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0

2차 세계대전기에 개발된 소련의 프로토타입 경전차에 대해서는 A-20 경전차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A-20G Hav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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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 Havoc

1 제원

전장 : 14.63m
전폭 : 18.69m
높이 : 5.36m
중량 : 6,827kg
엔진 : P&W R-2600 더블 사이클론
출력 : 1,700hp
최대속도 : 546km/h
항속거리 : 1,690km
상승고도 : 7,225m
무장 : 7.7mm 기총 7정, 폭탄 1,900kg
승원 : 3명

출처: [1]

2 개요

더글라스 A-20 하복(회사 내 명칭 DB-7)은 미국에서 개발된 공격기 내지 경폭격기이며, 2차대전기의 야간 전투기이기도 하다. 많은 연합군 측 국가에서 운용되었다.

개발국인 미군부터 소련 공군과 영국 공군까지 이용했다. 소련에도 3분의 1정도의 A-20, 그러니까 2,908대의 A-20이 전해졌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네덜란드에 의해서도 쓰였고 심지어 전후에도 브라질에서 운용되었다.

3 첫 개발과정

1930년대 중반, 국제 정세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미국은 고립주의를 이야기하면서도 내심 전쟁에 대비하여 여러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맞춰 더글라스 항공[1]은 미리 설계팀을 꾸려 미 육군항공대가 원할만한 신형 공격기를 개발하였다. 이 드림팀의 구성은 화려했는데 잭 노스롭[2]과 에드 하이네만만[3]을 비롯, 더글라스 항공사 내의 유능한 설계자들이 참여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는 지상공격기는 엔진이 1개인 단발 항공기가 일반적이었으나 더글라스의 설계 팀은 쌍발 공격기를 설계하였다. 장차 전쟁이 벌어지면 단발 공격기로는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하여간에 미 육군항공대가 원하는 속력, 비행거리 및 무장탑재량을 만족할 수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더글라스 설계팀은 1936년부터 설계를 시작하였는데 이들이 설계한 초기 버전의 사내 명칭은 모델7A였다. 모델7A의 초기 설계 안은 전체중량 9,500파운드에 최대속도는 250mph, 승무원은 3명인 쌍발 공격기였다. 다만 아직 미 육군 항공대가 정식으로 공격기 개발 사업을 공모한 상황은 아니었으며 그저 더글라스 설계팀이 미래를 예측하고 설계를 진행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듬 해인 1937년 말엽에 스페인 내전이 터지자 더글라스는 절반 정도 진행된 신형 쌍발 공격기의 설게를 일시 중단했다. 스페인 내전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오랜만에 터진 유럽내 전투여서 여러국가의 신무기, 신전술이 선보이는 장이 되었다. 이에 여러 나라들은 전투 상황에 촉각을 세우고 다가올 미래전의 양상을 점쳤다. 미 육군항공대도 예외는 아니어서 본격적으로 신형 공격기 개발 사업에 착수하였다.

미 육군이 실제로 내놓은 목표 값은 쌍발 엔진에 최대 속도 200mph 이상, 전투 행동 반경은 1200마일, 그리고 무장 탑재량은 폭탄 1200파운드 이상이었다. 이 외에도 자잘한 요구사항이 있었는데 더글라스가 자체적으로 개발하던 모델 7A로는 부족한 점도 많았기에 모델 7의 대대적인 재설계가 불가피했다. 이 바쁜 와중에 설계팀의 팀장이었던 잭 노스롭은 퇴사후 본인 회사를 차리기로 결정함에 따라 모델7의 재설계 작업은 하이넨만이 팀장을 맡아 진행되었다.

새 설계안은 모델7B로 명명되었다. 모델7B는 야전에서 기수를 변경 가능하도록 설계 되었는데 한 가지는 공격기로 쓰기 위해 전면이 금속으로 막혀있고 기관총이 4정 탑재된 버전이었고, 또 한가지는 경폭격기로 쓰기 위해 기관총이 빠지는 대신 기수가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폭격수가 표적을 조준할 수 있는 버전이었다. [4] 엔진은 당시 1100마력급으로 개발 중이던 P&W의 R-1830C를 쓰기로 하였다. 꼬리날개는 1개에 등허리 부근에는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평소에는 숨겨져 있다가 사용시에만 바깥으로 나오는 방어용 기총좌가 탑재되었다. 랜딩기어는 앞바퀴 1개에 뒷바퀴 2개인 세발자전거 방식으로, 요즘이야 흔한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아직 잘 쓰이지 않던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당시에는 큰 앞바퀴 2개에 작은 꼬리바퀴 1개를 사용하였는데, 세발자전거 방식은 이 전통적인 방식에 비해 급정거시 기체가 앞으로 고꾸라질 염려도 없고 지상에 있을 때도 기체가 수평을 유지해서 지상 활주시 조종사가 앞을 보기 더 좋았다.

미 육군의 신형공격기 사업에는 더글라스 이외에도 스티어맨[5], 마틴[6], 노스아메리칸 항공[7] 등이 참여했다.

모델 7B는 1938년 12월에 처녀비행을 마쳤으며 이후 여러번의 시험비행을 실시하였다. 미육군이 평가한 바로는 더글라스의 모델7B는 특별한 결점이 없었고, 속도도 만족스러웠으며 특히 덩치가 있는 쌍발 공격기 치고는 기동성이 좋았다. 그러나 미 육군은 더글라스의 모델7B를 포함, 세 항공사의 제안 모델 중 어느 것을 구매할지 결정을 못내리고 있었다. 미 육군 항공대가 일단은 시제기 생산을 주문의뢰하긴 했지만, 정작1938년은 아직 미국이 유럽 전쟁에 발을 들이기 전이어서 무기 개발/구매에 적극적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사업에 매의 눈을 켜고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아직 히틀러무쏠리니의 깽판이 강건너 불구경이었던 미국과 달리 프랑스는 발등의 불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정식으로 프랑스가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기 전이었지만 바로 국경을 맞댄 독일이 발광을 하기 시작하니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당시 프랑스도 우수한 항공기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신형 무기의 대량생산을 자체 역량만으로는 소화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프랑스 정부는 미국에 무기 구매 사절단을 보낸 상태였는데 마침 미국에서 신형 쌍발 공격기 사업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미국은 아직 고립주의를 대내외적으로 표방하던 상태였기에 괜히 프랑스 지원하여 고립주의 깬다는 소리 들을까봐 프랑스의 무기 구매 사절단 방문은 비공개로 진행했다.

특히 프랑스 사절단 중 1명이 더글라스의 모델 7B를 마음에 들어하였고 미 정부에 부탁하여 시승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일이 하필 꼬여서 프랑스 사절단을 태우고 비행하던 모델 7B의 한쪽 엔진이 갑자기 꺼져버렸다. 보통 쌍발 항공기는 1개 엔진이 꺼져도 비행이 가능하지만 이 때는 운이 나빠서 엔진 정지로 인해 모델7B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 더글라스의 시험 조종사는 비상탈출하였으나 낙하산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아 사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함께 탄 프랑스 사절단은 비상탈출 하지는 못하였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잔해속에서 구조되었다. 그런데 하필 이 사실이 기자들에게 알려졌다. 곧 이 사실이 기사화 되면서 미국내의 고립주의자들은 프랑스 사절단의 비밀 방문에 대해 비난을 쏟아 냈고, 당시 미육군항공대의 참모총장이었던 햅 아놀드 장군은 정치적으로 곤욕을 치뤄야 했다. 근데 몇 해 뒤에 진주만에서...

어쨌거나 모델 7B가 추락을 했지만 프랑스 입장에서 이는 병가지상사였고, 여전히 모델7B에 만족을 표했다. 그리고 몇 주 뒤 프랑스는 더글라스와 신형 쌍발 공격기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였고 처음에는 100대를 계약하였으나 곧 270대로 주문량을 늘렸다. 다만 프랑스는 더글라스에게 몇 가지 추가적인 요구를 했다. 프랑스는 일단 모델 7B의 무장탑재량과 항속거리를 더 늘리기를 원했으며 장갑도 좀 더 강화하기를 바랐다. 더불어 계기판을 프랑스제로 바꾸고(당장 속도, 고도계부터가 문제였는데 미국은 마일 단위, 프랑스는 미터 단위를 사용) 기총이나 기타 무장도 향후 탄약 보급을 위해 프랑스제로 바꾸기를 원했다.

그런데 설계팀장인 하이넨만과 더글라스 항공사의 경영자이자 그 자신도 항공기 엔지니어인 도널드 더글라스가 이 프랑스가 요구한 '약간의 추가 수정 요청사항'을 검토해보니 생각보다 고칠게 많았다. 고객님의 갑질

그 결과 동체를 전면 재설계하여 동체 단면이 위아래로 늘어나는 대신 좌우폭이 좁아졌고 전체적인 부피도 커졌다. 이는 프랑스가 요구한 추가 무장, 추가 연료탑재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공기저항은 줄여 기존의 기동성 및 최대속도 요구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이 좁아진 동체 덕분에 승무원간의 자리 이동이 어려워졌다. 즉 조종사나 폭격수, 사수가 전투중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면 다른 승무원이 그를 돕거나 긴급하게 임무를 땜빵할 수 없단 소리였다. 이에 조종석에 탑승한 승무원들이 전멸해도 후방사수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사수석에 아주 기초적인 항공기 조종기능을 넣으려 하기도 했지만, 사수석에서는 전면 시야가 엄청 제한적인데다가 애당초 사수석에 앉는 승무원은 항공기 조종에 대해 제대로 배우는 경우가 없었으므로[8] 이 기능은 곧 삭제했다.

또 프랑스의 '약간의 추가 수정 요청사항'을 만족하기 위해 날개 위치도 새로 바꿔야 했다. 동체 단면이 종전의 원통형에서 위아래로 길쭉한 타원 형태가 되다보니 기존 날개 위치대로 하면 지상착륙시 동체 바닥이 땅에 끌릴 위험이 있었다. 이를 막으려면 랜딩기어 길이를 늘려야 하는데 그러면 당연히 무게가 늘어난다. 특히 랜딩기어는 착륙시 충격을 엄청 받는 부분이어서 길이가 늘면 그 만큼 구조적으로 약해지기 때문에 단순히 길이만 늘리는게 아니라 굵기도 늘려야 한다. 그래서 더글라스 설계팀은 차라리 랜딩기어가 붙어 있는 날개를 아래쪽으로 내리는 것으로 설계를 수정하였다. 그 결과 새로운 설계안은 날개가 동체 중간쯤에 붙는 형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랜딩기어 길이가 모자라서 랜딩기어가 실제로 붙는 부분인 엔진 나셀[9]이 날개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덕분에 랜딩기어는 기존 것을 그대로 쓸 수 있었으나 다만 그래도 길이가 모자라서 전방의 랜딩기어는 길이를 좀 늘려야 했다.

모델7B는 동체와 날개말고 다른 부분도 많이 바뀌었다. 일단 눈에 띄는 부분이 기수 부분이었다. 본레 모델7B는 기수를 폭격기 버전과 공격기 버전, 두 가지로 만들려 하였으나 프랑스는 폭격기 버전만 요구했다. 그래서 폭격수의 시야 확보를 위해 새 설계안은 기수부분이 전체적으로 유리로 둘러 쌓였다. 대신 공격기 버전의 방안도 절충하여 기수에 2정의 30구경 기관총이 고정 장착 되었다.

모델 7B의 변경된 설계안에서 동체 뒤쪽에 후방사수석이 있다는 점은 그대로였지만, 동체 형상이 바뀜에 따라 사수석의 형상도 바뀌었다. 기존에는 동체 위쪽이 기수 부분부터 꼬리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졌으나 변경된 설계안은 동체 위쪽이 뒤로 일직선으로 이어지다가 사수석 근처에서 높이 단차가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 역시 동체가 위아래로 길어진 탓이었다. 여기에는 후방으로 유리창이 나있는데, 사수는 평소 비행중에는 이 유리창 부분을 닫고 있다가 적기가 나타나면 이를 열고, 30구경 기관총 1자루를 거치한 다음 적에게 대응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후방사수는 적기가 아래쪽으로 붙을 경우, 동체후방 아래쪽을 개방한 다음 기총을 거치하여 적기를 상대할 수 있었다.

한편 앞서의 모델 7B가 엔진 한쪽이 꺼지자 추락한 원인이 수직꼬리날개의 강도 부족으로 나타났다. 쌍발 항공기는 한쪽 엔진이 꺼지면 갑작스럽게 좌우 불균형이 생기는데, 기존 설계안은 이 상황에서 수직꼬리날개가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새로운 설계안은 꼬리날개의 구조를 보강하여 이러한 문제를 막았다.

이렇게 고객의 갑질 대폭적인 설계 변경 끝에, 더글라스의 공격기는 DB-7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더글라스사의 7번째 타입 폭격기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미육군항공대도 차일피일 미루던 차기 쌍발 공격기 구매안을 결정하였다. 바로 더글라스의 DB-7 이었다.[10] 미 육군항공대는 자기네식 제식명칭을 붙였고, 그 명칭이 A-20이었다. 누구는 공격기(A)라 부르고 누구는 폭격기(B)라 부르고 덕분에 거의 비슷한 비행기임에도 이름이 DB-7, A-20 두 가지가 되었고 나중에 영국도 이 항공기를 구매하면서 보스톤이란 이름을 붙여 훗날 A-20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밀덕들에게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탕을 선사한다.

4 세부모델

4.1 DB-7/보스턴I/보스턴II/하복I

상술한 바와 같이 프랑스 공군이 도입한 버전이며 더글라스제 폭격기 7번째 모델이란 의미다. 엔진은 처음 프랑스 공군이 구매 계약한 초기 버전 100대는 1100 마력의 R-1830C를 두 개 탑재하였으나 이후 추가 구매한 170대는 1200 마력짜리 R-1830CSC-4G를 탑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엔진 제작사인 P&W의 문제로 신형 1200 마력 엔진 공급이 늦어지자 프랑스 공군은 일단은 1100마력 엔진을 이용해서라도 계속 DB-7의 생산 라인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170대중 앞서 생산된 50대는 1100마력 엔진을 탑재하였다.

이 DB-7중 일부는 벨기에도 소수 입수하여 운용하였다.

그런데 벨기에와 프랑스가 대충 망한 뒤, 영국으로 도망친 벨기에 및 프랑스 병력이 보유한 DB-7들이 영국 공군에 편입되었다. 영국은 1100마력 엔진 버전을 보스턴 I, 1200마력 버전을 보스턴 II라고 새로 명명하였는데 보스턴 I은 출력이 너무 약하다 판단하여 아예 훈련용으로만 썼다. 보스턴 I, 보스턴 II는 프랑스가 그랬던 것 처럼, 영국제 계기판과 기관총으로 변경되었다.[11]

한편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되자 영국은 당장 공격기보다 전투기가 모자란 상황이 되었다. 이때 DB-7, 그러니까 보스턴이II가 생각보다 기동성이 좋다는데 착안하여 영국은 100대를 야간 전투기로 개조하였다.

보스턴II 야간전투기 버전은 하복(Havoc)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실제로는 두 가지 모델이 있었다. 하나는 침투형 모델로 이것은 기존 DB-7과 비교시 페인트를 검게 칠하고 엔진에 소염기(야간작전중 엔진 배기구의 불꽃 등이 적에게 보이는 것을 막는 장치)를 단 것 외에 큰 변화가 없었다. 이것은 대담하게도 독일에게 점령된 프랑스 공군 기지 근처를 야간에 배회하다가, 여기서 이착륙하는 독일군 폭격기 부대를 덮치는 용도였다. 독일 폭격기 부대 입장에서는 영국에 대한 폭격을 마치고 기지에 다다라 안심한 상황에서 기습공격을 당하다 보니 하복 침투형에 의한 실질적인 피해보다도 모랄빵 문제가 더 컸다. 물론 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대공포 부대가 있었지만 깜깜한 야간이니 피아 식별도 잘 안되어 방어도 어렵고....

또 하나의 하복은 순수 야간전투 모델로 폭격수 자리가 없어지고 전면 유리창도 금속동체로 덮는 대신에 4정의 기관총과 공대공레이더를 탑재하였다.

4.2 DB-7A/하복II

프랑스 공군은 DB-7 구매에 만족했으나 추가 개량을 요구했고 그에 따라 개발된 것이 DB-7A였다. 사실 DB-7A는 당시 미 공군이 구매결정을 내리고 생산을 지시한 A-20A와 많은 부분을 공유했다. 일단 엔진이 A-20A에 탑재된 것과 같은 1600마력짜리 R-2600-A5B로 변경되었다. 새 엔진에 맞춰 엔진장착부도 형상이 수정되었는데, 일단 이 부분이 뒤로 더 길고 뾰족한 형태로 바뀌었다. 또한 엔진 냉각효율을 높이기 위해 엔진 앞쪽 덮개(카울링)에 추가로 구멍을 생겼으며 공기 흡입/배출구 형상도 변경되었다.

엔진 출력이 강해짐에 따라 구조강도나 조종성 관련된 부분도 수정되었다. 특히 앞서의 모델7B 추락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만약 엔진이 한쪽이 꺼지면, 강해진 엔진출력 때문에 좌우 불균형이 더 강해진다. 처음에는 더글라스 엔지니어들이 수직미익을 2개로 늘리는 것도 고려했지만 모형 실험등을 해본 결과 기존 수직꼬리날개의 크기를 좀 크게 늘리는 것만으로 충분히 문제가 해결 되었고, 그 실험 결과과 DB-7A에 반영 되었다.

또 랜딩기어가 A-20A의 것과 동일하게 변경되었는데, A-20A의 것이 설계 상으로나, 유지보수면에서나 더 나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공군은 앞서의 DB-7 추가 계약분 170대에 대한 계약이 완료된지 1주일 만인 1939년 10월에 DB-7A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였다. 원래대로라면 거의 1천대 가량이 프랑스 공군에 전달될 예정이었으나... 프랑스가 아아 망했어요. 결국 프랑스는 DB-7A를 75대 받은 시점에서 끝나 버렸다. 대신 남은 생산 물량은 자유프랑스의 동의하에 영국에 전달 되었다. 영국 공군은 DB-7A는 공격기/경폭격기 버전으로 쓰지 않고 모두 레이더를 탑재한 야간 전투기로 개조, 하복 II라 이름 지었다. 하복 I과 비교하면 하복 II는 마틴 베이커사에서 기수를 전면 재설계하여 기총을 12정 달 수 있었다.

4.3 DB-7B/보스턴 III

DB-7B는 본래 영국 공군이 따로 구매하려던 DB-7 시리즈중 하나였다. 프랑스와 함께 영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1940년, 미국에 무기 구매 사절단을 보냈는데, 이때 영국 역시 DB-7를 마음에 들어하였다. [12]

영국군은 자기네 입맛에 맞게 DB-7B의 계기판과 기총을 영국제로 교체해달라고 했는데 영국의 기총 및 탄약통은 기수 안쪽에넣기에 너무 컸다. 그래서 DB-7B는 기총을 폭격수석 아래쪽 좌우측면에 달고, 모자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유선형의 외부 덮개를 추가하였다.영국공군은 DB-7B 대신 보스턴(Boston)이라 부르기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망항 프랑스와 벨기에의 DB-7, DB-7A도 입수하게 되어 영국 공군이 계약한 버전은 보스턴 III가 되었다. 영국 공군은 보스턴 III를 150대 가량 주문 하였으며 이후에도 추가 주문하여 약 300대가 영구 공군에 전달 되었다. 일부는 보스턴 I, II와 마찬가지로 야간 전투기로 개조되었다.

4.4 A-20

프랑스와 영국이 더글라스의 DB-7에 관심을 보이는 순간에도 미육군항공대는 이에 대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모였다. 일단은 아직 고립주의를 택하던 시점이라 당장의 무기 확보에 적극적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육군 항공대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초반보다 요구 목표를 더 까다롭게 정했는데, 특히 더글라스에게 불리 했던 것이 무장탑재량이었다. 미 육군 항공대는 사업을 진행중 무장탑재량 목표치를 2400파운드까지 늘렸는데 더글라스의 설계 안으로는 여기까지 늘리기 무리가 있었다. 결국 미 육군 항공대는 더글라스 대신 노스 아메리칸의 설계안을 채택하였고 이 설계안은 후에 개량을 거듭하여 B-25가 된다.

하지만 프랑스, 영국의 주문에 의해 더글라스의 설계안도 상당히 진전되고 양산이 확정됨에 따라 기왕이면 이것도 구매해볼까...라는 요량으로 63대 정도 구매하기로 계약을 체결한다. 이에 따라 DB-7은 미 육군항공대에 A-20이란 이름으로 등록된다.

A-20은 영국 및 프랑스의 DB-7 시리즈와 거의 설계를 공유하긴 했지만 미 육군항공대의 요청에 따라 변경된 부분도 많았다. 일단 무장과 계기판은 미 육군항공대 요구사양에 맞춰 개조 되었으며 엔진은 라이트사의 R-2600-7가 탑재되었다. 이 엔진은 1700마력으로 기존 DB-7의 것보다 더 강력하였다.

미 육군 항공대는 A-20를 '공격기'로 분류하였지만 초반에는 오히려 고고도 경폭격기로 쓸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고고도 성능을 높이기 위해 터보 방식의 과급기를 달았다. 덕분에 A-20은 다른 모델에 비하여 엔진 탑재부가 확연히 달라지는데, 특히 배기가스 배출을 위해 엔진 탑재부 좌우측에 큰 배기구가 달렸다.

하지만 이 설계변경은 여러 문제점이 있었다. 일단 커진 엔진 탑재부 때문에 항력이 늘어났고, 또 엔진 탑재부 형상 변경에 따라 엔진의 냉각효율에도 문제가 생겼다. 게다가 미 공군은 향후 A-20을 고고도 폭격기 보다는 저고도 공격기로 쓰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 터보 과급기 탑재 버전 A-20은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결국 미 공군은 A-20의 엔진을 과급기를 제거한 R-2600-11로 교체하였으며, 폭탄고에 20mm 기관포를 탑재하고 레이더를 탑재한 야간 전투기 XP-70이란 이름으로 개조하기로 하였다. 그럼에도 이 A-20 기반 야간 전투기는 미 육군항공대가 보기에 썩 만족스러운 물건이 아니어서 결국 대부분 훈련용으로만 쓰였다. 다만 극소량은 태평양 전선에서 실전 배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A-20중 3대는 카메라를 탑재한 사진 정찰기로 개조되었으며 이 3대의 시제기는 YF-3이란 이름으로 등록되었다. 하지만 이래저리 사진정찰기 버전도 미 육군 항공대의 입맛에 맞지 않아서 더 이상의 추가 개량은 없었다. A-20 기반 사진절찰기는 이후 A-20의 개량형중 하나인 A-20J가 나올때 즈음에야 등장한다.

4.5 A-20A/BD-1

미 육군 항공대는 A-20의 성능을 아주 만족스러워 하진 않았으나 [13] 그렇다고 A-20을 아예 버릴 생각은 없었다. 곧 미 육군 항공대는 1939년에 A-20의 첫번째 개량 버전인 A-20A를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123대를 주문한다.

A-20A의 초기버전은 엔진이 1600마력인 R-2600-3이었으며 123대 이후 추가로 생산된 20대는 힘이 더 좋아진 R-2600-11을 탑재하였다. A-20A의 또다른 특징중 하나는 엔진탑재부에 장착된 후방 기총으로, 이 기총은 후방사수가 페달을 밞으면 발사 되었다. 다만 고정식이 었기에 적기를 정확히 조준할 수는 없어 적기에게 위협사격을 하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야전에서 별 쓸모가 없다하여 제거되는 경우도 많았다.

강력해진 엔진덕에 최대속도는 350mph로 늘어났다.A-20A가 등장한 시점 기준으로 따지면 1선급 전투기와 비교해도 그리 뒤처지는 수준은 아니었기에 전선에서 적기를 만나면 후방기총으로 대응하면서 뿌리치고 도망칠 수도 있었다. 다만 A-20A가 실전에 투입되던 시점인 1941년 이후는 이미 전투기들이 워낙 빨라진 시점이라서...A-20A의 무장탑재량은 1100파운드로 미육군항공대 생각에 아주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적당한 수준이었다.

A-20A는 1940년에 첫 비행을 시작하였고, 테스트 비행을 거쳐 1941년부터 본격적으로 미 육군항공대에 전달되었다. 미 육군항공대는 A-20A의 화력과 방어무장, 이착륙거리 등이 좀 불만족스러웠지만 조종성능 자체는 체급에 비하여 우수하였고, 조종하기도 쉬운 편이었기에 A-20A의 개량버전을 계속 주문하기 시작하였다.

4.6 A-20B/BD-2

A-20B는 사실 두 가지 모델이 있다. 첫 번째 A-20B는 1941년 중반 무렵, A-20A에 수동이 아니라 외부 동력으로 작동하는 2연장 30구경 기관총 포탑을 3개 단 모델이었다. 이 포탑들은 후방 동체 위쪽과 아래쪽, 그리고 기수 부분에 장착되었다. 미 육군항공대와 맥도널은 A-20A 1대를 개조하여 XA-20B라는 이름을 붙여 포탑의 유용성을 검토했으나 생각보다 별로여서 결국 이 XA-20B는 취소되고 실험에 쓰인 기체는 다시 포탑을 철거하여 A-20A 형상으로 재개조 되었다.

실제 미육군항공대에 채택된 A-20B는 좀 더 뒤에 제작된 모델이다. 외관상 기수부분이 달라졌는데, 과거 A-20A는 폭격수 자리부분의 유리창 뒤쪽이 대각선으로 마무리되었으나 A-20B는 계단형으로 변경되어 제작성이 더 좋아졌다.

또한 기수와 후방사수의 기총이 30구경에서 50구경으로 변경되어 화력이 증가하였다. 다만 엔진 장착부(나셀)에 탑재된 후방 고정형 기관총은 그대로 30구경을 유지하였다. 엔진은 R-2600-11을 사용하였다.

A-20B는 999대나 제작되었는데 그중 665대는 소련렌드리스로 공여 되었다. 한편 A-20B를 기반으로 사진정찰기 및 관측기인 O-53도 개발 및 대량생산될 예정이었으나 곧 다른 항공기를 쓰는게 더 낫다는 결정이 내려저 이 계획은 취소되었다.

사실 A-20B는 명칭상으로는 A-20A보다 뒤에 개량된 기종이지만 몇 몇 부분은 오히려 A-20A보다 뒤처졌는데, 특히 장갑등 생존성과 관련된 부분이 그러했다. 이는 A-20B가 본래 DB-7A를 기반으로 개발된 것이어서 그런데, DB-7A는 아직 전쟁을 치르기 전에 설계된 기종이다보니 실제 전투경험이 반영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 A-20B의 제작된 수량중 상당수가 소련에 공여된 것도, 그리고 소련이 이 A-20B에 대해 불평이 많았던 것도 이러한 영향인듯 하다.

4.7 A-20C/보스턴 III

영국과 미국이 어차피 같은 A-20을 쓰는 마당이니, 두 나라 입장에서는 서로 쓰고 있는 A-20을 가급적 통일하는 편이 생산성이나 군수지원 면에서 유리했다. 그래서 A-20C에 이르러 영국군/미군용 기체가 거의 동일하게 제작되었다. 영국군은 A-20C를 보스턴 III라 불렀으며, 보잉에서 면허 생산한 버전은 보스턴 IIIA라 불렀다. 보스턴 III와 보스턴 IIIA는 거의 같은 기체이긴 하였으나 전자장비나 일부 구성품이 약간 달랐다.

A-20C는 설계에 실전 경험이 반영됨에 따라 생존성과 관련된 부분이 많이 강화되었다. 장갑판이 추가 되었으며 자동봉합식 연료탱크[14]를 사용하였다. 기수 부분은 A-20B보다는 A-20A와 유사한데, 이는 위에 언급한바와 같이 A-20B가 DA-7A를 기반으로 설계된 모델이어서 그랬다. 한편 엔진 후방에 고정 장착된 기총은 유용성이 없다 판단하여 삭제 되었다. 엔진은 최대출력 1600마력인 R-2600-23 모델을 사용하였다.

A-20C는 엔진출력이 별로 증가되지 않은데 비하여 여러 생존성 관련 장비가 추가되다보니 결과적으로 비행성능은 좀 더 나빠졌다. 이를테면 최대속도는 324mph가 되어서 기존 350mph보다 떨어졌다. 그럼에도 일선에서는 증가된 생존성 때문에 A-20C를 더 좋아했다.

A-20C는 총 948대가 제작되었으며 이중 808대는 더글라스에서, 140대는 보잉에서 생산되었다. 더글라스 혼자서는 이 많은 생산 물량을 도저히 소화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자신들이 구매한 A-20C, 그러니까 보스턴III과 보스턴IIIA 중 상당수를 다시 소련에게 떼어줬는데 이렇게 소련으로간 기체중 일부는 또 다시 미국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돌려 막기

4.8 A-2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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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G는 A-20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많이 생산된 모델로 총 2850대가 생산 되었다.

A-20G는 여러 실전 경험을 토대로 공격기 역할에 충실하도록 기수의 폭격수 자리가 없어졌다. 대신 금속으로 덮인 소위 'Solid Nose'라는 기수가 되었는데, 이는 사실 앞서 본바와 같이 모델7 시절부터 제안된 개념이었다. A-20G의 초기 모델은 본래의 기수 기관총에 더하여 금속 기수 부분에 추가로 20mm 기관포를 4문 달아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였으다. 그러나 미국의 이 20mm 기관포는 비행중이나 발사중 탄걸림 현상이 종종 생기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15] 결국 A-20G는 기수이 무장을 20mm 대신 50구경 기관총으로 대체 하였으며 이미 제작된 20mm 사용 버전 A-20G는 소련에 공여 되었다. 에잇 못 써먹겠다, 너나 가져라.

A-20G의 또다른 큰 변화는 후방 기총석이었다. A-20G의기수부분이 50구경 기관총을 사용하는 버전으로 변경되면서 후방 기총석도 기존의 기총 1자루를 걸쳐놓고 쏘는 방식에서 회전형 포탑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사실 A-20B 초기 버전에서 검토하였다가 폐기한 방안이 다시 돌아온 셈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XA-20B는 포탑을 3개 달 예정이엇으나 A-20G는 포탑 1개만 탑재하였으며 포탑의 기관총으로 30구경 2정 대신 50구경 기관총을 2정 쓴다는 점이 달랐다. 덕분에 A-20G는 종전 모델과 비교시 후방에 대한 방어화력이 한층 좋아졌다. 동체 하방으로 쏘는 기관총은 여전히 동체를 개방한 다음 사수가 거치하고 쏘는 방식이었으나, 탄약 보급의 편의성을 위해 30구경 기관총 대신 50구경 기관총으로 변경되었다.

이 외에도 A-20G는 기체의 전체적인 형상이 약간 변경되면서 기체 강도가 더 좋아져서 기존 모델보다 더 많은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으며, 최대 2000파운드까지 폭탄을 달 수 있었다. 한편 A-20G는 날개쪽에도 폭탄 탑재소가 생겨 외부에도 추가로 폭탄을 달 수 있었다. 또 A-20G는 기존 모델과 비교하여 내부 연료탱크 크기도 더 커졌으며 여기에 필요시에는 폭탄고 내에 무장 대신 연료탱크를 달 수도 있었기에 비행가능 거리도 더 늘어났다. 더불어 장갑도 더 두꺼워지고 항법장비나 일부 전자장비도 개선 되었다. 덕분에 A-20G는 엔진은 변경되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장비가 추가됨에 따라 기존 모델보다 중량이 더 늘어났기에 최대속도는 기존 모델들보다 더 떨어졌다. 하지만 어차피 A-20G가 등장할때 즈음이면 전투기들의 속도가 워낙 빨라져서 A-20G의 속도로 뿌리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일선에서는 A-20G의 속도를 늘릴바에야 방어기총의 화력과 장갑을 늘리는 것을 선호하였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A-20G는 1943년 2월부터 군에 전달되기 시작하였으며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20mm 기관포를 탑재한 A-20G 250여대는 소련에 공여 되었다.

4.9 A-20J/보스턴 IV

A-20J는 기수가 다시 유리가 덮인 형태로 변경된 모델이다. 이 A-20J는 전방에 폭격수가 탑승하여 편대를 선도하는 용도로 개발되었다. A-20J는 폭격수가 항법장치등을 이용하여 항법사 역할도 겸하였기 때문에 편대를 정확히 목표지점까지 인도할 수 있었으며, 또한 A-20J는 필요시 폭격 선도기 역할도 하였다. 즉 A-20J에 탑승한 폭격수가 표적을 조준하여 수평폭격을 하면 이를 신호로 뒤 따라 날던 A-20G 등도 폭탄을 투하하여 표적에 명중시키는 개념이었다.[16]

폭격수 탑승석을 위해 A-20G에서 기수의 추가된 50구경 기관총들은 A-20J에서 다시 삭제되었으며, 기수 하방의 기총만 2정 남게 되었다. 다만 A-20J의 주임무는 직접 지상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편대 선도 역할이었으므로 굳이 저고도로 내려가 지상 표적에게 이 기총을 쓰는 경우는 잘 없었다. 이 외의 A-20J의 외형적인 부분은 A-20G와 거의 동일하였다. 한편 A-20J의 전방 기수는 투명창으로 덮여 있긴 하지만 중간중간 창살이 거의 없는데, 발전된 기술덕에 둥근 투명창(유리가 아니라 아크릴 등의 재질을 사용)을 크게 일체형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A-20J는 총 450대가 제작되었으며, 이중 169대는 영국이 구매하였고 영국군은 이를 보스턴 IV라 명명하였다.A-20J는 1944년 6월 무렵부터 각 군에 인도되었다.

4.10 P-70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미육군항공대는 A-20을 개조하여 야간전투기로 쓰려 하였다. 허나 A-20이 공격기치고는 기동성이 뛰어난 편이었고, 실제로 영국은 이를 하복이란 이름으로 보스턴 중 일부를 개조하여 레이더와 20mm 기관포를 달고 야간전투기로 사용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 육군항공대는 A-20을 개조한 야간전투기, 즉 P-70이 본격적으로 야간전투기로 활약하기엔 부족하다고 느꼈다. 미 육군항공대는 P-70을 야간전투기 훈련용으로만 사용하였다.

하지만 A-20를 이용한 야간전투기 개조 작업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미 육군 항공대는 자기네 생각에 쓸만해진 A-20, 즉 A-20과 A-20G를 개조하여 각각 P-70A-1, P-70A-2로 명명하였다. P-70A는 레이더를 폭탄고 부근에 싣고 주무장은 기수 부분에 50구경 기관총으로 6~8정 가량 추가 탑재하였다. A-2의 경우에는 기본형이 A-20G임에도 불구하고 후방 방어총좌는 포탑이 아니라 기존의 기관총 거치식을 사용하였다. A-1은 39대, A-2는 65대가 제작 되었다.

P-70B는 A-20G를 기반으로 더 고성능 레이더를 달고 6정의 기관총을 단 모델이다 P-70B-1은 SCR-720 레이더를 단 모델이지만 딱 1대 제작되었다. P-70B-2는 SCR-729 레이더를 단 모델로 105대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P-70B가 제작될때즈음에는 더 강려크한 P-61이 일선에 배치된 시점이라 P-70B중 상당수는 무장을 때고 야간전투기 훈련기로 돌려졌다.

사실 P-70은 P-61 보다 뒤에 나오긴 하였지만 있던 A-20을 개조하던거라 미육군항공대 입장에선 큰 기대를 건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 P-61보다 최대속도나 상승력, 무장등 여러모로 야간전투기로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래도 P-70을 확보한 덕분에 귀중한 자산인 P-61을 훈련용으로 돌리지 않고 상대적으로 '잉여 스러운' P-70을 이용하여 야간 전투기 조종사 및 레이더 조작요원 훈련을 할 수 있었기에 미육군 항공대 입장에서는 P-70이 썩 불만족 스러운 물건은 아니었다.

4.11 기타 버전

  • A-20D : A-20B 기체를 유용하여 R-2600-7을 탑재한 버전. 실제로 제작되지 않았으며 구상만 하였다.
  • A-20E : A-20A 기체를 유용하여 R-2600-11을 탑재한 버전. 엔진 테스트용 기체에 가까웠고 17대만 제작 되었다.
  • A-20F : 남아도는 A-20의 기수에 크고 아름다운 37mm 기관포를 탑재하고 후방석은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포탑형 방어총좌를 달 예정이었다. 설계 단계에서 계획이 취소되어 실기체가 제작되진 않았다.
  • A-20H : A-20G와 동일한 기체이지만 엔진만 R-2300-29로 변경된 버전. 412대가 생산되었다.
  • A-20K : A-20J와 동일한 기체이며 엔진만 R2300-29로 변경되었다. 413대가 생산되었다. 영국은 90대의 A-20K를 받았고 이를 보스턴 V라 명명하였다. 이 외에 캐나다 공군에도 11대가 넘겨졌다.
  • DB-73: 프랑스 공군용 버전이다. 2차 세계 대전이 터져 소련에 전달되었다.
  • DB-7C : 네덜란드 공군용으로 제작된 DB-7 시리즈. DB-7B와 대동소이하지만 기수를 폭격수용 투명창형 말고 금속으로 뒤덮인 20mm 무장 탑재형으로 교체할 수있게 제작되었다. 해상작전을 위해 어뢰를 탑재할 수도 있었으며 해상에 비상착수시 자동으로 펴지는 구명정도 탑재하였다. 원래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로 수송될 예정이었으나 수송중간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인도네시아가 일본에 점령당했다. 미국은 수송중이던 32대의 DB-7C를 근처 영국 점령지로 옮겼으며, 나머지 아직 출발하지 않은 DB-7C는 A-20C사양으로 개수하여 영국이나 소련등에 공여하였다.
  • O-53 : A-20B 기반 관측/정찰기. 본문에 언급한바와 같이 1천대 이상 생산 계획이 잡혔었으나 전면취소되어 실제 제작된 적은 없다.
  • F-3 : 사진정찰기 버전. A-20 3대가 개조되어 XF-3로 명명되었으나 시험결과 성능부족으로 개량사업이 취소되었다. 두 대의 A-20이 다시 등에 2연장 30구경 기관총을 단 버전으로 개조되어 YF-3이 되었으나 이번에도 시제기만 제작되고 사업이 취소되었다. 대량생산된 F-3 시리즈는 F-3A로 이미 제작된 A-20J 및 A-20K 일부를 다시 개조한 것들이다. F-3A는 A-20의 무장고에 카메라와 야간촬영용 섬광탄 투하기 등이 탑재되는 한편 전방 고정 기총은 삭제되고 대신 폭격수석에 추가로 카메라가 달렸다.
  • TA-20H : 랜딩기어를 바퀴가 아니라 무한궤도로 바꾼 버전. 진흙탕이나 눈밭, 모래 등에서 뜨고 내릴 수 있도록 개량된 것인데 실험 자체는 그럭저럭 성공적이었으나 실전에서의 유용성에서는 의문이 있어 결국 실험기만 생산되었다.
  • 터빈라이트 : 영국 공군의 야간전투기형인데, 기수에 무장 대신 강력한 서치라이트를 단 버전이다. 영국 공군은 자신들의 보스턴 및 하복 일부를 터빈라이트 형으로 개조하였으며, 야간에 내습한 적 폭격기를 터빈라이트가 레이더로 포착한후 이를 서치라이트로 비추면 주변 아군 대공포 및 전투기들이 적 폭격기를 협공하는 식으로 운용되었다.

5 실전기록

5.1 프랑스 공군

프랑스에서는 DB-7(Douglas Bomber 7)란 제식명으로 사용되었다.

5.2 유럽전쟁

5.3 태평양 전쟁

5.4 소련

미국에서 랜드리스를 통해 들여온것을 운용하였다. 생산된 A-20 상당량이 소련에 공여되어서 소련이 공여받은 외국 공격기중에서 많은 수량을 자랑하였다. 일부는 기수부분에 포를 달아서 운용하기도 했다.

6 매체에서의 등장

  • 워 썬더의 미 육군 항공대에 소속된 항공기로 분류는 공격기이며 자세한 모델은 A-20G-25 하복이다 12.7mm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6정을 기수 부분에 탑재하였고 상부 후방 방어 사수는 반회전식 2연장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을, 하부 후방 방어 사수는 동일한 총기를 1정 사용하며 보조 무장은 500파운드 항공 폭탄 4개(총 892kg) 혹은 M8 바주카포 12기이다. 크기가 크며 7mm 기관총 탄을 상대로 어느정도 방호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기동성이 둔하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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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미군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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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에 맥도널과 합병하여 맥도넬 더글라스가 됨
  2. 노스롭의 창시자. 당시에는 노스롭 본인의 회사가 더글라스와 합병된 상태였다.
  3. B-25, A-4 등 다양한 군용기를 만든 전설의 설계자중 한명
  4. 이 설계 방안은 후에 A-26에도 이어진다.
  5. 주로 복엽기나 소형 항공기를 만들던 회사.
  6. B-26 등을 만든 회사. 후에 록히드와 합병하여 록히드 마틴이 된다.
  7. P-51, B-25등을 만든 회사
  8. 보통 조종사는 장교를 선발하여 몇 년간 교육시키지만 단순 기총 사수 임무는 병사가 맡았다.
  9. 엔진이 탑재되는 공간
  10. 이때 경쟁에서 탈락한 노스 아메리카의 설계안은 훗날 B-25가 된다.
  11. 계기판 변경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심각한 문제였는데, 일단 계기판 단위가 다른데다가 심지어 영국과 프랑스는 조종사의 엔진출력 레버(쓰로틀)의 작동방향이 서로 반대였다. 프랑스식으로 제작된 DB-7을 멋모르고 영국 조종사가 조종하면 엔진출력을 늘린다는게 자기도 모르게 엔진출력을 최소로 바꿔버릴 수 있었단 이야기다...
  12. 이 사절단이 DB-7B 구매와 함께 커티스 항공사에서 P-40 구매하려 했었다. 그런데 커티스사가 손이 달린다고 해서 노스 아메리카에다가 P-40을 면허생산할 수 없냐고 물어보니까 노스 아메리카는 자기네 B-25 사러 왔나 싶어 내심 기대하던 참에 남의 전투기 만들어 달라고 하니 빡쳐서 더 좋은거 만들어줄께 기다려봐 해서 만든게 P-51이다...
  13. 이는 나중에 A-26이 개발되는 계기가 된다.
  14. Self-Sealing Fuel Tank, 구멍이 나면 화학물질에 의해 구멍이 다시 매꿔져 연료유증기의 유출을 막아 줌으로써 화재위험을 줄여줌
  15. 2차대전중 미군의 전투기들이 타국 전투기들과 달리 유독 20mm 기관포 대신 50구경 기관총을 많이 사용한 이유중 하나가 이것이다.
  16. P-38은 전투기임에도 이러한 목적으로 전방에 폭격수가 타는 버전이 제작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