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뤼흐 스피노자

Baruch Spinoza(네덜란드어) 1632년 11월 24일 ~ 1677년 2월 21일
Benedictus de Spinoza(라틴어)
바뤼흐 스피노자

Intellectually, some have surpassed him, but ethically he [Spinoza] is supreme

지적인 면에서 그보다 뛰어난 철학자들은 있지만, 윤리적인 면에서 그를 따라갈 철학자는 없다 - 버트런드 러셀[1]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국내에서는 이것이 스피노자의 말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스피노자가 이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스피노자가 썼다고 알려진 어떤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낭설일 가능성이 높다.)

신에 취한 사나이

네덜란드유대인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라이프니츠와 같이 대륙합리론을 대표하는 트로이카 중 한 명이다.

본래 랍비가 되려 했으나 유대교 교리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23세에 쫓겨나고 안경 렌즈갈이로서 일생을 보냈다. 렌즈를 가공해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다는 '전설'이 스피노자를 따라다니지만, 현미경이나 망원경에 쓰이는 렌즈 가공을 익힌 것은 광학(光學)에 대한 과학적 관심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스피노자의 생계는 친구와 지지자들이 연금 형식으로 보낸 돈으로 유지되었는데 풍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가난에 시달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스피노자가 렌즈를 가공했던 이유 중 하나는 당시에 렌즈 가공이 돈벌이가 되는 일이었고, 남는 시간에 학문 연구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렌즈를 가공하면서 생기는 유리가루를 많이 마셨고 그것이 폐에 쌓이면서 마흔줄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고 유대교인이 된 것도 아니니 종교적으로는 완전히 고립된 삶을 보낸 셈. 그나마 그의 재능을 알아본 친구들이 지원을 해주어서 그렇게 어렵게 살지는 않았다고 한다. 말년엔 교수직을 제의받기도 했으나 거절했다.

히브리어의 교본을 쓰고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조금을 할 줄 알았으며 라틴어로 저술을 한 먼치킨(당연히 모국어는 네덜란드어).

그의 세계관을 간략히 말하자면 모든 것이 이라는 범신론(汎神論)을 바탕으로 한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하나의 실체이고, 바로 이러한 실체가 곧 신이라는 것이다. 물질은 물론 정신도. 르네 데카르트가 물질과 정신을 전혀 다른 것으로 설정한 것과 달리 그는 이는 단지 신의 다른 속성일 뿐이라고 했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은 물질과 정신의 관계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해 모순을 낳았다. 스피노자의 생각은 데카르트의 이론을 개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신의 속성은 물질과 정신에만 국한되지 않고 무한히 있으나, 우리의 지능이 제한되어 있어 이 두 속성밖에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사상을 간단히 요약한 문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 즉 자연'

그 밖에도 윤리학면에서 독특한 주장을 펼쳤는데, 윤리를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였고 진정으로 한 것도 한것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인간의 성질과 감정을 마치 하늘이 비를 뿌리고 해를 비추듯 선함과 악함으로 나눌 게 아닌 인간 자체의 본성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삶의 지침과도 같은 행복하게 사는 법을 제시했다. 자신의 정념 혹은 의지는 분명 외부의 어떤 영향에 의한 것이며 그 원인을 이성적으로 관조하여 심적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현대 정신분석학과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

여튼 사상이 기독교적 세계관에선 이단에 가까운 것이라 동시대인들에게 많이 까였고 그의 사후 출판된 저서들을 분서하고자 하는 자들도 많았다. 이렇듯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간 까닭에 까가 굉장히 많았는데, 고대 철학자들 중에서 당대에 까가 가장 많았던 사람이 소크라테스라면, 스피노자는 근대철학자들 중에서 까가 가장 많은 철학자이다. 물론 까 못지않게 빠도 많았지만

신에 대해서는 꽤나 진보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던 철학자였다. 유일신에 대한 신학 이론은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지금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신에 대한 이론도 내일이면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인정했다. 물론 이런 진보적인 신학 이론은 유대교에서 파면을 당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고 만다.

같은 네덜란드인인 렘브란트와 같은 동네에 비슷한 시기에 살았는데 한번도 서로 만난 기록이 없다고 한다.

젊었을 적 칼침을 맞은 적이 있다. 스피노자는 파면당한 이후에도 신학과 관련해서 발칙한(?) 이론들을 익명으로 발표하면서 교인들에게 어그로[2]를 끌었는데, 참지 못한 어떤 광신자가 스피노자를 찾아가서 칼을 휘둘렀다. 익명으로 발표하긴 했는데 당시 워낙 스피노자의 이론이 눈에 띄는지라 공공연하게 스피노자가 썼다는 걸 대부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론에 흥미를 느낀 저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가 몰래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평생 은거하다시피 살면서 철학을 탐구했지만 여기저기서 오는 편지는 잘 받고 답신을 해주었던 모양. 그의 철학 세계를 알 수 있는 문헌 중에 논쟁을 주고받았던 편지도 상당수 있다. 다행히 스피노자는 방어를 잘 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칼을 맞으면서 옷이 심하게 찢어졌는데 스피노자는 "모든 인간이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그 찢어진 옷을 보관했다고 한다.

노발리스는 그를 '신에 취한 사나이'라고 불렀다. '자연이 곧 신이다.'라는 범신론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그를 '선구자'라고 불렀다. 니체는 신이 없다는 입장에서, 스피노자는 범신론적 입장에서 상반된 견해를 가졌지만, 니체는 둘의 철학이 비슷함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엥겔스는 '변증법의 뛰어난 대변자'라고 여겼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로 유명하지만, 정작 본인이 저런 말을 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 다만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사실 탈레스의 말이고,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가 그의 전기작가가 한 말이지만, 어쨌든 해당 인물을 대표하는 너무도 유명한 명언으로 각인된 덕분에, 사실이야 어쨌든 그냥 그 사람이 한 말로 치고 넘어가듯이, 스피노자의 저 명언도 그냥 스피노자가 한 말로 치고 넘어가는 분위기. 단, 이는 한국 한정이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마르틴 루터가 한 말로 알고 있다. 물론 마르틴 루터가 처음 한 말도 아니라는 것이 함정. 덧붙여 저 말은 보통 '그래도 난 굴하지 않아!'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저 말의 철학적인 진짜 의미는 "내가 어떤 짓을 해도 내일 지구는 반드시 멸망하니 의미가 없다. 그러니 필연을 받아들이고 오늘은 오늘 할 일을 하면 된다." 나의 정해진 운명을 미리 알게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 비록 스피노자가 발언했다는 근거는 없지만, 모든 것은 필연이라는 그의 철학관을 잘 나타내 주는 명언이다.

하지만 스피노자처럼 똑똑한 사람이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든 운명은 바꿀 수 없다는 식의 운명론을 주장한 건 아니다. 사람의 선택과 실천에 따라 결과는 당연히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선택의 주체인 것처럼 느껴지는 자기자신 역시 신=세계의 한 부분이고 그것이 전개되어 가는 과정에 속해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선택에는 동기가 있다. 심지어 무작위로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도 무작위 방식을 취하기로 한 어떤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자유롭다는 환상 속에 내린 선택은 거대한 필연의 인과고리의 한 부분을 이룰 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점을 인식하면서 될 수 있는 한 넓은 전망으로 그러한 인과고리를 관조하고 그렇게 얻어진 정보와 통찰 하에 선택을 하는 사람과 순간순간의 충동이나 두려움이나 욕망이나 사회적 압력 등의 영향 속에서 좁은 시야에 갇힌 채 선택하는 사람의 삶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충동에 의해 잘못된 사랑에 빠지는 사람과, 그런 사랑에 빠졌을 때의 여러 가지 결과들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그것이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든 거부하는 것이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사람 간의 차이라고 하겠다.

물론 인간의 인식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세계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스피노자의 철학으로 모든 선택의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삶의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주는 철학은 없다. 다만 어떤 부류의 태도나 습관을 지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는 파문과 사회적 고립 속에서 온화하지만 굳건하게 자신에게 중요한 신념을 찾고 증명하고 실천하며 담백하게 살아간 스피노자의 생활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주저로는 에티카(Ethica)가 있는데 국내에도 번역본이 여럿 있으니 시간나는 분은 한 번 읽어봐도 좋겠다.[3] 스피노자에 대해 좀 쉽게 접해보고자 한다면 다른 저서인 '신학정치론'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에티카에 비하면 아주아주 무난한 편이다.

여담인데 17세기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책자《세명의 사기꾼》[4]의 지은이로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자는 이슬람교인 및 기독교인, 유태인 등 여러 사람이 쓰고 수정하고 덧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자는 한국에도 번역되어 나왔는데 이런 책자를 17세기에 썼다는 게 대단하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 받은게 17세기다. 한국판 책자에선 지은이를 스피노자의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표기했다.
  1. 이는 라이프니츠에 대한 평과 대비되는 평이다.
  2. 사실 어그로가 아니라 스피노자는 자신의 생각을 소신있게 말한 것.
  3. 스피노자가 기하학적 구조로 작성한 공리와 정의에 관한 기초 이해와 실체와 변양에 대한 개념, 그리고 스콜라 철학에서 자주 보이던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의 개념에 대한 기초적인 철학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어려울 것은 없다. 쉽게 읽는 방법으로는 스피노자가 서술한 모든 정의와 공리들을 암기하려고 시도하기 보다는 각각의 증명들을 보면서 선행적으로 서술된 공리 및 정의들을 참조할 것.
  4. 예수, 모세, 무함마드를 사기꾼이자 위조한 가짜로 비난하는 작가 미상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