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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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나폴레옹" 세실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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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다 내꺼다요
세실 로즈를 잘 표현한 만평[1][2]

















1 그는 누구인가?

세실 존 로즈(Cecil John Rhodes, 1853년 7월 5일 ~ 1902년 3월 26일) 대영제국의 정치인.

레오폴드 2세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가장 악명높은 제국주의자이자 극단적인 제국주의를 주창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행하여, 비서구권, 특히 아프리카의 깊은 빡침을 유도한 인물.

2 전성기

지주 출신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은 선천적으로 병약했다. 그의 아버지는 기후가 좋은 남아공에 그를 보내어 요양토록 했다.

건강을 되찾은 그는 동생과 함께 킴벌리에서 곡괭이를 휘둘렀다. 당시, 남아공은 광산 채굴이 한창이었다.

세실 로즈는 다이아몬드를 채굴하여 얻은 자금으로 다이아몬드 채굴권에 대한 투기를 하거나, 채굴장에 양수펌프를 대여하여 상당한 돈을 벌어들였다. 여기에다가, 런던의 재벌 로스차일드의 대출도 받아, 1880년에 "드비어스 광산 회사"[3]를 설립하였다. 이 회사는 거의 모든 킴벌리 다이아몬드 광산을 지배하였으며,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의 90%를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드비어스 광산 회사를 통하여 트란스발 공화국의 광산 사업에도 진출하여 세계 최대의 광산 재벌이 되었다. 아울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철도·전신·신문 업계도 그의 지배하로 먹어치웠다.

세실 로즈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하고 1880년, 케이프 식민지 의회의원, 1884년 케이프 식민지 정부 재무장관 이되고, 1890년에는 마침내 총리에까지 올랐다. 그동안 그는 식민지인들에게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고 대가로 광산의 이권을 얻어내었다. 1889년 본국인 영국 정부 인사를 매수하여 식민지에 대한 치안권·통치권을 가진 대영제국 남아프리카 회사(BSAC) 설립 허가를 따내기도하였다.

1894 년 세실 로즈는 BSAC을 방패로 내세워 원정군을 아프리카 각지에 파견, 영국 본토의 4.5배에 해당하는 광대한 토지를 빼앗아 BSAC의 지배하에 두었다. 회사가 정복(?)한 이 땅을 정복자(?) 로즈의 이름을 따서 로디지아라고 명명했다.

세실 로즈는 총리로서 수많은 정책을 실시했지만, 그것들은 모두 대영제국 아래, 남아프리카에서 광대하게 통일된 식민지 남아프리카 연방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행해진 것이었다. 그는 또한 케이프타운카이로 간의 전신과 철도를 연결하는 계획[4]을 추진했다. 로즈는 남아공의 정치·경제의 실권을 한손에 쥐어 무지막지한 권력을 휘둘러댔다. 자칭인지, 타칭인지 언제부터인가 당대 사람들은 그를 "아프리카나폴레옹"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은 세계지도가 더 영국령 색으로 칠해진 것을 원하신다. 가능하다면 나는 밤 하늘조차도 영국령으로 병합하고 싶다."

3 몰락

세실 로즈는 엄청난 기세를 몰아, 트란스발 공화국을 단숨에 정복하고 합병할 계획을 세웠다. 트랜스발의 영국인들에게 비밀리에 무기와 탄약을 보내어 반란을 유발하고 발생된 소요를 빌미로, 마타베레 랜드 총독 제임슨이 지휘하는 BSAC군을 파견하여 한꺼번에 병합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반란을 일으키는 데 실패하고 제임슨이 이끄는 BSAC 군대가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에 보어인은 즉시 반격을 개시하여 BSAC군을 포위하고 전군을 포로로 사로잡았다.("제임슨 사건") 이 사건은 보어인의 분노와 함께 세계 여론의 비난을 받게되었다.

이 여론에 밀려 영국 정부도 세실 로즈를 돕지 않았기 때문에, 로즈는 1896년 총리와 BSAC을 사임하고 완전히 몰락하였다.

영국 정부는 여론의 진정하기까지 기다리고, 제 2차 보어 전쟁[5]을 시작했다. 세실 로즈는 보어전쟁이 발발하자 바로 참전하나, 보어인에게 포위되어 구출될 때까지 4개월이 걸린다.

그동안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고, 일단 유럽으로 송환된 후, 다시 케이프 타운으로 돌아와 전쟁 종결 2개월 전에 무이젠바구에서 4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현재 짐바브웨 마토보에 있는 묘지 World 's View Lookout에 묻혀있으며 기념관까지 있어 유품데스마스크까지 보관되어 있다.

4 트리비아

  • 평생 독신주의자였다. 그는 600만 파운드에 달하는 막대한 유산의 대부분을 옥스퍼드 대학교에 기증했다. 대학에서 로즈 장려 기금으로 현재에도 매년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독일을 제외하면 영연방 국적 학생[6]들만 받을 수 있어 한국 국적은 받을 수 없다. 대신 외국 국적을 가진 한국계나 한국 출신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어 그다지 자랑할 일은 아닌 거 같지만 자랑스러운 한국인 개념으로 종종 인터넷 뉴스에 나온다. 사실 당장 한국 인터넷 상에서 검색해봐도 이 장학금에 대해 좋게 얘기해서 모르는 사람들은 세실 로즈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훌륭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공부 잘 하면 이 좋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설명해놨다. 이미 언급했듯이 어차피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못 받는다. 당연히 이 재단과 장학금 자체에 대해 비판하는 여론도 있다.# 이에 대해 로즈 재단 측에선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해 왔고 넬슨 만델라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었고 장학금을 받은 이들이 인권 운동에 관여했다고 해명했다. # ~~그런데 이러면 오히려 세실 로즈의 원래 정신을 망각하고 훼손한 꼴이다. 저승에서 보면서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 심슨 가족에서도 리사 심슨이 우러러보던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한 젊은 여성 변호사가 로즈의 인종차별주의 때문에 로즈 장학금을 안 받았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리사는 그 말을 듣고 그녀를 더욱 우러러 본다.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명문 대학인 케이프 대학교에는 이 학교의 부지를 제공한 덕인지 이 사람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2015년 학생들의 오물과 쓰레기 투척을 동반한 철거 요구의 목소리가 커졌고,# 마침내 철거되었다.# 남아공에는 이 사람의 이름을 딴 로즈 대학교라는 대학이 있는데, 여기서도 학생들이 대학 이름을 바꾸라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가 재산을 기부했던 조국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마저도 세실 로즈 동상 철거 운동이 불고 있다.# 일단 옥스퍼드 대학교와 영국 보수성향 매체는 학문적 다양성을 이유로 동상 철거에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반면 로즈 장학생들 중 일부는 동상 철거를 지지하는 견해를 밝혔다. 이 운동에 주도적으로 나선 아프리카 출신 유학생이 로즈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장학금을 반환하라는 목소리와 인종주의적인 비난도 있었는데, 이것에 대해 이 운동에 참여한 로즈 장학생들은 로즈 장학금을 일종의 배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옹호했다.###### 결국 옥스퍼드대 동문들이 세실 로즈 동상을 철거하면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는 움직임을 보여 동상 철거는 무산되었다. # 제국주의에 무감각하고 죄책감이 없는 일부 백인 엘리트들이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학생 운동을 꺼버린 씁쓸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독신이었기 때문에, 동성애자가 아닌가 하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지만 진위는 불명이다.
  • 확실한 제국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는 앵글로색슨이야말로 가장 우수한 인종이며, 앵글로색슨 의해 지구 전체가 지배되는 것이 인류의 행복으로 연결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짐바브웨 옛 이름인 로디지아라는 이름부터도 그의 성에서 따온 이름이고, 남아공과 더불어 백인우월정책을 벌이며 세계적으로 욕처먹던 나라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 사건 범인인 백인우월주의자가 인터넷에서 마지막 로디지아인이란 아이디로 활동하듯이 백인우월주의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시대에 살던 마크 트웨인은 제국주의에 반대하여서 당연히 그를 반어법으로 찬양하면서 비꼬았다.
  • 프리메이슨 단원이었고, 젊은 시절에 늘상 앵글로색슨 비밀결사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각종 음모론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하지만 비밀결사를 구성했다는 기록은 현재 없다.
  •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의 공작부인이자, 시온 의정서의 허구성에 대하여 중요한 증언을 한 카타지나 라지뷔우(Katarzyna Radziwiłłowa,1858~1941)가 세실 로즈를 스토킹한 것으로 유명하다. 로즈에게 청혼했으나, 거부당하자 복수 차원으로 약속 어음을 위조하여 로즈에게 빚을 떠넘기려고 했다가 남아공 감옥에 투옥되기도 하였다. 뭐 오래 살긴 했지만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이 동강나고 2차대전 와중 폴란드가 나치 침략을 받고 하는 터에 죽는 등...늘그막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 2015년 짐바브웨에서 세실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자가 사살당했다. 바로 이 작자 이름을 지어준 것. 국립공원 마스코트라고 하여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었지만, 짐바브웨인들에게는 개소리같은 이름이다. 로디지아라는 옛 이름부터도 이가 갈리는 역사인데 그런 백인우월주의자 이름을 지어주고 마스코트라고 했으니. 물론 현지인이 쏴 죽인 게 아니라 백인미국인 치과의사가 쏴죽였지만. 이름 지어준 것도 백인이고 죽인 것도 백인이고 보호하던 것도 백인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 황당하지만 이 인간을 좋게 여기는 한국인도 있는 모양이다. 위에서 언급한 장학재단 운영에 돈을 기부했다는 내용과 아프리카에서 개척적으로 진취적으로 살았다는 얘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다이아몬드 얘기를 하면서 이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한 나쁜 짓은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다이아몬드로 돈을 많이 벌어서 재산을 기부했다는 식으로 위인처럼 묘사한 글들도 보이고 심지어 이 사람이 했다고 알려진 "영리한(또는 예민한)[7] 두뇌와 근면한 손을 가진 사람 곁에는 도처에 금화가 널려 있다."라는 말을 명언으로 여기는 글들도 보인다. 그 이유는, 1980년대까지도 이 사람을 아프리카를 개화시킨 개척자, 장학 재단을 세운 좋은 기업인으로 묘사한 책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을 나쁜 것으로 보지 않았던 일본인들이 좋게 묘사한 책이나 글까지 무비판적으로 들어온 탓.[8] 한국도 똑같이 식민지배 당했으면서 서양에 의한 아프리카의 식민지배는 긍정하는 아이러니한 경우다. 심지어는 2013년에 나온 전자책에서도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구절이 있긴 하지만 원주민들도 불법 침탈을 한다고 적었고, 로즈에 대해서는 거의 긍정적인 면만 다루고 있다. 사실 이 책은 허버트 N. 카슨(1869-1951)의 책을 옮긴 건데 원 저자의 시대엔 로즈와 영국의 식민지 운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다만 이걸 21세기에 아무런 비판 의식과 문제를 제기하는 각주 없이 그대로 옮기는 건 곤란하다고 할 수 있다.
  1. 로도스라는 이름을 영어로 하면 Rhodes다. 로도스의 거상을 안다면 더 무슨 설명이 必要韓紙
  2. 종단 정책의 일환이었던 카이로에서 케이프타운을 잇는 통신망(전신선)의 완성을 알리는 만평이다.
  3. 오늘날 유명한 다이아몬드 취급 회사 드비어스의 전신
  4. 이른바 "3C" 정책의 일환
  5. 남아프리카 공화국 전쟁; 1899년 ~ 1902년
  6. 이 영연방 국적에는 당연히 아프리카와, 인도, 홍콩 등 유색인종 학생들도 공부를 잘 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줘서 인종적으로 평등해보이지만, 영연방이라는 존재와 개념이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임을 생각해보면 과연 좋은 의도인지 궁금해질 수 있다.
  7. 원문은 sensible였을 것으로 추정.
  8. 거의 모든 문물이 미국과 일본을 통해 들어왔던 것이 90년대 이전 한국의 현실이다. 특히 책은 일본 것의 중역이 원역보다 훨씬 많았다.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라틴어 등 여러 유럽 언어의 능통자보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일본어에 능통한 사람은 많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