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전적 의미
각종 사정으로 인해 부모가 없이 생계와 가정을 책임지는 소녀를 가리키는 말. 소년소녀가장 및 가장 항목 참조.
2 비유적 의미 / 연예계
걸그룹 대홍수인 2007년 이후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인지도가 낮은 그룹의 인지도 상승을 위해 노력하는 멤버를 이르는 말.
- 온갖 방송에 가리지 않고 나온다.
- 예능 프로그램 등에 나올경우 거의 목숨걸고 죽어라 열심히 뛴다.
- 보통 언플에 약하거나 해도 어그로를 끄는(...) 작은 기획사나 방목형 기획사 등지에서 자주 출몰한다.
- 해체 위기까지 갈 정도로 바닥을 친 그룹이 이들의 노력으로 도약에 성공해서 메이저가 되기도 한다.
- 기획사 자체를 먹여 살리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2.1 목록
연대순으로 정렬. 향후 추가바람.
- 쥬얼리 - 박정아 (2001 ~ 2002) - 소녀가장의 시초. 말 그대로 그룹과 기획사를 전부 먹여 살렸다. / 김예원 (2011 ~ 2014)
- 브라운 아이드 걸스 - 가인 (2006 ~ 2007)
- 타이푼 - 솔비 (2006 ~ 2008)
- 카라 - 한승연 (2007 ~ 2008) - 소녀가장의 알파, 오메가, 모범답안.
- 4minute - 김현아 (2010.1 솔로 활동 시작 이후 ~ 2016) [1]
- 시크릿 - 한선화 (2009.10 ~ 2011)
- 걸스데이 - 민아 (2010.12 ~ 2011)
- 레인보우 - 김재경 (2009 ~ 2011)
- 베베미뇽 - 해금 (2010 ~ )
- 나인뮤지스 - 류세라. 팀 내에서 소녀가장 역할을 하였으나 2014년 팀에서 나갔다. 그 자리는 경리가 이어받는다.
- 라니아 - 티애 (2011 ~ )
- 달샤벳 - 수빈 (2011.5 ~ )
- 미쓰에이 - 수지 (2010년 데뷔와 동시에 ~ ) [2]
- Apink - 정은지 (2012.6 ~ 2012.12, 2013.5 ~ 2013.12)[3]
- 타이니지 - 도희 (2013.10 ~ 2015). 2015년까지 소녀가장인 이유는 소녀가장을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2015년 결국 팀이 해체 수순에 들어갔기 때문.
- EXID - 하니 (2012년 데뷔와 동시에 ~ 2015년). 2012년 데뷔 후부터의 기나긴 암흑기를 가끔 있는 예능 출연으로 버텼냈고, 결국 혼을 담은 직캠으로 그룹 전체를 지옥에서 끌어올렸다. 역주행 후로도 TV만 틀면 나온다고 할 정도로 많이 활약하며 팀을 홀로 이끌다시피 했지만, 2015년 다른멤버들의 인지도가 많이 올라오면서 소녀가장에서는 탈출했다.
- M&H 엔터테인먼트 - 김청하 (2016~)
- 다이아 - 정채연 (2016~)
2.1.1 그룹 전체
여기서는 기획사를 먹여 살리는 걸그룹 위주로 작성. 향후 추가바람.
- 카라 - 레인보우는 지지부진한데다가 2012년 데뷔한 보이그룹인 A-JAX는 물론 2013년 데뷔 예정
하지만 해체인 퓨리티까지 먹여 살려야하기 때문에 사실상 DSP의 소녀가장 신세. - 오렌지캬라멜 - 애프터스쿨의 유닛. 멤버 셋이 애프터 스쿨 + 오렌지 캬라멜 활동으로 두 배로 굴려지고 있다.
- 시크릿 - 언터쳐블은 군 복무 중이고 B.A.P는 2012년까지는 신인급이었기에 당분간은 TS를 먹여 살려야 하는 처지였지만 B.A.P가 2013년 이후로 크게 성장하고 있어서 향후 소녀가장 신세를 탈출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 씨스타 - 케이윌 혼자서는 역부족인 데다가 지지부진한 보이프렌드는 물론이고 2013년 데뷔 예정인 걸그룹과 보이그룹까지 키워야 하기 때문에 스타쉽의 실질적 주 수입원. 자세한 사항은 기사 참고.
- EXID - 그나마 하나 있던 형제 보이그룹 씨클라운이 2015년 해체하여 소속사의 유일한 아이돌이 된데다, 함께 소속되어있는 솔로 여가수와 보컬 그룹들이 거의 방송에도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라 정말 EXID 혼자 모두를 먹여살려야 하는 처지(...) 사실 역주행으로 소속사를 지옥에서 끌어올리다 시피 했고, 역주행 이후에도 빚갚으랴 소속사 식구들 먹여살리랴 바빴고, 최근에는 지하 사무실을
드디어지상으로 끌어올리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등 이분야의 끝판왕같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2.1.2 솔로 가수
- 아이유 - 로엔 엔터테인먼트의 소녀가장. 걸그룹 런칭 실패로 회사가 망할 시점에 억지로 솔로로 데뷔하여 게임방송 등을 전전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이후 같은 소속사에서 피에스타, 히스토리 등을 내놓았지만 중박이상 치지를 못하였다. 선배 그룹인 써니힐 역시 제대로 수익이 나올 정도로 지명도를 쌓지 못하고 있다.
- NS윤지, 김소리 - 아이유의 열화 버전인 케이스로 둘 다 비슷한 상황. 본인들 인지도도 좋은 편이 아니지만 어쨌든 소속사를 먹여살리고 있다. 개인 능력치는 썩 나쁜 편은 아니지만, 소속사 기획력이 심히 떨어진다. 덕분에 각종 행사 및 피처링 등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하지만 인지도는 항상 제자리. 데뷔 초에는 유망주였으나 이미 젊은 시절을 보내버리고 어느샌가 반짝 흥행을 노린 기획사의 각종 싸구려 노출 컨셉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3 비유적 의미 / 스포츠
비인기 종목, 혹은 국제대회 깜짝 활약으로 단번에 스포츠계 전체를 짊어진 어린 여자선수들의 상황을 빗대는 의미로도 쓰인다.
- 한국 여자배구
- 김연경 -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여자배구계의 절대자. 배구 여제.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주포를 맡으며 대표팀을 8년 만에 2012 런던 올림픽으로 영도하여 4강에 올린 것은 물론, 2005년 데뷔 후 줄곧 한국-일본-터키 리그를 제패하고 거치는 팀마다 우승을 안겨주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에이스라서 그만큼 몰빵과 상대팀의 견제를 수없이 당한다.
- 백목화 - 2012-13 시즌 소속 팀 한정. 물론 그 이후로도 팀에서 가장 믿을 만한 공격옵션이기도 하다.
- 한송이 - 도로공사 시절 한정. 이 당시 득점왕도 차지했었다.
- 양효진 - 소속 팀 한정. 12-13, 13-14시즌 득점부문에서 외국인 선수 빼고 보면 1위를 차지했다. 배구에서 득점을 많이 책임지지 않는 센터 플레이어인데 이런 수준... 소속팀의 외국인 잔혹사와 날개진의 부진이라는 상황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소녀가장.
- 한국 여자축구 - 박은선, 지소연, 여민지로 이어진다.
- 피겨스케이팅 - 김연아. 김연아 등장 이전, 한국 피겨계는 그야말로 안습이었을 뿐 아니라 종목 자체에 대한 관심과 인지도가 바닥이었다. 세계가 보는 대한민국은 피겨 스케이팅의 불모지였다. 김연아 등장 이전엔 북한에게도 밀렸다.[4][5] 이런 상황에서 정말 뜬금없이 나타난 천재가 김연아였다. 김연아가 노비스 시절이었던 2002년 트리글라브 트로피 대회에서 딴 금메달이, 한국이 피겨스케이팅 국제대회에서 딴 최초의 금메달[6]이었다. 김연아가 2005년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딴 은메달은, 한국이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대회에서 최초로 딴 메달이었다. 주니어 시절 김연아의 대회 영상을 보면 해설자들이 김연아를 가리켜 '한국에서는 이만한 레벨의 선수가 이제까지 없었다'는 찬사와 함께 한국의 열악한 훈련 환경을 꼭 한번씩은 언급한다. 김연아의 등장 이후 한국 피겨계가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김연아가 시니어에 올라와 피겨계에서 전설적인 위치에 오른 후에도, 외신들이 '한국은 김연아 밖에 없다'는 투로 어그로를 끄는 일이 많은 등 완전히 소녀가장 취급이었다. 현재 '김연아 키즈'들로 불리는 세대들이 속속 시니어 레벨로 올라오면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김연아의 후계자로 불릴 만한 레벨의 선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 E스포츠
- ↑ 그나마 나머지 멤버들이 조금씩 인지도를 쌓고 있다...가 2016년 그룹 해체로 현아의 소녀가장 노릇은 끝났다.
- ↑ 수지는 슈퍼스타K 광주 지역 오디션을 보러왔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중간에 JYP기획사 사람을 만나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화장실에 감사해야한다.수지가? 아니 JYP가 - ↑ 정확한 시기가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논란이 좀 있는데 2013년 하반기까지도 리더를 정은지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 ↑ 북한의 경우 김일성이 피겨스케이팅 팬으로 알려져 있다. 덕분에 여러모로 남한 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남한엔 아직까지도 없는 피겨스케이팅 전용 빙상장이 북한에는 있다.
- ↑ 대한민국이 단 한 장의 출전권도 획득하지 못했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경우에도, 북한은 여자싱글에 김용숙이 출전할 수 있었다. 저 당시 김연아가 연령 제한일(전년도 7월1일 기준으로 만 15세)에 두 달 정도 모자라 주니어에 있었을 때였다.
- ↑ 한국이 피겨스케이팅 국제대회에서 딴 최초의 메달은 정성일이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딴 은메달이었다. 정성일 선수는 94년 동계올림픽에서 최종순위 17위라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는 김연아 등장 이전까지 한국 피겨가 올림픽에서 거둔 가장 높은 순위였다.
- ↑ 2005년까지 여성부 스타리그가 있었고, 조용호의 KTF이적 이후 소울에서 개인리그 상금을 제대로(레이디스 MSL 우승상금 300만원 등등.) 벌어오던 선수는 서지수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