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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명 | D.O[1] |
출생 | 1972년 9월 5일 |
국적 | 대한민국[2] |
신체 | 172cm, 62kg |
가족 | 2남 1녀 중 차남 |
학력 | 안양예술고등학교 졸업 |
데뷔 | 1993년 듀스 1집 앨범 'Deux' |
소속 | D.O엔터테인먼트 |
종교 | 개신교 |
미니홈피 트위터 |
목차
1 소개
대한민국의 힙합 1세대 뮤지션이자 천재 프로듀서.
1990년대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나란히 흑인 음악을 발전시킨 "힙합 마스터."
2 최종학력
안양예술고등학교[3]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는데(예상 외로 이현도는 정식으로 음악을 전공한 인물이 아니다.), 원래는 상문고등학교를 다녔으나 당시 상문고에서는 이사 비리사건으로 시끄러웠었고, 친구 김성재가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리는 등의 일을 겪자 학교 생활에 회의감을 느껴 자퇴한 것.
이후로 서울예대에 지원을 했으나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악기를 실기고사 때 연주할 수 없어서 떨어지고, 그 이후로 고졸로 남게 되었다.
3 이현도의 부모님
이현도의 부모님은 꽤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서울대학교 졸업생이고, 북한 출신 실향민이라는 것이다(어머니 평안도, 아버지 함경도). 그러나 정작 아들인 이현도는 대학을 들어가지 못한 고졸이다 보니 자서전 '스물네 살의 사자후'에서는 대졸 서울대 출신의 부모님 밑에 고졸 아들이라고 자신을 자조적인 어투로 언급한 바가 있다.
4 과거의 행적
연예인, 음악인으로서의 이현도의 첫 경험은 1990년에 김성재와 함께 현진영 밑으로 들어가 '현진영과 와와'에서 활동한 것이 처음이다. 이수만[4]이 창립한 SM기획에서 구준엽과 강원래가 와와1기로 활동하였으나 군대문제로 입영하게 되자 친한 동생사이였던 이현도, 김성재를 이수만에게 소개하여 와와2기로 들어가게 된다. 그후 '슬픈 마네킹'을 발표했는데 인기를 얻어 현진영은 박남정의 라이벌로 급부상한다.
하지만 1991년 부산의 야외무대에서 현진영과 와와가 공연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건장한 남자들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현진영을 무대 아래로 끌어내려버린다. 이 모습을 지켜본 이현도와 김성재는 현진영의 모습에 큰 실망을 하게된다. 뉴스를 통해 알고보니 현진영이 구속된 이유가 대마초때문이었고 그 여파로 최진열, 정해익, 김경욱 같은 SM직원들이 경찰에게 수사를 받아 큰 고초를 겪었으며 이과정을 지켜본 이현도는 현진영의 무책임한 행동에 크게 분노한다. 당시 현진영의 대마초사건으로 SM기획이 경찰의 수사를 받아 회사의 모든 활동이 정지되었고 와와의 활동마저 중단되고 만다.
이 때 이현도는 현진영의 대마초 사건때문에 가요활동이 끝장나면서 현진영에 대한 분노와 갑작스러운 활동정지로 인한 좌절감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이대로 댄서로서 끝날 수 없다고 마음을 먹게 되면서 음악을 만들고 싶은 강렬한 열망과 창작욕구에 불타올라 신디사이저를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한다.
그 후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한 김성재는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을 하기 시작했고 이현도는 다시 문나이트에 다시 출입을 하면서 춤을 추게 되는데 이 때 춤을 추면서 울분을 풀고 있는 이현도를 아는 지인이 안타까워하며 오디션을 권유한다. 그래서 가수로 데뷔하기로 마음먹고 김성재와 함께 코어의 김광수에게 오디션을 보지만 퇴짜를 맞는다. 미안해진 이현도의 지인은 다시 뮤즈기획를 소개하면서 들어갔으나 사무실이 없어 환경이 매우 열악하였으며 안무를 연습할 무용실이 없어 무용실을 빌려 연습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후 현진영이 교도소를 출소하는데 때마침 자신의 첫곡인 "너에게만"을 완성하여 현진영에게 들려주었는데 매우 좋다면서 곡을 달라고 했다.
이에 반신반의하며 이수만에게 들려주었는데 이곡을 극찬하면서 현진영의 "New Dance 2"의 앨범에 수록을 한다. 이때 현진영이 와와를 다시 하자고 제안을 하지만 큰 자신감을 얻은 이현도는 거절한다. 그후 김성재는 한양대에 진학하였고 이현도는 실용음악과에 응시를 했으나 떨어지면서 더욱더 작곡활동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악기만으로는 편곡까지 완성한다는 게 무리여서 유대영의 작업실을 빌려 작곡을 하게 된다.
마침내 앨범을 완성하여 듀스를 결성하고 1993년 4월1일에 데뷔앨범인 '나를 돌아봐'를 발표하지만 앨범을 발표한지 한달이 지나도 방송국에서 불러주지 않아 방송활동을 할수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때 SBS의 PD가 듀스의 곡을 높게 사면서 SBS의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를 하게되면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후 듀스는 대한민국 힙합계에 매우 큰 족적을 남기게 된다. #
이후 1995년에 소속사의 입김에서 벗어나 더 듀스다운 활동을 하자는 취지에서 해체 선언을 하고, 김성재를 솔로로 내세운 뒤 자신은 뒤에서 음악적인 지원을 하는 식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으나 김성재가 SBS에서 첫 컴백 무대에 오른 바로 다음 날 호텔에서 싸늘한 시체가 된 채 발견되었고, 곧이어 친구에 대한 의문사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면서 심경에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뒤 이현도 자신이 친구를 잃은 아픔을 딛고 새로이 활동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1996년에 사자후로 솔로활동을 하면서 재기를 했고, 2000년까지 총 3장의 앨범을 내기에 이른다.
다만 친구의 죽음 이후로는 자신이 직접 무대에 오르기보다는 후배 가수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음악을 만들어 주는 등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에 더 무게를 두게 되었다는 것이 특징. 가장 대표적인 앨범으로 룰라의 4집(타이틀곡 : 3!4!), 지누션의 1집[5](후속곡 : 말해줘), 유승준의 3집(타이틀곡 : 열정), 4집(타이틀곡 : 비전, 후속곡 : 연가)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 모두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고, 타이틀곡의 멜로디나 가사 또한 이현도의 손길이 느껴지는 곡들이라 할 수 있다.
이현도의 이름을 내건 앨범은 일단 2004년 말경 힙합 가수들을 총집합시켜 만든 프로듀싱 앨범이 마지막이다. 이 이후로는 완전히 프로듀싱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5 최근의 행적
2008년엔 영화 쿵푸 팬더의 삽입곡인 Kung Fu Fighting의 리메이크를 담당했고, 이 과정에서 비의 음악 지도를 하기도 했다.[6] 또한 간미연, 휘성 등의 음악을 작곡해 주기도 하는 등 한국과 한국 외의 국가의 글로벌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과거 낸 모든 앨범들의 작사 작곡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이 출중한데 1990년대 초 구본승의 히트넘버인 《너 하나만을 위해》를 제공해 준 것을 시작으로 지누션[7], 엄정화, 유승준 등의 가수들 타이틀곡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기도 했다...만 정작 본인이 전력을 다해 키우려고 했던 D.BACE는 그다지 반향을 끌어내지 못한 것이 아이러니하다.
다만 휘성의 <우린 미치지 않았어>에서는 동성애를 내포한 가사 내용으로 구설수가 있었다...고 아직도 알고 있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휘성이 SM을 소재로 한 가사라고 밝힌 바 있다.
2013년부터 듀스 20주년 헌정 음반을 준비하고, Mnet의 SHOW ME THE MONEY 2에 출연하는 등 다시 활동하고 있다. 다만 가수로서는 더 이상 활동할 계획이 없는 듯. 인터뷰에서 홍명보에 비유하며 이제는 더 이상 선수(가수)가 아닌 감독(프로듀서)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여담이지만 대한민국에서 활동하지 않은 기간 동안 외모가 많이 변해서 살빠진 배기성 못 알아본 사람이 많았다고...
2014년 기획사 원포원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 옛날에 디베이스 제대로 못 띄웠던 생각이 날 듯
2016년 7월 성추행 논란이 생겼다.
6 대한민국 음악사에 남긴 의의
흑인 음악과 힙합, 뉴잭스윙, 랩을 대중화한 선구적인 인물로 손꼽히며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1990년대 대한민국 대중가요계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로 손꼽힌다.
대중들에게는 '랩'하면 듀스보다 서태지와 아이들 쪽이 먼저 떠오를 테지만, 미국발 흑인 음악 그 자체에 애정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은 서태지[8]보다는 이현도가 선구적인 인물이다.
1980년대 후반, 테디 라일리의 주도로 만들어진 뉴 잭 스윙을 받아들여서 대중적이고 세련된 힙합 음악으로 대중화를 이끌었다.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듀스 데뷔 이후 힙합이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자연스레 섞이기 시작하면서, 대중화를 이끈 선구적인 공로가 인정되는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그래서, 후배 힙합 뮤지션들도 이현도에게 꾸준히 1세대 흑인음악 뮤지션으로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한국에 알려져 있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의 음악들을 최초로 개척해 내기도 했으며, 고장난 신디사이저를 음악에 활용하는 등 창의적인 시도를 상당히 많이 하는 프로듀서로도 유명하다.
작사에도 조예가 깊은데, 한국어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정통 랩을 보란 듯이 매끄럽게 지어낸 최초의 작사가도 바로 이현도이다. 또한 정통 랩의 라임을 살려내어, 한국 문학계에서 한시 이후 맥이 끊겼던 운자를 부활시켰다. 민중서림의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도 그의 <비틀린 세상>의 가사 일부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작사가로서의 평가도 좋은 편. 역시 문예창작과 출신
특히 3집 '完全HIPHOP'의 '삐에로'의 랩가사는 이현도의 작사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주는데, ㄱ~ㅎ을 삽입한 가사는 리스너가 사전에 인지하기 전에는 전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였고[9], 특히 동 시기에 발매된 '드렁큰타이거'의 2집 '위대한 탄생'의 가~하를 이용한 가사에 비견되어 더욱 찬양받았다.[10]
7 음악적 스타일에 대한 비판
그가 대중 음악계에 남긴 영향력이나 발자취에 대해 언급할 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본인만의 확고한 음악적 스타일이 없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유행하는 프로듀서의 사운드를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히 재현해내곤 하는데, 좋게 말하자면 음악적 수용력이 뛰어난 것이지만 현실은 짝퉁에 불과하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2000년도 초반에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던 프로듀싱 듀오 넵튠스의 사운드를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카피했다. 넵튠스의 초기 사운드를 완벽히 집대성한 Kelis의 Wanderland, Kaleidoscope 등의 앨범 사운드와 이효리의 2집 앨범 수록곡 Do Me를 비교하면 이뭐병...넵튠스 특유의 스네어 샘플도 그대로 가져다 썼고, 사용한 사운드 모듈도 넵튠스의 그것들과 모두 같다. 거기에 웬만한 리듬의 작법이나 드럼의 운용 방식도 완전히 카피를 했으니 이건 명백한 짝퉁이 맞다.
그 외에도 대표적으로 알려진 넵튠스 짝퉁으로는 이현도 본인이 직접 인정한 Clipse의 Grindin'을 베낀 주석의 Ballin' 2k3[11], Noreaga의 Superthug의 사운드를 가져온 What Da Fxxx U Want?![12]
무서운 사실은 이현도가 스타일을 완전히 베낀 아티스트가 한 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듀스 시절의 뉴잭스윙 곡들도 테디 라일리의 스타일을 완전히 흡수했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바비 브라운의 We're back[13]와 듀스의 데뷔곡 나를 돌아봐 등등을 비교하면 참담하다. 근래의 곡들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데 휘성의 Girls와 T-Pain의 Chopped N Skrewed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쌍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이현도 본인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제 프로그래머도 그랬어요. 휘성 곡('Girls')이 너무 똑같은 것 아니냐고. '나도 한번 그런 스타일을 해 보자. 휘성의 목소리를 오토튠으로 꾸며 보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에 시도해 봤는데 그걸 표절이라고 하면 너무 편협한 거죠. 어떻게 보면 오마주라고 할 수도 있겠죠. 편협하게 보자면 티 페인(T-Pain)도 에이콘(Akon)을 표절한 거라고 할 수밖에 없잖아요. 유명 프로듀서 중에도 마음먹고 샘플을 따서 결국에는 자기 것으로 만든 사례도 많아요. 하지만 그런 것을 표절이라고 하지는 않죠. 비슷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런 풍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이것은 이현도가 음악을 다루는 방식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만을 시사할 뿐이다.
업계의 거의 모든 작곡가, 프로듀서들은 다른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영감을 얻는다. 이는 곧 이전의 음악들을 참고한다는 말인데,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한 참고일 뿐이다.
위에서 설명한 프로듀싱 집단 '넵튠스'의 경우도 수많은 음악가들의 스타일을 답습했으나 그들은 그것이 샘플링이라는 사실을 항상 밝혔으며, 해당 곡들의 크레딧에도 원작자의 이름을 실었다. 그리고 그들은 샘플링한 음악을 자신들의 독자적인 스타일로 재해석하므로써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자질 논란을 미연에 방지했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행하는 창작이라는 것도 사실은 모두 이런 것이다. 기존의 것에 대한 참고와 분석, 그리고 재해석인 것이다. 하지만 이현도의 경우는 그 참고의 정도가 너무나도 지나쳤다.
이현도가 위에서 예로 든 티페인과 에이콘은 물론 같은 음악 스타일을 공유하고, 때로는 협연하기도 하는 관계이지만, 그들은 적어도 서로의 음악을 완전히 배껴내지는 않으므로 '작곡가 고유의 영역'을 침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현도는 위에서 다루었듯 항상 다른 음악가들의 스타일과 고유의 것들을 철저하게 표절했다.
때문에 이현도의 음악이 가지는 독자적인 것, 고유의 요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만든 음악이 그의 음악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요소는 그가 사용하는 모듈과 악기의 음색 등의 기술적인 것들 뿐, 구조적인 특징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들을 참고는 했지만 재해석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듀스 초창기 테디 라일리의 카피본이었던 모습이나, 클럽튠을 추구하다가 뭔가 크게 뒤틀려버린 지금의 모습만 보고 이현도의 모든 작업물을 아류로 매도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한상원과의 합작인 'D.O FUNK'나 3집 '完全 HIPHOP'은 각각 훵크와 힙합이라는 커다란 틀 아래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줬던 앨범이며, 2집에 수록됐던 'Accorade (Of Hiphop)'[14]을 한국 힙합 최고의 곡으로 꼽는 올드팬들도 심심찮게 있다. 다만 이런 '모험'을 감행한 작업물들은 대중들의 인기와는 꽤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런저런 방황 끝에 지금의 스타일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추측을 내세워볼뿐이다. 뭣보다 아류 논쟁에 휩싸이고 있는건 죄다 2001년 이후의 작업물들이기도 하고.
8 영주권과 병역 문제
이현도는 듀스 결성 이전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아르헨티나 영주권 취득 후 한국과 미국[15], 아르헨티나를 오가며 생활하게 된다.
정확히는 활동할 때만 한국에 들어오고, 그렇지 않을 때는 외국에서 프로듀싱을 주로 맡았다. 병역법상 재외국민이 국내에서 경제 활동을 한 것이 되면 외국 거주로 인한 병역 면제가 해제되기 때문.
한편 2000년 당시 이현도의 나이는 만 27~28세였고, 당시 병역법으로도 징병 검사 후 현역 판정이 가능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도 이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었고, 2004년 송승헌, 장혁, 한재석의 병역기피 사건으로 인해 연예계 병역비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시기가 되어서야 이현도의 병역비리 문제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이후 국내에서는 이현도가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아르헨티나 영주권을 딴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구설수에 올랐고, 이것은 일부 팬들이 싸이월드 방명록에 병역비리 문제로 그를 까는 글을 올리면서 특히 문제가 커졌다. 이에 이현도는 욕을 써 가며 이들을 물리쳤고 #일명 '존만한 씹새 지원' 사건, 이로 인해 기존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채 앨범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16] 이 사건에 관해 오인용에서 이현도를 '아르헨도'로 출연시켜 간접적으로 비판한 바가 있으며, 지금도 수많은 네티즌들은 이현도를 '아르헨도'라고 부르며 두고두고 까게 된다. 싱하형 VS 아르헨도
이에 대해서 이현도는 본인의 홈페이지를 통하여 글을 남긴바 있는데[17] 요약하면 '이현도의 외가식구는 모두 아르헨티나에 거주중이고 초청을 받아 듀스 결성 1년 전부터 이민 수속을 밟아 이미 이민 예정중이었는데 듀스 활동을 하게 되면서 국내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고, 94년 연예인들 병역기피가 문제되었을때 자진출두해서 무혐의 판정으로 상황끝.'
덧붙이자면 이현도때는 아르헨티나 영주권만으로도 면제가 가능했지만 2001년 개정된 병역법대로면 연간 60일이상 국내에 체류하며 영리활동을 하는 국외이주연예인은 국적변경을 하지 않는 이상 병역의무가 부과되게 된다. 물론 이현도는 바뀌기 이전에 이미 병역면제였기 때문에 바뀐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18]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한국이 아르헨티나와 조별 경기를 벌일 당시 네이버 지식IN에서 "이현도는 한국을 응원할까요? 아르헨티나를 응원할까요?"라는 질문이 오가기도 했었다...
2013년, 듀스 20주년을 맞아 방송에 복귀하면서 병역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는데, 병역의혹이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것과 같이 해소된 것이라는 개드립을 시전했다. 법적인 시한이 끝나는 것과 도덕성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당당하게 형을 살고 나온 연예인들이 방송에 복귀하지 못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박주영은 어쨌든 결국은 올림픽으로 합법적인 면제를 받고도 아직도 시원하게 까인다. 아무튼 이현도는 한 미국인에 비하면 지나치리 만큼 이슈가 안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30대 넘은 한국계 아르헨티나인 형제가 육군에 입대했다...사실 병역비리에 대한 분노는 상대적 박탈감에 기인하는 바가 큰지라 옳고 그름을 떠나서 계속 까일듯...
또한 방송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썰전에서의 김구라의 말에 의하면 이현도가 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 MC들의 병역에 관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명 없이 사과로만 일관하며 얼렁뚱땅하게 넘어갔다고 전해졌으며, 이로 인해 라스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남겼다.
즉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고 스티브 유처럼 군대간다고 설치지도 않았으나, 영주권 취득과 관계없이 입영을 해도 전혀 문제되지 않을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속 비판받게 될 듯 하다.[19]
이 문제 때문인지 연예인 지옥에서 '아르헨도'로 패러디되어 나왔다.
9 신정환, 고영욱과의 에피소드
이현도가 신정환과 고영욱을 LA로 초대했는데 정작 초대해놓고 자기는 박찬호와 놀러다녔다고 신정환과 고영욱이 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바있다. 결벽증 같은게 있어서 TV 각도를 조금만 틀어놓은 것과 포스터를 조금 구겼다고 신정환을 엄청나게 깠다고 한다. 그래서 신정환이 분한 마음에 "나 정말 이현도보다 잘 될거야"라고 울분을 터트렸다고 한다.
그리고 고영욱이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한 말에 따르면 게임하다가 지면 쿠션을 찢고 난리를 피우기 때문에 꼭 져줘야 한다고 한다(…). 라이머도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기가 지면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게임 CD를 꺼내서 부수고, 패드를 박살낸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게임기 패드가 잔뜩 있다고 한다(…). 이현도가 라스에서 한 변명에 따르면 어쩌다가 같은 CD가 3장이나 있어서 장난으로 하나 깨봤다고 하는데(…).
이후 본인이 직접 라디오 스타에 나와서 신정환과 고영욱이 한 얘기에 대해 해명했는데, 1994년 당시 최고 크기의 브라운관 TV를 고가의 대형 장식장에 각도에 맞게 셋팅해뒀는데, 신정환이 큰 브라운관 TV의 각도를 억지로 틀면서 600불짜리 장식장을 망가뜨려서 혼낸 것이라고 한다. (다만, 이현도는 자기가 좀 편하게 보려고 틀었을 것이라고 했는데, 당시 신정환의 말을 들어보면 캠코더를 연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장난감 좀 비틀린거 가지고 쪼잔하게 식으로 언급한 것은 그 장난감이 시리얼 넘버까지 붙은 한정판 X-wing이었다고 한다. 모든 프라모델 덕후들이 집에 어린애들 오는걸 질색하는 이유. 신정환과 고영욱은 스타워즈 포스터 구긴 얘기만 했는데, 한정판 X-Wing이 더 비싼걸 몰랐던듯(…).
박찬호 건도 박찬호가 초대장을 줬는데, 본인들이 당시 신인이던 박찬호를 무시하고 쇼핑을 간 것이라고 한다. (신정환이 1995년 초에 입대했고, 이 사건이 신정환이 제대하고 얼마 안있어 간 여행이며, 박찬호가 한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한게 97시즌 중반이므로 얼추 시기는 맞아 떨어진다)
이 해명을 하면서 거짓말의 말로는 이렇다며 둘을 디스. 다만, 게임에서 졌다고 게임 디스크를 부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티나게 져주면 일부러 져주지 말라고 화내고, 이기면 졌다고 화낸다고… 대대장님? 축구할 때 풀을 쥐어뜯는 등 국가대표급 리액션을 한다는 얘기도 공개되었다. 쉽게 자신에게 화를 내는 성격인 듯.
10 룰라와의 관계
하지만 신정환, 고영욱 등 룰라 멤버와 이현도는 대단히 친분이 두텁다. 이들의 친분이 두터워지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이현도의 분신과도 같았던 김성재 의문사 사건에서 비롯된다. 사건 초기 김성재의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 그의 팔에 주사바늘 자국을 보고 많은 언론들이 마약 복용 쇼크사가 아니냐는 추측성 보도가 판을 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처음에는 김성재의 빈소에 그렇게 많았던 연예인 조문객들이 그 보도 이후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룰라 멤버들만 김성재의 빈소를 이현도와 함께 끝까지 지켜주었고, 결국 마약 복용설은 사실 무근으로 밝혀져 김성재의 누명이 벗겨지게 되었다. 이현도를 비롯한 김성재 가족 및 측근들은 추측성 보도에 또 한 번 큰 상처를 받게 되었지만, 어찌보면 그 사건을 계기로 힘들때 함께 해 준 룰라 멤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최고의 인기그룹이었던 룰라는 김성재 의문사 사건 이후 약 1달 뒤 3집 타이틀곡 '천상유애' 표절시비로 인기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상민의 자살기도로 인해 그룹 자체가 와해되기 직전까지 갈 뻔 했던 최대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이현도는 룰라 4집에 타이틀곡 '3!4!'[20]를 비롯한 대부분의 수록곡을 프로듀싱하였으며,[21] 덕분에 룰라는 4집의 타이틀곡 '3!4!'를 통해 재기를 하게 되었다.[22] 이현도가 룰라에게 받았던 고마움을 가장 어려운 시기에 매우 큰 도움으로 보답해 준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관계가 돈독하고 얽혀진 사연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에서의 에피소드의 경우 애초에 고영욱과 신정환이 본인을 만나기 위해 미국에 왔던 것도 아닌데, 미국 간다고 하자 호텔 잡지 말고 우리 집에서 자라고 했다는 것만 보아도, 그들의 관계를 오해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아무리 친해도 한번 싸운적 없는 친구 없듯이. 하지만 이 둘은 이후 나락까지 떨어지게된다.
11 방송 활동
11.1 SHOW ME THE MONEY 2
2013년 Mnet SHOW ME THE MONEY 2에 출연했으며 그것도 D.O 크루의 수장 자격으로.
처음 소식이 알려졌을 때는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이현도의 랩 실력이 현역 MC들에 비해 좋은 편은 아니고, 2004년 이후 눈에 띄는 활동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현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 더구나 상대 크루의 수장은 가리온의 MC 메타여서 "이현도가 왜 수장임?" 식의 글이 범람했다.
첫 방송 이후 여론이 반전…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졌다. 참가자들을 심사하면서 했던 패션지적이나[23] 여러 언더 MC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나[24] 취향드립처럼 방송으로 나간 부분은 까일 여지가 다분했다.
그러나 본선이 진행되면서 여론이 많이 달라졌다. MC 메타가 크루원들과 갈등도 많이 일으키고 본인의 주관을 잘 꺾지 않았던 반면, 이현도는 크루원의 주관을 존중하는 모습, 인간적으로 좋은 모습도 많이 보여줬고,[25] 무엇보다 프로듀서로서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비슷한 시기에 MC 메타가 프로듀싱으로 열심히 까였던 것과 비교하면 뭐...
본선에서 대중들에게 재평가는 받았지만 방송 내에서의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크루 대결에서 계속 지기만 했다. 심지어 칼을 갈고 나와도 져서 이현도가 직접 "이래도 져?"라고 했을 정도. 게임에서 지도 CD와 패드를 부순다던데, 대체 쇼미더머니2 하면서 뭘 얼마나 부쉈을지 그나마 유일하게 승승장구하는 스윙스는 소년가장 타이틀을 획득. 그런데 스윙스 역시 결승 진출을 하지 못했다…공연보다 프로듀싱적인 관점에서 멤버를 뽑았는데, 이것이 패착이 되었다. 본인도 방송을 하면서 잃은 것은 시간, 건강, 근육, 그리고 승리라고 하면서 농담조로 한 몸 바쳐 언더힙합의 승리를 이끈 논개라고 했다.
제작진과의 사이는 썩 좋지 않았던지 제작발표회도 제작진과 싸운 후 표정관리가 안 된다며 빠졌고, 쇼미더머니2를 까려고 안하던 트위터 계정을 파기도 했다(…). 방송을 속 썩이는 여자친구에 비유하기도 했다.
방송에 대해 MC 메타와 함께 힙합플레이야와 인터뷰를 했다. #1 #2 방송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둘의 가치관이나 향후 계획에 대한 내용도 있다.
방송에 사용했던 비트를 무료 공개하기도 했다. #
2015년 2월 MC 메타와 함께 언프리티 랩스타의 4화에서 1:1 배틀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11.2 SBS 슈퍼매치
2013년 8월 16, 23일 방영된 SBS 슈퍼 매치의 선배측 가수로 출연했다. 여기서도 선호도 조사에서 하위권이 되고 순번 1번을 뽑는 등 안습행진...김태우와 goDO라는 팀을 만들어서 "여행을 떠나요"를 불렀다. 이현도 본인은 프로듀싱만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섰다고 한다. 쇼미더머니2에서 본인의 크루였던 딘딘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무대에 대한 평판은 썩 좋지 않으며, 가수 그만뒀던 티가 난다는 반응이다.
12 음반
13 그 외
- 이현도는 김성재의 사망 이후 표면으로 드러난 활동이 적었고, 가수로서의 인기도 듀스 시절에 비해 다소 떨어졌다. 게다가 2004년 이후로는 프로듀서 일에만 열중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한국 가요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직접 활동하던 시절에 비해 미미하다. 또한 싸이월드 사건으로 인해 기존의 좋은 이미지도 많이 실추되었다.
- 이현도의 취미는 전자 오락으로, 꽤 중증의 오락실 덕후라고도 한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고 원래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며, 프라모델 덕후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은 폐간된 국내 프라모델 전문지 취미가에도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사실 상문고등학교에서 김성재와 처음 만나서 급속도로 친해진 계기도 바로 프라모델 덕분이었다. 일본에서 살다 온 김성재는 프라모델이 일본에서 얼마나 유행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이현도와 이야기가 잘 통했던 것이다. 하지만 학교의 다른 급우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은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이현도를 이상하게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듀스 2집 수록곡 Go! Go! Go!의 랩 가사엔 프라모델을 비롯한 자신의 취미와 관련된 마음 고생했던 경험담이 들어가 있다. 동심을 가진 어른을 이상하다 하고, 전자게임, 프라모델, 만화를 싫어하고, 그게 왜 재미있는지 이해를 못하고, 그런 사람을 보며 나는 답답하고...
- 위와 맞물려서 이현도 솔로 2집 타이틀곡 '미래'에 고전 슈팅게임 다윈 4078의 메인 테마곡 멜로디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게 나온 시기에 MAME에서 다윈 4078을 막 지원하기 시작해서(...)
- 손담비와 더불어 현재 애프터스쿨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희가 미국에서 활동하던 그룹 S-blush의 프로듀싱 경력도 있다. 빌보드 클럽뮤직 부문 10위 안에 들며 나름대로 선방. 클럽차트 2위까지 올랐었다고 한다. 호오...
- 듀스가 해체된 후 김성재와 사이가 나빠졌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는데 위에서 보다시피 사실이 아니며 실제 김성재가 사망했을 당시 이현도는 미국에서 즉각 귀국해 김성재의 빈소를 찾았으며 카메라나 주위 사람들조차 신경을 못쓰고 오열할 정도로 슬퍼했었다.
- 전북 현대에 응원가로 '전북 승리의 찬가'라는 곡을 헌정했다. 전북 경기도
가끔종종 보러 가며, 선수들과 같이 있는 사진도 트위터에 간간이 올라온다.
- 위에 언급했다시피 연예인 지옥에 등장하는 아르헨도의 모델이 바로 이현도.
- ↑ D.O는 솔로활동 때부터 쓰고 있는 예명으로, Deux Lee HyundO라는 뜻이며, 김성재를 잃은 후의 듀스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앞의 글자를 D로 찌그러진 O를 표현했다고 한다. '도'가 아닌 '디오'라고 읽는다.
하지만 지금 검색하면 EXO의 D.O.가 뜬다이사람도 있는데?하지만 본인은 물론 힙합계에서도 주로 본명을 부르고 D.O는 별명쯤으로 취급하는 듯. - ↑ 아르헨티나 영주권자지 아르헨티나인이 아니다.
- ↑ 당시 예술고 중에서 문창과가 있는 학교는 전국에 안양예고 뿐이었다.
- ↑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수만 맞다. 그러니까 SM기획은 우리가 알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다.
- ↑ 양현석과 공동 프로듀싱 했다.
- ↑ 이 이후 정지훈은 직접 제작한 앨범을 내게 되는데, 그 첫 작품이
매직스틱<Rainism>이었다. 그러나 이 때까지도 JYP의 색깔에서 못 벗어 난듯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후 <Back to Basic> 앨범에선 완전히 달라졌다. 참고로, 이 때 몇몇 곡에서는 이현도의 곡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좀 있는데 (특히 김성재의 스타일을 대놓고 오마쥬했던 <Hip Song>이 그랬다.) 이게 이현도에게 받은 영향. 특히 이후에 나온 싱글 <부산여자>는 대놓고 뉴 잭 스윙이었다. - ↑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가 해체한 후 양현석과 이현도가 2인조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아서 많은 이들을 설레이게 했다. 이런 소문 속에서 이현도의 음악과 양현석이 마케팅이 결합된 지누션이 데뷔해서 대성공을 거둔다. 사람들은 지누션에게서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의 흔적을 느낀 것이다. 킵식스의 대실패 이후에 미래가 불투명하던 YG는 지누션의 성공으로 기반을 다지게 된다.
- ↑ 결국, 서태지는 시간이 흘러서 자신의 음악 성향을 흑인 음악에서 락으로 바꾸게 된다.
- ↑ 난 이'겼'어 부와 명예 모두를 지'녔'어 어린시절 원하던 걸 다 이루게 '됐'어 그러나 더 중요한걸 난 잃어버'렸'어 새로움에 '맞'서 자신을 단련함을 이미 '벗'어나 작은 성공속에 안주하며 편히 '쉬'었어 그건 내게 가장 크나큰 enemy'였'어 이런 깨달음 속에 자신이 싫어'졌'어 이제는 새로운 세기에 다시 발맞'춰'서 꺼져가는 가슴 속의 불을 다시 '켰'어 나의 뜻은 새롭게 불'타'서 새 날개를 활짝 '폈'어스스로 자부할 수있는 더 큰 나로 거듭나기로 '했'어.
- ↑ 심지어 드렁큰타이거는 카와 타를 바꿔써서 더욱 까였다. 당시 틀을 벗어난다는, 기성세대의 대한 반항으로 일부러 바꿨다고 했지만. 과연 진실은?
- ↑ 심지어 이현도는 자신이 만든 비트가 레퍼런스의 대상이 된 넵튠스의 비트보다 더 깔끔하다고 자평하기까지 했다.
- ↑ 클럽 마스터플랜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MP Hip-Hop 2002 풍류에 수록된 곡. 스퀘어가 불렀다.
- ↑ 고스트 버스터즈 2의 ost
- ↑ 1998년 초에 발매된 곡으로서 2016년 기준 무려 18년전 곡이다. 당시 힙합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힙합바지와 플로어댄스가 90%이상을 점유했던 시절이었다. 1997~1998년 대다수 미디어는 HOT의 늑대와 양, 신화의 해결사를 일컬어 '메세지를 담은 정통 힙합곡'이라고 표현도 하곤 했다.1999년 '1999대한민국', '드렁큰타이거'등의 등장으로 힙합뮤직은 본격적으로 수면위에 오르게 된다.
- ↑ 한국에서는 아르헨티나로 직접 가는 비행기 노선이 없다.
- ↑ 이현도의 싸이월드를 오래전부터 봤던 몇몇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처음에는 점잖게 답변했으나 몇몇 사람들이 '김성재에게 부끄럽지 않느냐' 등의 인신비방과 욕설을 계속 퍼부으며 끈즐기게 악플을 달자 참지 못하고 막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런 발언에 면죄부가 주어지는건 아니다.
- ↑ 현재는 삭제되어서 원본글을 찾을수 없다.
- ↑ 법률불소급의 원칙
- ↑ 10대~30대 남성층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유명인의 병역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한게 대한민국 정서이다.
- ↑ 3번 쓰러져도 4번 일어난다는 의미이며, 듀스 고별 콘서트에서 이현도가 '상처'를 부르기 전에 외쳤던 구호이기도 하다.
- ↑ 그로 인해 그의 솔로 1집 '사자후' 발매가 3개월 가량 늦어졌다고 한다.
- ↑ 하지만 체감인기가 절정기에 비해서는 많이 못 미쳤으며, 4집에서 유일하게 이상민이 작곡한 '아자'가 다시 한 번 표절시비로 곤혹을 치르면서 활동을 일찍 접어야 했다.
- ↑ 거기에 이현도 본인이 아저씨가 다 된 모습이어서…
- ↑ 이 역시 어쩔 수 없이 알 수밖에 없던 스윙스를 제외하면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 ↑ 다만 이는 대립 구도를 만들기 위해 편집으로 과장된 면이 있긴 하다. 7명 중 한둘과만 갈등한 것을 전체와 갈등한 것으로 편집한다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