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東輿地圖
대동여지도 웹지도 버전
영화를 찾아 오셨다면 고산자, 대동여지도 항목으로
1 개요
조선시대 김정호가 1861년에 제작한 조선의 지도. 보물 제850호로 지정되어 있다.
2 상세
프로토타입은 그냥 '동여도(東輿圖)'라는 이름의 판각지도로 한국의 옛 지도 중 가장 정밀한 지도라고 한다. 제작 시기는 철종 7년인 대략 서기 1856년에서 1861년 사이이며, 한 장의 축척은 가로 80리/세로 120리. 사실 동여도는 얼마 전까지도 누구의 지도인지 설이 분분하다가 최근 들어서야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의 프로토 타입이라는 설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대동여지도는 축적은 동여도와 동일하며 전체 지도 도엽은 목판 121매, 제책한 책은 213면의 꽤나 두꺼운 지도가 됐으며 여기에 부록지도가 몇장 더 추가된 모습이다. 이는 지도의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 지도를 모두 합치면 대략 가로 360cm, 세로 685cm의 크기로 축척은 100리가 1척, 10리가 1촌으로 계산되었는데 1촌 1보라는 단위 자체가 워낙 불확실한 단위라서 이를 바탕으로 축척을 계산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도로는 곧고 가느다란 선으로, 하천은 비교적 굵은 곡선으로 나타내었으며, 개중에 줄이 2개인 하천은 배를 탈 수 있음을 나타낸다. 도로에는 10리마다 '방점'이라 불리는 점을 찍어 거리를 알 수 있게 하였다. 산줄기는 더 굵은 곡선으로 나타내었으며, 산세가 클수록 산봉우리를 크고 아름답게 그렸지만 산의 정확한 높이는 알 수 없다. 각 고을의 경계는 점선으로 나타내었다. 또한 읍치, 역원, 조창, 군부대, 봉수대 등 여러 시설을 각각의 기호를 사용하여 나타내었다.
3 오해
3.1 김정호가 직접 답사했다?
"나(신헌)는 일찍이 우리나라 지도에 뜻을 두고 비변사와 규장각에 소장된 것, 오래된 집안에 좀먹다 남은 것들을 널리 수집하여 증정하고, 여러 본들을 서로 참고하고, 여러 책들에 근거하여 합쳐서 편집하였다. 이리하여 김백원에게 물어 그것을 맡겨 만들게 하였다. 가리켜 증명하고 입으로 전해주기를 수십 년이나 하여 비로소 한 부가 만들어졌는데 모두 23권이다.-신헌
위 글은 김정호에게 발주를 준 당시 조정고관 신헌의 글이다. 저기 등장한 김백원이 바로 김정호이다.
말하자면, 김정호가 백두산을 몇 번 올라갔다느니 전국을 구석구석 답사했다느니 하는 전설적인 풍설은 그냥 전설일 뿐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답사를 했겠으나 지도 자체가 무에서 태어난 김정호의 창작품이 아니다. 사실 대동여지도는 걸어서 만들 수 없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관리들의 허가를 받아 비변사 등이 소장하고 있는 행정용 지도를 취합했다고 한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많이 참고했다. 당시까지는 대지도로는 개념도가 우세했고, 행정용, 군사용으로 쓰이던 군현지도는 상세도가 우세였는데 김정호는 이러한 지도들을 엮어 하나의 상세한 대지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3.2 흥선 대원군에게 불태워졌다?
김정호가 지도를 만들고 '이렇게 정확한 지도는 외적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라는 혐의로 옥사했으며 지도는 불태워졌다는 설도 사실이 아니다. 일제시대 <조선어 독본>에 써진 거짓말이 그대로 널리 퍼지고, 심지어 김정호 위인전에까지 등재되었다. 그런데 애초에 대동여지도를 멀쩡하게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데[1] 수십년 동안 위인전을 쓰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아무 의심도 없이 책에 써왔다. 다만 생각없이 복붙을 저지르는 싸구려 위인전을 제외하고는 요새 출판되는 위인전은 이런 오류를 대부분 고쳤다.
이 옥사설을 강력히 부인한 이병도는 그 근거로 여러 가지를 들었다. 김정호가 만든 지도나 지지 어느 것 하나 몰수당하거나 압수당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오상학도 옥사설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추국안』 등을 검토해 보았지만 그러한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게다가 김정호가 죄를 받아 죽었다면 유재건이 『이향견문록』에 수록할 수가 없었을 것이며, 유재건은 김정호가 몰(沒)했다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김정호가 옥사했다면 물고(物故)당했다고 표기해야 옳다. 또, 김정호가 옥사를 치렀다면 김정호와 교류하였던 최한기나 재정적 후원자였던 최성환, 신헌 등도 연루되어 어떠한 처벌이라도 받았어야 할 텐데 그러한 기록이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은 정승 반열의 고위 관료였으며 직접 김정호의 지도에 서문을 지어주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들을 근거로 한다면 김정호는 옥사하지 않았으며 그의 옥사설은 일제가 그들의 식민통치를 위하여 조작하고 날조한 사실인 것이다.
하여튼 이 일은 구글 스트리트뷰나 애플 지도 등 외국 서비스에 국내 지도 데이터 반출을 금지하는 법규 때문에 21세기 와서야 현실이 되었다.(...)
3.3 일제강점기까지 가장 정확한 (한반도) 지도였다?
대동여지도의 대단함을 강조하려는 생각이었는지 마치 대동여지도가 '정확한 (한반도) 지도'의 시초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정확한 지도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수는 없다. 그 이전에도 높이 3미터 정도의 지도는 몇 가지 존재한다. 다만 지도를 만드는데 필요한 지리정보가 부족해서 언제나 몇몇 부분이 '많이' 틀렸다. 대동여지도 역시 그러한 오류가 많았으며[2], 특히 북쪽으로 갈수록 지리정보가 부족해서 이 부분이 가장 많이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기존의 잘못된 정보들을 상당히 많이 고친 것은 사실이다. 만든 이후로도 수정할 점이 많아서 김정호 본인은 이 지도를 제작하고 수정하는데에 여생을 다 보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 육군이 경부선을 건설하기 위해 조선의 지리를 몰래 측량하러 일본인 측량기술자와 조선인 인부들을 고용하여 전국지도를 만들도록 지시한 적이 있었는데, 만든 후에 대동여지도의 존재를 알게된 일본은 대동여지도를 보고는 자신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제작한 지도와 별 차이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위 에피소드는 과장된 허구일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한일강제병합 이전에, 정확히는 최소 1872년 부터 조선에 몰래 잠입하여 한반도 전체의 지도를 몰래 30년간 제작하였었다. 이때의 일본은 전문 지도 제작을 위해 그당시 최신의 유럽식 제작기법을 도입해서 각 산의 능선과 축척에 맞고 등고선이 체계적으로 제작하였다. 두개의 지도를 비교하면 안타깝게도 세밀함과 정보의 양에서 엄청난 현실적 격차가 난다.[3][4] 일본은 이 지도를 이용하여 청일 전쟁에서 주요 거점을 안방처럼 훤히 알고 승승장구하였으며 조선의병의 기지를 전략적으로 공격하고 퇴로까지 미리 막을수 있었다... (2011년 11월 3일 방송된 KBS 역사스페셜 '30년 간의 도둑 측량, 일제는 무엇을 노렸나'에 나온 내용)
4 기타
참고로 대동여지도는 서양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지도제작방식만을 사용했다. 이 이후로는 서양식의 지도와 제작술이 대거 유입되고 채택된다. 산이 많은 곳일수록 정확도가 떨어진다. 때문에 북쪽 지역으로 올라갈수록 땅이 더 넓어보인다.메르카토르 도법?
일부 초기 대동여지도에는 독도는 없다. 이 때문에 국사 교과서에 독도를 새로 그려 넣느니 마느니 하는 논쟁도 붙었고, 일부 사람들이나 동쪽의 모 섬나라에서는 독도가 한국 땅이 아니라느니 어쩌느니 떠들기도 하는데 어불성설이다. 이 시절에는 그냥 무인도에 불과했던 독도를 별로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좀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이름도 없는 무인도 하나를 넣기 위해 목판 1장을 더 만들어야 하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었고. 독도가 주목받게 된 시기는 조선 말기 국가 체제를 몇 번 바꾸면서 행정 구역을 처리하던 시기,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에 편입하니마니 하는 헛소리를 떠들던 시기 이후다. 그리고 독도가 그려진 대동여지도가 2011년에 발견되었다. 물론 간도는 그런 거 없다.
그리고 많이 하고 있는 오해가 대동여지도에 대마도가 나온다는 것인데, 사실 대동여지도에는 대마도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대동여지도의 소축척으로 줄여만든 대동여지전도에는 대마도가 나온다. 이 둘을 혼동하면서 생긴 오해. 사실 이 항목에 올라온 이미지도 한자를 잘 읽으면 알겠지만 대동여지도가 아니라 대동여지전도이다.
그리고 대동여지도의 눈물
디스커버리 채널의 How Do They Do It을 패러디한 현대카드의 맛집 검색 앱 MY MENU의 광고이다. 정말 나오는데로 믿지는 말자. Discovery 가 Discovey 이고 How Do They Do It 이 How Do They Do Eat 이다 발음상 비슷하다;;
TV쇼 진품명품 1000회 특집에는 전세계에서 3점밖에 없다는 대동여지도 채색본이 등장한바 있다. 군현 단위로 채색되어 있어 조선 시대의 행정구역 상황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감정가는 25억원#
- ↑ 1995년 원본 발견 전까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목판은 복원된 복제품이라고 둘러댄 바 있다.
- ↑ 예를 들자면, 전라도 낙안군 북서쪽을 보면 벌교천 수계와 산으로 가로막힌 지역(외서면으로 추정)에 보성강으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하나 보이는데, 지도에는 보성 문덕면 쪽에서 보성강과 합류되는 것으로 나오나, 실제로는 문덕이 아니라 순천 송광면에서 합류된다.
- ↑ 서울 지도만 하더라도 대동여지도와 1911년 경성부 전도를 비교해보면 그 정밀도에서 넘사벽의 차이를 알 수 있다(...).
- ↑ 특히 1910년대 후반에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지도는 그 정밀성에서 오늘날의 지도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 지도는 현재에도 중요한 근현대지도 자료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