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 헤일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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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전성기때 라인업인 알렉스 밴 헤일런(드럼), 에디 밴 헤일런(기타), 데이빗 리 로스(보컬), 마이클 앤서니(베이스).

Van Halen. 맴버중에 밴 헤일런 형제의 이름을 따서 만든 미국헤비메탈, 하드록 밴드.


1 개요

이글스, 에어로스미스 등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아메리칸 하드록밴드중 하나로 미국내 앨범 판매량이 7천만장이 넘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음악가 TOP 10에 들 정도다. 70년대 말의 하드록/헤비메탈의 분기점에 선 밴드로 이 구분이 애매하긴 하지만, 적어도 밴 해일런을 기점으로 해서 그 이후에 헤비록을 추구하는 밴드는 대개 헤비메탈로 분류한다. 그리고 그런 기준으로 헤비메탈을 본다면 헤비메탈 밴드중 상당히 많은 앨범을 판매한 밴드들 중 하나로 가장 미국적인 색의 밴드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캐나다를 비롯한 북중미권에서는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으나 이상하게 국내에서는 'Eruption', 'Jump!'나 'Dreams' 같은 곡 정도를 제하면 어째 큰 인지도가 없다. 고로 대한민국에서는 듣보잡 취급... 안습[1][2] 그런데 이상하게도 밴 헤일런은 몰라도 에디 밴 헤일런의 트레이드 마크격 기타인 빨간색/흰색/검은색 줄무늬의 프랑켄스트랫을 아는 사람은 많다(…). 이뭐병… 밴드보다 기타가 유명한 본격 주객전도

밴 헤일런이 하드록/헤비메탈의 분기점에 위치한다는 얘기는, 밴 헤일런의 기타/드럼 연주를 기점으로 헤비록의 연주스타일이 확연하게 진일보해서 이전의 하드록과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데뷔앨범의 연주곡 'Eruption'은 록기타 역사상 최초로 라이트핸드 주법을 본격적으로 사용해 세상에 알린 트랙으로 평가받는다.[3]. 이렇게 다양하고 혁신적인 주법과 시도들은 당시 록음악계를 완전히 뒤흔들었다.[4]


2 바이오그래피

형(1953년생)인 알렉스 밴 헤일런(드럼), 동생인 에디(에드워드, 1955년생) 밴 헤일런(일렉트릭 기타)을 주축으로 하여 결성되었다.[5] 이 형제의 아버지[6]는 네덜란드인이며[7], 어머니는 네덜란드인과 인도네시아인의 혼혈[8]이다.[9] 형제가 어렸을 적(1962년)밴 헤일런 일가는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아버지는 형제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켰지만 알렉스와 에디는 그것을 즐기지 않았고 결국 드럼과 기타를 시작하게 된다. 피아노를 다뤄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밴 헤일런 형제의 건반악기 연주 실력 또한 수준급이다.

이 밴드를 거쳐 간 보컬리스트는 데이빗 리 로스(1974~1985, 2006~)[10], 새미 해거(1985~1996)[11], 게리 셰론(1996~1999)[12]이 있으며 베이시스트는 데뷔 때부터 2006년까지 마이클 앤서니였다가 에디 반 헤일런의 아들인 볼프강 반 헤일런으로 교체되었다. 본격 가족 밴드(한 명만 빼고) 다만 몇 십년 간 밴드를 같이 지켜온 베이시스트를 갈았다고 한 때 욕 좀 먹은 적도 있다[13]... 아들인 볼프강 반 헤일런의 실력은 안정적인 연주와 부드러운 고음역대의 코러스가 모두 가능한 마이클 안소니보단 약간 떨어지는 편. 마이클 안소니가 탈퇴당한 후 인터뷰에서 노발대발한 적도 있을 정도로 앙금이 있다. 무대매너와 퍼포먼스가 뛰어났던 1대 보컬인 데이빗 리 로스하고도 상당히 껄끄럽게 결별했고 새미 해거 이후 게리 셰론을 넣었으나 세일즈면에서 처참하게 망한 관계로 결국은 새미 해거를 다시 넣네마네 하다가 데이빗 리 로스와 재결합을 했다.

형제의 성을 따와서 밴드명을 만들었는데, 네덜란드계 이름이라 다양한 발음이 있다. 네덜란드식으로는 '판 할렌(혹은 반 할렌)'이라고 하며, 미국식으로는 '밴 헤일런'인데, 이것이 마구 섞여서 '반 헤일런' '밴 할렌' 등등 별의별 표기가 있는것이 특징이다.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 '반 헤일런'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을 정도. 하지만 분명히 "미국"에서 활동하는 밴드이므로 미국식 발음인 '밴 헤일런'으로 표기한다.


2.1 데이빗 리 로스 시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밴 헤일런의 최고 전성기

후임 보컬 새미 헤이거는 확실한 가창력이 있는 능력 충만한 보컬이지만 그래도 밴 헤일런의 대부분의 히트곡들은 데이빗 리 로스 시절에 나왔다. 이렇듯 밴 헤일런 본인의 작곡 능력과 연주 실력도 이때가 정점이었다. 보컬에 데이빗 리 로스, 기타에 에디 밴 헤일런, 베이스에 마이클 앤서니, 드럼에 알렉스 밴 헤일런이었던 이 초기 라인업은 데뷔 앨범부터 말 그대로 미국 음악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 라인업은 6개의 앨범을 내놓았는데, 마지막 역작 1984에서는 그 당시 유행하던 팝 메탈 노선을 따라가서 신디사이저 연주가 강조된 Jump[#][14] 등의 곡으로 큰 히트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보컬 데이빗 리 로스가 워낙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파티광에 돌아이(...)라 쉽게 제어가 되지 않았고 이것이 밴드 활동에 큰 불화의 씨를 낳게 되었다.[15] 결국에는 그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데이빗 리 로스가 탈퇴를 선언하고 새미 헤이거 시대를 열게 된다.


2.2 새미 해이거 시절

새미 해이거(Sammy Hagar)는 원래부터도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보컬의 기교나 대중성 면에서 매우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던 뮤지션이었다. 일단 데이브 리 로스가 개성이 강하고 좀더 "헤비메탈적"인 보컬이지만 새미 헤이거는 훨씬 팝적인 멜로디에 적합한 서정적인 보컬이었고 음역대도 더 넓었기 때문이다.

보컬의 교체와 함께 그의 음색에 맞춰 당시의 밴 헤일런은 초기때와 다른, 대중적으로 좀 더 먹히는 팝 메탈 노선을 따랐다. 데이빗 리 로스 시절에 내놓은 마지막 역작 1984에서도 그런 성향을 보이긴 했었지만 헤이거 시절에 본격적으로 바꾼 것. 그리하여 이 시절에 내놓은 앨범 4개도 전부 빌보드 1위를 찍고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역시 이때도 불화는 피해 갈 수 없었던지 편집 앨범 제작과 영화 OST 제작에 참여하는 거에 대해 의견 대립이 심해지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헤이거 역시 밴드를 떠나게 된다. [16]

물론 밴 헤일런의 팬 대부분이 헤이거 시절을 밴 헤일런이 아닌 '밴 헤이거' 라고 부르며 엄청나게 까지만(...) 대중적이어서 많이 팔리긴 했지만 평론가나 초기 시절을 잘 알고 있던 팬들에게는 이 시기를 없는 것 취급하려고 한다(...)


2.3 이후 시절

이후 공석이 된 보컬 자리를 익스트림 출신의 개리 쉐론을 넣어 보았지만 스타일이 너무 이질적이라 결국 실패한다. 게다가 에디의 건강 악화까지 겹쳐 침체기에 빠지게 된다.

이후 원래 보컬인 데이브 리 로스를 다시 합의끝에 영입하여 활동 중이다.


3 특징

굳이 연주 테크닉을 강조하지 않아도 에디 밴 헤일런이 애용하는 기타 사운드 메이킹 자체가 상당히 특이한 편인데, 일반적으로 저음과 고음을 강조하고 중음을 깎아서 세팅을 하는 다른 록 기타리스트들과 달리 중음을 많이 살려서 연주하는 편이다. 그래서 매우 또렷하고 앞으로 튀어나오는 사운드가 나온다. 곡 중에서는 대부분 솔로 이외엔 튀는 주법으로 연주하진 않으나 기본적으로 적재적소에 연주가 배치되어 있다는 평. 실제로 장비에도 관심이 많아서, 샤벨의 기타 공방에서 얻은 부품을 조립하여 "프랑켄슈타인 스트랫(줄여서 프랑켄스트랫)"[17]이라는 기타를 만들어 쓰기도 하였고, 이후 제작 및 튜닝 과정에 대거 참여한 기타들인 "뮤직맨 EVH"[18], "피베이 볼프강"[19] 등도 명기로 알려져 있다.[20] 또한 그가 직접 주문제작 및 튜닝해서 사용한 앰프인 "5150"[21]은 최고 품질의 드라이브 사운드로 헤비메탈 기타리스트들에게 애용되기도 하였다. 일명 마약 드라이브톤이라 불리는데, 그 이유는 5150을 쓰던 뮤지션들이 다른 앰프를 쓰게 되면 드라이브톤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렇다.

또한 에디 밴 헤일런은 전동드릴을 실제 연주에 쓴 걸로도 유명하고[#] 한때 폴 길버트와 드릴피킹 원조 논쟁병림픽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에디는 기타 픽업에 전동드릴을 작동하는 음만을 출력하여 사용했을 뿐(그러므로 피킹이 아니다) 폴 길버트가 드릴촉에 피크를 달아 피킹용 도구로 사용한 것과는 다르다. 그런데 이게 병림픽인 이유가, 앞에서 이야기했듯 에디는 "드릴로 연주"한게 아니라 픽업에 드릴의 모터의 작동음을 입력하는 방법으로 일렉트릭 기타라는 악기의 전기적 특성을 활용한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22] 기타의 전기적 특성을 활용한 연주를 하였다는 것만 봐도 에디의 일렉트릭 기타에 대한 이해력와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에디 밴 헤일런은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골초로 알려져 있다. 기타 헤드에 담배를 꼽아놓고 연주하는 모습이 그의 상징이 될 정도. 이후 판정을 받아 수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설암 수술을 받았다 하던들 금연에 실패하여 다시 담배를 피고 있어서, 이 때문에 데이빗 리 로스가 다시 밴 헤일런에 들어갈 때 에디가 금연하지 않으면 같이 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강수를 뒀다고 카더라.

이하 추가바람.


4 음악 샘플

백문이 불여일견.

Van Halen을 대표하는 최고의 히트곡, 1984년 발매 싱글 Jump.
헤비메탈의 상징인 일렉트릭 기타를 후방으로 빼고, Moog아날로그 신디사이저를 전면에 배치한 시도로 충격을 가져다준 곡이다.[23] 데이브는 라이브에서 이 곡을 할 때마다 진짜로 점프를 해야 했다.

Van Halen과 Sammy Hager가 함께하던 90년대의 명곡, 1995년 발매 싱글 Can't Stop Lovin' You.
발라드곡에 태핑주법을 배치한 에디 밴 헤일런의 센스와 새미 해거의 시원스러운 보컬이 돋보이는 곡이다.


레이 찰스의 1962년 곡 Can't Stop Loving You를 오마쥬한 곡이다.[24]
  1. 예를 들어, 밴 헤일런의 제3대 보컬인 게리 셰론이 소속된 밴드 익스트림의 내한 공연 소개지에는 "마약과 섹스"를 추구하는 밴드라고 쓰여 있어 기존의 밴 헤일런 팬들을 어이없게 만들기도 하였다. 하술되어있지만 에디가 골초긴 해도 마약과는 전혀 상관 없는 밴드이며 섹스를 주제로 한 노래도 몇 곡 없다(...).
  2. 근데 선생과 제자의 부적절한 관계를 다룬 노래는 있다. Hot For Teacher라고...하지만 이 곡 역시도 실제라기보다도 십대 남자 청소년들이 여교사에 품는 연애 감정이라는 클리셰를 다루는 내용으로, 뮤직비디오를 보면 알 수 있다. 근데 안경 낀 뮤비 주인공 이름이 왈도.
  3. 예전에는 밴 헤일런이 고안한 테크닉으로도 알려져 있기도 했지만, 라이트핸드 주법은 바이올린등의 현악기에서 간혹 사용되고 있었고 재즈 등에서도 이미 활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양념으로 사용되던 테크닉을 전면에 내세워 본격적인 하나의 주법으로 널리 알린 곡은 Eruption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4. 일본 바보들은 밴 헤일런의 기타연주를 지미 헨드릭스에 이은 제 2차 록기타의 혁명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참고로 제 3차 록기타의 혁명은 잉베이 말름스틴이라고.
  5. 결성 당시의 이름은 매머드. 당시엔 에디가 드럼이고 알렉스가 기타였으나 서로 포지션을 바꿨다.
  6. 클라리넷, 색소폰, 피아노 등 여러 악기를 다루었다.
  7. van은 네덜란드의 귀족에 붙이는 칭호van은 영어의 from과 대응하는 단어로 출신지를 나타내는 단어일 뿐이다
  8.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
  9. 비슷한 케이스의 인도네시아인 혼혈 네덜란드 록 뮤지션으로 음악과 비슷한 오페라틱 록을 하는 발렌시아가 있다.
  10. 밴 헤일런 형제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밴드 초기에 금전적으로도 어느 정도 도움을 줬다고.
  11.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뛰어난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가입 이전에도 솔로 하드록 보컬리스트로 활동하였으며, 솔로곡인 "I Can't Drive 55"도 유명하다.어니볼 기타 스트링 회사의 엔도서로, 기타 스트링 뒷면에 이름이 박혀있기도 하다. 이 시절 발매된 곡들의 리듬 기타 부분은 거의 새미 해거가 연주하기도 하였다.그리고 에디는 기타를 떠넘긴뒤 키보드만 줄창
  12. 유명한 팝 메탈 밴드인 익스트림의 보컬리스트.
  13. 허나 매우 유쾌한 사람으로 알려진 마이클 안소니는 사실 반 헤일런을 마치 자기 것인 듯 인터뷰하는 모습이 종종 나왔기에 비슷하게 처신한 새미 해이거와 같이 탈퇴당했다는 것이 정설 (출처 필요)
  14. 신성우의 히트곡 내일을 향해서가 이 곡을 표절한 걸로 의심받았다.
  15. 또한 밴드 초기에 데이브 리 로스의 집안에서 큰 지원을 했기 때문에 데이브가 자기 멋대로 운영하려는 경향이 있기도 했다.
  16. 헤이거 본인은 해고당했다고 호소했지만 밴 헤일런 형제는 그가 어디까지나 헤이거 본인의 의사로 탈퇴한거라고 주장한다.
  17. 이후 슈퍼스트랫이라는 개념에 한 몫 하게 된다.
  18. 훗날 이 기타는 EVH와 더불어 최고의 록 기타 모델로 평가받는 뮤직맨 AXIS의 베이스 모델이 된다.
  19. 뮤직맨 EVH를 변형한 기타
  20. 요새는 자기 사이트에서 직접 EVH 이름으로 판매도 하는 것 같다.
  21. 2000년대에는 라이센스가 끊겨서 6505+라는 모델명으로 생산됨.
  22. 드릴의 회전수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음높이를 조절했다고 한다(…).
  23. 사실 여기서 사용하는 신디사이저는 Oberheim사의 OB-8이다. 무그 신디사이저는 좀 소리가 강하긴 해도 아주 정통적인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소리가 나오지, 저런 소리는 안 나온다. 나올려면 80년대 초반부터 발매한 Roland의 JUPITER나 JUNO 같은 신디사이저에 해당된다.
  24. 해당 곡의 원곡자는 Don Gibson이다. 노래 중간에 "Hey Ray, what you said is true"라는 가사가 삽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