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

이름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본명노마 진 모턴슨 (Norma Jeane Mortenson)
노마 진 베이커 (Norma Jeane Baker)
생몰년1926년 6월 1일1962년 8월 5일 (36세)
배우자짐 도허티 (1942–1946)
조 디마지오 (1954–1955)
아서 밀러 (1956–1961)
서명
세기의 섹스 심벌(Sex Symbol), 금발의 상징(Blonde Bombshells)

섹시함의 대명사이자 20세기 대중문화 예술의 센세이셔널한 아이콘

미국 영화 협회(AFI) 선정 가장 위대한 여배우 6위[1]

할리우드 최고의 섹시 스타로 불우한 환경에도 최고의 스타가 되었지만 또한 비극적인 영화 같은 삶을 살다간 여인[2]

1 개요

한국6.25 전쟁미군 부대를 방문한 마릴린 먼로, 1954년


정신장애가 있는 모친의 사생아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고아원과 양부모 집에서 양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등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힘든 환경에서 도피하고자 같은 학교 연극반이었던 제임스 도허티와 16세 때 결혼했지만, 이런 결혼이 늘 그렇듯이 4년 만에 헤어졌다. 먼로를 맡아 기르던 위탁가정의 부모가 멀리 이사를 가는데, 법적인 문제로 먼로를 데려갈 수 없고 그렇다고 아직 어린 소녀를 그냥 내버릴 수도 없어 후다닥 결혼을 시킨 거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방위산업체에서 페인트 분무기를 뿌리는 일을 하다가 부대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모델이 되었다. 달력의 누드 모델로 일한 것이 계기가 되어[3] 1947년 <쇼킹 미스 필그림>이라는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여 스크린에 데뷔한다.

그 후로도 단역을 전전하다가 1950년에 <아스팔트 정글(The Asphalt Jungle)>, <이브에 관한 모든 것(All About Eve)>에 출연하여 배우로서의 자질을 인정받는다. 53년에 <나이아가라>의 주연을 맡아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되는데 20세기 폭스사는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가는 먼로 워크를 중심으로 화려한 선전을 전개, 그녀를 세계적인 섹스 심벌로 만들었다.

이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백만 장자와 결혼하는 법>, <돌아오지 않는 강>, <7년 만의 외출[4]>, <버스정류장>, <왕자와 무희>,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금발의 백치미인 컨셉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실제로는 똑똑했다고 한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의 백치미적인 모습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공적인 자리에서는 백치미 "연기" 를 했다고 한다. 게다가 먼로의 위탁 부모들 중 한 가정이 흑인 지역을 출입하는 우체부였기에 자연스럽게 흑인들과 어울렸던 먼로는[5] 영화계 데뷔 후에도 흑인 아이들과 한 컵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이고[6] 양부모에게 성추행당한 과거를 고백하며 여성운동에도 많이 관심을 가지는 등 '모든 인간은 타고난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당대 사회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릴린 먼로가 <율리시스>를 읽다>라는 유명한 사진에는 그녀가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인 율리시스를 읽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다. 진짜로 읽었는지 궁금했던 한 영문과 교수가 기자에게 문의한 결과 진짜였다고... 물론 이 책을 읽는 것이 똑똑함의 척도가 될 수는 없지만, 영미문학계에서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권위와 책이 가진 괴랄한 난이도를 생각하면 이 책을 완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집념과 교양은 대단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마릴린 먼로는 평생 자기를 정상의 자리에 올려 놓은 백치미 컨셉에서 벗어나 진정한 연기력을 키우고 싶어했다고 한다.[7] 실제로 로렌스 올리비에 또한 먼로가 자신이 이제껏 공연한 여배우들과 비교해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 재능과 열정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래 이 영화는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안 리 부부를 주연으로 하려 했지만, 막판에 나이든 비비안 대신 상대적으로 어린 먼로에게 기회가 돌아간 것. 먼로의 매력에 위기감을 느낀 비비안 리가 영화 촬영 기간 내내 현장에 머물면서 감시를 했지만, 결국에는 비비안 리마저 먼로의 인품과 지적 매력, 유머 감각에 감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멍청한 금발 미녀"라고만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똑똑하면 안 된다고 믿고 싶었던 기자들은 먼로가 "도스토예프스키죄와 벌의 역할을 맡아 보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한다는 질문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스펠링은 아냐?"였다고..

먼로가 생전에 이러한 이미지로 고착된 것은 고아로 자란 데다가 불행한 결혼 생활로 그녀가 평생동안 가지고 있던 정서불안과 두려움 및 약물 중독에서도 기인했는데 <뜨거운 것이 좋아>를 촬영할 때는 서랍장을 열면서 "버번 위스키 어디 있어요?"하는 단순한 대사를 무려 59번이나 NG를 내서, 결국 서랍 안에 대사를 적어놓았지만 어느 서랍에 컨닝 페이퍼를 넣었는지 몰라서 모든 서랍에 넣은 후에야 대사를 말했고[8] 먼로의 마지막 완성작 <The Misfits>에서는 번번히 촬영장에서 지각을 해서, 클라크 게이블과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불쾌해했다고 한다.

애정결핍과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무시하고 몸뚱이로만 보던 영화계의 시선 때문인지,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려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친절했다고 한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그 당시에도 유색인 팬들이나 유색인 국가 방문시에도 예의바른 태도로 좋은 말을 들었다.

심지어 당시 후진국 중에서도 후진국이던 한국에서도 잘했다고 한다. 아직도 한국 방문 시 한국인 팬이 보여주는 자신에 대한 신문기사를 즐겁게 보는 한국어를 모르니 내용은 모를 거다 먼로의 사진이 남아 있다. 당시 먼로 방문 환영 현장에서 한국 영화인 대표로 나선 최은희 여사와 팔짱 끼고 추운데서 벌벌 떠는 먼로의 사진이 남아 있다. 사실 한국은 당시의 경제적 열악함에 비해서 구미에서의 이미지는 대단히 좋은 편이었다. 썩 유명한 편은 아니긴 하지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평화와 학문을 사랑하며 나름대로의 문화와 격식이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었다.

2 결혼이혼

첫 결혼은 1942년, 16세 때 항공사 정비공으로 일하던 짐 도허티와 치렀다. 이 결혼은 당시 먼로의 위탁 부모가 타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먼로를 데려가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한마디로 차마 아직 미성년인 여자아이를 내버려 두고 가기가 미안해서 이웃의 청년과 급하게 짝을 맺어 준 것. 짐의 부모, 특히 어머니가 먼로가 성실하고 정숙한 처자라고 환영을 하며 결혼을 빨리 치루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4년 만에 먼로가 모델 일을 하는 문제로 헤어졌다. 훗날 짐 도허티는 "여전히 먼로를 사랑합니다만, 먼로에게 빠진 것은 아니예요"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먼로는 전설적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두 번째 결혼을 했으나 결혼 274일 만에 이혼했다. 디마지오는 이미 전성기가 끝난 상태였고 먼로는 한창 절정의 인기를 누릴 때였는데 이것이 한 때 야구선수로서 큰 영광을 누리던 디마지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유명한 일화로 먼로가 많은 청중에 둘러싸여 환호를 받으면서 "이 기분을 당신은 모를 거예요"라고 하자 디마지오가 "잘 알아"라고 대답한 일이 있었다. 이처럼 둘 다 자존심이 세서 자주 다투다가 디마지오가 야구 배트까지 동원해서 마릴린 먼로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어찌나 맞았는지 이 시절의 먼로는 얼굴의 멍을 감추기 위해 늘 짙은 화장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천하의 개쌍놈.

이들의 사이는 한국 위문공연부터 본격적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상으로 쉬어야 했던 디마지오가 전지훈련 겸 팬 사인회로 먼로와 함께 일본에 갔는데, 계획에 없이 한국의 최전선 장병 위문 공연 제의가 들어왔고 먼로가 거기에 응해서 둘이 위문공연을 했다.[9] 이 위문공연을 본 후부터 디마지오는 먼로를 계속해서 닦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7년만의 외출' 촬영 현장에 따라간 디마지오가 먼로가 환풍기 씬을 찍는 것을 보고 먼로에게 화를 내서 둘이 큰 소리로 다투는 모습이 알려지기도 했다. [10]

디마지오는 마릴린 먼로 사후 매주 3번씩 먼로의 무덤에 꽃을 바치며 그녀를 그리워했다. 유언 중에 "이제 먼로를 다시 만날 수 있겠군."이라는 말도 유명하다. 또한, 케네디 가문의 형, 동생과 먼로의 스캔들을 사실이라고 믿어서 평생 케네디 가문을 증오했고,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도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켜줬어야 하는건데 그러지 못했다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 한다.

이러한 일화 때문에 디마지오는 운동만 하느라 제대로 된 감정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거나, 당시는 여성인권이 부재하여 남편이 아내를 때리지 않으면 오히려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전근대적인 병맛 넘치는 헛소리가 상당히 남아 있던 시기라며 디마지오를 로멘티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결코 그가 저지른 가정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로맨티스트가 아니라, 그저 가정폭력범에 불과한 인간일 뿐이다. 실제로 조 디마지오의 친아들마저도, 훗날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대해 증언하면서 아버지를 비난했을 정도였다.

이후 먼로는 극작가 아서 밀러와 3번째 결혼을 한다. 아서 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희곡 작가였으니, 말 그대로 당대 최고의 지성과 당대 최고의 육체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 결혼도 곧 실패로 끝난다. 밀러가 매카시즘에 휘말려서 고생한 것이 이혼 사유 중 하나이다. 사족으로 밀러가 매카시즘에 휘말렸을 때 의원 한 명에게 '당신의 아내인 먼로와 사진을 찍게 해주면 당신을 사면해주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밀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밀러와 이혼 후 촬영 중에 대본을 못 읽을 정도로 각성제 및 음주를 하여 정신이 망가진 먼로는 이런 저런 추문에 휩싸였다. 결국, 영화 촬영을 고의로 펑크내고 존 케네디 대통령 생일잔치에 참가해서 노래를 부르는 추문을 일으켜서 바로 영화 촬영장에서 해고되었고 이후 은둔생활을 하였다. 80년대 후반 발견된 미공개 사진이나 디마지오 아들의 회고에 의하면 은둔생활 동안 약물을 끊고 재기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케네디 대통령 생일잔치에서 먼로는 속옷도 입지 않고 꽉 끼는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서 "Thank You Mr. President"라는 자작곡을 불렀는데 좌중이 그 매력에 경악했다고 한다. 케네디는 그 많은 기자들이 있는 와중에 먼로와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당시 무대 뒤에 서 있던 케네디 대통령의 경호원은 케네디 암살 50주년을 기념해서 한 인터뷰에서 "내 기억에 남은 것은 그 여자의 엉덩이와 고혹적인 목소리 뿐이었어. 그리고 그 때의 내 나이에는 그 정도로 충분했지."라는 말을 남겼다. 대체 그 많은 높으신 분들이 온 자리에서 몰래 뭘 했던 거유? 그때 기자 하나가 달려들어 사진을 찍어 댔는데 미국 정부에 의해 압수되었고 그중 일부만 공개를 허락받았다.

한편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는 마릴린과 존 케네디 대통령의 사이를 눈치채고 있었고, 남편의 생일파티에 마릴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격노하여 "당신 혼자 가세요."라고 쏘아붙이고는 말을 타러 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 마릴린이 죽었다는 소릴 듣고 매우 기뻐했고(...) 남편과의 사이도 다시 상당히 진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해에 케네디는 암살당했다

이때 입었던 드레스는 1999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대략 14억에 팔렸으며, 2016년 11월 줄리어스 옥션 경매에 다시 부쳐져 이번에는 대략 20~30억 선에서 낙찰될 예정이다. 그에 앞서 2016년 9월 25일부터 10월 22일까지 미국 뉴저지 주 저지시티의 마나 컨템퍼러리 아트센터에, 10월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아일랜드 뉴브리지에 있는 스타일 아이콘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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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형제와 한자리에서 찍힌 유일한 사진당시 꽉 끼었다는 드레스를 입은 사진
YouTube의 'Happy Birthday Mr President'

3 사망

1962년 8월 5일 가정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그녀의 방 침대에서 나체로 죽은 채 발견되었는데,[11] 공식적으로는 수면제 과다복용에 의한 사망으로 되어 있다. 사건 현장에는 수면제통이 널브러져 있었으며 전화기를 꼭 붙잡은 채 엎드려 있었다고. 실제로 죽기 직전으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지인은 그 때까지 그녀가 죽을 거라고 예상은 못 했다고. 존 및 로버트 케네디 형제와 친밀한 관계였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녀의 죽음에 마피아 조직이 개입된 모살설도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실제로 로버트 케네디와 정말로 친했다고 한다. 소문의 진상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조 디마지오는 이 소문을 사실로 믿었고, 평생 케네디 일가를 증오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켜줬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했다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 한다. 다만 위에서 언급된 디마지오 스스로의 폭행 문제도 있는지라... 재클린 케네디가 먼로의 사망에 연루되었다는 카더라도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실제로 전직 CIA 요원이 자신이 먼로를 살해했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1]

4 여담

  • 입가에 있는 점이 매우 유명하다. 흔히 애교점이라 불리는 그것을 먼로점이라고 따로 불리우게 할 정도.
  • 빈센트 반 고흐의 유작을 한국인 경호원에게 선물해주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녀의 성미를 생각한다면 있을법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소문의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 근데 이 대작품이 한국인 손에 들어온 것도 의문 진실은 저 너머에 결국 사실무근으로 결론났다. 빈센트 반 고흐 항목 참조.
  • 여가수 머라이어 캐리가 마릴린 먼로의 소문난 광팬이다. 특히나 상술한 먼로의 불우한 처지와 심경에 깊이 공감하며 자신과 어느 정도 동일시하는 경향마저 보인다.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와 염문설을 뿌린 것도 흑백혼혈이라는 유사한 인종적 배경 외에 조 디마지오의 대체자로서의 이미지를 간구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뮤직 비디오 역시 먼로의 한국 위문공연에 대한 오마쥬이다. 또 먼로 관련 기념물품이 경매에 나올 때마다 비용을 아끼지 않고 구입하라고 평소 에이전트에게 단단히 언질해 둔다고 하는데, 이렇게 해서 손에 넣은 물건 중 하나가 생전 먼로가 소유했던 흰색 그랜드 피아노였다. 어찌나 애지중지하는지 (지금은 이혼했지만) 남편 닉 캐넌이 무심코 웃옷을 피아노 위에 걸쳐놓았을 때도 적잖이 화를 냈었다고 한다. 심지어 딸 이름조차 먼로라고 지었을 정도(..) 덧붙여 위치는 다르지만 두 사람 다 입가에 애교점이 있는 대표적 유명인사로 손꼽히고 있다. </li></ul>
    • 안나 니콜 스미스가 풍만한 외모는 물론이고 파란만장했던 인생사까지 마릴린 먼로와 겹친다는 평이 많다.
    • 영국에서 <왕자와 무희>를 찍는 과정에서, 감독인 로렌스 올리비에 밑에 조수로 일했던 콜린 클락은 자신과 먼로가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경험을 책으로 2편을 써 냈는데, <The Prince, the Showgirl and Me>와 <My Week With Marilyn>이다. 전자는 드라마화되기도 했고, 후자는 2011년 동명의 이름으로 영화화되었다.[12] 먼로를 연기한 미셸 윌리엄스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와 골든 글러브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밖에 케네스 브레너가 로렌스 올리비에로, 에디 레드메인이 콜린 클락으로 출연한다. 2015년 기준으로 이 영화 스틸컷이 에디의 네이버 인물정보 사진에 올라있다 세간에는 이 영화가 실화에 기반하여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영화 속 배경은 사실이나 둘 사이의 관계는 전적으로 콜린 클락의 주장이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믿는 건 곤란하다.
    • 미드 Quantum Leap 5기 17화 "Goodbye Norma Jean"에서, 원래 역사대로라면 죽어야 하지만 샘의 개입으로 마지막 작품이 되는 영화를 찍고 영화계에서 은퇴한다. 그 후에는 어찌되었는지 모르지만 잘 살았을지도.
    • 2011년 7월, 시카고의 번화가에 있는 파이오니어 광장에 마릴린 먼로의 환풍기 씬을 재현한 대형 동상이 설치되었다. 크기가 8m나 되는 동상이며 먼로의 얼굴 표정이나 옷, 발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굉장히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관심이 어디에 집중되었는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제작자도 그걸 알았는지 판치라를 특히 정교하게 표현하는데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게다가 주변을 울타리로 막은 것도 아니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만져볼 수 있도록 완전 개방해 놓았기 때문에, 먼로의 다리에 키스하는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든지 두 다리 사이에 서서 고개를 위로 쳐들고 사진을 찍는 등 민망한 장면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너도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하게 되었다.
    • 그리고 설치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누군가 허벅지 부분에 빨간 페인트를 뿌려놓는 등 마찬가지로 민망한 방식으로(…) 동상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고인드립 선정성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미국 날짜로 2012년 5월 7일에 철거되었다고 한다.[13] 이제 시카고에 가도 더 이상 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사진은 검색해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고 캘리포니아로 옮겨졌었다. 2014년 6월 현재 뉴저지에 있다
    • 게게게의 키타로에도 등장하는데 2기작부터 5기작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먼로가 요괴로 나온다(...) 더 이상한 건 피이라는 웬 물고기와 파충류 닮은요괴를 남편으로 두고 있단 점(...) 이 작품에선 빌런으로 등장한다.[14]
    • 20세기 현대 미술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다품종 대량 생산을 많이 풍자했고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단순하게 다른 색깔을 여러 번 입혀서 <마릴린 먼로> 라는 제목으로 출품했다. 깡통 캔과 더불어 그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이며 원작은 당연히 수십억 대를 넘는다.
    • 노래 실력도 좋아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s>, <Bye Bye Baby>, <When Love Goes Wrong, Nothing Goes Right>, <뜨거운 것이 좋아>의 <I Wanna Be Loved by You>와 <Through With Love>, <Running Wild>, <나이아가라>의 <Kiss>, <돌아오지 않는 강>의 <River No Return>과 <Down In The Meadow> 등 그녀가 영화 속에서 부른 노래로 유명하다. 이후에도 뮤지컬로 많이 리메이크 되었다. 재즈풍이나 뮤지컬 댄스풍의 사랑스러운 가사와 매혹하는 듯한 목소리가 포인트이다.

    < 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s >

    < I wanna be loved by you >

    Cole Porter's "My Heart Belongs to Daddy" - Marilyn Monroe

    < When Love Goes Wrong, Nothing Goes Right >

    < Bye Bye Baby >

    < River No Return >

    < Down in the Meadow >

    4.1 먼로가 플러스 사이즈?

    먼로의 옷사이즈가 12~16이었다고 "먼로가 플러스사이즈다, 고로 빅사이즈 입어야 진정한 여성의 몸매를 가졌다" 라고 하는 미국 여성들이 많다카더라.

    현재 미국의 기성복에서 여성복 12 혹은 14 사이즈부터 빅사이즈로 따로 분류한다. 한국의 66 사이즈가 보통 4 나 6 의 사이즈에 해당한다. 미국에서는 대략 99 사이즈 이상을 빅사이즈로 분류한다.

    그런데... 플러스 사이즈를 입는다면 키나 뼈대 감안해도 정상체중으로는 택도 없다. 키 170cm에 90kg의 여성이 마릴린 먼로로 보이는가? 이것은 시대별로 달라진 기성복 수치로 인한 착오이다. 50년대 사이즈 12는 현재의 6 혹은 8사이즈로 한국식으로는 (미국은 어깨너비나 골반이 좀 크게 나온다) 큰 66이나 작은 77 정도이다. 즉 그 시대가 뚱뚱한 여성을 좋아한 것이 아니고, 다만 지금같이 중성적이다싶을 만큼 마른 여성을 선호하지 않았을뿐이며, 먼로의 사이즈는 지금도 과체중과는 무관하다. 아마 점점 무거워지는 미국에서는 일상에서는 말랐다는 소리도 들을지도... 그런데 객관적으로 사진에 나온 모습 보면 답이 나오지 않나

    먼로는 키 166cm, 체중은 약 62kg정도였다고 하는데,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큰 골반이라는 전형적인 서구식 글래머 체형이었다.[15] 게다가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는지 근육선이 보이는 탄력있는 라인. 아무것도 안하고 물살로 저 키에 저 체중이 나가는 것과는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

  1. #심지어 미의 화신이자 여우주연상을 2번 받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제치고 가장 위대한 여배우 6위에 올랐다. 사실 마릴린 먼로도 골든글로브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로서 실력이 있는 배우이며 그녀가 주연이었던 코미디 영화들은 최고의 코미디 걸작들로 뽑힌다. 이는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녀의 존재가 그만큼 영화계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주었다는 뜻이다.
  2. 마릴린 먼로는 최전성기 땐 모든 남성들의 연인이였지만, 정작 본인은 단 1명의 진실한 사랑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가질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그녀였지만 평생을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림쳐야 했고, 죽음마저 편할 수 없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매우 불우한 환경 속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당대 최고의 섹스 심벌로 가장 화려한 별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힘센 남자(미국 대통령)와 염문을 뿌리며 후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3. 후일 먼로가 유명해졌을 때 이 사진이 공개돼서 파문이 일어났지만 대인배답게 솔직히 인정해서 별 일 없이 넘어갔다.
  4. 그 유명한 환풍구이 나온다.
  5. 미국 백인 사회 전반에서 인종차별 철폐가 떠오른 것은 60년대 들어서이다. 그전까지 흑인들의 인권 운동은 백인들의 지나친 억압에 대한 저항에 가까웠다.
  6. 이게 "뭐 이 정도로..."가 아니다. 당시 남부에서는 버스 좌석에 화장실 심지어 식수대도 백인용, 비백인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7. 마릴린 먼로는 말론 브란도 등이 나온 뉴욕의 액터즈 스튜디오를 졸업했다. 그래도 클라크 게이블과 같이 촬영한 마지막 작품은 연기력만으로 승부한 작품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촬영이 끝난 후 두 배우 모두 사망.
  8. 이 때 공연한 토니 커티스는 먼로와의 키스는 히틀러와 키스하는 것 같은 느낌해 봤나 보다이라고 불평했다고 한다.
  9. 일본 방문 당시 주일미군 사령관이 직접 방문해 주한미군 위문공연을 부탁했다. 이때 디마지오가 "그러고 싶지만 스케줄에 부상으로 못하겠다"고 하자 사령관 왈 '저는 디마지오 씨가 아니라 미세스 디마지오에게 말한 겁니다'
  10. 참고로 이 영화가 한국에 개봉된 당시, 지하철이라는 개념도 없던 한국 관객들은, 머나먼 어딘가엔 땅 밑에서 바람이 올라오는 특이 기후를 가진 줄 알았다고 한다.
  11. 원래 나체로 잠드는 것으로 유명했다. '잘 때 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질문에 "샤넬 No.5"라고 대답한 것이 대표적인데, 아무 것도 입지 않고 향수만 뿌린 채 잔다는 걸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이 일화를 샤넬이 광고로 써먹기도 했다.
  12. 한국 개봉명은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이다. 엠마 왓슨이 조연인 분장실 스텝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3. 논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2012년 봄까지만 설치해 둘 예정이었다고 한다.
  14. 2기작 (에피소드 23화 '환상의 기차') 에선 잘 묘사가 안 나오지만 키타로를 납치해 피이에게 넘겼다. 2기작의 먼로 모습은 먼로랑 똑같지는 않아 다행이지만.. 3기작( 에피소드 61화 '환상의 기차' )에선 아예 판박이다 먼로의 하얀 드레스와 환풍구 씬이 묘사된 걸 보면... 심지어 키타로의 리모콘 게다에 얼굴을 맞기까지 했으며 기차 안의 용암에 빠지며 피이랑 같이 버려지기까지 했다.(...) 4기작(에피소드 9화 '폭렬 기차 키타로 기관사!')의 먼로는 다른 먼로들의 그 특유한 머리 스타일이 아닌 긴 생머리의 모습으로 등장, 인간들을 흡혈귀로 만들고 키타로마저 흡혈귀로 만든다..뭐..후반엔 피이와 같이 흙 속에 묻히는 굴욕을 당했고(...), 5기작(43화 ' 요괴 미스테리 환상 열차' )엔 인간의 생기를 빨아들여 빨아들인 인간을 밀랍 인형으로 만들고 피이와 같이 젊음을 유지한다는 설정이 붙어 있다, 다른 시리즈에 비해 유일하게 굴욕을 당하지 않는 작품(?)이기도..
  15. 저것도 일부러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찌운 것. 게다가 저렇게 일부러 체중을 늘렸는데도 딱 붙는 옷을 입으면 갈비뼈가 도드라져 보인다! 지방이 딱 가슴과 엉덩이쪽에만 있다.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