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교회

(부활 기념 성당에서 넘어옴)

한국어 : 주님 무덤 성당(가톨릭) / 부활 기념 성당(정교회)
영어 : Basilica of the Holy Sepulchre(가톨릭) / Church of the Resurrection(정교회)
고대 그리스어 : Ναός της Αναστάσεως
아랍어 : كنيسة القيامة
히브리어 : כנסיית הקבר
라틴어 : Basilica Sancti Sepulcri Jesu Christi
에스파냐어 : Basílica del Santo Sepulcro


외부 전경.

1 소개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성당으로, 가톨릭·정교회·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시리아 정교회·콥트 정교회·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그리스도교 6개 종파의 성지이다. 예수 그리스도십자가형을 당하고 무덤에 매장되었다가 3일만에 부활했다는 종교적 사건의 무대이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이래 오늘날까지 1,600년이 넘도록 세계 각지의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 성지순례의 단골코스가 되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장소라는 세계구급 명성에 걸맞지 않게 낡은데다가 주변은 이슬람 시장과 모스크로 둘러싸여 부지도 협소한 상태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수제자의 무덤과 비교하면 초라하게 보일 정도(…)인데, 이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예루살렘을 놓고 공방전을 반복하면서 예루살렘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성묘 교회의 운명도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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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길 두고 각 그리스도교계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다가 1852년 당시 예루살렘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에서 각 그리스도교 종파 구역으로 이 곳을 나뉘어서 맡게 했고 지금도 그 구역을 서로 맡고 있는데 덕분에 어느 부분이 낡아 고치려고 해도 다른 종파 구역을 넘어서기에 제대로 고치지도 못하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오스만판 이이제이[1]

이게 뭔 말인가 하면 가톨릭은 대문을 책임지고 창문은 시리아 정교회가, 창문 난간은 그리스 정교회가, 이렇게 나뉘서 관리하다보니 창문이 낡아서 고치려고 해도 난간에 시리아 정교회인들이 사다리를 두는 걸 그리스 정교회 측에서 거부한다는 거다.(...) 그야말로 성지에서 각 그리스도교 종파의 분열과 갈등을 실감할 수 있다. 기 들릴이 그린 만화 "굿모닝 예루살렘"을 보면 이스라엘에서 이 건물 안에서도 각 종파들이 뒤엉켜 싸움질하는 게 나와 작가 자신이 '내가 무신론자라서 다행이다'라며 비꼰다.

이곳 외에 예수가 죽어서 묻힌 장소가 다른 곳이라는 주장도 있다. 1883년 영국의 찰스 고든[2]이란 군인이 예루살렘 성벽 바깥의 정원 무덤을 발굴했는데 이곳이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무덤에 대한 묘사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 개신교 측에서는 성묘 교회의 가치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이 정원 무덤이 좀더 예수와 연관된 곳이라고 보고 있다. 정원 무덤의 관리는 영국 성공회 측에서 맡고 있다. 물론 성공회 측에서도 예수의 부활을 믿으며 관련 장소에 '예수님은 여기에 묻히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라는 문구를 새겨두었다고.

2 역사

2.1 창건

2.2 수난

2.3 재건

2.4 십자군 이후

3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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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정면과 중앙부

사진설명
정면(Facade)
성묘 교회로 들어가는 입구로, 앞에는 작은 공터가 있다. 일반적인 성당의 정면에는 넓은 광장이 있는 것처럼 창건 당시에는 성묘 교회도 지금보다 공터가 더 넓었지만, 7세기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제2대 칼리파 우마르가 교회 앞 광장에서 처음으로 알라에게 예배드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10세기에 들어와 무슬림들이 그 자리에 모스크를 지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협소한 공간이 되고 말았다.
교회 정면의 1층에는 아치문 2개가, 2층에는 아치창 2개가 있는데 1층의 아치문 중 오른쪽에 있는 문은 십자군 시대 군주들의 무덤이 있는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지만 벽으로 폐쇄되었으며, 왼쪽에 있는 문은 교회를 출입할 때 사용하는 정문이다. 자세히 보면 1층의 아치가 2층의 아치보다 끝이 약간 뾰족하게 올라간 첨두식으로 되어 있다. 2층 오른쪽 아치창 앞에는 나무 사다리 하나가 외벽에 걸쳐져 있는데, 이 사다리를 치우자는 종파간의 합의가 없었기에 1854년 이래 지금까지 150년 넘도록 그 자리를 지켜 이른바 '부동의 사다리(Immovable Ladder)'라 불린다.[3]
교회의 정면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종탑이 있다. 십자군 시절인 1160년에 세워진 이 종탑은 1545년에 지진으로 붕괴되었다가 재건하면서 돔 지붕이 사각뿔 지붕으로 바뀌고 높이도 낮아졌다.
성유석(聖油石, The Stone of Anointing)/도유석(塗油石, The Stone of Unction)
정면의 현관으로 들어가면 바닥에 닳아서 윤이 나는 붉은색 대리석 하나가 깔려 있는데, 이 판석은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이곳에 눕히고 향유를 바르며 염한 성유석으로, 성유석의 뒷배경을 장식하는 모자이크 성화에도 그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 성유석 네 귀퉁이에는 4개의 촛대가 세워져 있으며, 성유석 윗부분을 가로질러 걸려 있는 8개의 등잔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콥트 정교회·정교회·가톨릭에서 봉헌한 것이다. 사실 이 돌 위에서 예수의 시신을 염했다는 전승은 십자군 전쟁 이후부터 알려진 것으로, 오늘날 볼 수 있는 성유석은 1810년에 깔았다. 그럼에도 종교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에 성직자들이 성유석 앞에서 예배를 드리며 뿌리는 성유를 손수건이나 천에 적셔 가져가려는 순례자들로 항상 붐빈다.
골고타(Golgotha)/갈바리(Calvary)
예루살렘 성벽 바깥에 있는 언덕으로, 예수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된 곳이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지만 과거부터 성묘 교회가 골고타 언덕 위에 세워졌다는 전승이 내려와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름은 그리스어 '크라니온(Κρανίου)'에서 라틴어 '칼바리오(Calvario)'로, 영어 '캘버리(Calvary)'로 변화했는데[4] 모두 해골이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언덕의 지형이 해골의 모양과 비슷했거나, 그곳에 공동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정교회가 관할하는 십자가 못 제대가 있는데, 그 아래에 있는 구멍을 통해 십자가가 세워졌던 홈을 볼 수 있다.
가톨리콘(The Catholicon)

3.2 로툰다와 에디큘

3.3 아르메니아식 건물군

  1. 사실 이이제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게, 그리스도교 종파들의 이 교회 소유권 분쟁은 17세기 오스만 제국을 둘러본 프랑스 대사도 참 난감한 문제라고 우려할 정도였다. 정교회에게 넘겨주면 가톨릭 나라들이 이걸 빌미로 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고 했으니...
  2. 1833~1885. 그는 오래가지 않아 수단 공화국 총독으로 재임하다가 현지 저항군에게 참살당한다. 자세한 건 파쇼다 사건 참고.
  3. 다만 단 한번도 옮겨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시도사건 1달 후에 이 사다리를 치우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저지당했고, 1997년에 사다리가 사라졌다가 몇 주 뒤에 되돌아온 사건도 있었다. 2009년에도 종탑의 비계를 치우기 위해 잠깐 사용된 적이 있다.(..)사다리계의 장수만세
  4. 이것이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갈보리'로 음역된다. 한국 가톨릭은 현재는 아람어의 골고타라는 음역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만 과거에는 라틴어를 따라 '갈바리오' 내지는 '갈바리아'라는 음역을 사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