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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브랜든 로이(Brandon Dawayne Roy) |
생년월일 | 1984년 6월 23일생 |
출신학교 | 워싱턴 대학교 |
신장 | 196.2cm(6' 5.25")[1] |
체중 | 93.8kg(207 lbs)[2] |
포지션 | 슈팅가드 |
드래프트 | 2006년 드래프트 1라운드 6순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지명 |
소속팀 |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2006년~2011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2012년~2013년) |
등번호 | 7번(포틀랜드) 3번(미네소타) |
수상내역 | 올해의 신인상 (2007) NBA All-Star 3회 (2008-2010) All-NBA Second Team 1회 (2009) All-NBA Third Team 1회 (2010) NBA All-Rookie First Team (2007) |
2007년 NBA 올해의 신인상 | |||||
크리스 폴 | → | 브랜든 로이 | → | 케빈 듀란트 |
1 개요
NBA의 전 농구선수. 2000년대 후반 뛰어난 재능을 과시하며 포틀랜드의 재흥을 이끌 에이스로 보였으나 무릎 때문에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망가진 비운의 스타. 한번 은퇴했다가 복귀를 선언했지만 한창때의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2 플레이스타일
운동능력 및 신체조건은 적절한 클래스에는 도달한 수준이었지만 여느 슈퍼스타급 선수들처럼 폭발적인 정도는 아니였다. 그러나 4년동안 대학리그에서 뛰어 NBA 데뷔때부터 적절한 경험 및 볼핸들링을 갖추고 있었고, 빠르지는 않아도 세련된 스텝에서 나오는 돌파와 점프슛 양쪽 모두 구사가능했다. 여기에 좋은 코트비전과 높은 BQ, 이타적인 마인드로 포인트가드 롤까지 소화가능한 만능형 타입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승부처에서 버프가 걸리는 강심장이라 수많은 클러치샷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휴스턴 로켓츠전에서 0.8초 남긴 상황에서 장거리포를 쏴 버저 비터를 만들며 승리해 직전에 골을 넣은 야오밍을 엿먹인 장면이 유명. 국내팬들은 로이의 다재다능함과 클러치능력을 보며 슬램덩크의 윤대협같다고 해서 '로대협' 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재능은 충만했지만 부상때문에 만개하지 못한 수많은 선수 중 하나로, 유리몸으로 불리는 앤퍼니 하더웨이, 그랜트 힐, 트레이시 맥그레디 등보다 훨씬 더 추락이 빨랐다.
3 커리어
3.1 루키 시즌
로이는 워싱턴주 시애틀 태생으로 2002년 워싱턴 대학교에 입학한다. 워싱턴 허스키스 소속으로 대학무대에서 선수로 뛰게 된 로이는 일찍 NBA에 입단하는 대신 4년동안 대학리그에서 활동하면서 드래프트에서 가치를 높이는 길을 선택했다. 4학년때 Pac-10 올해의 선수상까지 차지하고 로이가 사용했던 등번호 3번은 허스키스에서 영구결번된다.
드래프트 당시 로이는 이미 NBA 무대에서 뛸 준비를 갖춘 완성형 선수라 즉전력으로 활용할 만 하지만 더이상 큰 성장을 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6번으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 지명된다. 그러나 직후 같은 루키인 랜디 포이와 트레이드되어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한다.
포틀랜드는 2000년대 초반 사고만 치던 문제아 선수들 투성이라 'Jail Blazers' 오명을 쓴 이후 암흑기에 빠졌고, 05-06 시즌에는 21승 61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래서 혁신이 필요했던 포틀랜드는 2006년 드래프트에서 우선 시카고 불스에게 자신들의 4번픽 타이러스 토마스를 주면서 2번픽 라마커스 알드리지를 데려온다. 그다음 세바스찬 텔페어와 테오 래틀리프를 보스턴 셀틱스의 7번픽 랜디 포이와 교환한 다음, 포이와 로이를 트레이드하는 과감한 행보를 취한다.
로이는 고향팀인 시애틀 슈퍼소닉스와 데뷔전을 치렀는데 20득점을 하며 두각을 나타낸다. 이후 평균 16.8득점 4.4 리바운드 4.0 어시스트를 찍으며 부상으로 25경기에 결장한 것 말고는 흠잡을데 없는 루키시즌을 보내고 128명중 127명의 지지를 받으며 신인상을 수상한다. 당시 포틀랜드의 에이스는 잭 랜돌프였는데 랜돌프는 미성숙한 멘탈과 열의없는 수비, 이기적인 마인드 등으로 지탄받고 있었는데 그 흔한 문신하나 없을 정도였던 모범생 스타 로이의 등장으로 완전히 관심을 잃었다. 랜돌프가 뉴욕 닉스로 떠나면서 로이는 포틀랜드의 중심이 된다.
3.2 올스타 등극
랜돌프가 없어진 07-08 시즌 포틀랜드에 합류한 선수중에 가장 존재감이 컸던건 드래프트 1번인 그렉 오든이었다. 신인왕 로이와 그의 친구 알드리지에 역대급 센터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은 오든이 합류하게 되니 포틀랜드의 앞날은 매우 밝아보였지만...오든은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마이크로프랙쳐 수술 판정을 받으며 시즌 아웃, 불안한 예감을 선사했다. 그래도 로이는 공수 양면으로 한스텝 올라간 모습을 보여주며 데뷔 2년만에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기염을 토했고, 포틀랜드는 한때 13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팀 성적은 2년 전 21승에서 41승으로 거의 두배 가량 상승.
다음 시즌인 08-09 시즌에도 커리어 하이 기록인 52득점을 하거나 포틀랜드의 프랜차이즈 기록인 10스틸을 하는 등 더욱 좋은 활약을 하며 다시 올스타가 되었으며 시즌 평균 22.4득점 4.7 리바운드 5.1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올 NBA 세컨드 팀에 들어간다. 리그 데뷔 3년만에 코비 브라이언트, 드웨인 웨이드의 뒤를 잇는 엘리트 슈팅 가드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포틀랜드는 54승 28패로 승승장구하며 오랜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다. 야오밍이 이끄는 휴스턴 로켓츠와 만나 2승 4패로 무너지긴 했지만 아무튼 코어인 로이와 알드리지가 젊은 선수들이라 여전히 미래를 기대해볼만한 팀이었다.
09-10 시즌 전 로이는 포틀랜드와 맥시멈 계약을 맺고 여전히 코트에서 날아다녔으며, 3연속 올스타전 출진을 기록했다. 그러나 1월 밀워키 벅스전에서 햄스트링 부상, 4월에는 무릎부상을 당하며 뭔가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이 시즌은 로이뿐만 아니라 선수단 전체가 부상으로 신음했지만. 로이는 피닉스 선즈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복귀했지만 팀을 2라운드로 이끌지는 못했다.
3.3 급추락
10-11 시즌 초반 로이의 플레이에 이상징후가 발견되었다. 대학시절부터 그를 고생시킨 무릎문제가 폭발, 다시는 올스타급 플레이를 보여줄 수 없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양 무릎 연골이 완전히 닳아버렸다고. 담당의사는 세개의 선택지를 제시했고, 이렇게 해도 1~2년 정도밖에 뛸 수 없다고 덧붙였다.
A. 연습시간을 거의 못가지게 제한하기
B. 65~75경기 정도를 벤치에서 출장하게 하기
C. 몸이 좋아지길 기도하기(…)
작년까지만해도 All-NBA 팀에 들었던 스타가 이렇게 빨리 몰락한다는 말을 들은 팬들은 충격을 먹었고, 로이는 2월 이후 벤치멤버로 나서며 커리어 로우 기록을 찍는다. 팀의 코어를 라마커스 알드리지로 바꾼 포틀랜드는 알드리지와 니콜라스 바툼, 웨슬리 매튜스, 안드레 밀러 라인업에 제랄드 월라스를 추가, 48승 34패로 가까스로 플레이오프 열차에 탑승한다. 상대는 3번 시드인 댈러스 매버릭스.
3.4 마지막 불꽃
더크 노비츠키가 이끄는 댈러스는 강했다. 댈러스는 포틀랜드를 홈에서 두경기 모두 격파했고, 로이는 1경기에서 7개의 슛 중 6개를 놓치며 극도로 부진했고 2경기에서는 아예 8분 정도밖에 뛰지 못했다. 그러나 원정에서 2패하고 돌아온 포틀랜드는 홈에서 3차전을 잡아내며 한숨 돌렸고, 로이는 16득점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선전했다.
그리고 4월 23일에 열린 4차전, 양팀의 슛감이 영 좋지 못했고 하프타임이 끝났을 때 35-37로 댈러스가 살짝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3쿼터에서 포틀랜드의 슛이 10분 내내 모조리 빗나간 사이 댈러스는 이때다 하고 포틀랜드의 골대를 공략했고, 1분 남은 시점에서 44-67로 23점까지 점수차를 벌려버렸다. 포틀랜드의 팬들은 좌절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로즈 가든에서 대역전극이 시작되었다.
3쿼터 막판 알드리지의 앨리웁 레이업과 로이의 3점 슛으로 추격의 발판이 마련되었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포틀랜드는 4쿼터 3분동안 13점차까지 따라간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전성기로 돌아간듯한 로이의 슛들은 모조리 그물을 갈랐으며 날카로운 패스로 어시스트도 쌓아올렸다. 댈러스가 4점 앞서던 마지막 1분, 3점 라인 밖에서 쏜 로이의 슛이 매리언의 파울을 얻어내면서 명중하고 로이는 앤드원 자유투까지 성공한다. 로이는 거기에 39초 남기고 뱅크슛까지 성공시키며 포틀랜드의 역전을 이끌었고 제이슨 테리의 마지막 3점슛이 림을 외면하면서 버저가 울렸다.
최종스코어는 84-82로 포틀랜드의 승리. 팀원들은 4쿼터에서만 18득점 4어시스트를 올린 로이를 얼싸안았으며 로이는 인터뷰에서 "다시는 이런 경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라며 울먹였다. 이후 5차전과 6차전에서 승리한 댈러스는 LA 레이커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마이애미 히트를 차례로 격파하며 창단 이후 최초의 우승을 차지하나 이날의 영웅은 브랜든 로이였다.
3.5 최후
댈러스와 포틀랜드의 2011년 플레이오프를 본 팬들은 '로이가 앞으로도 활약할 수 있을지도?' 라며 일말의 기대를 가졌으나 이미 만신창이가 된 로이의 무릎은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였고 로이는 결국 은퇴를 선언한다. 그러고도 농구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던 로이는 12-13 시즌에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2년 계약을 맺지만 복귀한다고 맛이 간 무릎이 되돌아오는건 아니라 5게임밖에 못뛰고 방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