 2 정찰비행전대가 운용하였다. 1960년대 전량 퇴역했고 이후의 훈련 임무는 머스탱이 전담하게 된다.

한국 공군뿐만 아니라 미 공군도 한국전쟁 당시 전방 정찰용 및 표적 관제용으로 T-6를 활용했는데 대표적으로 제 502 전술항공통제전단과 제 6147 전술항공통제전단이 AT-6형의 텍산을 운용한 바 있다.

특이하게 해군에서 한때 이 기종을 수상기로 개조해서 사용한 적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취호 항목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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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나마 신형기는 진주한 미군이 시험용으로 모조리 걷어간 뒤였다.
  2. 북한군은 야크기만 100여 기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