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축구인)


선수 시절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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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육중완?

이름소크라치스 브라질레이루 삼파이우 지 소우자 비에이라 지 올리베이라
(Sócrates Brasileiro Sampaio de Souza Vieira de Oliveira)
생몰년월일1954년 2월 19일 ~ 2011년 12월 4일
국적브라질
출생지파라 주 벨렘
포지션공격형 미드필더
193cm
프로 입단1974년 보타포구 FC 입단
소속팀보타포구 FC(1974~1978)
SC 코린치안스(1978~1984)
ACF 피오렌티나(1984~1985)
CR 플라멩구(1986~1987)
산투스 FC(1988~1989)
보타포구 FC(1989)
가포스 타운(2004)
Give my goals to a better country.

더 좋아진 나라에 내 골을 바치리라.

브라질의 축구 선수이자 레전드. 그리고 의사다. 의대 재학중 국가대표로 나갔다.

1 소개

본명은 소크라치스 브라질레이루 삼파이우 지 소우자 비에이라 지 올리베이라(Sócrates Brasileiro Sampaio de Souza Vieira de Oliveira)로 조금 길다.(...)조금이 아니라 엄청 긴데?! 소크라테스는 그의 아버지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따서 지어준 이름이다.[1] 어째 유래가 된 이름의 주인공하고 닮게 늙어버린건 자랑인지 안자랑인지 좀 애매하게 되었다.[2] 클럽통산 396경기 207골. A매치 60경기 22골.

1980년대 세계를 풍미한 수퍼스타로,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특유의 곱슬머리헤어밴드, 턱수염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으며, 티에리 앙리무한도전에 출연했을 당시 곱슬머리를 하고 나온 정준하를 보고 소크라테스를 닮았다고 했던 적도 있다.(...)

1974년 보타포구 FC에서 데뷔한 이래로 선수생활 대부분을 브라질 리그에서 보냈으며, 특히 1978년부터 1984년까지 SC 코린치안스에서 300경기 가까이 뛰며 팀의 레전드가 되었다.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세리에 A ACF 피오렌티나에서 뛴 적이 있었는데, 이 당시 국가대표팀 동료였던 지쿠도 우디네세 칼초에서 뛴 바 있다.

이후 CR 플라멩구산투스 FC를 거쳐 1989년 보타포구에서 선수생활을 정리했으나, 2004년 50세의 나이잉글랜드 아마추어 지역 리그의 가포스 타운과 1달간 계약을 맺어 타드캐스터 알비온과의 경기에서 후반 35분 교체 출전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당시 팀의 주장을 맡아 참가했는데, 이 당시 브라질 국가대표팀은 지쿠, 소크라테스, 팔카오, 세레조로 이어지는 이른바 황금 4중주로 명성을 떨쳤다. 현재도 역사상 가장 강한 축구 팀 10위안에 들어갈 정도. 하지만 이탈리아, 아르헨티나와 같은 조에 편성되파올로 로시가 미쳐 날뛰는 불운으로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이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8강에서 미셸 플라티니가 이끌던 프랑스를 만나 탈락했다.

이외에도 1979년과 1983년 두 차례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지만, 각각 3위와 준우승에 머물며 국가대표팀에서는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 플레이 스타일

탁월한 시야를 보유해 경기장 곳곳에 위협적인 패스를 뿌려주는 역할을 했으며, 경기를 읽는 능력도 뛰어났다. 게다가 양발잡이에 몸싸움 능력까지 갖추었으며, 노룩 힐패스 등 엄청난 테크닉까지 보유하고 있었으니 가히 플레이메이커의 정석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

3 엄친아

소크라테스는 축구 선수로서는 드문 의대 출신으로 오오 과연 히포크라테스친구 오오 의학 박사 학위 및 전문의 자격증(소아과)까지 보유했으며, 본인의 이름처럼 피델 카스트로체 게바라, 존 레논과 같은 당시의 혁명가들을 존경한다고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인텔리 가문 출신으로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철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3] 여러 분야에 대해 상당히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은퇴 이후 소아과 의사로서 진료를 함과 동시에 신문이나 잡지에 자신의 칼럼을 싣거나 축구 관련 소설을 쓰기도 했다. 축구 해설가로도 활약했는데, 전술에 의존하는 현대 축구를 비판하며 축구를 하나의 예술로 보는 낭만주의자였다.

4 기타

  • 소크라테스가 코린티안스에서 뛸 당시에 브라질은 군부 독재 시기였는데, 소크라테스는 팀의 운영 방식에 민주주의 시스템을 도입한 뒤 경기때마다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유니폼을 입고 나와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이후 코린티안스가 성공을 거두자 브라질 내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결국 군부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들어서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1]참고.
  • 축구선수 중에서는 드물게 애주가골초였는데, 1986년 월드컵 때에는 하프타임 때마다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선수 시절 당시에는 하루 평균 말보로 담배 3갑을 피웠다고 하니, 이쯤이면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
  • 여담으로, 선수 시절 아일랜드의 더블린 대학교에서 유학을 했다는 설이 세계의 많은 미디어 매체에 보도되어 정설로 받아들여졌었는데, 정작 더블린 대학교에서는 이를 부인했다.
  • 동생인 하이 역시 축구선수다. 형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선수였으나 형보다는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교체멤버로나마 월드컵에 출장해 우승을 차지한 건 동생쪽이었다.
  • 과거 무한도전티에리 앙리가 출현했을 때 앙리가 당시 정준하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소크라테스가 떠오른다고 말했었다.

5 사망

의사였지만, 애주가에 골초였던 그는 당연히 건강이 좋을 리 없었고,[4] 2011년 8월 19일 알코올 과다 섭취로 인한 위장 출혈 증세로 자가호흡이 힘들 정도로 위독해져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열흘 뒤 퇴원했는데, 그 해 12월 1일 패혈증으로 인한 쇼크 증세로 인해 다시 병원에 입원했고, 결국 12월 4일에 향년 5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소크라테스의 사망 이후인 12월 30일에는 상파울루의 모룸비 스타디움에서 소크라테스의 사망을 추모하는 자선 경기가 열렸으며, '지쿠의 친구들' 팀이 '브라질의 스타들' 팀에게 7:5 승리를 거두었다.

  1. 소크라테스의 아버지 역시 의사였으며, 취미가 철학 공부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을 좋아했다. 소크라테스의 형제들도 모두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이름을 갖고 있다.
  2. 소크라테스는 추남으로도 유명하다.
  3. 의학 박사, 철학 박사. 박사 학위만 2개다.
  4. 의사 말 들으면 살지만 의사 따라하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