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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크 시티 FC No.27 | |
보얀 키르키치 페레스 (Bojan Krkić Perez) | |
국적 | 스페인 |
생년월일 | 1990년 8월 28일 |
출생 | 리뇰라 |
신체조건 | 170cm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유스팀 | FC 바르셀로나 (1999~2006) |
소속팀 | FC 바르셀로나 B (2006~2007) FC 바르셀로나 (2007~2011) AS 로마 (2011~2013) AC 밀란 (임대) (2012~2013) FC 바르셀로나 (2013~2014) AFC 아약스 (임대) (2013~2014) 스토크 시티 FC (2014~ ) |
국가대표 | 1경기 |
1 소개
하지만 다시 부활하기 시작하는 천재
웃대의 아이돌
FC 바르셀로나가 배출한 희대의 재능으로, 아무도 그의 성공을 의심치 않았던 세계 최고의 축구유망주였던 선수. 그 이후의 행보는 소위 '최소 메시'로 불렸던 기대치에는 근접도 하지 못하고 있어, 어째 시작은 위대했으나 갈수록 참담해져 간다.
물론 아직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이니만큼 아직 반전의 기회는 남아 있지만, 현재로선 안타까운 이름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보다 높은 선수. 물론 이 역시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이다. 그래도 현재 스토크 시티에서 부활의 날갯짓을 열심히 보여주고 있다.
2 최소 메시?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제일 유명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최소 메시라는 유망주 시절 그의 별명. 실제로 8살 때 바르셀로나에 처음 들어온 후 비공식 경기에서 통합 900골에 달하는 골을 기록했다는 말들이 전해진다.
최소 메시라는 별명이 생기게 된 계기는 그의 데뷔골과 데뷔 시기가 당시 이례적일 정도로 빠른 데뷔와 성공을 거둔 유망주 리오넬 메시보다도 더 빨랐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 그 메시 본인의 어시스트를 받아 메시가 보유했던 최연소 데뷔골의 기록을 경신하며 보얀은 최고의 유망주로 우뚝 서게된다.
그러나 프로데뷔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메시의 기록을 갱신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어느정도 과장되었단 말이 많다. 경기력과 잠재력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으며, 바르샤의 지원과 기대를 한몸에 받던 유망주 시절 메시의 위상과 비교했을 때 미흡한 점이 많았다고. 어쨌거나 기대를 한몸에 받고 데뷔한 프로 무대였지만 보얀은 고질적 약점이던 약한 피지컬로 고전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을 향한 클럽과 팬들의 기대치에 따라온 무게감도 버텨내질 못했다. 더군다나 보얀의 고향은 리뇰라인데, 이 곳은 FC 바르셀로나의 연고지인 카탈루냐의 행정구다. 즉 보얀은 FC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성골 유스였고, 이는 보얀에 대한 언론의 압박과 팬들의 기대치를 더욱 증폭시키게 만들었다. [2]
보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유리 멘탈이었는데 유로 2008 당시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이유로 바르셀로나에서 소집을 거부한 일이 있었는데, 후일 보얀의 회상에 따르면 당시 그가 겪는 심리적인 고통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고 거리를 걸을 수도 극장에 갈 수도 없을 정도의 중압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2016년 6월 인터뷰를 통해 당시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밝혔다.
이런 부담감이 원체 내성적이었던 보얀의 성격을 더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후일 로마로 이적했을 당시 기가 쎈 성격의 이탈리아 선수들 사이에서 조용하고 지나칠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던 보얀의 성격은 팀에 적응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더더욱 눈총을 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런 기대는 보얀의 성장세를 늦추었고 유망주 시절의 위상은 사그라들고 말았다. 프로무대에 걸맞는 성장세와 멘탈을 갖추지 못한 것은 보얀 본인의 실력 문제라 할 수 있으나, "최소 메시"라는 과장된 기대와 중압감이 어린 꿈나무였을 뿐이던 그에게 악영향을 끼친것은 부정할 수 없다.
현재 보얀은 유망주에게 지나친 기대와 관심이 선수를 망칠 수 있다의 표본으로 불리고 있는데, 실제로 스포츠 기사에서 '한국에 잘나가는 유망주가 있다더라~'라는 기사가 뜨기만 하면 등장하는 단골 레파토리가 "너무 과한 관심을 보내면 안된다, 보얀 보면 모르냐?"와 "잘한다고 어릴 때부터 혹사시키면 안된다, 이동국 보면 모르냐?(...)"일 정도.
3 클럽
3.1 FC 바르셀로나
리뇰라 출신의 보얀은 1999년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하였다. 각 연령별 라 마시아의 득점 기록을 일제히 경신하며 바르셀로나의 대형 유망주로 기대되었다. 특히 2006년 FC 바르셀로나 B로 승격하여 중앙공격수로 주전자리를 잡으며 22경기에서 10골과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 등과 함께 공격의 중심을 담당하여 활약을 하는 등 라 마시아에서 7년간 (1999년~2006년) 통산 900 득점 이상을 올리는 대단한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대활약으로 2007-08 시즌 불과 16세의 나이로 도스 산토스와 함께 1군팀 선수로 승격하며 프리 시즌 하츠 전에서 득점에 관련되는 활약을 보였다. 그가 프리메라 리가에 데뷔 한 것은 2007년 9월 16일 CA 오사수나 전이며, 이 당시 나이는 17세 18일이었다. 또한 9월 19일에 열린 올랭피크 리옹 전에서 17세 21일의 나이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데뷔하였다.
그리고 1개월 후 10월 20일, 비야레알 CF 전에서 리가 데뷔골을 기록하며 클럽의 최연소 득점 기록을 경신하였다. 이 데뷔골의 어시스트는 이전 기록 보유자인 리오넬 메시였다. 이 2007-08 시즌 꾸준히 경기에 출전해 31경기 10골을 올리는 등 1군팀에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17세에 데뷔한 라울 곤잘레스의 9골을 경신한 프리메라 리가의 최연소 신인 최다골 기록이었다.
또한, 데뷔 당시에는 스페인 노동법에 의해 18세 미만과 프로 계약을 맺을 수 없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와 프로 계약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날, 첼시 등 잉글랜드 클럽이 보얀을 영입하려고 했지만 본인은 바르셀로나를 떠날 생각은 없다고 천명하고 결국 18세가 된 직후 바르셀로나와 프로 계약을 맺었다.
2008-09 시즌부터 등번호를 이적한 잔루카 참브로타의 번호인 11번으로 변경하였고, 23경기 2골을 기록하였다. 2009-10 시즌 23경기 8골을 기록하였다. 2010-11 시즌부터 등번호를 이적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번호인 9번으로 변경하였고, 27경기 6골을 기록하였다.
2010년 12월 FC 바르셀로나와의 계약을 2015년까지 연장하였다. 바이아웃을 1억 유로로 설정하였다. 2011년 3월 헤타페 전에서 클럽 사상 최연소 리가 100경기 출전을 이루었다.
3.2 이적과 몰락
라리가 규정상 A팀과 B팀에서 로스터에 같이 등록될 수 없기 때문에 U20에 출전할 나이규정을 넘어서 백업요원으로 꾸준히 경기에 나서며 성장하지 못하게 되자 2011년 7월 루이스 엔리케가 이끄는 AS 로마에 1200 만 유로에 이적하였다.
또한 이 계약은 2012-13 시즌 종료 후 FC 바르셀로나가 1300만 유로를 내고 의무적으로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옵션은 AS 로마에 의해 거절이 가능하나 그 경우 이적료 총액이 4000만 유로로 증액된다. 일명 '바이백' 조항.
로마 이적 후 2011년 10월 1일, 아탈란타 BC 경기에서 다니엘레 데 로시의 어시스트로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하였다. 2011-12 시즌 로마에서 33경기 7골을 기록하였다. 별다른 활약이 없이 2012년 8월 29일 AC 밀란으로 1시즌 임대[3]되어 19경기 3골을 기록하였다.
참고로 어째선지 한국 인터넷에 이런 내용이 퍼져있다.
밀란의 아드리아노 갈리아니가 보얀 크르키치를 FC 바르셀로나에 사기 시도. 이건 봉이 김선달 저리가라할 재간이었다. 과거 바르셀로나 팬들에게 '최소 메시' 소리를 듣던 보얀은 바르셀로나의 두터운 공격진 뎁스를 뚫지 못하고, AS 로마로 이적했다. 그리고 젊은 선수에게 항상 그러듯이, 바르셀로나는 보얀에게 13M의 바이백 조항을 달아놓았다. 하지만 보얀은 부상이나 전술 문제, 생각보다 더딘 성장 등으로 AS로마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AC 밀란으로 임대 이적했다. 갈리아니는 보얀을 꽤 쏠쏠한 서브로 써먹었지만 구매하기에는 너무 비쌌다는게 문제였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에 'AS로마가 18M으로 팔려고 하는데 만일 바르셀로나가 바이백으로 보얀을 영입하면, AC밀란이 바르셀로나에서 15M에 구매하겠다'라는 운을 띄웠다. 그 과정에서 '바르셀로나는 수수료 2M을 얻고 AC 밀란은 그래도 3M 싸게 산다'는 서로서로 좋은 제안처럼 보였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는 그대로 낚였다. 일단 바이백으로 보얀을 구매한 바르셀로나는 어차피 다비드 비야도 자리 못잡는 상황에서 약속대로 보얀을 AC밀란에 팔려고 했으나, 왠걸. 갈리아니가 말을 싹 바꿔서 15M이 아니라 5M에 사겠다라는 역제안을 한 것이다. 순간 빡친 바르셀로나는 15M에서 다시 13M 그리고 다시 10M(...)으로 바꿨으나 갈리아니는 5M만 고집했고 결국 바르셀로나 보드진은 판을 접었다. 결국 없는 돈에 필요도 없는 보얀을 13M에 사온 바르셀로나는 다시 아약스로 임대보내야 했다. 그리고 갈리아니는 보얀을 5M에 영입할 수도 있었던 희대의 기회를 아쉽게 접어야 했는데, 5M에서 한 푼도 안 올린 것을 봐서는 아님 말고 식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간에 있던 AS로마만 다소 이득을 보았다.
하지만, 당연히 이는 헛소문에 불과하다. 애초에 갈리아니가 사기꾼도 협잡꾼도 아니고가끔 그런거 같을때도 있긴 하지만, 바르셀로나도 저런 허술한 수법에 당할만큼 멍청하지도 않다. 만약 정말로 저런 식이였다면 바르셀로나는 밀란과 문서로 제대로 된 사전 계약을 맺고 바이백 조항을 이행했을 것이다. 원래 바르셀로나와 로마와의 계약은 이렇다.
바르셀로나는 로마에 12M 유로의 이적료를 받고 보얀 키르크치의 이적시킨다. 여기에는, 2012-2013년 시즌이 끝나고 바르셀로나는 의무적으로 13M 유로를 주고 바이백 조항을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다만, 로마가 이를 막고 싶다면 28M 유로를 바르셀로나에 더 지불해야 한다.
</br>(Barcelona have confirmed they have agreed to sell forward Bojan Krkic to Roma for €12 million. The deal includes an obligatory buy-back clause that would see Barca re-sign the player at the end of the 2012-13 season for €13 million, but Roma can nullify the clause if they pay a further €28 million.)참고
한편 보얀이 밀란으로 임대가면서 새로 맺은 계약은 이렇다.
밀란은 25만 유로를 주고 로마로부터 보얀을 임대한다. 만약 밀란이 보얀을 영구적으로 영입하고 싶으면 15M 유로를 바르셀로나에 지불하면 된다.
</br>AC Milan have in fact paid 250.000 euros to obtain the Catalonia international on loan from AS Roma, and should pay 15 million euros to Barcelona to sign the player on permanent deal at the end of the season참고
때문에 15M을 주고 살지 안 살지는 애초에 밀란 맘이였다. 물론 보얀을 써 본 결과 밀란은 주전도 못차는 선수를 15M이나 주고 영입할 생각은 없었다. 심지어 위에 언급된 5M 유로도 보얀을 어떻게든 팔아치우고 싶었던 바르셀로나가 제안한 거지 갈리아니가 제안한게 아니다.5M마저도 밀란은 거절했다. #
이렇게 밀란과의 임대 계약이 끝나자 보얀은 당연히 로마로 되돌아 갔고 바르셀로나는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13M을 로마에 내주고 보얀을 다시 데려왔던 것 뿐.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일 뿐이지 갈리아니가 사기 친 건 아니다.
이렇게 2013년 7월 바르셀로나가 바이백을 통해서 재영입하였고, 복귀하자마자 7월 3일 AFC 아약스로 1시즌 임대되었다. 아약스에서 24경기 4골을 기록하였다.
3.3 스토크 시티
2014년 7월 22일 스토크 시티 FC로 완전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종전의 바이아웃 금액 1억 유로와는 비교조차 민망한 180만 유로이며, 계약기간은 4년간이다.
7월 29일 샬케 04와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8월 16일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에서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하였다. 헌데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한 후에도 그닥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2014년 10월 20일 스완지전에는 아예 후보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이에 보얀은 충격받아서 라커룸에서 축구화를 던지는 초조한 모습까지(...) 보였다고.
누가 알았겠나, 메시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했던 초특급 유망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11라운드 토트넘 원정에서 왕년의 향취가 느껴지는 30미터 돌파 후 중거리슛을 작렬시키며 EPL 데뷔골을 신고했고, 팀은 1-2로 승리하였다. 15라운드 아스날과의 홈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였는데, 한 골이 다소 억울한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아 취소되었다.
그래도 경기 내내 종횡무진 맹활약하며 팀의 3-2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12월 29일 웨스트 브롬과의 홈경기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당분간 결장하게 되었다.
1월 복귀하여 레스터 시티전 결승골을 기록했고, FA컵 로치데일과의 32강전에서도 골을 넣어 팀의 16강 진출을 견인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하며 그만 시즌아웃되고 말았다. 점차 폼을 끌어올리고 있던 본인에게도, 보얀이 골을 넣은 경기는 모두 승리했던 팀으로서도 청천벽력같은 일.
2015-16 시즌이 되어 9월 19일 레스터 시티와의 6라운드 경기에 9개월만에 선발 출장해 복귀골을 넣었다.
15R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경기에서 제르단 샤치리,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와 함께 스리톱으로 나서 오타멘디와 데미첼리스의 센터백 듀오를 농락하며 맹활약했다. 보얀은 멋진 힐 패스 등을 구사하며 많은 기회를 창출했으며 바르샤 시절 테크닉이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 팀은 아르나우토비치의 멀티골로 2-0 승리를 거뒀다.
17R 크리스탈 팰리스 와의 홈경기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75분 동점골을 넣었지만 팀은 88분 이청용에게 역전골을 내주고 그만 패하고 말았다.
18R 3무 3패로 경질설이 꾸준한 루이 반 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맞아 멤피스 데파이가 다이빙 헤딩으로 골키퍼에 패스한 걸 가로챈 동료선수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넣고 경기는 2:0 승리를 거두었다.
위의 활약등 스토크에서 기량을 펼치는 모습을 보이며 스토크 시티와 2020년 여름까지 재계약을 맺었다. [4] 보얀 본인도 기량을 펼치게 해 준 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인터뷰로 남겼다. 스토크를 패싱 위주의 매력축구로 만들어준 핵심 전력이였고, 보얀에게도 부활의 기미를 마련해준 곳이라 팀이나 선수에게나 좋은 재계약일 듯 하다.
1617시즌 팀이 끝도없이 삽질을 하고있을때 본인 자체도 특출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조앨런과 둘만 축구한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원래 패싱센스도 좋고, 현재 팀상황에서 앨런과 둘이 유일하게 사람이 받을수있는 패스를 주는 모양새라 그런 평가를 받는듯.
4 국가대표
한국에서 열린 2007년 FIFA U-17 월드컵 때 스페인 U-17 대표팀 멤버로 참가했다. 당시 스페인은 준우승했다.
아버지가 세르비아 출신으로 세르비아 대표도 가능하지만 그는 태어난 나라 스페인을 선택하였다. 2008년 9월 10일 남아공 월드컵 예선 아르메니아와의 경기에서 A대표로 데뷔하였고, 25분 출전했다.
2016년에 세르비아 축구 협회는 보얀의 세르비아 대표팀 발탁 가능 여부를 FIFA에 타진했다.
피파는 성인 A대표팀 공식 경기[5] 출전 선수의 국적 변경을 원칙적으로 불허하고 있으나, 보얀의 경우 A 대표팀 공식 경기 출전이 8년전에 단 1경기, 그것도 25분에 불과하다. 만약 국적 변경을 불허한다면 지나치게 가혹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5 플레이스타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침투로 수비진을 무너뜨리고 득점을 하는 스타일이다. 스토크 시티에서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나 윙 포워드로 활약하고 있다.
6 여담
세르비아어로 발음하면 보얀 크르키치(bǒjan kr̩̂kit͡ɕ)이며 스페인어로는 보얀 키르키치 페레스(boʝaŋ ˈkirkit͡ʃ ˈpeɾeθ)로 발음한다. 이름이 똑같은 아버지 보얀 키르키치는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에서 뛰었던 세르비아 축구 선수로 현재는 FC 바르셀로나의 스카우트이며, 어머니는 카탈루냐 출신의 간호사로 알려져 있다.
보얀의 최연소 데뷔골은 원래 그 기록을 보유한 전임자이던 리오넬 메시 본인이 어시스트해준 것인데, 2011년 발굴된 가계보에 따르면 두 사람은 먼 친척 관계라고 한다. 위 사진을 보면 메시의 고조부와 보얀의 고조부가 친형제(=십촌)임을 알 수 있다. 당연하게도, 아주 먼 친척관계이고 사실상 남이니만큼 당사자들은 모르고 있었다고. 보얀이 바르셀로나 생활 내내 "최소 메시"라는 중압감에 시달리던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묘한 인연.
웃긴대학에서 상당히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이유는 동명의 닉네임을 쓰는 유저가 한 유저를 2년간 미친듯이 쫓아다니며 쪽지로 계속 똑같은 말만 보내는 스토킹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 깨알같은 본인 댓글에 폭주하는 추천수
- ↑ 하필 별명이 최소메시였기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보얀이 저 소리를 들을 당시 메시는 이미 훌륭한 선수이지만 지금처럼 펠레, 마라도나에 비교되는 역대급 선수는 아니었고, 찾아보면 프레디 아두처럼 이름도 생소한 리그와 클럽을 전전하는 케이스도 있기에 폭망의 대명사라는 건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
- ↑ 물론 카탈루냐내에서 바르셀로나의 유스가 많이 발굴 되지만, 대표적인 얼굴마담 유망주인 "공격수"는 요원했다.
- ↑ 이건 바르셀로나가 임대를 해줬다는 것이 아니라 로마가 AC 밀란에게 임대를 해준 것이다.
- ↑ 당시 보얀의 에이전트는 카를레스 푸욜 이었고, 푸욜이 맺은 첫 번째 대형 계약이라고 한다.
- ↑ 친선 경기는 제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