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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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의 구본사, 2016년 6월 1일부로 오사카부 오사카시 아베노구에서 오사카부 사카이시에 위치한 사카이공장 내 부지로 이전하였다.

1 유래

필기구 샤프가 회사명의 유래다. 창업자 하야카와 토쿠지는 일본 최초로 메커니컬 펜슬을 발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필기구를 '에버-레디 샤프'[1]로 명명했는데 이 필기구가 가져다준 충격이 대단했기 때문에 메커니컬 펜슬이 일본에서 샤프펜슬로 불리게 되었고 결국에는 샤프 펜슬의 유명세로 회사명도 샤프로 변경한 것.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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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의 전자렌지.

샤프 펜슬을 히트 시킨 샤프는 일본 최초의 전자렌지를 생산하여 큰 인기를 얻고 아예 회사의 업종을 필기도구에서 전자제품으로 바꾼다.[2] 오늘날 전자렌지 특유의 "띵!" 소리를 결정한 것도 바로 샤프였다. 전자렌지가 개발 당시로서는 너무 조용한 조리기구여서 주부가 조리가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음식이 식어버리는 일이 종종 생겼고 이 때문에 조리를 끝마쳤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리면서도 요리의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소리를 찾기 위해 전직원이 동원, 한 달 동안 수 많은 소리들을 들은 끝에 자전거 벨소리로 결정 되었다고 한다. 이 소리가 상당히 맘에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일본에는 '전자렌지에 넣어 조리한다'라는 말을 자주 '띵!(チーン)한다' 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동부대우전자의 전자렌지처럼 이 소리를 쓰는 제품들이 남아있다.

이런 역사 때문에 샤프전자는 '긴급개발 프로젝트'라는 독창적인 상품 발명을 중시하는 회사 문화로 유명하다. 긴급개발 프로젝트란, 전도유망하다고 판단되는 신상품의 개발이 결정되면 사장 직속으로 프로젝트팀을 결성하고 부서를 초월하여 전문가들을 소집한 다음 사장에 맞먹는 인사 및 예산 전권을 부여, 대신에 개발 기한을 1년 남짓으로 제한시켜서 팀원들을 신상품 개발에 전력투구하게 하여 시장에 나오지 않은 제품을 다른 회사들보다 빠르게 개발하는 것이다. 레알 공밀레[3] 이러한 전략에 의해 샤프전자는 세계 최초의 액정 전자계산기, 세계 최초의 탁상용 전자계산기를 비롯해 수많은 히트상품을 발명하였다. 현재는 사장 직속으로 온리원 상품 본부가 상설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 배속된 우수 직원은 출퇴근과 근무장소 및 근무방법이 완전한 자유이며, 개인별로 황금색 명함을 지급받는다. 이는 사내에서 필요한 인력과 자원을 24시간 무제한으로 요청할 수 있는 특권을 의미한다. (당연히 요청받은 부서는 거절할 수 없다.)

1970년, 일본에서는 오사카만국박람회가 열렸고 일본 유수의 기업들이 당연하다시피 출전하였으나 샤프는 만국박람회 출전을 포기하고 출전자금 75억엔으로 나라현에 반도체단지를 건설한다. 반도체단지 건설은 본사가 오사카인데 민박에 출전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도 자본금 105억엔 중 75억엔을 올인한다는 것 때문에 임원회의에서 굉장한 격론이 오갔던 문제였으나 창업자의 결단으로 실행에 옮겨졌다고 한다. 이 투자가 적중해서 샤프는 중견 가전 회사에서 일본의 전자 업계의 큰 축으로 성장하게 된다. 또 같은 해 '하야카와 전기 공업 주식회사'에서 '샤프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며, 창업자가 회장으로 물러나고 사에키 전무가 사장으로 취임해 샤프는 제2기를 맞게 된다. 샤프는 이 때부터 액정패널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로도 늘 액정패널 기술에 큰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오랫동안 '액정의 샤프'라고 불렸다.

새 밀레니엄이 되는 2000년 1월 1일에는 "옛 것은 두고 가고, 새 것을 가져간다."라며 CRT텔레비전을 버리고 LCD텔레비전만 취하는 TV광고를 내보냈다. 앞으로 LCD Only로 간다는 결심을 확립한 광고에 대해 일반 대중의 반응은 좋았지만, 정작 CRT사업부의 직원들은 광고가 전파를 타기 직전까지도 이 결정을 몰랐으므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내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샤프전자는 CRT를 과감히 정리하고 TVLCD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결정은 PDP에 치중하는 파나소닉과 대비되었고, 또 샤프의 ASV 블랙 패널은 평가가 높았으므로 '액정의 샤프'라는 별명이 새삼 회자되었다. 이처럼 LCD에 집중한다는 결정과 공격적인 투자는 한국 기업보다 더 빨랐다.

2006년에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대규모 특허소송을 냈다. 샤프의 액정기술을 노골적으로 베끼면서 다수의 샤프 특허를 삼성이 침해했다는 것이 그 이유. 소송을 당하자 삼성전자는 피소당한 부분들을 대거 설계변경하면서도 "특허를 침해해서 변경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이 소송에 대한 대응으로 삼성전자는 다른 특허에서 샤프에 맞소송을 걸었다. 이 소송은 매우 규모가 커 수년동안 지속되었는데, 최종적으로는 비공개 합의로 끝났으며[4] 현재는 LCD분야에서 양사간 크로스 특허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2010년까지, 일본내에서 TV의 액정패널과 완제품을 일관 생산하는 업체는 샤프뿐이었다. 소니나 도시바도 액정TV를 만들기는 하지만 그 액정패널은 외부조달이다.[5] 이후 2010년 파나소닉이 합자 체제였던 IPS알파를 파나소닉 액정 디스플레이로 흡수하고 히메지 공장을 오픈하면서 유일 체제는 깨졌다.

2010년 샤프는 특히 RGB 3원색 LCD를 넘어 노랑을 더한 RGBY 4원색 LCD 패널을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1픽셀에 3개 넣을 것을 4개를 집어넣으니 그만큼 만들기 어려운 것을 실현, 과연 샤프라는 평가. 색재현율이 높아 AMOLED처럼 진하고 화사한 화면이 나오는 것이 특징.

2010년 12월, 여기서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스마트패드를 출시했다.[6] 본격 자국디스 그러나 2011년 9월에는 7인치만 남기고 나머지 제품의 판매중단을 결정했다. 사실 갈라파고스 시리즈는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름처럼 독자규격을 적극도입하여 폐쇄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췄기 때문. 예를 들어 샤프에서 내놓은 전자책 규격인 XMDF 파일은 간단히 읽을 수 있지만 다른 전자책 형식은 기본적으로 미지원, 그래서 불편하게 변환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TXT 형식으로 변환 후 읽어야 했다. 그렇다고 XMDF 형식이 전자책으로써 읽기 편한 형식도 아니다. 강력한 DRM이 걸려 있어 백업은 USB 메모리를 통해 1번만 가능하고 느려터진 로딩에 목차 기능도 없다.XMDF 형식이 딱 1가지 장점이 있다면 면 세로 읽기와 가로 읽기의 변환이 가능하다는 것.

결국 현재 샤프전자는 일본을 제외하고 세계 시장에서는 삼성전자LG전자에게 밀려 고전중이다. 첫째 이유는 70년의 투자 경험에 따라 2000년대에도 LCD 공장 건설에 대규모로 베팅했는데, 2000년대 후반 전세계적인 경기불황과 특히 엔고를 얻어맞으면서 대형패널생산의 가동률이 크게 떨어진 것. 이 투자과잉은 샤프에게 두고 두고 악재가 되어 큰 손실을 안겼고[7], 결국 2012년 대만의 홍하이에게 지분의 11%를 매각하기에 이른다. 2012년 3월에 취임한 오쿠다 사장은 "엔고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것. 그것으로 비난하는 것은 결과론이다."라고 할 정도로 엔고의 타격은 컸다.[8] 둘째 이유로 제품의 상품성 자체도 한국산에 밀리고 있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샤프 부사장이 미국의 양판점에 갔다가 자사 TV가 구석에 처박혀 먼지만 쌓이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점원에게 이유를 물었는데, 그 대답이 "다들 삼성 보르도를 베끼고 있는데 샤프 디자인만 안 그래요."였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샤프전자는 자존심을 접고 신형 아쿠오스TV는 기존의 디자인을 버리고 보르도와 판박이 디자인으로 출시했다.

2012년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4500억 엔(약 6조1000억 원)의 순손실을 낼 것으로 예상되며 전년도의 기록을 깨고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낼것으로 보이며 2012년 11월 2일 신용평가사 피치는 샤프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의 정크 본드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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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하기위한 자금을 얻기위해 투자처를 필사적으로 구하고 있다. 2011년 애플은 샤프의 가메야마 제1공장에 10억달러를 투자했다. 2012년 3월 홍하이가 사카이공장 법인인 SDP의 지분 약 46.5%를 매입하였으며 그 외 추가로 670억엔 출자하여 샤프 본사 지분 10%를 넘기려 하였으나 이후 주당 550엔이던 주가가 주당 192엔까지 추락하면서 홍하이가 인수가격 재협상을 하려하다가 2013년 출자를 포기했다.

2012년 12월 퀄컴은 디스플레이 기술 공동 개발로 샤프에 100억엔 투자하여 지분 2.56%를 취득. 50억엔을 납입했으나 남은 50억엔 납입은 기술 확보가 불분명하여 2013년 6월로 연기. 2013년 3월 삼성전자는 샤프 본사에 104억엔을 투자하여 3.04%의 지분을 인수한다. 주가 폭락으로 홍하이와의 투자협상이 결렬 위기에 몰린 상태에서 삼성전자와 손을 잡았다. 결국 해외기업에 점령당한 샤프란 기사가 나올 정도. 그런데 샤프전자의 트위터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나는 삼성같은 조센징 회사랑 엮이기 싫은데 높은놈이 결정한거임" ... 그리고 마지막 줄의 내용 또한 압권인데 "저를 싫어하게 되더라도… 샤프의 제품은 싫어하지 말아 주세요."란다.

2013년 6월 7일 퀄컴이 추가로 지분을 인수하여 지분율 3.53%로 샤프의 3대주주이며 삼성전자는 3.01%로 줄어 지분율 6위가 되었다. 은행권을 제외하고 퀄컴삼성전자가 사실상 제 1주주와 제2주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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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기존의 직사각형 모양에서 탈피해, 자유자재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Free-form Display'기술을 발표했다. 차후에 나올 닌텐도 게임기 차기 모델에도 쓰일 수 있다고 한다.
[1]


2015년 들어 일시적 흑자상태에서 다시 적자로 전환되어 일본 내 부품공장과 해외 태양전지 공장을 폐쇄하고 위기의 샤프, 긴급 자금 요청 주채권은행에 1500억엔(약 1조3700억원)에 달하는 출자전환을 요청하기로 했다.

결국에는 99% 이상 감자라는 수단을 쓰게 되었다. 일본에서 자본금이 1억엔 이하면 중소기업으로 분류되어 세제해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누적손실을 모두 없애면서 자본금을 1억엔 이하로 만들어서 세제혜택을 받는 목적인 것. 그러나 대중의 비난 여론 속에 정부의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99% 감자를 전면 철회하였다. 기사. 결국 감자규모를 줄여 자본금을 2015년 6월 말까지 5억엔으로 축소시킨다고 발표했다.

2016년 2월 초, 결국 중화민국의 전자기기업체이자 애플아이폰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Foxconn(홍하이정밀공업)에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Foxconn 측에서 제시한 인수금액이 일본산업혁신기구의 제안보다 3천억엔 정도 높은 6천 590억엔(약 6조 7000억원)라서 샤프전자 측에서 폭스콘과의 협상을 우선한다고. 그러나 민관 합동 펀드인 주식회사 산업혁신기구는 일장기 대연합이라는 플랜 아래 도시바, 히타치 등의 백색가전 제조를 통합하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그 정도의 증자를 단기간에 하기는 어렵다'는 반응.

한편 샤프의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샤프 직원들 수요로 먹고 살았던 본사 근처 니시타나베 상점가 상인들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이다.

2016년 2월 중반, 결국 홍하이 그룹에서 6000억 엔(약 6조 원)으로 인수한다는 소식이 떴다. 샤프전자라는 네이밍은 유지하되, 브랜드의 소유권과 운영권이 홍하이 그룹에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현재 샤프 인수에 대한 우선 협상자로 선정되었을 뿐이지 완전히 인수한 상태는 아니다. 참고로 우선협상기한은 2월 29일이다.

결국 2월 25일로 홍하이그룹에 속한 홍하이정밀공업 그러니깐 폭스콘에서 7000억엔 출자(약7조 7000억원) + 경영진 및 고용유지 조건으로 인수하기로 결정. 기사

그러나 협의가 진행 중이던 2016년 2월 24일 홍하이가 샤프에게 받은 중요문서를 통해 '우발채무(偶発債務) = 소송 등 장래적으로 변제의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부채)'가 약 3,500억엔(약 3조 5000억원)에 달하는 사실이 발각(...). 내용조사를 완료하기 전까지 샤프의 매수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기사(일본어) 즉, 아직 도장은 찍지 않은 상태. 결국 2016년 3월 22일 홍하이 측이 우발채무를 이유로 최대 2000억엔 이상 인수액을 깎을 계획이라고 보도되면서 인수 여부가 불투명 해지고 있다.

그러나 결국 2016년 3월 30일 홍하이와 샤프 양사가 인수·합병 안건을 최종적으로 승인한다. 허나 홍하이 측은 우발채무 문제와 실적 악화를 이유로 샤프에 대한 출자액을 당초 계획했던 4890억엔보다 1200억엔이나 줄인 3888억엔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로서 샤프는 홍하이에게 인수되었으며 홍하이 측은 샤프의 지분 66%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술된 우발채무의 여파 때문인지 고용승계 조건은 백지화된 듯하다. 샤프 직원이 7000명 이상 해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폭스콘 항목에 잘 나와있지만 폭스콘의 수장은 고용 승계 따위 지킬 리가 없는 인물이라.....

3 지분관계

홍하이 그룹의 폭스콘이 지분의 2/3를 가지고 있다. 예전 샤프전자의 주식 지분은 아주 전형적인 일본 대기업의 주식 구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최대주주인 닛세이가 2.78%일 정도로 소지분 다주주 구성이다. 문제의 퀄컴은 제3주주로서 2.47%, 삼성전자재팬은 2.10%를 가지고 있다. 샤프전자의 임직원들은 1.60%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인44.06%
일본의 금융기관27.16%
외국인, 외국법인17.67%
일본의 그 외 법인8.84%
일본의 증권회사1.65%
샤프전자0.62%

삽질 중인 사업부와는 달리 회사 소유 측면에서 보면, 해외 지분율이 낮고, 버블 시절 떼돈을 버신 일본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지분율이 매우 높아, 상당히 건실한 일본의 대기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주주명부 등은 미즈호은행 지주회사 산하의 미즈호신탁은행이 관리하고 있다.

4 트리비아

  • 60년대부터 태양광발전에 관심을 가져서 요즘은 국내외적으로 'World's Leading Solar Company'라는 슬로건으로 홍보를 한다.
  • 샤프의 대규모 LCD 공장이 있는 일본 가메야마시는 대기업의 공장에 도시 전체가 매달려서 살면 불황이 닥쳤을때 도시 전체가 무슨 꼴을 당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표본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꿈으로 시작해 악몽으로 끝난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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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부터 2000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유니폼 메인 스폰서를 담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샤프는 맨유 클럽 사상 첫번째이며 가장 오랜기간 동안 스폰서를 제공하였다.
공학용 계산기로도 유명해서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Texas Instruments), 카시오(CASIO), HP와 4파전을 벌이는 중이다.
  • 과거에는 슈퍼컴퓨터 사업에도 손을 뻗치고 있었으며 그 영향으로 X68000같은 독자규격의 컴퓨터를 생산했었다. 지금도 노트북을 만들고 있지만 그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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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비트 컴퓨터 시절 테이프 레코더와 프린터[9]까지 일체화된 기종인 MZ-700시리즈를 내놓아 화제를 모은 바 있다.[10] 놀랍게도 이 모델은 한국샤프에서 직수입, 국내에 판매하기도 했었다. 몇대나 팔렸는지는 모르겠다.[11] 일본 PC 3대장(NEC, 샤프, 후지쯔)의 모델 중 유일하게 국내 법인이 수입 판매를 했던 모델.[12]
  • 물론 당시 샤프의 주력 PC는 MZ-80 시리즈로 이 제품은 국내에 도입된 일이 없다. 한때 삼보컴퓨터가 세운상가 시절 초창기 MZ-80 K/C 모델을 복제해서 잠깐 판매한 적은 있으며 이후 삼성전자가 SPC-1000라는 테이프 레코더 일체형 PC를 내놓을 때 또다시 MZ-80 K/C 모델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었다. 그무렵 샤프전자는 상위기종인 MZ-80B 모델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단, 디자인은 샤프 MZ-700 시리즈를 근간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MZ-80을 비롯한 샤프의 초창기 기종들은 대부분 테이프 레코더를 내장하고 있어서 뭘 베껴도 비슷하다.[13]
  • 한동안 오디오에도 신경을 썼었다. LP시절에 음반을 세워서 연주하는 플레이어를 내놓아 화제를 모은 적 있었고, 디지털 시대로 들어와서는 일본 최초의 하이엔드 디지털 앰프를 내놓기도 했었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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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회사의 트위터 어카운트는 한국민속촌의 트위터와 비교 될 정도로, 일본의 기업들의 트위터중 미친 드립력, 팔로워들간의 꾸준한 교류, 센스있는 리트윗들로 대단한 인기를 얻고있다. 오덕 관련 매체들에 나오는 주요 캐릭터들의 생일들을 축하해주는건 덤. 한국민속촌의 트위터가 비슷한 컨셉으로 인기를 얻고있는 대검찰청 트위터와 힘을 합쳐 한복이 너무해를 만들었듯이, 샤프전자의 트위터는 역시 비슷한 컨셉으로 인기를 얻고있는 타니타의 트위터와 힘을 합쳐 샤프씨와 타니타군을 만들기도 했다.
  • 최근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샤프는 한국기업(...)이라는 헛소리를 했다. 자세한 내용은 도널드 트럼프 항목 참조.
  • 2015년 10월에 무려 로봇형 휴대폰이라는 새로운 컨셉의 제품을 발표했다. 단순 컨셉 제품이 아니라 2016년에 출시되어 일반 판매된다. 제품명은 RoBoHon이며이게 아니다, 휴대폰 기능 이외에도 로봇이라는 특성을 살린 여러 기능이 추가된다.

5 한국에서의 샤프전자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는 전자사전으로 유명했다. 흑백전자사전 시절에도 과연 액정의 샤프답게 카시오보다 잔상이 적고 액정의 질이 좋았다.(…) 손정의가 초창기 사업자본금으로 '전자 통역기'를 개발해 그 권리를 액정제품을 만들던 샤프에 팔았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전자사전과 유사하다. 참고로 카시오 전자사전이 일본 모델에 한국 사전을 심어서 판매하고 있는 것과 달리, 샤프는 한국샤프라는 독립법인이 우리나라에서 독자 모델을 개발 및 제조[15]했다. 동영상과 인터넷 강의를 지원하는 샤프 전자사전은 한국에서만 독점 출시되었는데, 특이하게도 주로 PMP에 탑재되던 윈도우 CE를 내장한데다 서드 파티 애플리케이션을 정식으로 허용, 후에는 무선랜 탑재 모델까지 나오면서 기껏해야 플래시 게임만 구동하던 기존의 전자사전을 밀어내고 중고등학생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되며(...) 한동안 시장 1위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16] 시스템 부분은 일반적인 PDA와 달리 매우 변태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 때문에 WM 애플리케이션의 보편적인 호환이 힘들어 네이버 카페를 중심으로 자료 공유 커뮤니티가 생기고, 각종 테마트윅을 위해 이를 뜯어보던 중학생들이 훗날 청소년 개발자로 성장했다는 후문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국내법인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전자사전이 보급될 대로 보급되어 신제품의 판매량이 줄어들기 시작한데다 스마트폰의 보급 등으로 인해 매출이 줄어 결국 일본 본사의 결정으로 2012년 6월부로 한국에서 전면 철수했다.
  1. 에버샤프라고 쓰여 있었으나 이는 Charles R. Keeran이 만든 Wahl Adding Machine Company사의 제품으로 에버-레디 샤프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참조(영문)
  2. 여담이지만 한국산 전자렌지 1호는 삼성전자에서 만들었다.
  3. 실제로는 프로젝트팀원으로 지명받는 것은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인데다, 제약 없이 마음껏 개발에만 매진할 수 있으므로 누구나 지명을 원한다고. 또 회사 입장에서는 부서를 초월한 수평적 이해를 넓히고 시너지를 위한 인맥을 형성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4. 삼성전자 측에서 손해배상으로 거액의 합의금을 지불한 것으로 추정
  5. 소니는 본래 삼성과의 합작사인 S-LCD에서 대부분의 패널을 공급받았으나 2010년 샤프와 TV용 패널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2011년 소니가 보유하고 있는 S-LCD 지분 50%를 전량 매각하고 삼성 디스플레이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 합병되었다.
  6. 홍보 모델이 코토부키 미나코다.
  7. 결국 2011년 회계년도에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3800억엔(약 5조 3천억원)의 적자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
  8. 2011년 3·4반기 실적이 3,400억 엔의 순손실이었다. 우리 돈으로 약 5조 원 가까이 된다. 실적이 너무 나빴기 때문에 카타야마 사장이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LCD쪽의 상황이 나빴기 때문에, 이것이 해외 및 LCD 출신의 오쿠다 사장이 임명된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9. 정확히는 소형 플로터
  10. 본체만 있는 모델인 MZ-711, 테이프 레코더를 내장한 MZ-721, 플로터까지 내장한 MZ-731의 세가지 모델이 있었다. 위의 사진은 MZ-721. 사진에서 테이프가 놓여있는 곳 바로 아래의 플라스틱 부분이 플로터 자리로 남겨진 부분이다.
  11. 1983~1984년 각종 전자관련 전시회에 전시까지 했었고 한글로 된 한국샤프 명의의 광고전단도 만들었다.
  12. 당시 이것 이외에 일본제 8비트 PC는 개인이나 보따리상이 소량 수입해서 세운상가 등지에 푼 것이거나, 국내(세운상가 공방)에서 복제해서 만든 것밖에는 없다. 당연히 한글 광고전단 그런것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시절 한국의 컴퓨터 입문서는 절반이상이 일본 서적의 불법복제번역본이라서 국내에서 실물을 전혀 볼 수 없는 일본기종을 모델로 하고 있다. 뭐 기본 BASIC 문법은 다 비슷비슷하니.....
  13. 이는 당시 샤프의 설계사상 때문이다. 보통의 당대 일본제 8비트 PC는 BASIC 인터프리터를 ROM에 내장, 실행하는데 MZ시리즈는 RAM에 내장한다.(ROM에 있는 인터프리터를 RAM으로 복사) 이렇게 한 이유는 테이프 레코더를 통해 BASIC이 아닌 타 언어 프로그램을 BASIC 인터프리터가 옮겨지는 RAM에 직접 로딩하여 다른 언어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할 목적이였으며, 그런 이유로 테이프 레코더를 별매하지 않고 내장했었다. 참고로 삼성의 SPC-1000도 이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일하다. 그래서 인터프리터를 뜯어고쳐 새로운 명령어 추가 등의 일들을 해주는 유틸리티들이 컴퓨터 잡지에 많이 등장했었다.
  14. 저 사진에 나온것은 아니지만 음반을 세워서 연주하는 플레이어는 국내 합작법인인 한국샤프에서도 만들어 판 적이 있다.
  15. 고급기종은 한국에서, 보급기종은 중국에서 주로 생산했다.
  16. 요즘 보기에는 초라한 440Mhz 싱글코어 사양이지만 실제로 Windows Mobile게임보이 에뮬레이터가 원활하게 구동되고, 이걸로 포켓몬 2세대 엔딩을 본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GBA도 구동은 가능하지만 버벅여서 역전재판 정도만 가능. 이외에도 대부분의 WinCE 사양 게임과 일부 WM 게임을 구동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