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멧 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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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메멧 숄 (Mehmet Scholl)
생년월일1970년 10월 16일
국적독일
출신지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카를스루에
신체 조건176cm, 68kg
포지션미드필더
유스팀SV 노르트베스트 카를스루에 (1976 - 1982)
카를스루에 SC (1982 - 1989)
소속팀카를스루에 SC (1989 - 1992) 58경기 11도움
FC 바이에른 뮌헨 (1992 - 2007) 334경기 87골
스태프FC 바이에른 뮌헨 U-13 (2008 - 2009)
FC 바이에른 뮌헨 2 (2009 - 2010)
FC 바이에른 뮌헨 2 (2012 - 2013)
국가대표(1995-2002) 36경기 8골

15년간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한 독일의 전설적인 유리몸 테크니션
최후의 길거리 축구천재

1 개요

프랑크 리베리 이전의 바이에른의 No.7의 상징적인 존재였으며, 무려 15년간 바이에른 뮌헨과 영광의 시대를 함께하며 334경기 87골의 기록을 남겼다. 주포지션은 사이드 미드필더로 현란한 발재간과 정확한 킥력, 신장이 큰 편이 아님에도 헤딩능력도 좋았고 현재의 안드레아 피를로와 비슷한, 조기축구 아저씨가 대충 차는 폼으로도 구석에 족족 꽂히는 슈팅을 구사한 프리킥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했다. 치명적인 단점은 유리몸이었다는 점. 뮌헨에서의 15년간 출장기록이 고작(?) 334경기인것에서 짐작했을것이다.

일생의 동지인 올리버 칸과는 출신지역과 데뷔 클럽, 그리고 자신들이 전설로 남은 클럽에서의 행보까지도 거의 똑같다. 칸과 메멧 숄의 분데스리가 8회 우승은 개인 역대 최다 분데스리가 우승기록으로 남아있고, DFB-포칼 역시 6회를 우승해 기존까지 개인 역대 최다우승기록이었으나 13-14시즌을 기점으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7회 우승을 달성해 타이틀을 내줬다.

1992년 한창 바이에른 뮌헨이 "FC 헐리우드"라고 불리는 막장 시절부터 건너와 팀의 중흥기를 쭉 함께했으며 8회의 분데스리가 우승, 6회의 DFB-포칼 우승, 2000-01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98-99 챔스 준우승, 1995-96 UEFA 컵 우승 등의 전설적인 행보를 이어왔으며, 바이에른 팬들이 꼽는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최고의 Best11에 빠짐없이 올라올 정도로 실력뿐만 아니라 팬들에게 인기가 좋다. 2000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2 출생과 성장

메수트 외질, 일카이 귄도간과 같은 터키계 독일인으로 1970년 10월 16일, 카를스루에에서 터키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5세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양육권을 가졌던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숄(Scholl)이라는 성을 얻었다.(본명은 메흐메트 윅셀 - Mehmet Yüksel) 지역 유스팀 SV Nordwest Karlsruhe와 Karlsruhe SC에서 성장해 89년 퍼스트팀으로 콜업되어 첫 해 3경기에 출장했다. 1990년 4월 21일 생애 최초로 쾰른전 분데스리가 경기에 출장했고, 이 경기에서 데뷔골도 넣었다. 이후 주전으로 도약해 55경기 10골을 터뜨렸고, 이 활약을 지켜본 바이에른 뮌헨이 당시로써는 적지 않은 금액인 250만 유로를 비드해 92-93시즌을 앞두고 바이에른에 합류한다.

3 FC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활약

조반니 트라파토니, 오토 레하겔 등의 감독이 거쳐갔던 뮌헨으로써는 이 당시는 썩 좋지않은 FC 할리우드 시절이었지만 숄은 이적 첫시즌 31경기 7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고, 그 다음 시즌도 27경기 11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숄의 활약을 바탕으로 바이에른은 이 시즌 1994-95 분데스리가를 우승해 마이스터샬레를 탈환해오는데 성공한다. 95-96 시즌 뮌헨은 또다시 죽을쒔지만 꾸역꾸역 UEFA 컵을 우승했고, 숄도 여전히 출중한 기량을 보여줬다.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95년에 처음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고 유로 1996 우승에도 독일 국대의 멤버로 활약했다. 다만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는 대회전에 장기부상을 당해 독일의 무기력한 탈락을 지켜봐야했으며, 이어지는 98-99시즌에도 오트마르 히츠펠트의 부임 후 뮌헨은 리가와 포칼을 동시에 들어올렸고 11년만에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라 준우승을 거뒀지만 부상여파로 13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다.

99-2000시즌, 부상을 떨쳐낸 숄은 다시 폼을 되찾았고 뮌헨은 다시한번 리가를 제패했지만 챔스는 조별리그에서 합계 8대3으로 대파했던 레알 마드리드에게 원정다득점 우선 원칙에 밀려 4강에서 탈락했고, 유로 2000에도 출전해서 루마니아에게조차 선제골을 내주고 쩔쩔매던 독일국대를 호쾌한 중거리슛 한방으로 벼랑끝에서 구해냈지만 루이스 피구, 세르지우 콘세이상, 파울레타, 후이 코스타 등의 포르투갈을 당해내지 못하고 조별리그에서 광탈하고 만다.
2000-01 시즌은 그야말로 숄의 전성기였다. 리그 9골, 챔피언스리그 5골이라는 맹활약과 더불어 팀의 3연속 분데스리가 제패와 25년만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0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안을 수 있었다.

2001-02시즌, 숄은 여전한 폼을 보여줬지만 팀은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마이스터샬레를 내줬고 포칼은 지난시즌 극적으로 우승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샬케 04에게 내줬다. 챔스에서는 또 지긋지긋하게 만나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합계점수에서 3대2로 패했다. 또 메이저 대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앞두고 장기부상을 당한다. 이 시즌을 끝으로 숄은 독일대표팀에서 쓸쓸히 조기은퇴한다. 결국 메이저대회 직전마다 부상당했던 숄은 커리어상 월드컵 출전은 통산 0경기로 남고야 말았다(..) 안습. 숄이 국내에서 인지도가 바닥인것도 이렇듯 월드컵 출전을 부상으로 한 경기도 못했기 때문. 그나마 조국 독일이 이런 암울한 부상악령을 딛고 준우승 하는것을 지켜보는것으로 위안삼아야 했다.

이후 02-03, 03-04시즌도 숄에게는 힘든 시간이 계속되었다. 부상여파와 되풀이되는 부상재발로 시즌 한자리수 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고, 이런 메멧 숄이 빠지자 팀도 창조성이 있는 테크니션을 잃으며 공격전개도 단조로워지고 이는 유럽대항전에서의 유례없는 부진으로 이어졌다. 아르연 로번이 합류하고 슈바인슈타이거가 중앙미드필더로 포변한 2009-10 시즌 전까지 바이에른은 01-02시즌을 마지막을 챔스 8강 이상을 뚫지 못하는 부진이 이어졌다.

펠릭스 마가트 감독 부임 이후 숄은 적지않은 나이와 부상여파, 후배들의 성장등을 고려해 선발보다는 주로 슈퍼조커 역할을 많이 맡았다. 백전노장인데다 워낙 축구센스가 좋다보니 나올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보니 팬들은 더더욱 그놈의 부상이 안타까울 따름. 하산 살리하미지치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오언 하그리브스등의 멘토이자 팀의 최고참으로 제 역할을 다해주던 숄은 결국 2006-07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전 친선경기에서 옛 No.7인 숄이 새 No.7인 프랑크 리베리와 교체되어 포옹하는 장면은 감동 그 자체.

1992-2007 15시즌동안 8회의 분데스리가 우승, 6회의 DFB-포칼 우승, 각각 1회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UEFA 컵 우승, 그리고 유로 1996 우승이라는 전설적인 행보를 끝으로 숄은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런 그의 행보로 숄은 역대 단 17명밖에 없는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05년 팬들의 투표를 통해 구단 역사상 최고의 Best11을 뽑는 자리에서 윙미드필더자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4 은퇴 이후

은퇴 이후에는 지도자와 축구 해설가의 길을 걸으며 축구계를 떠나지 않았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바이에른뮌헨 U-13팀의 감독을 맡았고, 2009년부터 2010년까지는 바이에른 뮌헨 B팀의 감독도 맡았었다. 이후 뮌헨 리저브팀이 워낙 죽을 쑤자 다시 팀 코치로 복귀했는데 정확한 정보와 연도를 아시는 분은 추가 바람.

분데스리가 경기나 독일이 출전하는 주요 메이저 대회에도 심심찮게 숄의 해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1]

현재 그의 아들인 루카스 숄이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에서 뛰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무종교 신자이지만, 언젠가부터 불교에 상당히 심취해 있다고 한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89/90카를스루에 SC독일 분데스리가3100--
1990/91카를스루에 SC독일 분데스리가27610--
1991/92카를스루에 SC독일 분데스리가28421--
1992/93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31720--
1993/94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7112141
1994/95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31910103
1995/96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301020115
1996/97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353120
1997/98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3296280
1998/99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1342030
1999/00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5631123
2000/01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9911165
2001/02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1863120
2002/03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1844040
2003/04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502110
2004/05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032151
2005/06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1833260
2006/07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1411040

5.3 개인 수상

  • ESM 올해의 팀: 1995–96, 2000–01
  • 독일 분데스리가 이달의 골 : 2000년 1월, 2000년 12월, 2003년 2월
  • 브라보 오토: 1996, 1997, 2000
  1. ARD 전속 해설자라서 ARD에서 중계해주는 경기에는 늘 나오는 편. 참고로 ZDF 전속은 올리버 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