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전 한국어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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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현재의 한글)이 창제되기 전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문자들에 대한 문서다.
해당 링크를 읽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

1 이두

이두(吏讀)란 과거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로, 삼국시대 때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최종 형태는 남북국시대에 이르러 굳어졌다고 알려져 있다.[1] 일본가나처럼 중국한자에서 음을 빌려와 만든 문자로, 공식적인 문서 행정에는 중국식 한문을 썼지만 7세기 말엽에는 이미 신라인들은 자신들의 말을 완벽한 이두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이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두는 넓은 뜻으로는 구결, 향찰 등을 포함하여 한자를 빌려 이뤄진 한국어 표기법 전체, 좁은 뜻으로는 이두문에 나타나는 한국어의 한자 표기를 이른다. 이두문이란 이서(吏胥)들이 행정 문서를 작성할 때 사용한 한자 표기의 산문을 이르는데 같은 문체로 쓰인 민간의 글도 이두문이라 부른다.

이두는 일본가나, 베트남의 쯔놈과 같이 한자를 변형하여 자국어를 표기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 셋은 각자의 쓰임에 따라 구분할 수 있어, 향찰은 주로 운문을 쓰는데 이용되었고, 서동요, 처용가 등이 향찰로 쓰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향찰은 한문시가 정착하면서 고려초에 단절되었고, 고려 중엽에는 향찰을 한문시로 번역하여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할 정도였다. 반면에 이두와 구결은 실용서에 이용되었고, 그 쓰임이 조선말까지 1천년 넘게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두와 구결은 그 쓰임새와 표기방법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는 현대 일본어가 문자생활을 하는 방식과 비교해 볼 수 있다. 현대 일본어는 어순은 일본어 어순에 맞게 표기하고 한자는 음독과 훈독을 모두 인정하여 다양한 독법이 존재하는데, 이두도 이와 비슷하다. 원래 한문은 "주어-동사-목적어" 의 순이지만 이두는 한문을 한국어 어순에 맞게 "주어-목적어-동사" 순으로 바꾸었고, 또 한자의 음독뿐 아니라 훈독까지 인정하고 있다. 반면에 차이점도 있는데 가나와 달리 그 한자의 원형을 사용하였다는데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편 구결은 이두와는 그 쓰임이 다르다. 구결은 우리말로 '입겿'이라고 하고 '토(吐)'라고 하는데, 예를들어 "學而時習之면 不亦悅乎다."[2] 라고 하였을 때, 여기서 '면'과 '다'를 구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두가 한국어 어순에 맞게 변형되었던 것과 반대로 구결은 한문 원형을 건드리지 않고, 거기에 우리말 조사나 용언 따위를 달아놓은 것이 구결이다. 또 이두에서는 한자 원형을 그대로 표기하였던 것과 달리 구결에서는 그 한자를 간소화하여 표기하였다. 아래의 표는 한자가 간략화된 구결의 예.

후일 세종대왕이 한자가 너무 어려워 백성 태반이 글을 못 읽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훈민정음을 창시하려고 하였을 때, 반대파들의 주요 레퍼토리가 "이미 이두가 있는데 문자를 새로 만들기 보단 차라리 이두를 백성들에게 보급해라." 였다. 근데 이두 자체가 기존 한자의 확장형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학습할려면 어찌 됐건 한자를 배워야 한다. 어쨌든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 이두의 사용 빈도가 줄었으나 하류 관료층(아전, 향리)들 사이에선 계속 사용되어왔고, 이두 문자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 때이지만, 비공식적으로 20세기 초반까지 사용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 이두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고대 문자에 대한 관심이 많은 언어 덕후거나, 고서를 정확하게 읽을 필요가 있는 사학자 정도이며, 현대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이두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다.

이두와 향찰, 구결과는 별개로 발해에도 독자적인 문자가 사용되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발해에 관한 사서자료가 적고, 그나마 발굴된 문자자료도 적어 연구가 미진한 상태다. 다만 대체적으로는 한자와는 아예 다른 문자는 아니고, 이두나 향찰 비슷하게 한자를 빌려서 쓰거나, 혹은 쯔놈과 비슷한 형태라고 추정된다.

1.1 구결

파일:Attachment/이두/idu.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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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 문자의 한 종류로 주로 한자를 익히거나 경전에 토를 달아 읽기 쉽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고, 일본의 가타카나와 비슷하게 한자의 획을 따거나 기존에 있는 한자를 약자화 했다. 처음에는 석독(훈독)구결이 주로 쓰여졌으나 나중에 와서는 음독구결로 대체되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 존재 의의를 상실함에 따라 자연스레 훈민정음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2 향찰

주로 신라시대 향가에 사용되었다. 한자를 차용하였지만 그 당시 쓰였던 말을 정교하게 적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삼국시대때부터 쓰여 왔다. 하지만 그 사용방법이 이두보다 더 복잡하다[3]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어 신라 멸망을 기점으로 쇠퇴기에 접어들기 시작하여 고려 중기부터 사용자가 급속히 줄었고 고려말기 들어와서는 완전히 사장되었다.

加(가) 居(거) 古(고) 高(고) 果(과) 斤(근) *厼(금) 只(기) 介(개) 乃(나) 那(나) *汝(너) 奴(노,로) 尼(니) *斤( ) 多(다) *如(다) *加(더) 丁(뎡) 刀(도) 豆(두) 置(두) *月( ) *冬( ) *等( /들) 知(디) 羅(라) 良(라) 老(로) *以(로) 陵(르) 里(리) 立(립) 來( ) 亇(마) *休(말) *味(맛) 毛(모) 勿(믈) 彌(미,며) 每( ) 所(바) 朴(박) 甫(보) 夫(부) *火(블) 非(비) 沙(사) 所(소) 數(수) 示(시) 時(시) 賜( ) 史( ) 士( ) *白( > ) 參( ) 阿(아) *良(아) 也(야) 於(어) 여(余) 亦(여,이) 五(오) 烏(오) 臥(와) 隱(은) 乙(을) 音(음) 邑(읍) 衣(의) 矣(의) 伊(이) 召(조) 之(지) 叱(즐) 製(졔) 吐(토) 何(하) 乎(호) 屎(히) 兒( ) 耳(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3 서기체

이두, 향찰의 원형으로 원삼국시대때 쓰였으며 한문의 어순을 우리말식으로 바꾼 것이다. 서기체로 쓰여진 대표적인 문헌으로 임신서기석이 있다.
  1. 이때 설총이 이두를 집대성한 게 와전되어서 이두를 창제한 사람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착오는 훗날 간행된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집대성과 창제의 차이는 한글로 치면 세종대왕주시경 선생의 업적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두를 창제한 사람은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문자가 그렇듯 서서히 자연발생했을 것이다. 한글처럼 누군가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새로운 문자를 만든 게 오히려 세계사적으로는 특이 케이스.
  2.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다보다는 ~아?등의 토가 바람직하다. 호는 종결사로 쓰일 때 의문의 뜻을 지닌다.
  3. 이두가 부분적으로 한자를 사용한다면 향찰은 전체적으로 한자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