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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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慶植
1936년 05월 10일 ~

대한민국의 경제관료, 정치인이다.

1936년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제관료로 근무하였다.

1977년 12워부터 1982년 1월까지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지내면서 김재익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등과 함께 경제 안정화 정책을 주도하였다. 1982년 1월부터 같은 해 6월까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차관을, 같은 해 6월부터 1983년 10월까지 재무부 장관으로 부임하였다 이 때 김재익 등과 금융실명제를 추진했으나 정계의 반발로 실패하였다. 1983년 10월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에 대한 수습 차원에서 내각 개편이 진행될 때 함병춘의 후임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어 1985년까지 부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동래구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박관용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1993년 박관용이 대통령비서실장이 되자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동래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 3월 재정경제원 장관 겸 부총리가 되어 기아자동차 부도 사태의 처리 등을 추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동래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박관용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동부그룹, 농심그룹 등에서 사외이사로 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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