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군나르 솔샤르

(솔샤르에서 넘어옴)

이름올레 군나르 솔섀르 (Ole Gunnar Solskjær)
생년월일1973년 02월 26일
국적노르웨이
출신지크리스티안순
포지션공격수, 윙어 미드필더
신장178cm
선수시절 등번호20번
프로입단1989년 클라우센겐 FK
소속팀클라우센겐 FK (1989 - 1994)
몰데 FK (1994 - 199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6 - 2007)
국가대표67경기 23골
지도자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리저브 팀 감독 (2008 - 2011)
몰데 FK 감독 (2011 - 2013)
카디프 시티 FC 감독 (2014)
클라우센겐 FK 유소년 팀 감독 (2014 - 2015)
몰데 FK 감독 (2015 - )

퍼기 타임의 지배자

동안의 암살자

슈퍼 서브

캄프 누의 기적의 주인공

1 개요

노르웨이의 前 축구선수. 동안의 암살자[1] 슈퍼서브라는 별명을 가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등번호인 20번을 따서 '20LEGEND'로 불리기도 한다. [2]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노르웨이인이란 소리도 들을 정도로 명성을 날린 축구선수이다. 굉장히 동안이라서 1996년 맨유에 입단했을 때, 라이언 긱스[3]는 그가 선수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어린 팬이 연습장 구경을 허가받았거나 연습생인줄로 생각했다고 한다. 심지어 축구계의 대표 노안 아르옌 로벤보다 11살 연상인데 아무리 봐도 로벤이 11살 연상으로 보인다(...)

실력도 뛰어났지만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선수로 동료와 팬들 사이에서 정평이 났으며 팀에 대한 헌신도 매우 뛰어나서 현역일 때는 물론이고 은퇴한 지금도 팬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오죽하면 구단에서 팬클럽에게 올드 트래포드에 공식적으로 걸 수 있는 현수막 수량을 2개로 지정했는데 그 중 하나가 솔샤르의 응원 현수막일 정도다.[4] 인상적인 골을 여럿 넣었지만 특히 트레블을 달성한 1999년 UEFA 챔피언스 리그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전에서 추가 시간에 기록한 극적인 역전골과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시합에서 교체 출전 11분만에 4골을 넣은 것이 유명하다.

2 공격수인가? 공격형 미드필더인가?

대다수의 축구팬들은 솔샤르의 포지션에 대해서 그간 별다른 이견 없이 공격수로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대한민국의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이자 MBC 축구 해설위원인 안정환이 2016년 2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MLT-19에 출연하여 "솔샤르는 공격수가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발언해서 때아닌 포지션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심지어 이 발언을 했던 안정환은 시청중인 네티즌들에게 '축알못' 취급을 받았다. 이에 빡친 안정환은 '자신은 축구만 35년을 했다.'고 강변하며 '자신도 스트라이커가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였으며, '왜 솔샤르가 공격형 미드필더인지'에 대한 근거까지 조목조목 따지자, 상당수 네티즌들은 이에 수긍하기 시작했다.

이때 안정환은 미드필드 서드존에 있는 선수를 전원 미드필더라고 부르고, 어태킹 서드존에 있는 걸 공격수라고 말했다. 솔샤르는 미드필드 서드존에서 어태킹 서드존으로 올라가는 선수이기 때문에 미드필더라고. 또 포팅 지역에서 뭔가를 보여주는 선수가 솔샤르라고 말했다.팟수: 그럼 공격수네? 안느: 미드필드에서 공격으로 간다고! 안정환의 정의를 보면 어느 존에 배치되어 플레이를 시작하느냐에 따라 스트라이커, 미드필더, 수비수가 나뉘진다고 할 수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수비수의 자리까지 내려가 수비를 봤다고 해도 수비수가 되는 건 아니고, 김병지가 드리블을 치고 올라가 공격한다고 공격수는 아니라고.흥분해서 말이 이상하게 나왔지만

여기서 안정환은 공격형 미드필더가 미드필드 서드존에서 어태킹 서드존으로 올라가는 플레이를 한다고 보고 있는 걸 알 수 있는데, 이 얘기를 한 다음에 예전에는 공격형 미드필드는 공격만 한다고 딱 정해놨는데, 요즘은 그렇게 구분하진 않죠. 미드필더가 공격과 수비를 모두 소화할 수 있어야 하죠.라고 말했다. 솔샤르가 전형적인 타겟형 스트라이커가 아닌 것은 사실이니, 섀도우 포지션에서 느닷없이 치고 들어가는 스타일의 솔샤르를 안정환이 굳이 어태킹 미드필더라고 보고 싶다면야 그건 개인의 자유다. 물론 반대로 공격수잖아?라고 하는 것도 자유다 어쩌면 솔샤르가 워낙 동적이고 다재다능한 선수이기 때문에 나오는 논란일 수도. 안정환의 말을 전적으로 수긍한다면, 공격지역에 솔샤르가 투입되는 순간, 맨유는 일종의 제로톱 상황에서 플레이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

SBS Sports장지현 해설위원은 "공격형 미드필더와 세컨드 스트라이커의 명칭은 감독 편의에 달린 것"이며, "공격수인가 공격형 미드필더인가에 대한 논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며 안정환 해설위원의 의견에 대해 수긍하는 태도를 비췄다.# 반면 KBS N 스포츠한준희 해설위원은 안정환 해설위원이 솔샤르를 '패스마스터'로 칭하는 것으로 보아서 폴 스콜스와 착각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면서[5], 솔샤르는 공격수라고 답했다.# 한편 안정환은 해당 방송 중에서 솔샤르와 스콜스를 헷갈린 것이 아니라고 답했다.[6]] 스콜스 항목에도 있지만, 폴 스콜스는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부르기에 좀 애매한 선수이니 헷갈렸을 가능성은 낮다. 스콜스는 어느 자리에서도 제 역할을 잘 하는 축잘알 선수이지만 기본적으론 중앙 미드필더이고 오히려 이보다 좀 더 후방으로 내려가서 플레이 하는 경우도 잦았다. 사실 스콜스는 본래 공격수 포지션에서 뛰다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지도 하에 포지션을 변경한 뒤에 포텐이 터진 케이스인지라, 스콜스를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더해 솔샤르랑 착각하는 두 가지 확률이 겹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솔샤르와 동료 사이였던 박지성까지 나서게 되었는데, 그는 "솔샤르는 공격수죠"#라고 디스답했다.[7]

솔샤르가 어떤 의견을 내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 그가 대답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이 논쟁은 미궁 속에 빠지게 되었으며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그냥 '안정환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이런거 논쟁할 시간에 그냥 안정환을 축알못이라 하는게 편하다' 선에서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게 재밌잖아[8]

3 선수 경력

3.1 맨유 입단 이전과 입단 전후 상황

아버지는 노르웨이 국가 대표까지 지낸 레슬링 선수로 솔샤르 본인도 꽤 오랫동안 레슬링을 하다가 상당히 늦은 나이에 축구로 전향했다. 포지션은 축구 시작할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오로지 미드필더공격수였다. 어릴 때는 체격 문제도 있고 해서 축구를 계속할지를 고민한 적도 있다고. 17세 되던 1989년에 노르웨이의 클라우센겐 FK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는데 오타 컵 경기에서 단 6경기만에 17골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으며 1995년 몰데 FK로 이적해서 첫 해에 20골을 기록하는 눈부신 활약을 했다. 몰데에서는 총 38경기 31골을 기록했으며 이런 활약에 힘입어 독일과 이탈리아 팀이 관심을 보였다. 96년도 여름 이적시장 당시 몰데의 감독은 팀의 에이스를 자신의 맨체스터 시티 FC에버튼 FC에 1.2m에 팔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9]

한편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당시 프리미어 리그 톱 공격수였던 앨런 시어러를 영입하려고 노력했지만 막판에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 하이재킹당해서 실패한 후, 평소 눈여겨 보았던 솔샤르에 1.5m의 영입제의를 했다. 이 금액은 당시로서는 노르웨이 리그 레코드에 상당하는 금액이었고 노르웨이 리그의 낮은 인지도, 솔샤르가 노르웨이 밖에서는 듣보잡(...)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오죽하면 몰데의 감독은 퍼거슨의 팩스를 받았을 때 솔샤르의 에이전트가 몸값을 올리려고 꼼수를 쓰는 줄 알고 팩스를 버렸을 정도. 혹시 몰라 맨유 측에 확인전화를 해봤는데 그 팩스가 레알이라고 인증을 받자 팀이 발칵 뒤집어졌다. 맨유의 이러한 파격적인 제의가 알려지고 나서 노르웨이가 술렁였으며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자 솔샤르는 매우 부담스러워 했다. 그러나 쟁쟁한 선수들(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로이 킨 등)과 함께 뛸 수 있다는 감독의 설득으로 솔샤르는 이적 결심을 했고 1996년 여름 올드 트래포드에 도착했다.

3.2 슈퍼 서브 솔샤르

당시 솔샤르의 영입은 완전히 뜻밖의 영입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노르웨이 리그는 1부 리그라 해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데다 솔샤르의 활약도 노르웨이 내에서나 유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맨유에는 에릭 칸토나, 앤디 콜이라는 탁월한 공격수가 버티고 있었기에 주변에서는 그가 그 둘의 백업자원으로 첫 시즌을 보낼 것이라고 예상했다.[10]

그러나 예상외로 기회가 일찍 찾아왔고 블랙번 로버스와의 시합에서 교체로 출전해서 6분만에 데뷔골을 넣었으며 첫 시즌 19골을 넣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1998/99 시즌, 드와이트 요크가 이적해 옴에 따라 벤치 멤버로 밀려났고 맨유 구단에서도 그를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팀으로부터 팩스를 받은 솔샤르가 퍼거슨 감독을 찾아갔을 때, 그의 이적허가는 감독의 뜻과는 무관하며 그가 여전히 팀 구성에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벤치로라도 팀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남겠다고 하여 그대로 남게 된다.[11] 이후로 선발보다는 교체로 주로 출전했는데 이것은 솔샤르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기적을 일궈내는 해결사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 노팅엄 포레스트전에서 경기 종료 11분을 남겨두고 교체 출전하여 무려 4골을 터트리는 결정력을 보여주었으며, 이 이후 '슈퍼 서브'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는다. 이 별명이 보여주듯 교체로 출전하면서 결정적인 골을 많이 넣었기 때문에 그가 벤치에 앉아있기만 해도 상대팀이 압박을 느낀다고 할 정도였다. 또한 아스날 FC아르센 벵거 감독은 그를 평하기를 "98-99 맨유 트레블 역사, 그 중심에는 셰링엄과 솔샤르가 있었다."라고 하며, 그가 은퇴할 때 '그는 아주 효율적인 선수였다.'라는 요지의 인터뷰도 했다. 다만 솔샤르 본인은 슈퍼서브라는 별명을 싫어했던 듯. 그리고 의외로(?) 선발로도 자주 출전했다. 드와이트 요크, 앤디 콜과 선발 경쟁을 해서 한때 그 둘을 벤치로 보낸 시기도 있으며 특히 베컴이 부상으로 장기 결장했을 때나 이적 때는 오른쪽 윙으로도 자주 출장했다. 뭐야 미드필더 맞네

3.3 영광의 선수 생활

꾸준히 성적을 쌓아가던 솔샤르는 1998년 리그 종반에 뉴캐슬과의 시합에 출전하게 된다. 당시 맨유는 아스날과 리그 우승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중이었고 뉴캐슬과의 시합에서 최소한 무승부는 기록해야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시합에서 1:1로 팽팽하게 경기가 진행중이던 찰나, 뉴캐슬의 로버트 리 선수가 결정적인 역습 기회를 잡아 텅 비어있던 맨유쪽 골문으로 쇄도했다. 10명의 선수가 모두 뉴캐슬쪽에 몰려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맨유로서는 치명적인 위기였다. 이 때 솔샤르는 전속력으로 로버트 리 쪽으로 내달려서 따라잡아 백태클을 날려서 맨유의 실점 위기를 저지하고 퇴장당했으며 다음 시합에 출장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맨유 서포터들은 팀에 대한 그의 헌신적인 태도에 깊이 감명받았고 퇴장당하는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 일은 이후 그가 서포터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지와 인기를 누리는 계기가 되었다.[12]

그리고 다음 시즌 1998/1999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맨유의 트레블은 절망적으로 보였다. 맨유는 로이 킨폴 스콜스가 경고누적으로 출장하지 못했고, 철의 수문장 올리버 칸이 버티고 있던 FC 바이에른 뮌헨의 골문은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경기 내내 끌려다니다 0:1로 지고 있던 상황. 챔피언스리그 트로피 '빅 이어'에 뮌헨의 리본이 감기고 있던 순간.[13] 그러나 91분, 교체투입된 테디 셰링엄이 로스타임에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데 이어 93분에 터진 솔샤르의 역전골로 트레블 달성의 일등공신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맨유 역사상 가장 빛난 시즌 중 하나인 1999년의 트레블은 바로 솔샤르의 발끝에서 마무리된 것이다. 퍼거슨 감독이 2011년 11월에 감독 재임 25주년 기념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을 골랐을 때, 첫 손가락에 꼽은 것이 바로 이 골이다.

2002/03 시즌에는 맨유 입단 후 100골을 달성하였고 리그 우승도 경험한다. 2003/04 시즌에는 데이비드 베컴의 이적으로 인해 오른쪽 윙으로 뛰게 되지만, 시즌 초반 부상으로 그의 커리어 내내 발목을 잡으며 따라다니게 되는 기나긴 무릎 부상에 시달리게 되었고, 부상 회복 후 다시 부상이 재발되는 불운으로 결국 2004/05 시즌에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팬들은 계속해서 그를 기다렸고 그가 없는 경기에도 그의 응원가를 불렀다. 구단 측에서도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면서 장기 부상으로 인한 결장하는 와중에서도 계속해서 솔샤르와 재계약을 맺었다. 2005/06 시즌 기나긴 부상에서 회복했으나 실전 감각 회복을 위해 리저브 경기에서만 뛰게 되었다. 2006/07 시즌이 되면서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솔샤르는 예전 명성을 되찾으며 뛰어난 결정력을 보여준다. 리그에서 19경기 출장[14]하여 7골[15]을 기록하여 '2OLEGEND'의 명성을 되찾게 해 주었다.

3.4 은퇴

하지만 커리어 내내 따라다니던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2007/08 시즌 개막 직전 현역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 [16] 얼마 후 선덜랜드와의 홈 경기에서 한때 팀 동료였던 로이 킨 당시 선덜랜드 감독과 올드 트래포드 관중들의 기립 박수 속에 은퇴식을 치렀다. 2008년 8월 솔샤르는 RCD 에스파뇰과의 친선경기에서 공식적인 은퇴를 기념하는 경기를 가졌다. 맨유는 이 경기에서 프레이저 캠벨의 결승골으로 1-0 승리를 거뒀다.

솔샤르는 은퇴 기자화견에서 '감독님, 코치 그리고 매디컬 스탭 뿐만 아니라 지지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팬들은 언제나 나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내가 상처를 입었을 때, 묵묵히 격려를 보내준 것에 감사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11년 동안 뛸 수 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솔샤르는 그리 뛰어나지 않은 피지컬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활동량과 센스있는 돌파를 통해 공간을 창출하고, 원샷 원킬의 뛰어난 골 결정력으로 마무리짓는 스타일로, '동안의 암살자'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선수였다. 혹자는 마이클 오언의 전성기와 비교하기도 하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하비에르 에르난데스가 솔샤르와 흡사한 스타일의 선수라고. 다만 최전방 공격수뿐 아니라 측면 공격수로서도 뛰어난 플레이를 보였으며 기본기가 좀 약한 에르난데스와는 달리 기본기도 잘 갖춰진 선수다.

다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장시간 플레이를 소화할 수 없어 후반에 교체 투입되는 일이 많았는데, 그러고도 넙죽넙죽 골을 잘만 넣었다(...). 만약 솔샤르가 유리몸이 아니었더라면 대체 얼만큼 골을 넣었을까 하는 것은 호사가들의 화젯거리. 11분에 4골이니 인저리 타임 포함해서 한경기 95분이라 한다면 8.53 * 4 * 38이므로 시즌의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뛴다면 1296골을 넣을 수 있다! 기적의 골 결정력!

5 감독 경력

선수로 맨유와 맺은 마지막 계약 때 코치로 전환하는 조항이 들어있었으며 이에 따라 2007년 은퇴 후 맨유의 리저브 팀 감독으로 있다가 리저브 리그에서 우승하고 2010년 친정인 노르웨이 클럽인 몰데 FK의 감독이 되었다. 원래 선수 시절에도 경기 진행 사항을 체크하면서 상대팀의 약점이나 빈공간을 분석하는데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17] 노르웨이 국가대표팀 감독직도 제의받았는데 아직 너무 이르다면서 거절했다. 2010년 11월 맨유를 떠나면서 한 말이 '25년 뒤에 맨유의 감독으로 돌아오겠다.' 였는데, 노르웨이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점점 기대치가 올라가고 있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듯 블랙번의 감독설이 뜨는 등, EPL 복귀설이 나돌다가 2011년 10월 22일에 포츠머스 FC 감독설이 떴다.

[1]

구단주가 직접 노르웨이로 가서 비드를 넣었다는 둥의 소문이 무성하다. 한편, 노르웨이 리그에서는 계속 순항하다가 2011년 10월 몰데 클럽 역사상 최초로 우승컵을 들어올려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18] 그와 동시에 일거에 포츠머스 감독 1순위로 신문을 도배했으나 결국 몰데 감독으로 남기로 한 듯하다.[19] 그리고 2011년 11월, 포츠머스의 구단주가 부정혐의로 체포되어 구단주를 사임하고 선수들의 주급이 정지되는 사태가 일어나면서 솔샤르의 팬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었다. 하여간 솔샤르가 선수로서만이 아닌 감독으로서도 재능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맨유팬들은 향후 성적에 따라 그가 정말 퍼거슨의 후임이나 그 다음 후임으로 올 수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중인데 2012년 초에 한 인터뷰에 따르면 잉글랜드 클럽 몇 군데에서 감독직 제의가 있었으나 본인은 아직 갈 생각이 없다고 한다.

몰데 FK는 2011년 노르웨이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2차 예선부터 참가 가능하다. 그리고 2012년 노르웨이 리그 개막 전에 치른 프리시즌 시합에서 노르웨이러시아의 팀들과 겨뤄서 4승 1무를 기록하며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었다.

감독이 된 후 FM을 즐기는 모양이다. 실전에도 많이 참고한다고.

2014년 1월, 위기에 빠진 카디프 시티가 말키 맥케이 감독을 해임하고 솔샤르를 끈질긴 설득 끝에 데려온다. 본인이 감독직을 수락하면서 "환상적인 도전이 될 것이다"라고 인터뷰한 것을 보면 EPL로의 복귀에 흥미가 갔던 듯. 김보경의 소속팀인 만큼, 국내 언론의 시선 역시 모이고 있다. 그리고 카디프 감독으로서의 데뷔전이라고 할 수 있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의 FA컵 64강전에서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리그에서 줄곧 강등권에 빠진 끝에 결국 가장 먼저 강등이 확정되고 말았다. 즉 EPL 감독 첫 경력을 리그 강등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구단주의 횡포에 솔샤르의 경험 부족이 겹치면서 이렇게 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다음 시즌에도 감독을 계속 할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 2014년 9월 18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그 후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클라우센겐의 유소년 팀 감독을 맡기도 하다가 2015년 10월, 몰데 FK에 감독으로 다시 돌아왔다.

6 기타

사실은 리버풀 FC의 팬이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리버풀과 경기하는 것이 껄끄러웠다고.

퍼거슨의 취임 25주년 기념 경기인 선덜랜드전에서 직관하는 게 포착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2년 골닷컴에서 자신이 뛰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베스트 11을 뽑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깨알같은 루니와 호날두는 벤치

이 항목은 첼시와 노르웨이 국가대표팀의 간판 스트라이커인 토레 안드레 플로보다 먼저 개설되었다.[20]

7 경력

7.1 선수 경력

7.1.1 대회 우승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6/97 - 2006/07)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6) : 1996/97, 1998/99, 1999/00, 2000/01, 2002/03, 2006/07
    • FA 컵 (2) : 1998/99, 2003/04
    • FA 커뮤니티 실드 (3) : 1996, 1997, 2003
    • UEFA 챔피언스 리그 (1) : 1998/99
    • 인터콘티넨탈 컵 (1) : 1999

7.1.2 리그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리그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95몰데 FK노르웨이 프리미어 리그262000--42
1996몰데 FK노르웨이 프리미어 리그121100--00
1996/97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3183000101
1997/98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226220061
1998/99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1912813362
1999/00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28120010113
2000/01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1102122110
2001/02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0172100157
2002/03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792141144
2003/0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130301021
2004/05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00000000
2005/06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0002000
2006/07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197621161

7.2 감독 경력

7.2.1 대회 우승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리저브팀 (2008/09 - 2010/11)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저브 리그 (1) : 2009/10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저브 북부리그 (1) : 2009/10
    • 랭커셔 시니어 컵 (1) : 2008/09
    • 맨체스터 시니어 컵 (1) : 2009
  • 몰데 FK (2001 - 2013, 2015 - )
    • 노르웨이 프리미어 리그 (2) : 2001, 2012
    • 노르웨이 풋볼 컵 (1) : 2013
  1. baby faced assassin. 정작 본인은 이 별명을 안 좋아한다. baby faced라는 건 자신이 어려보이고 행복해보인다는 뜻이라서 좋아하지만 암살자라는 표현은 안 좋아한다고
  2. 등번호 20+이름인 OLE+LEGEND의 합성어. 그리고 이 문서는 '20 Legend'로도 들어올 수 있다.
  3. 긱스가 10개월정도 동생이다.
  4. 나머지 하나는 뮌헨 참사를 애도하는 현수막이다.
  5. 옛날 국내 EPL 중계방송에서는 폴 스콜스(Paul Scholes)를 폴 숄스로 표기했었다고 한다.
  6. 포팅 지역에서 뭔갈 보여주는 선수가 솔샤르이며, 어디서 갑자기 감독을 하더라, 라고 하는 걸 보면 헷갈린 건 아닌 것 같다.패스 마스터라고 한 건 말이 헛나온 것 같지만
  7. 여담으로, 솔샤르의 현역 생활 마지막 골을 어시스트한 장본인이 바로 박지성이다.
  8. 사실 십수년간 프로 선수 생활을 했고, 유럽과 아시아 등 여러 무대에서 뛰었으며 국가대표로도 맹활약한 안정환을 '축알못' 이라고 보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이라는 것.
  9. 후에 96~97 시즌이 시작하고 얼마 후 솔샤르의 실력이 입증되자 그 두 팀이 그를 놓친 것에 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10. 후에 솔샤르는 퍼거슨 감독이 그에게 "너는 미래를 보고 영입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11. I will stay라고 대답했다고. 이때 그의 에이전트는 이적을 적극적으로 권유했기 때문에 잔류를 원하는 솔샤르와 의견충돌을 빚었는데 솔샤르가 강력하게 의견주장을 해서 남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 에이전트도 당시 솔샤르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인정했다.
  12. 그러나 이 퇴장으로 퍼거슨 감독에게 호되게 야단맞았으며 본인도 자신의 실수라 생각하는 듯.
  13. 베컴은 이 광경을 보고 속이 울렁거렸다고 회고했다.
  14. 거의 교체 출전이었다.
  15. 현역 선수로서 커리어의 마지막 득점이 된 일곱번째 골을 어시스트한 선수가 박지성이었다.
  16. 이 당시 시즌 개막 직전에 항상 하는 단체 사진까지 찍었는데 이미 클럽 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솔샤르가 은퇴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함구하였고, 며칠 뒤 본인이 직접 은퇴를 발표했다.
  17. 교체로 들어가면 그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플레이해서 득점했다고.
  18. 이 때의 몰데 선수 중에는 맨유로 이적하기 전에 솔샤르와 함께 뛰었던 동료 선수도 있었다고 한다. 솔샤르 왈, 그에게 우승컵을 안겨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19. 일설에는 그의 노르웨이 리그 우승을 듣고 퍼거슨 감독이 축하 메세지를 보내면서 EPL 리그 복귀는 신중해야 한다고 한 인터뷰가 신문에 뜬 이후에, 그때까지 도박사들의 포츠머스 감독 배당에서 1위였던 솔샤르의 배당율이 뚝 떨어졌다고.
  20. 솔샤르는 국가대표팀에서 토레 안드레 플로 때문에 주로 벤치를 지켰다. 그리고 브라질을 상대로 악몽을 일으킨 장본인도 토레 안드레 플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