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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과학과 종교의 관계, 도덕, 반종교,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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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덕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정리한 항목으로, 과거 피상적으로 이해되었던 이 주제는 점차 세속화가 진행되고 반종교 운동이 탄력을 받으면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러 사이트 및 백과사전들에서는 아직 이 주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한 경우가 없는데, 영문 위키피디아의 경우 별도의 독립된 문서로 개설되어 있어서 Wikipedia:Morality_and_religion 에서 살펴볼 수 있으며, Wikipedia:Secular_ethics 같은 간접적인 문서들을 열람하는 것도 좋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경우 Wikipedia:신명론 같은 문서도 폭넓은 탐구를 위해 함께 참고하기에 좋다.
이 주제는 윤리학, 종교학, 종교사학 등에서 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대에 들어 북미권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무신론이 확산되면서 과학자들까지도 이 주제에 대해 자신의 개인적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도덕과 종교" 표현은 가나다순을 따라 도덕을 앞에 두고 종교를 뒤에 둔 것이다. 영어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이까짓 걸로 반달이랑 키배하는 것 좀 그만두라고
2 접근법
이하의 서술은 항목 개설을 위한 위키방 토의과정에서 나온 것을 정리한 것이다.
2.1 집합론적 접근
- 도덕과 종교의 일원론 : 집합관계에서 두 집합이 동일하다고 보듯이, 도덕과 종교는 형식은 다를지언정 내용은 같다는 견해이다.
- 도덕과 종교의 이원론 : 집합관계에서 두 집합이 별개라고 보듯이, 도덕과 종교는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견해이다.
- 도덕과 종교의 견련론 : 집합관계에서 교집합이 존재한다고 보듯이, 도덕과 종교는 분리될 수 없고 단지 구별만 가능하다는 견해이다.
- 종교는 도덕의 최대한론 : 집합관계에서 종교가 도덕을 포함하고 있어서, 종교는 도덕과 달리 도덕적 행위를 관철시키는 힘을 갖는다는 견해이다.
- 종교는 도덕의 최소한론 : 집합관계에서 도덕이 종교를 포함하고 있어서, 넓은 윤리적 범위 속 일정 부분이 종교에 포함된다는 견해이다.
2.2 역사적 접근
역사적이고 시간적인 측면에서 비교하는 접근이다. 초자연적 대상에 대한 숭배로 나타나는 애니미즘, 토테미즘 등의 원시 종교와, 원시인들 사이의 집단의 규율로서의 원시 도덕을 살펴보는 것인데, 가장 단순하게는 어떤 것이 더 먼저 나타났는가, 더 나아가 먼저 나타난 현상이 다른 현상의 역할을 함께 수행했는가 등의 논의를 할 수 있다. 일단 제정일치와 같은 현상을 감안하면 종교가 원시 사회에서 사회 통제를 위한 규범으로서 작동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원시 사회에서 도덕과 종교를 명확하게 구분짓는 것은 극도로 어려울 수 있으며, 그 사회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역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2.3 사상적 접근
사상으로서 도덕과 종교의 관계를 비교하는 접근이다. 이 접근을 취하는 맥락에서, 도덕과 종교가 겹치지 않는 교도권을 갖는지, 아니면 실제로 겹치는 영역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며, 이와 비슷하게 도덕과 종교의 관계가 상호배타적인가 상호호환적인가의 문제도 함께 다룬다. 이 접근을 취할 경우, 예를 들어 (그 체계가 정립된) 종교의 경우 한정된 집단[2]에게 한정된 규범[3]을 한정된 강도[4]로 제공하며, 도덕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한정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3 가능한 답변들
이하에는 이러한 주제가 나왔을 때 흔히 기대할 수 있는 답변들을 별도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정리하였다. 답변들 사이의 위계관계나 위 접근법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수정바람. 각 답변들을 그 성격에 따라 나눌 수 있는 기준이 아직 없기 때문에 여러 답변들에 동시에 동의할 수도 있으며, 어쩌면 그러한 일종의 "복수정답" 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 종교 없이는 도덕도 없다 : 도덕의 근본은 종교이고 종교가 사라지면 도덕도 사라질 것이라는 답변. 열성 종교인들이 흔히 취하는 답변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하의 사도 바울의 사례에서 보듯이 종교인들의 답변들도 획일적이라기보다는 의외로 광범위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 ... 그리고 종교는 도덕에 속한다' : 우리의 선천적인 도덕 법칙으로부터 종교가 유래하였다는 답변. 임마누엘 칸트의 경우에는 모든 사람이 순수하게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도덕적 종교, 즉 이성종교(Vernunftglaube)가 도덕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말하고 있다.
- 종교의 본질은 도덕이 아니다 : 종교는 자기초월이나 내세, 심적 위안(credo quia consolans), 절대자 숭배 행위를 위해 존재할 뿐이라는 답변. 종교를 일종의 숭배 의례나 사후세계로의 갈망, 또는 명상 등을 통한 초월감(transcendence)의 공급처로 이해할 때 취하게 되는 답변이다.
- 세속의 도덕은 가능하다 : 현대사회에서 종교성이 배제된 세속윤리(secular ethics)를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답변. 인류애(humanity)와 보편적 가치에 입각하여 인류 전체의 행복과 효용, 공공선(public good)을 추구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인본주의의 관점에 입각할 때 취할 수 있는 답변이다.
- ... 그리고 종교는 오히려 도덕에 상충된다 : 종교적 규율과 교리가 필연적으로 현대의 세속윤리에 위배되는 핵심적 성격을 갖는다는 답변. 스티븐 와인버그는 이러한 맥락에서 "선한 사람이 악한 일을 하려면 종교가 필요하다" 고 말한 바 있다. 현대 무신론 중에서도 반종교 계통의 관점을 따를 때 취하게 되는 답변이며, 현대의 세속윤리에 양립하도록 종교적 교리를 고칠 경우 그것은 더 이상 종교로 부를 수 없다고 이해하기도 한다.[5]
- ... 그리고 종교는 세속윤리와 상충되지 않더라도 도덕적 본성을 악하게 한다. : 위와 차이점은 설사 종교의 가르침이 세속윤리와 어긋나지 않더라도 종교가 사람을 덜 도덕적으로 만든다는 답변. 다시 말해, 어떤 종교가 신자들에게 보편적으로도 타당한 윤리적 가르침을 베풀더라도 종교의 기타 다른 요소는 신자들이 해당 가르침과 반대로 행동하게 만든다. 해당기사 참고종교있는 집 아이가 더 이기적이고 베풀지 않아
- ... 그리고 종교는 도덕에게 유용한 도구다 : 종교의 교리 체계를 잘 활용하면 세속윤리를 충분히 지원할 것이라는 답변. 이 관점에서는 종교적 교리가 세속윤리에 크게 어긋나는 부분이 적다고 생각하며, 종교가 갖는 강력한 동기부여와 당위성, 정당성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세속윤리를 확고하게 지킬 것으로 기대된다고 본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이 답변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 ... 그러나 종교는 초보적 도덕체계일 뿐이다 : 원시 사회에서는 도덕이 종교에 의존했지만 현대에는 그렇지 않다는 답변. 이 관점에서는 종교가 도덕을 품고 있었으나 현대사회에서는 이미 양자가 서로 갈라져 있기에, 단지 그 뿌리가 같다는 의의만을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이 관점은 종교가 어디까지나 원시적 도덕에 지나지 않으며 더 이상 현대 세속윤리에 관여할 수 없음도 밝히고 있다.
- ... 그러나 종교는 도덕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 원시 사회에서는 종교가 도덕에 의존했지만 현대에는 그렇지 않다는 답변. 이 관점에서는 도덕이 종교를 품고 있었으나 현대사회에서는 이미 양자가 서로 갈라져 있기에, 단지 그 뿌리가 같다는 의의만을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위의 답변과는 달리, 이 답변의 경우 종교는 애초에 도덕이 아니며, 도덕이라는 그림을 그리는 붓에 불과할 따름이라고 본다.
- ... 그리고 종교와 도덕의 관계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 : 종교가 도덕성에 도움을 줄지는 신자들마다 제각기 다르다는 답변. 거칠게 설명하면 "같은 물을 마시고 소는 우유를 만들지만, 뱀은 독을 만든다" 는 격언과도 유사하다. 같은 종교, 같은 교리, 같은 규율을 따르더라도 어떤 신자는 도덕적/친사회적 모습을 보이는 반면, 다른 신자는 비도덕적/반사회적 행태를 보일 수 있다는 것. 상당히 미시적인 수준에서 취할 만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 ... 그리고 종교는 개인의 도덕성에 영향을 주지 못하나 덜/더 도덕적인 사람일수록 종교에 끌린다. : 쉽게 말해 종교가 있다고 해서 특별히 더/덜 도덕적이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나 개인의 윤리관이 무너지면 종교에 의존하게 된다던가 혹은 지나치게 도덕적인 사람이 사회에서 비도덕적인 모습들에 실망하여 종교에 투신하는 식 또는 비도덕적인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종교에 의존하는 식으로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간접적인 상관관계는 존재한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치안이 불안한 국가일수록 종교가 큰 힘을 가지는 경우가 많고 치안이 확립된 국가일수록 종교의 힘이 약하고 세속적인 경우가 많다는 점은 생각해볼 만하다.
- 종교가 말하는 도덕은 그들만을 위한 배타적 도덕 : 종교에서 가르치는 도덕윤리는 그들 종교집단 내부에만 한정된다는 답변. 종교계 내부에서는 한없이 선하고 친절하며 호의적이지만 외부의 적대시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일체의 호의 없이 적대적인 집단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는 관점이다. 결국 이는 종교의 교리와 세속윤리를 직접 비교한다기보다는 그것이 적용되는 범위를 주제로 하는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인류학 분야의 앨런 피스케(A.Fiske)와 테이지 라이(T.Rai)는 《Virtuous Violence》 라는 책에서 외집단에 대한 폭력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 도덕은 유동적이나 종교는 고정적이다 : 종교는 그 종교가 발생한 시점의 도덕을 반영하나, 도덕은 사회가 변함에 따라 같이 변화한다는 답변. 하지만 종교는 과거의 도덕을 명문화한 경전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므로 대다수 종교들의 근본주의는 변화한 사회의 도덕과 빈번히 상충한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화를 통해 한 지역에 여러 종교가 공존하게 되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종교 지도자들의 유연한 교리 해석과 전파가 필요하다고 본다.
4 기타
Warhammer 40,000의 등장인물 '인류의 황제' 는 호루스 헤러시 중 《마지막 교회》 에서 다음과 같은 반종교적인 언급을 남긴 적이 있다. 본래 이러한 무신론자 컨셉은 아니었는데 점차 이쪽으로 성격이 짙어졌다는 얘기도 있으며, 황제의 장점과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출처)
"…종교가 선을 위한 힘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바로 우리 세계의 역사 속에 만연하는 미신적인 야만성을 보지 못해 그런 것이오. (중략) …종교는 가장 해로운 독약처럼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남아 경계선을 만들어냈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 경계선은 희미해지겠지.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서로 어우러져 인연을 맺는 데에 적응하게 된다면 오래된 상처는 잊혀지게 되겠지. 신에 대한 믿음과 신적인 존재들은 사람들을 서로 멀리 떨어뜨려 놓을 뿐이고 사람들을 갈라놓는 모든 것들은 비인도적인 행위만을 낳을 뿐이오. 종교는 그처럼 추잡한 목적을 수행하는, 인류의 마음속에 생기는 종양 같은 존재란 말이오."
황제, 《마지막 교회》 中
윤리학 학부과정 교재로 많이 쓰이는 레이첼즈(J. Rachels)의 저서 《도덕 철학의 기초》 제 4장은 기독교계열 종교와 도덕성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대략 신학적 전제가 옳다고 전제하더라도 도덕적 판단은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이나 상관없이 모두에게 부여된 이성이 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성과 종교는 서로 별개라는 것이 저자의 요지이다. 그리고 종교가 왜 도덕과 별개인지 현대윤리학의 공리를 통해 증명하는데, 초반의 3개 예시의 분석,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분석과 함께, 독자들에게 윤리학적 분석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6]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명시하는 "자연법" 은 이성의 법칙이며... (중략) ...이는 종교인들도 도덕적 진리에 접근하는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인과 비종교인은 모두 같은 처지에 있다. 신은 종교인이나 비종교인 모두에게 이성적 판단을 할 능력을 부여했으며, 이들의 모두 이성에 귀를 기울이며 이성의 명령에 따를 수 있다. 비록 비종교인은 신앙이 없기 때문에 이성적 질서의 창조자가 신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이성은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에게 동일하게 도덕적 대행자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제임스 레이첼즈, 《도덕 철학의 기초》, 2006, p.120
패트릭 헨리 컬리지의 법학교수인 몽고메리(J.W.Montgomery)의 관점도 살펴보자. 그는 일종의 사고실험을 통해 신칸트주의적 윤리관을 비판한다.[7] 법철학적 논의와도 나름 유사한 이하의 비유에서, 몽고메리가 종교가 어떤 측면에서는 도덕을 지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 있다. 물론 징기즈칸이 종교를 순순히 믿겠냐마는 말이다
"...제가 징기즈칸에게 이런 말을 건넵니다. '징기즈, 당신 또 유럽을 침략해 강간과 약탈을 일삼고 있군요, 안 그렇습니까?' 징기즈가 대답합니다. '그렇소.' 그리고 제가 말합니다. '징기즈, 징기즈, 보편 법칙의 원리에 입각해 행동해야 합니다. 당신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당신을 강간하고 약탈하기를 원하지 않겠지요?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을 강간하고 약탈하는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보편 법칙이 될 수 있는 행동을 하도록 하십시오.' 징기즈는 제 멱살을 잡고 말합니다. '이봐, 이 별볼일 없는 사람아. 난 징기즈이고 힘 있는 사람이야. 나는 강간하고 약탈해도 돼. 다른 사람들은 내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만 말이야. 게다가 난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것이 좋아. 어떤 사람들은 우표를 모으지. 나는 약탈을 해.' 그리고 그는 나를 땅바닥에 패대기쳤고,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신칸트 학파의 윤리는 근본적인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력합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J.W.몽고메리, T.Wright에서 재인용
- ↑ 사실 엄밀히 따지면 돈의 액수만으로 해당 종교인들의 도덕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보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라면
도대체 왜사람의 숫자와 액수를 기록하고, 그 사람들이 진짜 해당 종교를 믿는지를 확인하고, 그 지역의 종교 비율과 분포를 따져봐야 한다.물론 결국엔 그냥 저 사람 배만 불려주는 거다 - ↑ 그 종교의 신자 혹은 그 종교를 국교로 채택한 국가
- ↑ 교리와 교전, 의례 등
- ↑ 그 종교가 강조하는 원칙, 혹은 교구 내의 위치에 따라 요구되는 의무 등
- ↑ 반신론 계통의 관점에서는 "종교의 도덕을 도덕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아마도 '노예의 도덕' 이라고 해야 할 것"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 덤으로 동성애가 왜 잘못이 아닌지도 증명해 낸다.
- ↑ 여담이지만 서구의 오랜 고정관념에 따라서 칭기즈 칸이 야만인처럼 묘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