淳常在 |
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 담송운 役. |
옹정제의 후궁일람 | |
옹친왕부 | 순원황후 황후 단비 화비 제비 경빈 여빈 조귀인 흔상재 |
황제로 오른 뒤 첫 수녀선발 | 황후 화비 단비 제비 경빈 여빈 조귀인 부찰귀인 심귀인 완상재 박이제갈특귀인 흔상재 하상재 순상재 안답응 여답응 지답응 |
막수시절 | 황후 단비 경비 제비 기빈 안빈 혜빈 흔귀인 녕귀인 |
환궁 | 황후 단황귀비 경귀비 희귀비 리비 혜비 흔빈 녕빈 기귀인 영귀인 그 외 무수한 상재 답응들 |
1 소개
품계<:> | ||
순(淳)상재 | -> | 순귀인(추증) |
품계(원작) | ||||||
정7품 순(淳)상재 | -> | 종5품 방양원 | -> | 정5품 순빈[1] | -> | 정2품 순민(淳憫)비[2] |
거주지 : 쇄옥헌[3]
원작에서의 본명은 방순의. 애칭은 순아. 후궁견환전에서 은근히 레어한(...)[4] 만군기 출신의 후궁.[5] 견환, 심미장, 안릉용 등과 함께 간택되었다.[6] 다만 입궁은 견환보다 나흘 먼저 했다. 당시 간택된 수녀 8명을 선만몽 후한의 법도에 따라 만군기&몽군기 / 한군기 이렇게 두 조로 나누어, 한군기 소속인 견환-심미장-안릉용은 두 번째 조로 9월 15일에 함께 들어오게 했고, 나머지 한 조는 그보다 나흘 일찍(9월 11일) 들어오게 했는데, 앞에서 언급했듯 순상재는 만군기 소속이므로 첫 번째 조였고 따라서 견환보다 나흘 일찍 입궁한 것이다. 참고로 처음 간택되었을 때 나이가 겨우 14세였다(...) 다만 원작에서는 입궁할 당시 13살이었다(...)황제 이 자식 처음에는 견환의 병자 코스프레 때문에 병이 옮을까 걱정한 사람들이 다른 곳에 살게 하지만, 견환이 다 낫자 다시 쇄옥헌으로 옮긴다.
쇄옥헌에서 함께 살게 된 견환에게 첫 인사를 하러 왔다가 간식을 신나게 먹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했고(...) 여답응의 만행 때문에 겁먹어서 견환에게 찾아와 운 모습으로 두 번째 등장, 부찰귀인이 기절했을 때 병문안을 온 장면에서 대사를 딱 한 마디 하며 세 번째 등장한 이후 한참 동안 공기로 있었다. 너무 어려서 시침도 들지 못했고 아침 문안도 나오지 못했으니... 그러나 이후 시침을 들고 나서 본격적으로 비중이 늘어난다.아침 문안에도 나온다
2 모에 속성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은 캐릭터로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어린애이다. 확실히 다른 후궁들과 다른 면이 있어, 예를 들어 꽃구경 때에는 후궁들은 자기들끼리 디스하고 칼날이 숨겨져 있는 말을 주고받기 바쁜데 이 와중에 순상재만 혼자 멀리 떨어져서 이 꽃 이쁘다 저 꽃 이쁘다 하며 향기를 맡으며 엄청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
먼저, 대식가 속성이 있다. 웬만한 일은 음식을 들이대면서 잘 달래면 그냥 해결된다. (...)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징징거릴 때 견환이 자 여기 먹을 거, 라고 하니 금새 기분이 다 풀려 헤헤 웃으면서 잘만 먹는다 (...) 어머니가 보고 싶지만 그래도 궁중 음식이 맛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 (...) 견환 뱃속의 아이에게 태어나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걸 먹게 해줄게! 라고 말하는 걸로 보아서 가장 좋은 것이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아주 확고한 듯하다. 게다가 견환이 순상재가 먹는 것을 읊는 장면이 있는데, 읊는 걸 보면 이걸 어찌 다 먹었나 싶을 정도로 진짜 많다... 아침에 죽 두 그릇과 찐빵 세 개, 점심은 닭고기, 그런 다음 간식을 먹고 또 저녁으로 돼지고기 한 마리를 전부 돼지찜으로 먹고, 밤에는 야식까지(...)
둘째, 잘 웃는다. 첫 시침을 들 때 태감이 이렇게 웃는 소주는 처음 본다며 인증했다. 흫흫흐흥흫흫...이러면서 콧소리가 섞인 웃음소리를 자주 내는데 매우 귀엽다.
3 성격
천진난만하고 순진한 만큼 사심없이 착했기에, 견환이 회임한 사실을 무척이나 기뻐했고, 자신을 이모 삼아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 마냥 순수하기만 한 성격에도 장단점이 있다.
일단 단점부터 말하자면,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성격은 나쁘게 말하면 그만큼 눈치도 없는 넌씨눈이기도 하다. 그래서 첫째, 되려 안릉용의 열등감을 자극하곤 했다. 쇄옥헌으로 다시 이사하는 장면을 보던 부찰귀인이 안릉용에게 배배꼬인 말을 해서 더욱 그렇지만, 쇄옥헌에 옮길 때도 릉용의 열등감을 자극했다. 사실 같은 쇄옥헌에 살았기에 견환과 많이 친해진 것이 당연했으며 쇄옥헌으로 이사한 것은 정말 정치적 의도따윈 없는 순수한 우정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여기까지는 부찰귀인 때문이었다고 그렇다 치겠으나, 결정적인 한 방은, 비록 악의는 없었으나 릉용이 만든 침의를 폄하하여 본의 아니게 견환과 릉용의 사이를 갈라놓고 말았다. 이후 견환은 혹여나 릉용이 기분이 상했을까봐 달래주고 선물과 함께 너무 신경쓰지 말라는 언질을 보내기까지 했으나, 릉용은 그걸 또 순상재 때문에 일부러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려 한다고 오해해서 땅을 파고 들어갔다.잘해줘도 이 꼴, 못해줘도 이 꼴 뭐 어쩌라고견환이 이걸 어떻게든 회복해보려고 공식석상에서 안릉용의 감기를 걱정하자 또 나서서 나도 봐줘요~ 라고 말하기도 한다. (...)
둘째, 이 성격을 가지고 견환을 디스하는 부찰귀인을 닥치게도 만든 전적이 있다. 후궁간의 말싸움은 기본적으로 구밀복검으로 아무리 빡쳤어도 돌려말해야 하는데 (더구나 그게 황제 앞이라면) 부찰귀인은 견환의 촉금 신발을 빌미로 "너 낭비한다? ^^" 라는 뉘앙스로 견환을 디스했고, 여기 순상재는 솔직하게 "황제폐하가 좋으면 좋은거지, 부찰귀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화비나 흔상재도 못 날리는 돌직구를 날려 부찰귀인을 황당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는 닥치게 만들었다. 견환은 이 돌직구에 자기도 난감했는지 부찰귀인에게 표정으로 필사적으로 수습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사실 부찰귀인을 닥치게 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 성격으로는 오래 못 산다 (...) 순상재가 조금 더 살았다면 부찰귀인에게 역공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만일 화비나 황후(!)에게 이런 식으로 대했다면 시망 확정이다. (...) 악의는 없었지만 이 성격 탓에 여러모로 본의 아닌 어그로를 끌거나 적을 만들었을 듯하다. 오래 갈 것 없이 그녀를 질투한 화비가 실수하거나 무례하게 굴면 방법해 버리겠다고 벼르고 있었으니... 너무 순진하고 무탈한 성격이라, 음모와 술수가 판치는 궁중에서는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사실 그 동안 순수하다고 포장된 것도 어려서 포장된 거지... 순상재가 나이가 먹고 어느 정도 자랄 때에 그런 말을 했다가는... 끔살 확정일듯.
셋째, 넌씨눈인 탓에 분위기를 못 읽어서 견환이 어떤 흐름으로 상황을 주도하려 하는지 전혀 몰라서 방해(...) 를 하기도 한다. 청음각에서 연극을 볼 때 견환이 화비에게 까이고 있는 황후의 쉴드를 치기 위해 인생무상의 교훈이 있는 연극을 보자고 하자 순상재 왈 그건 결국 아시발꿈꿈으로 끝나니까 재미없다고 (...)
장점도 있다. 첫째, 황제의 총애도 이 성격 덕택이었다; 황제도 순상재를 그 솔직한 성격이 좋다면서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첫 시침을 들 때 순상재는 활짝 웃고 있었는데 이 모습이 황제를 반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황제 평하길 어린아이 같아서 정말 좋다고. 황후가 "이젠 어엿한 후궁이니 좀 더 어른스러워져야겠지요?" 하니 ㄴㄴ 아님 이대로가 존나좋군ㅋ 이런 걸 보면 정말 그 솔직함을 사랑한 듯하다.
또한 훈훈한 장면 제조기이다. 친화력이 쩔었던 것이다. 견환과 쉽게 친구가 되었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 하면 사가에서부터 같이 자란 심미장이 죽었을 때와 겨우 궁중에서 딱 1-2년 본[7] 순상재가 죽었을 때랑 견환이 비슷한 정도로 슬퍼한다 (...) 그리고 순상재와 견환, 황제가 같이 있는 장면은 여러모로 훈훈한 장면이 많다. 또한 겁도 많아 사람을 잘 믿지 않고, 대인관계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8] 안릉용을 웃긴 몇 안 되는 후궁 중 하나이다. 사람을 경계하는 안릉용과 같이 진심으로 꺄아꺄아 꺄르르륵 거리면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또한 후궁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장면에서 모두가 진심으로 함께 웃는 장면은 견환이 순상재에게 맛있는 걸 많이 먹어 살이 쪘다며 순상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은 음식을 쭉 읊어대며 놀리는 장면이 거의 유일할 정도이다. 심지어 그 화비까지 같이 웃고 있었다.
4 최후
견환과 같이 연을 날리다가 연이 떨어지자 연을 주우러간다. 거기서 우연히 화비의 매관매직 사실을 엿듣게 된다. 화비가 거래를 하고 있는 동안 망을 보고 있던 조귀인은 그녀를 목격한다. 그렇게 들켜 화비의 심복인 주녕해에게 붙잡혀 익사당한다. 이 때 겨우 17세였다. 사후 귀인으로 품계가 올라가게 된다. 죽은 사람에게는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하겠지만..... 이 사실을 안 견환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견환은 임신한 상태여서 황제는 아마 끔찍한 모습이 되었을 순상재의 시체를 견환의 아이가 떨어질까봐 보지 못하게 하였다.
5 기타
거주지가 모호하다. 일단 처음에 3화에서는 순상재가 동배전에서 산다고 했는데, 후일 견환은 기귀인에게 서배전은 순상재가 살았으니까 너는 동배전에 가서 사는 게 좋겠다고 얘기한다(...) 다만 이는 처음에는 쇄옥헌의 동배전에 살았으나, 다시 돌아왔을 때는 서배전으로 이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사실 가장 모호한 것은 견환의 병자 코스프레 때문에 이사한 거주지이다. 일단 계상궁, 저수궁, 연희궁, 함복궁 네 곳 중 한 곳으로 추정된다. 먼저 계상궁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쇄옥헌으로 다시 이사갈 때 보면 낙도당(樂道堂)이라는 전각에서 짐을 들고 나오는데, 이 낙도당은 다름 아닌 계상궁에 속한 전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수궁일 수도 있는 것이, 6화에서 흔상재와 함께 궁으로 돌아왔다고 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저수궁과 계상궁은 둘다 서6궁이라, 돌아오는 방향이 같았을 가능성은 있다. 그런데 연희궁으로도 추정되는 것이, 쇄옥헌으로 이사갈 때 부찰귀인과 안릉용이 함께 나와서 구경을 하고 있고, 이 때 안릉용은 바깥이 소란해서 나와봤다고 얘기하는데, 계상궁은 서6궁이고 연희궁은 동6궁이기 때문에 만약 계상궁이 처소라면 안릉용이 소란을 들었을 수가 없다(...)[9] 하지만 흔상재는 서6궁인 저수궁에 사는데, 순상재가 동6궁인 연희궁으로 옮긴 것이라면 두 사람이 밤에 같이 궁으로 돌아오는 것은 좀 이상하다. 함복궁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답응으로 강등된 심미장이 함복궁의 한월각에 연금되었는데, 그녀는 문을 열고 마당에서 깔깔거리면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순상재와 시녀들을 보고 한숨 짓는다.[10] 순상재가 추운 겨울날에 별로 친하지도 않은 경빈의 함복궁까지 와서 시녀들이랑 술래잡기를 하고 있을 리가 없으니 그냥 함복궁에서 살고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냥 제작 과정에서 생긴 옥에 티일 수도(...) 일단 중국의 백도백과에서는 연희궁이라고 적고 있다.
황후 평하길 달콤한 음식과 화려한 의복을 좋아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그 외에 노는 것을 좋아한다. 사가에서의 취미는 연날리기였고, 술래잡기의 인원을 맞추려고 애를 일곱 명씩이나 낳겠다고 하질 않나, 시녀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모습도 나오고, 주사위를 던지다가 이것저것 부수었다는(...) 언급도 나온다. 향분을 좋아하며, 꽃 중에서는 봉황화를 제일 좋아한다.
설정상 갈색 피부일 수 있다. 피부가 검다고 유모가 매일 향분을 발라주는 걸 보면...중국은 옛날부터 미의 기준이 하얀 피부이다.- ↑ 사후 추존
- ↑ 후궁 대승급 때 추존
- ↑ 본래는 쇄옥헌의 동배전에서 견환과 같이 살았으나, 다른 곳으로 이사갔다가 다시 쇄옥헌으로 돌아온 뒤로는 서배전에서 산 것으로 보인다. 동배전은 이후 기귀인의 차지가 된다.
- ↑ 황제 공인 레어인 것 같다. 기귀인을 고른 이유가 만군기 출신의 비빈이 적다는 것이었으니...
- ↑ 2화에서 전추가 들고 있었던 수녀 명부에 만군기라고 적혀 있었다.
- ↑ 견환과 동기인 뉴비들이 다 함께 황후에게 처음 문안 인사를 올리는 장면을 자세히 보면, 그 뉴비들 속에 순상재가 있다. 안릉용 바로 옆.
- ↑ 원래라면 3년이지만 견환이 병자 코스프레한 기간만큼을 빼야 한다.
- ↑ 황제 인증
- ↑ 사실 이 부분은 자금성 세트 자체의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 본래 낙도당은 계상궁에 속한 전각이지만, 견환전에서 사용한 자금성 세트에서는 낙도당이 연희궁에 속해 있다. 후궁견환전/옥에 티 항목의 3화 참조.
- ↑ 드라마 기준으로 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