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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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국회의장
16대 1기
이만섭
16대 2기
박관용
17대 1기
김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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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寬用
1938년 6월 6일 ~

대한민국정치인이다. 종교가톨릭(세례명 : 바오로)이다.

1938년 부산부에서 태어났다. 동래고등학교, 동아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동아대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 선배 서석재와 함께 4.19 혁명을 주도하였다. 이후 신민당 국회의원이던 이기택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이기택이 정치규제자로 선정되자 부산직할시 동래구 지역구를 물려받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였고 민주정의당 김진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4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몸담았고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당선되었다. 1987년 김영삼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자 통일민주당에 몸담았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직할시 동래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강경식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그 해 국회 통일정책특위위원장이 되었다. 1990년 김영삼이 3당 합당을 주도하자 이에 참여하여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전국 최다득표(92,353표)로 당선되었다. 이듬해인 1993년 대통령비서실에 임명되자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그리고 1994년까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부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소속으로 부산광역시 동래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외무통일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부산광역시 동래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이 되었다. 국회의장 임기 말인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이 당시 통곡하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향해 자업자득이라는 말을 하며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국회의장 임기 종료 후 정계를 은퇴하였다.[1]

이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억951만9000원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 벌금 150만원 및 추징금 951만9000원을 선고받았으며, 대법원에서는 원심을 확정했다. 자업자득
  1. 국회의장을 맡은 정치인은 다음 회기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관행을 만든 장본인이다. 보통 5선 이상 국회의원이 국회의장을 맡으므로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