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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 (Bertrand Grospellier) |
생년월일 | 1981년 2월 8일 |
신체 | 198cm, O형 |
소속 | AMD 드림팀 → 헥사트론 드림팀[1] Team Liquid (2015.11.13 ~ )[2] |
ID | Elky |
주 종목 | 스타크래프트 / 워크래프트3 -> 하스스톤[3] |
종족 | 테란, 은퇴 직전에는 랜덤 / 나이트 엘프 |
1 개요
선글라스와 불타는 커맨드 센터를 생각나게 하는 프랑스 출신의 프로게이머이자 프로 갬블러. 외국인 선수임에도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해 기욤 패트리보다도 긴 시간동안 꾸준한 성적을 낸 프로게이머 계의 레전드.[4] 그러나 이상하게도 스타리그에선 4강 문턱을 넘은 적이 없는 락라인 멤버이기도 하다.[5]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3 프로게이머로 활동 후 은퇴했다가, 2015년 하스스톤 프로게이머로 현역에 다시 복귀했다. 향후 게이머와 갬블러 활동을 병행할 예정이라고... 뭐가 되었던 카드게임의 제왕.
2 주요 경력
- 2001 제주KBK 3위
- 2002 KPGA TOUR 1차리그 16강
- 2002 스카이 온게임넷 스타리그 4위[6]
- 2002 파나소닉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 2003 올림푸스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7]
- 2003 03-04 NHN 한게임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 TG삼보 MSL 패자 8강 1차[7]
- WCG 2001 스타크래프트 부문 은메달 (vs 임요환 0:2)
- WCG 2002 스타크래프트 부문 4위
- WCG 2003 스타크래프트 부문 5위
- 2002 온게임넷 워3 1차리그 2위[6]
- 2003 온게임넷 워3 프레매치 4위
3 상세
3.1 프로게이머 이력
WCG2001에 출전했다가 한국의 E스포츠 문화에 매료되어 2002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 트레이드마크는 처절함으로, 특히 이 점은 테테전에서 극한으로 발휘된다. 그 처절함은 반대로 최연성이 등장하기 전 까지는 최강의 수비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뜻으로 베르트랑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는 "선글라스"와 함께 "불타는 커맨드 센터"였을 정도
과거에[8] eSTRO의 에이스였던 신모와는 얼굴 한 번 본 적없는 사이임에도 이 특징은 신모에게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기욤 패트리, 장진남, 장진수, 조정현과 함께 AMD 팀의 기둥이었으나 다섯 선수가 모두 하향세를 겪으면서 AMD의 성적도 최하위권으로 떨어졌고, 이는 eSTRO까지 이르는 팀의 안습 역사의 시작이 된다.
2002년, 워크래프트 3 게이머로써도 활약하겠다고 선언하며 워3 대회에도 참가했다. 특히나 초대 대회였던 2002년 한빛소프트배 워크래프트 3리그에서 맹활약하며 결승전까지 진출, 전지윤에게 패배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와 동시에 진행된 sky배 스타리그에서도 승승장구 해 나아갔는데 이때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기니 바로 얼라이 마인 사건.
2002년 sky배 스타리그 4강에서 맞상대 한 임요환이 버그의 일종인 얼라이마인을 사용해 베르트랑의 병력을 입구에서 잡아버렸고, 이를 본 베르트랑이 항의를 했다. 버그를 악용한 것이기 때문에 패배로 규정되어야 했지만, 리그 흥행을 위해 온게임넷이 슬그머니 재경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그후 멘붕한 베르트랑은 3 : 0으로 패배했다. 참고로 임요환은 이날 승리로 온게임넷 10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당시 모호했던 얼라이마인 규정을 임요환이 사용했고, 온게임넷은 흥행성이 높은 임요환을 올리기 위해서 일종의 꼼수를 부린 것.
어쨋든 이시기 베르트랑은 프로게임계 역사상 유일무이한 스타크래프트 1, 워크래프트 3 정규대회 동시 4강 진출이라는 대 업적을 남긴다.
이후 NHN 한게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03~04에서는 랜덤 출전을 선언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패러독스에서 프로토스인 김성제를 상대로 하필이면 저그가 나오는 바람에... 투햇 초패스트 뮤탈로 어떻게 해보려 했지만 무난히 발렸다. 그리고 이 대회가 베르트랑의 마지막 개인리그 본선대회였다. 안습. 그리고 이전에 있었던 TG삼보 MSL에서는 먼저 16강전에서 나도현에게 패한 다음 패자 1차 8강에서 최연성을 상대로 경기를 했어야 했는데..... 잠깐 비자문제로 해외에 출국했다가 여권을 분실하는 바람에 경기 당일에 오지 못해 실격패를 당하고 만다. 참고로 이 대회가 베르트랑 본인의 마지막 MSL 본선무대가 되어버렸다. 다시 안습.[9]
또한 파나소닉배 스타리그 재경기에서도 이윤열에게 핵2방을 날려서 GG치게 만든 사실로도 유명하다.
한게임 스타리그를 끝으로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프로 겜블러로 전향하게 된다.
3.2 프로 포커 플레이어 이력
이후 프로 포커 플레이어로 전향, Elky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트위치 방송도 한다.
포커 플레이어로써도 초 대박을 치며 상금랭킹 1위도 기록했는데 2008년 PCA대회 우승 인터뷰 동영상에서 직접 언급하기를 누적 상금 약 1000만 달러로 100억원 이상의 수입을 기록했다고 한다.
프로 포커 세계 에서는 리빙 레전드로 대우받는다. 포커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5명 중 한명이며 세계 1위 포커 사이트인 PokerStars 에 소속 되어있다.
파일:Nf8lp4n.jpg
너네 아직도 스타하냐?.JPG
포커 플레이어로 데뷔한 후에도 본인은 한국에서의 프로게이머 생활이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특히나 지금의 갬블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트위치 방송에서는 여자친구 제니 노와 자주 같이 등장하는데 여자친구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파일:PNHpEDO.jpg
오오 성공한 남자
4 효자테란
고대 스갤의 친구이기도 한데, 상금과 연봉을 꼬박꼬박 본국의 어머니께 보낸다고 해서 스갤러들로부터 효자테란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하지만 나중에 이지호 감독이 김정민의 스팀팩에서 실제로 송금하는 건 한번도 못봤다며..왜 효잔지 모르겠다는 발언을 하였다. 그 돈을 유흥비에 썼다는 소문도 있다. 그리고 나이트랑... 이후 행보를 보면 그깟 스타리그 상금일지도...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스갤의 정체성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데, DC에 스갤이 처음 열린 계기가 바로 '뜨랑은 효자요', '뜨랑은 효자라오'[10]를 사람들이 꾸준글로 밀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지호 감독의 발언으로 스갤 올드비들은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그런데 효자테란이 시작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4.1 효자 테란이 시작된 이유
일단 전제하자면 스타크래프트 갤러리가 생기기 이전 게임 갤러리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 당시 게시물 검색은 2016년 시점에서는 힘들지만 근성과 운만 따라주면 확인 가능한 일이다. 그 당시 게임 갤러리에는 제목은 " 베르트랑 " 이고 내용도 " 베르트랑 " 뿐인 뜬금 없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도배는 아니고 매일 올라왔으며 하루에 대여섯개 정도였지만 그 당시 글리젠율을 생각하면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글의 댓글에는 어김없이 작성자와는 다른 유저의 " 뜨랑~(이모티콘) " 하는 댓글이 달렸다. 짤방도 똑같았는데 팔짱을 끼고 선글라스를 낀 베르트랑의 사진.
시간이 갈 수록 갤러리의 반응은 " 이젠 좀 작작해라 지겹다 " 이런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 베르트랑의 팬이었던 한 갤러리 유저가 꾸준글에 꾸준댓글로 맞서기 시작한다. 이유는 그 꾸준글의 목적이 베르트랑의 이미지를 깎아먹으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제멋대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영화사에 고용되어 시나리오를 쓰던 작가라서 시간이 남아돌던 그 유저는 베르트랑의 이미지를 지켜주기 위해 화면 한쪽에는 시나리오 작성 중인 워드프로세서 화면을 띄우고 다른 반쪽에는 게임 갤러리 화면을 띄운 채로 실시간 감시에 들어가고 베르트랑글이 올라오면 " 베르트랑은 효자요. 한국에서 번 돈 고국의 홀엄마한테 꼬박꼬박 송금한다오. 외국넘 답지 않게 효자요 " 라는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유저의 " 뜨랑~(이모티콘) " 댓글도 어김없이 그 글에 붙었다. 꾸준글 작성자든 꾸준댓글 작성자는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꾸준글에 꾸준댓글로 맞선 결과 베르트랑이 효자테란으로 뜨기 시작한다.(...) 결국 효자 이야기는 댓글 작성자도 전혀 사실에 근거해 작성한 댓글이 아니다.
2015년 블리즈컨에서 하스스톤 이벤트 매치에 출전했다. 그리고 2015년 11월 14일 팀리퀴드에 입단하여 하스스톤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5 기타
- 특이사항으로 대회 경기에서 자기 커맨드 센터를 자기 손으로 때려 부순 적이 있다. 심지어는 건물 못깨기로 소문난 벌쳐3기로.12분22초~13분7초까지.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보통 프로게이머들은 유닛 한두개를 몇 대나 때려야 되는지 실험을 한다. 이마 유리한 게임이라 그런 실험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식전에서 실험을 하는 여유 - 스타크래프트 2에 관심을 보이는 기사가 나왔다. 참조참조2
- Iron Squid 챕터 1의 결승무대에서 이벤트전을 갖기도 했다 링크
- tving 스타리그 2012 결승전 레전드 매치 임진록 방송 중에 화면에 잡혔다. 역대 스타리그 우승자 및 유명 게이머를 초청했는데 기욤 패트리와 같이 관람하는게 화면에 잠시 비춰진다. 마지막 단상에도 출현.
- 프로게이머에서 갬블러로 전역한 속성 때문에 원사운드의 만화 텍사스 홀덤에서 중요한 인물로 출연한다.
- 비정상회담에서 기욤이 밝힌 바에 의하면 기욤이 사기를 당했을 때 가장 큰 돈을 빌려준 사람이라고 한다.[11] 아직 못 갚았지만 갚으라고 독촉하지 않고 쿨하게 기다려주고 있다고.
사실 뜨랑 입장에선 용돈으로 준 거라 까먹었는지도 모른다 - 2015년 10월 22일 트위치에서 스타크래프트 2: 공허의 유산을 플레이 하였다.
- ↑ 스폰서만 바뀌었을 뿐 같은 팀이다.
- ↑ 하스스톤 전향.
- ↑ 투잡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낸 거의 유일한 선수가 베르트랑이다. 다만 둘 다 우승 경력은 전무하지만... 정확하게는 C&C 제너럴까지 쓰리잡을 했다. 프로겜블러와 하스스톤을 병행하면 이것도 투잡?
- ↑ 온게임넷 스타리그 5연속 진출이 눈에 띈다.
- ↑ 하지만 MSL에서는 2002 KPGA까지 포함해도 전부 16강 광탈을 기록했다.
- ↑ 6.0 6.1 유일무이한 스타리그, 워3리그 동시 4강 진출
- ↑ 7.0 7.1 의외로 묻히기 쉬운 사실이지만 베트르랑은 외국인 유일의 양대리거 기록을 가지고 있다.
- ↑ 과거란게 중요하다.
- ↑ 참고로 베르트랑이 출전했던 각 대회 이후 스타리그에서는 Gillette 스타리그 2004부터, MSL에서는 하나포스 센게임 MSL부터 외국인 선수가 각 리그가 폐지될때까지 본선무대에 단 한 명도 진출하지 못했다.
- ↑ 당시 DC는 아직 하오체 문화가 남아있었다.
- ↑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전부 갚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