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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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미군 항공기
전투기육군 전투기P-26 피슈터, P-36 호크, P-39 에어라코브라, P-63 킹코브라, P-40 워호크, P-43 랜서, P-47 썬더볼트, P-51 머스탱, XP-75 이글
함재기F2A 버팔로, F4F 와일드캣, F4U 콜세어, F6F 헬캣, F7F 타이거캣, F8F 베어캣
쌍발 전투기P-38 라이트닝, P-61 블랙위도우, XF5U 플라잉 팬케이크
제트기P-80 슈팅스타, FH 팬텀A, XP-81
뇌격기TBD 데버스테이터, TBF(M) 어벤저, XTB2D 스카이파이렛
폭격기공격기/급강하 폭격기SB2C 헬다이버, SBD 돈틀리스, BTD 디스트로이어, A-20, A-26, A-29, A2D 스카이샤크, A-31 벤전스, SB2A 버커니어(A-34)
中폭격기B-18, B-25 미첼, B-26
重폭격기B-17 플라잉 포트리스, B-24 리버레이터, B-29 슈퍼 포트리스, B-32 도미네이터, YB-35, B-36A, YB-49
수상기OS2U 킹피셔, SOC 씨걸, SO3C 씨뮤, SC 씨호크
비행정PBY 카탈리나. PB2Y 코로나도, PBM 마리너, Hughes H-4 허큘리스
기타 항공기C-46, C-47, T-6 텍산, L-5 센티넬
취소선: 계획되었다 취소된 기종, A: 전후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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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26 Invader
A-26 인베이더는 미 육군 항공대(및 1947년 이후 미 공군)에서 사용한 경폭격기, 혹은 공격기다. 맥도넬 더글라스의 전신 중 하나인 더글라스 항공에서 개발한 항공기로 다수의 기총과 폭탄, 혹은 무장을 탑재하였으면서도 동급 항공기 중에는 속도가 빠른 편에 속하여 지상 공격기로서 활약했다. 2차 대전 중에는 A-26이라는 제식명을 썼으나 2차 대전이 끝난 뒤에는 B-26로 명칭이 변경되어 2차 대전 중 활약한 B-26 머로더 중형 폭격기와 종종 혼동된다. 대중적으로 그리 널리 알려진 항공기는 아니지만 2,452대나 생산되었다. 6.25 때도 미군의 지상 공격기로 크게 활약했다. 이 B-26(A-26)은 6.25 전쟁 당시 가장 마지막까지 폭격한 폭격기이기도 한데, 1953년 휴전 협정이 맺어지기 불과 24분 전에도 폭격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몇몇 군사 관련 박물관에 B-26(A-26)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69년까지 미군에서 전투용으로 사용되었다가 주 방위군으로 돌려졌으며, 주 방위군에서도 1972년까지 사용되었고 1980년 콜롬비아 공군에서 마지막 현역 A-26이 퇴역했다. 대전기 도입된 항공기면서 제트엔진의 시대까지 살아남아 기나긴 항생을 살았다.

2 바리에이션

2.1 개발사 및 XA-26

1940년 가을 무렵, 더글라스 항공사[1]는 사비를 털어 신형 쌍발 경폭격기를 연구하였다. 사실 이 시점에 맥도넬 더글라스는 야심차게 개발중이던 A-20 하복(더글라스 항공사 자체 프로젝트명은 DB-7)이 한창 디스를 먹던 중이었는데, 방어무장은 빈약하고 화력 역시 부실한 데다가 이착륙 거리마저 부족했기 때문이다.

1940년 A-20 개발에 참여했던 더글라스 항공사의 주요 엔지니어들이었던 세 명의 항공기 디자이너인 에드워드 하이네만, 로버트 도너반 그리고 테드 R. 스미스의 손에 의해 태어났으며 1941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신형 폭격기 개발에 참여했다. 신형 쌍발 폭격기의 주날개는 동체 중간을 가로지르는 중익배치로 A-20과 유사하였지만 에어포일층류익(laminar flow airfoil wing)[2]을 사용하였기에 효율(양항비)이 더 좋았다. 또 전기적으로 움직이는, 2 슬롯 방식 플랩(double slotted flap)을 사용하여 이착륙거리를 개선했다. 또 신형 쌍발 폭격기는 당시로써는 상당히 강력한 축에 속했던 2000마력짜리 프랫&휘트니 R-2800[3] 계열인 R-2800-77 공랭식 엔진을 사용하여 충분한 힘을 얻었다. 더불어 A-20에서 지적된 공격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신형 폭격기는 동체 중앙에는 대형 폭탄 창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기에는 최대 4000파운드의 폭탄이나, 2발의 어뢰을 집어 넣을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 주날개 아래쪽에도 여러 무장을 추가 탑재할 수 있었다. 또 A-20에서 지적된 방어용 무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신형 폭격기는 동체 등 부분과 배 부분에 각각 2정의 M2 중기관총이 달린 방어포탑을 탑재하였으며, 이 기총들은 폭탄창 뒤쪽에 탑승하는 방어기총 사수가 원격으로 조작하였다.

더글라스의 신형 폭격기는 두 가지 버전으로 개발될 예정이었는데 하나는 기수 부분을 투명하게 설계하여 폭격 조준기를 이용하여 중고도 이상에서 폭격이 가능한 경폭격기 버전이었다. 또 하나는 당시 막 개발되기 시작한 공대공 레이더를 탑재하는 야간전투기 버전이었다.[4] 폭격기 버전의 경우 폭격조준기를 활용하기 위하여 기수 부분이 투명하게 설계될 예정이었으며 승무원은 조종사, 항법/폭격수, 방어기총사수 이렇게 3명이 탑승하게 되어있었다. 반면 야간전투기 버전은 2명의 승무원이 탑승할 수 있었다. 경폭격기 버전과 야간전투기 버전은 기수의 형상, 레이더의 유무 이외에 나머지 부분은 거의 동일한 설계였다. 다만 야간전투기 버전은 P-61 블랙위도우가 개발 배치되면서 취소되었다.

1941년 6월경, 미 전쟁성(국방부)는 이 신형 폭격기에게 A-26이라는 제식명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2종류의 프로토타입을 주문하였는데 폭격기 버전은 XA-26-DE, 야간전투기 버전은 XA-26A-DE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한 달이 채 안 되어 3번째 버전인 XA-26B-DE를 주문하였는데 이것은 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지만 폭격보다는 기총과 75mm(!) 포를 기수 전방에 탑재한 일종의 건쉽 버전이었다.

1941년 2월, 더글라스 항공사는 500대의 항공기를 제작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미군에 20개월 안에 납품이 가능하다고 장담했다. 문제는 대당 가격을 14만 달러가량으로 불렀는데, 미 육군이 보기에 이는 지나치게 비싼 가격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가격 협상에만 거의 9개월을 까먹게 된다.

게다가 미 육군이 결정장애에 빠져 A-26 프로젝트는 더 혼란에 빠진다. A-26의 무장을 정확히 뭐로 할지 결정하는 데 시간을 까먹은 것이다. 특히 미 육군은 처음에는 경폭격기 버전은 투명기수 + 폭격조준기를, 건쉽 버전에는 75mm 혹은 37mm 기관포를, 그리고 다목적 공격기에는 다수의 기총을 기수에 탑재하려 하였다. 그러나 곧 생산이 예정된 500대의 A-26에 전부 75mm 포를 달아달라고 하였다가, 또다시 이번에는 모든 500대는 일단 경폭격기 버전으로 만들되 건쉽용 A-26은 여러 무장을 달 수 있도록 하자고 하는 등, 요구 사양을 계속 바꾸어 댔고 당연히 이는 일정 지연으로 이어졌다.

결국 더글라스 항공사가 1942년 2월에 했던, 20개월 만에 납품 가능하다는 장담은 물 건너가고 일정은 계속 지연되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글라스 항공사가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문 제작 업체로부터 따로 구매하여 A-26에 탑재해야 하는 랜딩기어 다리, 자동봉합식 연료탱크, 방어기총 포탑 등의 제작 일정이 지연되었다. 심지어 미 육군이 직접 구매하여 더글라스 사에 공급해야 하는 엔진, 프로펠러, 발전기 등도 일정이 지연되었다.[5]

결국 여러 일정 지연 탓에 더글라스 항공사는 당초 약속한 20개월보다 8개월이나 늦은 28개월 뒤에야 대략적인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프로토타입인 XA-26-DE(경폭격기 버전)은 1942년 6월에 첫 비행을 할 수 있었다. 최초 비행 시에는 시험비행이므로 방어기총은 탑재되지 않았고, 다만 모양과 무게를 비슷하게 맞춘 더미(dummy)가 탑재되었다.

시험 결과 XA-26-DE의 성능은 훌륭했다. 다만 개선점도 보였는데 이를테면 엔진의 냉각 효율이 좋지 못하여 엔진을 감싸는 카울과, 프로펠러 앞에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씌우는 일종의 고깔인 스피너(spinner)는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2.2 A-26B

A-26B는 미 육군 항공대가 XA-26 개발 중 나중에 추가한 건쉽버전이다. 최초 프로토타입인 XA-26B-DE는 기수에 75mm 주포를 탑재하였으며, 조종사 옆자리에는 항법사 겸 75mm포 장전수가 탑승하고 방어기총사수는 주날개가 끝나는 지점 쯤에 탑승하였다. 이 외에 항법/장전수 자리 뒤쪽 별도 공간에 작은 의자가 하나 더 있었는데, 필요한 경우 여기에 인원을 한 명 더 태울 수 있었다. 방어기총좌 사수는 뒤를 보고 앉으며 위/아래로 각각 나있는 창을 통해 밖을 보고 적기를 확인한 뒤, 광학식 조준기로 표적을 조준했다. 사수가 조준을 하면 방어기총좌는 자동으로 그쪽을 지향하였다.

최초 양산 버전인 A-26B-1-DL(생산공장이 캘리포니아에 있는 롱비치 쪽 공장으로 바뀌면서 DE에서 DL로 변경)은 1943년에 완성되었다. 프로토타입에 비하면 폭탄 탑재량은 크게 늘어 최대 6000파운드까지 탑재 가능하였으며 내부 연료 탑재량 역시 크게 늘었다. 시제기에서 엔진 냉각에 영향을 주던 프로펠러 앞 덮개(스피너)는 제거 되었으며 엔진은 R-2800-27이 탑재되었다.

다음 버전인 A-25B-5는 약간의 변경점이 있었으나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었으며, 도색은 위장도색에서 무도장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었다. 이는 당시 미 육군 항공대가 대부분의 군용기들이 위장색을 포기하고 도장을 최소화하여 중량을 줄임으로써 성능을 늘리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무장은 방어기총 이외에 기수에 75mm 포 1개와 2정의 M2가 달렸다.

A-26B-10-DL은 75mm포 대신 기수에 6정의 M2 기관총을 탑재했다.다만 A-26은 여전히 일종의 옵션으로서 다양한 무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 옵션으로는 75mm포 + M2 정, 37mm포 + M2 4정, 37mm포 + M2 2정, 37mm포 2문 등이 있었다. 그만해 미친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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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에서 첫 번째 것은 폭격수가 탑승하는 A-26C용 무장이며, M2 기관총 8정 탑재형상은 후기형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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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6B-15부터는 기수에 M2 기관총이 6정에서 8정으로 늘었으며 이에 더하여 주날개 아래는 2연장 M2 기관총 포드를 최대 4개를 달아 날개 밑에 총 8정의 기관총을 추가로 달 수 있었다. 즉 A-26B-15부터는 최대 16정의 기총으로 적을 덮칠 수 있었다. ㅎㄷㄷ

A-26B는 무장 이외에도 야전에서의 요청에 따라 버전이 올라감에 따라 몇 군데가 변경되었다. 등 부분의 기관포는 형상이 수정되었는데, 여기서 만든 후류의 영향으로 꼬리날개에서 진동이 생겼기 때문이다. 또 주날개에 있던 오일 냉각용 공기흡입구 형상도 변경되었다. 더불어 A-26B는 배치 초기 야전에서 조종석 시야에 대한 불평이 많았는데, 특히 조종석 좌우 및 측후방 시야가 안좋았다. 이는 지상공격 시 선회하며 표적을 확인하고 공격에 돌입하는 A-26B 조종사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만스러운 일이었다. 이에 A-26B-30부터는 캐노피 뒤쪽 프레임 상당수가 없어지고 캐노피 위쪽은 봉긋이 솟아오른 형태로 변경되었다. 또한 캐노피가 변경됨에 따라 캐노피가 열리는 방식도 기존에는 오른쪽 부분만 위로 열리는 형태였던 것이 신형 캐노피는 전체적으로 조개껍데기처럼 위로 열리는 형태(현대의 전투기들이 주로 사용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 캐노피는 곧 이미 제작된, 더 앞선 버전의 A-26B에도 적용되었다.

A-26B-45는 출력이 향상된 R-2800-79 엔진이 들어갔는데, 특히 물 분사 장치를 이용하여 순간 최대 엔진출력을 2350마력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A-26B-50 버전은 기수형상이 약간 변경되어 새로운 형태로 8정의 기관총을 탑재하였으며, 주날개 안에는 좌우 도합 6정의 기관총을 탑재하였다. 또 날개 아래에는 폭탄이나 로켓을 탑재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새로운 무장배치는 이미 제작된 구 버전 A-26도 개조를 통하여 사용하였기에 외형상 이러한 모양을 했다고 꼭 A-26B-50이란 보장은 없다.

이 외에 A-26B-51 버전 이후부터는 장거리 비행이 많은 태평양 전선에서 활동하기 위해 동체하부 방어기총 포탑이 빠지고 대신 추가연료탱크를 탑재했다.

A-26B는 1945년 9월까지 총 1355대가 생산되었으며 1945년 8월에 일본의 항복으로 2차 대전이 끝남에 따라 추가 생산 계획은 모두 취소되었다.

1948년에는 미 육군항공대가 미 공군으로 독립하면서 A-26B의 제식명을 B-26B로 바꾸었다. B-26 머로더와 혼동의 여지가 있었지만 B-26B 머로더는 이미 퇴역한 뒤였기에 일선 운용에 문제는 없었다. 그저 밀덕들이 헷갈릴 뿐.

2.3 A-26C

A-26C는 경폭격기 버전으로 XA-26의 양산형 모델이라 할 수 있다. A-26C의 다른 부분은 A-26B와 거의 비슷하지만 기수가 다른데, A-26C는 기총이 2정만 있는 대신 폭격/항법사의 폭격 조준을 위해 투명창으로 구성된 기수를 사용했다. 기수무장을 제외한 A-26B의 개량포인트는 A-26C도 거의 따라갔는데 이를테면 A-26C-30은 R-2800-79 엔진을 사용하고 주날개 내부에도 기총이 추가되었으며 연료탱크가 추가되는 한편 A-26C-45부터는 주날개 아래에 로켓을 탑재할 수 있었다.

A-26C는 A-26B보다는 인기가 없어 총 1091대만 생산되었다. 다만 일선에서 몇 시간만 정비사들을 갈아 넣으면이 고생하면 기수를 A-26B로 바꾸는 것이 가능했으며, 이렇게 야전에서 기수가 바뀐 A-26C는 그냥 A-26B로 불렀다. 물론 역으로 A-26B를 A-26C 기수로 바꾸기도 했다.

본래 A-26B, C는 조종사 1명만 조종이 가능했으나 일부 A-26C는 폭격/항법사 자리에도 조종간 등을 두어 부조종사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2명 조종 버전은 부조종사 자리에서 모든 조작이 가능했으나 폭탄 투하 버튼은 조종사 왼쪽에 있었기에 오른쪽에 앉는 부조종사는 이를 누를 수가 없었다.[6] 또 2명 조종 버전은 만약 폭격/항법사가 조종석 쪽에 앉았다면 폭격 조준기가 있는 전방 투명 기수 쪽으로 기어 들어갈 수가 없었으며 그 역으로도 불가능했다. 본래 폭격/항법사는 조종사 옆에 앉아 있다가 폭격 준비를 위해 앞쪽으로 나있는 작은 구멍으로 기어들어가 투명기수 쪽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추가된 조종간이 통로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다만 정 필요한 경우 부조종사용 조종간을 고정하는 핀을 뽑아 조종간 자체를 뽑아내 버리고 폭격/항법사가 통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2인 조종 버전은 보통 폭격/항법사가 부조종사 역할을 겸직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기수에 머물고, 조종사 옆자리에는 부조종사가 따로 탑승했다. 즉 2인 조종 버전 A-26C는 1인 조종 버전에 비하여 부조종사가 1명 더 타서 총 4명(조종사, 부조종사, 폭격/항법사, 방어기총사수)이 탑승했다. 여기에 더하여 A-26C에도 기수 좌석 뒤쪽에 작은 의자가 1개 더 있었기에 필요시 여기에 탑승자를 1명 더 태울 수 있었다.

A-26C 역시 2차대전이 끝남에 따라 1945년 8월경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2.4 B-26K(A-26A)

일본이 GG치고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제트시대가 펼쳐졌다. 미국은 다양한 터보제트 엔진을 사용하는 폭격기를 개발하였으며, A-26 같은 구식 폭격기는 당연히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나마 A-26은 2차 대전 직후 이름이 B-26으로 변경된 뒤 한반도에서 6.25 당시 꽤 활약을 했으나 그때뿐이었다. 곧 대부분 퇴역하였으나 1960년대 제1 공중 특수전 부대(1st Air Commando Group)는 B-26(A-26)을 이용, 게릴라 대응 전술을 연구하였다. 곧 이 B-26들은 베트남에 파견되었다. 이 B-26들은 대외적으로는 남베트남이 운용하는 것으로 되어있었으나 실제로는 미군 조종사들이 B-26을 몰았다.

다만 1960년대면 B-26이 처음 등장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기에 여기저기 기체 노후화 문제가 심각했다. 심지어 주날개의 뼈대 구조물(spar) 등은 수명이 다 되어 교체해야 했다. 아재 뼈대 서요 그래서 미군은 이 늙다리 B-26들을 온 마크 항공사(On Mark Company)에 맡겨 수명을 연장시켰다. 온 마크 항공사는 B-26을 만든 더글라스 항공사와 연관이 있던 곳은 아니고, 군용기를 만든 경험도 없었으나 그때까지 B-26을 민수용기로 개조하여 민수시장에 파는 사업을 벌이고 있었기에 1960년대 시점에 B-26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항공기 회사라 할 만했다.

이 수명 연장이 된 신형 B-26은 B-26K 카운터 인베이더로 명명되었다. 침략자(Invader)가 침략자 방어자(Counter-Invader)로 바뀐 셈이다.

B-26K는 엔진이 R-2800-103W로 변경되었으며 이 엔진은 물 분사 장치를 이용 최대 2500 마력까지 힘을 낼 수 있었다. 프로펠러는 페더링 각도(프로펠러 날개깃 하나하나의 각도)가 자동으로 변경되는 신형 프로펠러로 교체되었다. 수명 연장을 위해 주날개 뼈대 위 아래에는 철제 판재가 덧붙여졌다. 또 엔진 출력이 강화됨에 따라 한쪽 엔진이 꺼질 경우 좌우 불균형이 기존보다 더 심해지므로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수직꼬리날개의 방향타도 더 커졌다. 또한 B-26K의 주날개 좌우 끝에는 추가로 연료탱크가 붙었다. 타이어 브레이크는 미끄럼 방지(자동차로 치면 ABS) 기능이 추가 되었으며 기체에는 제빙/방빙 장치가 추가되었다. 조종석 계기판 역시 신식으로 바뀌고 조종 시스템은 기본 2인 조종 시스템으로 변경 되었으며 이 외에 여러 전자장비들도 신식으로 교체되었다. 주날개 아래에는 8개의 파일런이 추가되어 필요에 따라 다양한 무장 및 기타 장착물을 달 수 있었다. B-26K의 방어기총은 제거되었으며 기수에는 8정의 M2 중기관총이 탑재 되었다. 단 필요시 사진정찰을 위해 기수를 투명형 기수로 변경할 수 있었다. 주날개에 있던 기관총은 제거되었다.

B-26K는 강화된 엔진 출력과 변경된 프로펠러, 추가된 연료탱크를 비롯, 여러 개량 덕에 순항속도도 기존보다 15노트(30km/h가 좀 못된다) 빨라지고 전투작전반경은 210해리에서 500해리로 2배 넘게 늘어났으며 무장 최대 탑재량 역시 기존의 내/외부 도합 7500파운드에서 4500파운드가 더 늘어난 12000파운드가 되었다. 더불어 상승속도, 최대상승고도 같은 성능도 좋아졌다. 다만 비행 안정성은 좀 떨어지는 편으로, 기존 B-26은 트림조작만 좀 해주면 조종사가 손을 놓아도 계속 수평비행 상태를 유지하였으나 B-26K는 조종사가 계속 조종간을 잡고 미세조종을 해줘야 수평비행이 가능했다.

약 40여대의 B-26B, B-26C등이 B-26K로 개조되었으며 이것들은 1964년부터 1965년 사이에 미 공군에 인도되었다. 1966년부터는 B-26K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당시 미국이 전초기지로 쓰던 태국에 배치되었다. 이들 B-26K는 주로 라오스를 경유하는 북베트남군의 보급로, 즉 호찌민 루트에 대한 공격용으로 쓰였다. 다만 태국은 대외적인 이미지와 외교 문제 등을 감안, 자국내에 미국의 폭격기가 배치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미군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B-26K의 이름을 A-26A로 변경했다. 기타 바리에이션 문단에서 알 수 있듯, A-26A는 어차피 당시에는 물론 과거에도 실전기에 쓰인 적 없는 제식명이었기에 별문제는 없었다

A-26A는 대부분 기체 도색을 완전히 검은색으로 하고 주로 야간에 작전을 뛰었다. 이 느린 왕복엔진 비행기는 베트남 전역에 쫙 깔린 수동식 대공포로부터도 살아남기 어려웠기 때문이다(야간에야 사람이 눈으로 조준하는 수동식 대공포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보통 A-26A의 주요 표적은 물자/병력 수송용 트럭들이었으며, 야간 작전을 위해 조종사들은 AN/PVS-2 야시경을 사용했다. A-26A는 AC-130 같은 신형 건쉽이 배치됨에 따라 점차 퇴역했다.

2.5 기타 바리에이션

  • XA-26A

당초 더글라스 항공사가 계획했던 야간전투기 버전. 미 육군항공대가 P-61 블랙위도우를 개발하기로 함에 따라 양산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 TB-26B, TB-26C

비무장 훈련용

  • VB-26B

비무장, VIP 수송용

  • RB-26C

B-26C를 개조, 폭격 조준기를 떼어 내고 정찰용 카메라를 탑재한 버전. 1962년 이전에는 FA-26C였다.[7]

  • XA-26D, XA-26E

A-26 성능개량 모델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A-26B, A-26C를 개조하여 만든 프로토타입. 이 A-26D/E 모델은 기존 모델보다 엔진 성능이 개량될 예정이었으나, 2차 대전이 끝남에 따라 양산되지 않았다.

  • XA-26F

A-26의 엔진 및 프로펠러를 업그레이드 할 뿐만 아니라 동체에 J31 터보제트까지 달아 비행속도를 최대 700km/h대로 올린 성능개량 버전. 그러나 제대로 된 제트폭격기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기에 성능상 이점이 없어 양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 JD-1

2차 대전 종료후 육군에서 남아도는 A-26들을 미 해군이 인도받은 것. 주로 실험기나 훈련을 위한 공중표적 예인용 항공기로 썼다. 특이하게도 JD-1 중 1대는 동체 중간 위쪽에 사출좌석 및 더미인형을 설치하고 공중에서 사출좌석이 안전하게 작동하는지 실험하는 실험기로 개조되기도 했다.

  • 민간용 A-26

1945년부터 약 300여 대의 A-26이 민간용으로 개조되어 등록되었다. 보통 민간용 A-26/B-26은 주요 요인의 긴급 이동용으로 쓰였는데, 이를 위해 기총 같은 무장은 (당연히) 제거되었으며 폭탄고의 창은 닫힌 채로 고정되고 대신 승객 탑승용 사다리 등이 추가되었다. 개조된 내부 공간에는 6~8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었다.

B-26K(A-26A)를 만든 온 마크 항공사는 A-26을 개조, Executive, Maketeer(Executive의 성능개량형), Marksman(여압실을 추가한 버전) 등으로 이름을 붙인 민항기로 개조했다. 온 마크 항공사의 민간용 A-26은 총 8대가 개조되었는데, 이 중 마지막 2대는 지형추적 레이더나 고성능 항법장비까지 갖추었다. 이 2대는 실은 민간용 항공기로 위장한 CIA용 항공기였으며, 장거리 작전중인 CIA 요원의 침투나 물자 보급 등을 돕는 항공기였다.

3 활약

3.1 제2차 세계 대전

A-26 시리즈가 최초로 실전배치된 곳은 태평양 전선이었으며 1943년 8월에 A-26B가 태평양 지역의 제5 공군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현지에서의 평은 영 좋지 않았는데, 특히 측면/후면 시야가 많이 가리는 탓에 지상의 표적을 찾고 공격을 준비하는 데 영 좋지 않았다.

반면 유럽전선에서는 A-26 시리즈가 좀 더 인기가 많았다. 주로 구형인 A-20과 A-26]이 혼성을 이루어 폭격 및 기총소사를 하였다.

1947년, 미 육군 항공대가 독립하면서 '공격기'라는 카테고리 자체를 안 쓰기로 함에 따라 A-26은 전부 B-26으로 제식명이 변경되었다.

3.2 6.25 전쟁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B-26은 일본 기지에서 이륙, 북한 평양 등에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 내 주한미군 B-26 부대가 증편되면서 1951년부터는 부산과 군산 등에도 B-26 부대가 배치되었다. B-26은 한국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며 전쟁 종료 시까지 15,000회 비행하였다(그중 7,000회는 야간작전). 한국전쟁 동안 B-26은 38,000대가량의 차량과 400대의 기관차, 3,700대가량의 화물열차, 그리고 7대의 항공기(지상파괴)를 파괴하였다.

1951년, Walmsley, Jr. 대위는 야간작전 중 무장열차를 발견하고 폭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폭탄이 빗나갔는지 무장열차는 손상은 입었으나 계속 철로 위를 달렸다. 결국 Walmsley 대위는 위험을 무릅쓰고 라이트를 켠 채 무장열차 주변을 3번가량 왔다갔다하여 동료기들에게 열차의 위치를 정확히 알렸다. 대공포는 라이트를 켜서 눈에 잘 보이는 Walmsley 대위의 B-26에 집중되었고, 결국 이 B-26은 기체 곳곳이 손상되었다. Walmsley 대위의 활약 덕분에 동료기들은 북한군 무장열차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대공포 공격도 덜 받았고, 결국 무장열차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Walmsley 대위의 기체는 여기저기가 너무 많이 손상되었고 결국 날개에서 새어나온 연료에 불이 붙어 추락하고 말았다. 항공기에는 Walmsley 포함 4명의 승무원이 탑승했으나 3명은 사망하였고 나머지 1명인 후방기총사수 Morar만 부상당한 채 살아남아 포로로 잡혔다. Walmsley는 실종 처리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뒤 전사가 확인되면서 전사 처리되었고, 1954년에 명예 훈장을 추서받았다.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이 발효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항공폭격을 가한 기체이기도 하다. 제3 폭격비행단 소속 기체가 휴전협정 발효 24분 전에 폭격을 실시했다.

4 제원

  • A-26B 기준
    • 승무원: 3명
    • 전장: 15.42m
    • 전폭: 21.34m
    • 전고: 5.64m
    • 익면적: 50m²
    • 자체중량: 10,365kg
    • 최대이륙중량: 15,900kg
    • 엔진: 프랫&휘트니 R-2800-27 더블 와스프 18기통 성형 엔진 2기 (각 2,000마력)
    • 최대속도: 571 km/h
    • 순항속도: 457km/h
    • 항속거리: 2,300km
    • 실용 상승 한도: 6,735m
    • 상승률: 381m/min
    • 추종비: 108W/kg
    • 하드포인트: 2개소
    • 무장
      • 12.7mm 기관총 6~8정
      • 폭장량: 6000파운드(4000파운드가 내부 폭탄창, 2000 파운드가 외부 폭탄창
      • 5인치 HVAR 로켓 10발

5 기타

  • 프로토타입의 첫 시험비행으로부터 불과 28개월 만에 개발이 완료되어 실전에 투입되었다. Operation Cwal
  • 원래는 노즈 부분에 8정의 12.7mm 기관총을 장착했으나 8정의 기관총이 뿜어대는 발사가스가 파일럿의 시야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그중 6정만 장전하곤 했다. [8]
  • 주로 보고되었던 결함 중엔 내부 폭탄 베이의 조명[9]이 꺼지지 않는 현상이 있었다. 별거 아니라 생각할 수 있으나 야간 폭격 임무 중엔 예광탄을 동체에 달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나름대로 치명적인 문제였는데, 윗선으로 보고할 것도 없이 정비사들이 정비를 마친 후 조명의 전선을 빼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 1944년 9월, 영국 에섹스 지역에 배치되었던 553 폭격기 중대[10]에도 18대가 배달되었고, 2차대전 종전까지 11,567회의 작전에 투입되어 18,054톤의 폭탄을 뿌려댔다.
  • 나무위키의 이 A-26 문서는 토막글로 출발, 2016년 1월 20에는 오늘의 토막글로 선정되었다. 결과는 5천 자 정도 증가하여 약진에 그쳤으나 날짜가 바뀐 직후 xwing푸념과 함께 8천 자가량을 더 추가해서 지금 이 문서에 이르고 있다. 만약 xwing의 참여 시기가 몇 시간만 더 빨랐다면 대성공도 가능했을 것이다. [11]

6 미디어 등장

  • 워 썬더》에 미군 공격기로 등장한다.
  • 그대에게/BOUT-1》 2권에서 총 4대가 등장한다. 호출 부호제로니모.
  • 영화 《영혼은 그대 곁에(Always)》에서 남자 주인공이 탑승하는 산불 진화용 비행기로 등장한다. 동료 비행기의 엔진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급강하했다가 엔진 화재로 폭발한다.
  1. 후에 맥도넬과 합병, 맥도넬 더글라스가 된다.
  2. 당시 보통의 항공기는 날개 주익의 가장 두꺼운 부분이 앞전의 약간 뒤에 위치하였는데 층류익은 그보다 중간에 위치하고 있고 날개의 윗면과 아랫면이 거의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 이런 주익의 구조는 날개 위에서 일어나는 공기 와류를 줄여주며, 공기저항도 격감시켜, 결과적으로 빠른 속력과 긴 항속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현대 항공기도 이와 유사한 구조의 날개를 채택하고 있다.
  3. F6F, P-47, F4U 등 미국의 쟁쟁한 항공기들이 사용한 대추력 엔진이다.
  4. 당시의 야간전투기는 보통 야간 폭격을 오는 적 대형 폭격기 요격용이었기에 일반적인 1인승 전투기 수준의 민첩함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보통 덩치가 넉넉한 경/중폭격기를 개조하여 당시 항공기들로서는 부담스러운 크기와 중량이었던 레이더를 탑재하고, 많은 무장을 탑재하여 잠깐의 기총소사로도 적 폭격기에 치명타를 줄 수 있을 정도로 화력을 끌어올렸다.
  5. 일반적으로 군용 항공기는 군과 항공기 개발업체가 계약할 때 엔진은 별개로 본다. 즉 군이 엔진 회사와 별도로 계약하여 엔진을 구매한 다음, 이것을 항공기 회사에 건네주는 형태로 계약한다.
  6. 굳이 부조종사가 폭탄 투하 버튼을 누르려면 안전띠 한쪽을 풀고 조종사 너머로 손을 뻗어야 했다.
  7. 1962년 이전까지 미군 명명법이 통합되기 전에는 개조임무부호에 F가 오면 이는 사진정찰기라는 뜻이었다.
  8. 나중에는 기총이 터렛식으로 날개에 장착되는 방향으로 개량되었다
  9. 물론 통상적인 비행등 역할 하라고 만들어둔 것이 아닌 정비사들의 정비 및 무장 장착 시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조명이다. 원래는 비행 중엔 계속 꺼져있어야 하는 게 정상.
  10. 이후 종전까지 프랑스와 벨기에로도 이사를 다니며 신나게 쑥 재배에 전념한 후 본토로 돌아갔다.
  11. 그런데 F-84 썬더제트에서도 거의 동일한 일이 있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