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와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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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 Wilder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국 영화감독. 헐리우드 황금기 시절 전설적인 명감독[1]중 하나.

1 커리어

1906년 6월 22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수샤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엔 비엔나에서 학교를 다녔고 곧 기자가 되었다.
20대때 베를린으로 이사하여 타블로이드 잡지에서 일을 했는데, 이때 담당이 영화쪽이였고, 이런 인연으로 각본가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30년대 나치당이 집권하고, 유대인이였던 그는 1933년 곧장 헐리우드로 떠나 미국에서 각본가로 일을 하게되고 34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때 원래 독일어로 새뮤엘 빌더였던 이름도 아예 빌리 와일더(빌리는 애칭)로 바꿔버린다. 미국영화사에서 역대급 각본가[2]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그가 이민자라는 점에서 이미 흠좀무.

한동안 당시 헐리우드 시스템안에서 여러 작품의 각본을 써오다 1939년 에른스트 루비치의 《니노치카》로 일약 스타 각본가로 떠오르게 된다. 이 영화로 첫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고, 이후 하워드 혹스의 《교수와 미녀》등 여러 히트작들의 써가며 자신의 주가를 올리며 마침내 1942년 《메이저와 마이너》라는 코미디 영화로 첫 헐리우드 감독 데뷔를 한다.

그리고 1944년에 개봉된 차기작이 바로 느와르 장르 불후의 명작인 《이중배상》이다. 영화평론가들에게 느와르의 특징적인 연출의 선구자라고 추앙받은 영화로, 와일더 감독이 자주 사용하게 되는 나레이션도 여기서 빛을 발한다. 각본가 출신 감독답게 각본도 직접 썼으며[3], 살인자를 주인공으로 살인수법을 집요하게 꼼꼼히 연출한 스토리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다. 또다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는 것은 덤. 알프레드 히치콕이 이 영화를 보고 "《이중배상》이후 영화라는 미디엄에서 가장 중요한 두 단어는 '빌리'와 '와일더'이다"라고 말한 것도 유명하다.

1945년엔 당시 프로덕션 코드에 반하는 알코올 중독에 관한 이야기인 《잃어버린 주말》을 감독하여 아카데미 감독상과 각본상을 받는다. 심지어 초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4] 하지만 《이중배상》이 그 전해에 못받았기에 표를 와일더에게 몰아줬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1950년, 역대 최고의 영화중 하나로 칭송받는 《선셋 대로》를 각본/감독한다. 헐리우드를 느와르 스타일로 신랄하게 비꼬는 이 영화는 잊혀져 가는 무성시대 여배우의 정신이 붕괴되는 장면과 돈에 타락할대로 타락해버린 헐리우드를 끝없는 와일더 스타일 나레이션으로 꼬집는게 일품이다. 이 영화에 몰락해버린 무성시대 배우 카메오로 버스터 키튼이 등장하는 것도 유명하다. 아카데미에서 11부문 후보에 오르고 3개(각본상, 음악상-드라마/코미디, 미술상-흑백영화)를 수상한다. 참고로 이때 여주인공을 분한 글로리아 스완슨과 《이브에 관한 모든 것》의 베티 데이비스가 여우주연상을 놓고 격돌했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신인배우(주디 헐리데이)가 상을 타버렸다고 말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다른 년도면 몰라도 《선셋 대로》의 글로리아 스완슨과 《이브에 관한 모든 것》의 베티 데이비스는 1950년뿐만 아니라 영화사상 여배우가 보여준 역대급 연기였다는 평이 아직도 많은지라...

1951년엔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언론기레기 풍자 영화 《비장의 술수》를 감독했고, 1953년엔 전쟁 코미디 《제 17 수용소》를 감독해서 장르의 발을 넓힌다. 1954년엔 오드리 헵번 주연의 《사브리나》를, 1955년엔 마릴린 먼로하면 생각나는 장면으로 유명한 《7년 만의 외출》을 감독했고, 1957년엔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정부》를 감독했다.

1959년엔 또다시 영화사에 길이남을 일을 해내는데 바로 마릴린 먼로 주연의 뜨거운 것이 좋아를 감독한 것이다. 이 영화가 대단한 점이, 헐리우드 자체 검열 시스템인 프로덕션 코드를 아예 무시해버리고 개봉하고 히트하여 1934년부터 헐리우드 영화를 심하게 검열해온 시스템을 몰락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이 자체 검열을 무시한 이유가 당시엔 용납할 수 없는 소재들을 영화의 중심으로 부각시켰기에 도저히 검열을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일단 남자 주인공 두명은 극중 대부분을 여장을 한데다가, 동성애를 (코미디적으로 승화시키긴 하지만) 노골적으로 연출하기까지 한다. 지금보면 그냥 웃긴 영화지만 당시엔 보수적인 사람들은 거품물고 쓰러질 정도의 수위. 그리고 그것 뿐만이 아니라 헐리우드 최고의 코미디 영화를 고를 때 언제나 순위권에 오르는 작품이며, 실제로 미국 영화 연구소에서 선정한 최고의 코미디 영화로 이 작품이 뽑혔다.

1960년엔 불륜이란 요소를 더 심도있게 관찰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를 감독하여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혼자서 쓸어담는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 6번밖에 안나온 기록이며, 빌리 와일더가 처음으로 달성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가 작품상을 타기 전까지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마지막 흑백영화로 기억되었다.

1960년대 말까지 전성기를 이어가지만 [5] 1970년대부터 새로이 바뀐 흐름에 쫓아가지 못하는지 작품 수도 줄어들고 기복이 심해지다가 1981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전성기의 폼을 되찾지 못하게된다. 그나마 78년작인 《페도라》는 2013년 칸 영화제에서 복원판으로 재상영되는 등 재평가가 되는 분위기이다.

2 스타일

각본가 출신답게 각본에 굉장히 힘을 많이 실었다. 일단 감독한 대부분의 영화의 각본을 직접 썼고, 스토리를 전하는데 각본을 가장 중요시 여겼기에 현란한 카메라워크를 굉장히 싫어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감독한 작품들의 촬영 스타일은 굉장히 담백하여 대사나 독백들이 귀에 쏙쏙 들어오게 된다. 어찌보면 정말 전형적인 헐리우드 황금기 시절 감독. 그래서 그런지 옛영화에 거부감이 없으면 굉장히 빠져들기 쉽다. 때문에 고전 영화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 입문용으로 빌리 와일더 영화를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쓴 각본의 스토리는 전혀 전형적이지 않았다. 감독 데뷔부터 적어도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까지의 그의 커리어는 헐리우드 자체 검열과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으며, 실제로 이런 센세이셔널한 스토리로 당시 꽤 말이 많은 감독이였다. 헐리우드 내에서 자극적인 표현방식의 허용범위를 지속적으로 넓힌 감독으로 가장 유명하다.

인생의 굴곡이 많았기 때문에 [6] 자세히 뜯어보면 비관적인 시선으로 가득차 있다. 이를 반영하듯, 초창기엔 필름 느와르 영화들이 많았고 [7] 코미디로 넘어가서도 꽤나 강한 블랙 유머를 기조로 하고 있다. 설정들을 뜯어보면 꽤나 아슬아슬한 내용이 많을 정도.

배우들에게서 좋은 연기를 얻어내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중 하나로 군림하던 바버라 스탠윅을 《이중배상》으로 영화사상 가장 치명적인 팜므파탈로 만들어줬고, 글로리아 스완슨이나, 윌리엄 홀든의 연기도 그의 지도아래서 나왔다. 그가 감독한 배우들이 오스카 후보로 오른 횟수가 자그마치 14번. 근데 마릴린 먼로를 그토록이나 싫어했다. 하지만 마릴린 먼로가 가장 강렬하게 나온 작품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빌리 와일더의 작품들.

3 감독 필모그래피

연도제목노트
1934Mauvaise Graine프랑스 영화
1942메이저와 마이너헐리우드 감독데뷔
19435개의 무덤
1944이중배상아카데미 감독상, 각본상 후보
1945잃어버린 주말아카데미 감독상, 각본상 수상
1945Death Mills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민간인을 겨냥한 프로파간다 영화
1948황제원무곡
1948외교 문제아카데미 각본상 후보
1950선셋 대로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1951비장의 술수아카데미 각본상 후보
1953제 17 수용소아카데미 감독상 후보
1954사브리나아카데미 감독상, 각본상 후보
19557년 만의 외출
1957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
1957하오의 연정
1957정부아카데미 감독상 후보
1959뜨거운 것이 좋아아카데미 감독상, 각색상 후보
1960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수상
1961원 투 쓰리
1963일마 라 두스
1964키스미 스튜핏
1966포츈 쿠키아카데미 각본상 후보
1970셜록 홈즈의 미공개 파일
1972아반티!
1974특종기사
1978페도라
1981버디 버디

4 명언

  • 배우가 문으로 들어오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면 하나의 시츄에이션이 된다.
  • 영화의 80%는 각본으로 완성된다.
  • 나에겐 십계명이 있다. 1부터 9계명은 "너는 관객들을 지루하게 하지 말지어다"고 10계명은 "너는 최종편집권한을 가질지어다"이다.
  • 그냥 제가 보고 싶은 영화들만 만들었어요. 참 쉽죠?
  • 오스트리아인들은 베토벤을 오스트리아인으로 만들고 히틀러를 독일인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 남한테 진실을 말하거면 재밌게 하라. 아니면 살해당할 것이다.
  •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마릴린 먼로와 두번째 작업을 마친 후) 제 정신과의사가 이딴 미친 짓을 또 하기엔 제가 너무 늙었고 돈도 많다고 하더군요.
  • 감독은 경찰관, 조산사, 정신분석가, 아첨꾼, 개새끼, 이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 관객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 관객 한명이 멍청이 일 수도 있지만, 멍청이 관객 천명이 극장에 모이면 천재가 된다.
  • 난 개에게도 연기를 시킬 수는 있지만, 애들은 잘 모르겠다.
  •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선 꿈을 꾸는 것이 필요하다.
  1. 마틴 스코세이지와 함께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두번째로 많이 오른 사람이다(8번). 1위는 벤허로 유명한 윌리엄 와일러
  2.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른 횟수가 12번이다. 우디 앨런이 1997년 깨버리기 전까지 최고였었다.
  3. 레이먼드 챈들러와 공동 각본
  4. 다만 완전히 동치시킬수 없는게 초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이름도 달랐고, 심지어 11명과 공동 수상이였다. 당시 공동 수상작에는 로마, 무방비 도시밀회가 있었다.
  5.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이후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작 코미디들이 많았다.
  6. 상술했듯이 유대인이였기 때문에 강제로 고국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이주해야 했고, 남아있던 모친과 조모, 조부는 유대인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몰살당했다고 한다. 훗날 후배인 할 애슈비해롤드와 모드를 보고 매우 좋아하고 애슈비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는데, (출처는 카메론 크로와의 대담 'Conversations with Wilder'.) 해롤드와 모드를 보면 알겠지만 작중 할머니 모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그려진다.
  7. 특히 비장의 술수 같은 경우엔 와일더식 비관주의의 끝판왕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