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정제(후궁견환전)


생긴것 부터 소도둑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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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순상재와 견옥요에 다다라서는? 초도둑놈[1]

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로 진건빈 役.

1 소개

강희제의 4황자이자 이전에는 옹친왕. 강희제 사후 황제가 되었다. 이름은 애신각라 윤진. 기거하는 곳은 자금성의 양심전(養心殿). 원명원에서는 구주청안. 생일은 3월 18일.

다른 황자들과 정쟁을 벌여가며 가까스로 제위에 올라, 의 반석을 다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본인은 훌륭한 황제가 되고 싶어하지만 공신들의 전횡과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고심하고 있었다. 아파서 드러누웠을 때조차 상소문을 읽을 정도. 그러나 그 마음의 본질은 끝없는 권력욕으로[2], 황제의 위신에 흠집을 내는 것은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친왕 시절 적복진이었으나 난산으로 숨을 거둔 순원황후를 지금까지 그리워하는 순정남의 면모도 조금은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진건빈, 정효룡 감독과 나온 토크쇼에서 한창일 때 죽어서 그렇지 순원이 계속 살아있었다면 얼마 못 가 질렸을 거라고 말했다.[3] 이 점은 황후도 '언니를 죽인 것을 후회한다, 그녀가 늙어가는 모습을 봤다면 이렇게 대우하진 않았을 테니까...' 하는 식으로 쏘아붙이며 지적했다. 황제는 당연스레 순원은 마음씨가 고우니까 나이 먹어도 아름다웠을 거라고 반박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황제의 사랑이 변함없을 거라고는 독자도 작가도 믿지 않는다(...). 실제로 후궁견환전(원작) 티에바에 "주유칙이 죽지않고 늙어버렸다면 현릉은 그녀를 여전히 사랑했을까?"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는데 모두 사랑하지 않았을 거라 대답했다. 그가 보이는 약간의 순정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일 뿐, 살아있는 후궁들에게는 냉혹한 황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부분 정치적인 이유로 총애하고 골고루 이용하며 쓸모 없으면 버리고 그런 식으로 자신의 황권을 강화시키려 한다. 게다가 의심의 왕으로, 조금만 이상한 낌새를 집요하게 의심하며 이는 후궁, 형제, 아들, 신하 등등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리고 이 의심병의 대상이 된 사람은 대부분 죽음을 피해갈수 없다.[4]

2 작중 행적

쓰랑의 쓰는 쓰레기쓰
황!!썅!!
화비가 1부 최종보스, 황후가 2부 최종보스라면 황제는 히든 최종보스이다.
그가 즉위하고 공신들을 책봉하는 것으로 드라마가 시작된다. 나라의 반석을 다지느라 경사방에서 패를 올려도 거들떠도 안 보고 후궁들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정무에 힘쓰고 있었으나, 황손을 늘려야 한다는 태후의 채근으로 수녀간택을 하기로 한다. 대신 3년에 한 번 수녀간택을 하였던 부친 강희제와 달리 이번 한 번으로 끝내겠다고 못박는다.

수녀간택 때에도 의욕 없는 티를 팍팍 내면서 적당적당히 고르고 있었으나[5] 순원황후를 닮은, 솔직하고 총명한 견환을 눈여겨보게 되고 그녀를 후궁으로 간택한다. 우연한 기회에 몸을 숨기며 황제와의 시침을 피하던 견환을 만나게 되고, 그녀를 알아보기 위해 과군왕으로 위장한다. 총명한 견환은 당연히 나이가 다르다며 의심했지만 황제는 노안 드립을 쳤다...그러나 여답응의 난입으로 이내 정체가 밝혀지고 그녀와 첫날밤을 보내게 되는데, 자신과의 백년해로를 바라는 견환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하여 온갖 특권을 주고 견환을 총애한다. 그러나 견환은 그 총애로 인하여 위험에 처하고 결국 아이를 유산하게 된다. 화비를 통제하지 못하고, 심지어 벌하지도 못하는 황제에게 실망한 견환은 그를 거부하고 황제도 서로 상처입히는 것이 괴로워 멀리하는 나날이 한동안 이어지지만, 결국 자신이 황제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된 견환의 전략적인 미색&나비버프로 다시 견환에게 넘어가 총애를 올인한다.

견환을 다시 총애하게 된 이후로는 권신 연갱요와 돈친왕 윤아의 처리를 위하여 견환과 견환의 아버지를 이용한다. 견환과 견환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연갱요와 돈친왕 윤아는 숙청되고, 연갱요의 누이이자 자신이 총애했던 화비 또한 직위를 박탈하고 냉궁에 감금시켰다가 사사한다. 그러나 목적이 달성된 후에 견환의 아버지는 토사구팽당하고[6], 견환이 순원황후의 대례복을 감히 입었다고 오해하여 그녀 또한 쇄옥헌에 연금시킨다. 견환이 롱월 공주를 출산한 후에는 견환을 용서하려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대역이었다는 진실을 안 견환이 황제를 거부하고 떠나려 하자 더 막지 않고 견환을 폐비시켜 감로사로 보내버린다.

견환이 감로사에 떠나 있는 동안에는 견환이라는 이름을 언급한 궁녀를 죽이고 경비에게도 화를 낼 정도로, 견환은 일종의 금기가 되지만, 이는 그가 그만큼 견환을 그리워한다는 반증이었다. 실제로 롱월공주의 돌잔치가 파하고 무지불식간에 텅 빈 쇄옥헌에 들리거나, 무심코 경비에게 견환과 처음 만났을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거나, 와병했을 당시 헛소리로 소배성과 과군왕 앞에서 환환을 부르는 등(...) 그러던 중 과군왕의 복수를 하고 아이를 지키려는 견환의 술수에 낚여서 감로사에 행차. 견환의 안부를 물었는데 병이 나 능운봉에서 기거하는데다, 빨래와 청소를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이 뒤집혀서 능운봉으로 달려가 견환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까지의 그리움과 견환에 대한 책망(다 니가 성격이 쎄서 내보낸 거야 하는 식이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을 토로하고, 그 뒤로도 태후의 완쾌를 빈다는 명목으로 감로사에 뻔질나게 드나들다가 견환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줄 알고 몹시 기뻐하면서 다시 견환을 환궁시키는데, 구설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견환에게 뉴호록씨를 하사하고 희비로 봉한 후 태후의 권유로 4황자 홍력의 친모로 만들어 버린다.
견환이 온실초와 사통했다는 모함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견환을 의심했다가 진실이 밝혀진 후에는 견환을 신임하고 총애하며 결국 자신의 손으로 견환의 적이었던 안릉용황후를 사사 또는 연금해 버린다.

그러나 마격 칸이 경성을 방문하면서 과군왕과 견환의 사이를 의심하게 되고, 마격 칸의 요구를 들어 견환을 준가르로 보내는 척 하면서 과군왕이 덫에 결려들자 과군왕을 변경에 보내버린다. 변경에 보낸 것으로도 모자라 과군왕을 경성에 불러 견환의 손으로 죽이게 하고, 견환이 크게 상심했다는 것을 안 후 견환에 대한 의심을 끝까지 거두지 못한다. 모친의 최후의 소원도 매몰차게 뿌리치고, 가장 믿고 가까이하던 동생도 죽이고[7], 그를 사랑했던 여성들을 내버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도 믿지 못하게 된 일련의 사건이 아무래도 정신에 타격을 가했는지 그 후로는 초반에 후궁에도 들리지 않고 정무에 몰두하던 모습은 찾을 길 없이 주색에 빠지고 장수에 집착하며 망가진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권력욕은 여전한지 정무만큼은 손놓지 않지만...유일하게 잘하는 일[8] 우연히 견환이 낳은 6황자 홍염과 과군왕의 아들 원철이 매우 닮았다는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해보려고 하지만, 장수를 위해 먹던 단약의 부작용[9]으로 쇠약해져서 결국 쓰러지고 견환과 녕빈에 의해 독살당한다.

마지막에 견환과 단둘이 남겨진 그는 견환과 마지막으로 진솔하게 대화를 나눈다. 자신을 한 때 사랑하는 사람의 애칭이었던 4랑으로 불러달라고 견환에게 부탁하지만, 환궁할 때 그가 보여준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고백 때문에 조금이나마 사랑의 감정을 되살렸던 견환조차 계속된 그의 의심과 무엇보다 과군왕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만든 증오만이 남아 오히려 그에게 분노한다. 결국 정화공주가 온실초의 아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윤례와 사통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가슴에 대못을 때려박아버린다. 이를 듣고 배신감과 분노 등등으로 눈도 감지 못하면서 생을 마감하고, 견환이 그의 눈을 감겨준다.

이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막후에서 조종했다고 믿었던 그가 마지막에는 아이러니하게 견환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였다는 것을 알고 난 후의 좌절감과, 견환에게 배신당한 배신감 등등이 뒤섞인, 그도 역시 한 명의 인간이었던 옹정제를 잘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 원작에서

이름은 현릉(玄凌) 묘호는 헌종(宪宗) 연호는 건원(乾元).

  • 원작에선 드라마와 달리 젊은 미남이고 더 나쁜 놈으로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오른 탓에 숙부가 섭정왕이 되어 대신 통치를 했고 태후와 내연관계였다고 한다. 이건 마치...나중엔 태후가 아들을 위해 섭정왕을 독살한다. 13살에 2살 연상의 순원황후와 혼인했다. 그리고 결말은 똑같이 녕귀인의 손에 죽는 건 맞지만 드라마처럼 독살이 아니고 녕귀인이 황제의 생일 때 표범으로 묘기를 부리는 척하며 황제를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반격을 당해 황제에게 저주를 하며 죽었다. 황제는 그 때 입은 육체적인 부상과 정신적인 충격으로 정신줄을 놓은 채 주색잡기를 하다가 결국 드러누웠다. 그 후 총애를 받던 왕귀인이 회임을 했는데 현릉은 4개월 동안 누워있었지만 그녀는 회임한 지 3개월째였고 견환은 그의 아이가 아니란 걸 눈치채고 회임 소식을 알리러 온 강빈(이전엔 사미인)을 만나게 했다. 현릉은 소식을 듣고 기뻐했으나 몇개월인지알고 사색이 되어 강빈을 죽도록 패다가 침전 밖으로 뛰쳐나가 빗속에서 정줄을 놓고 아픈데 비맞으면 안된다며 견환이 울면서 억지로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는데 엄마가 숙부와 놀아났다고 말한 뒤 피를 토하고 건강이 더 악화되었다. 이후 견환은 현릉이 여함(견환의 아들)을 의심하고 있는 걸 눈치채고 견환이 마지막으로 진실을 알려주어 현릉은 말 그대로 빡쳐서 죽는다. 왕랑? 드라마에선 친자식이 황위를 이어받기라도 하지 원작에선 정장제가 되는 태자(미장의 아들)는 친자가 아니고 그 다다음에 즉위하는 견환의 증손자도 친손주가 아니니 더 비참한 결말. 후궁이 60명[10] 정도 되는데 자식은 4남 7녀 밖에 안 되고 그중 2남 3녀가 남의 자식이다(...).
  • 황제의 총애나 존중을 받는 후궁 대부분이 순원황후의 대역이다. 단비는 비파, 경빈은 온화한 성품, 이수용(원작의 캐릭터)은 손, 사미인(원작의 캐릭터)은 코[11], 안릉용은 노래, 견환은 전체적으로 흡사. 화비는 유일하게 예외인 케이스에 이렇게 제멋대로인 여자를 좋아한 적이 없어 의수는 의아해하고 반했을까봐 불안해 했지만 화비의 회임 후 황제가 의수에게 화비의 세력이 두렵다고 고백하며 의수가 수를 쓰도록 충동질했고 의수는 안심했다. 나중엔 견환의 대역까지 들였다. 대역인 후궁(부여음)은 견환이 환궁하기 전에 죽었다. 살아있는 사람 놔두고 이게 뭐하는 짓 한 후궁(서연의)은 책 읽는 모습이 견환을 떠올리게 한다고 찾았다.[12] 나중엔 의수가 견환과 순원을 닮은 강씨와 위균을 현릉에게 바친 일도 있었다.[13] 다만 순원 대역이든 견환 대역이든 오래는 못간다.
  • 드라마와는 다르게 수녀간택은 한 번으로 끝이 아니다. 여색을 밝히지 않고 후궁도 평균 수준만 있던 옹정제와 끼워맞추기 위해 각색한 듯하다.
  • 의심병과 현청에 대한 열등감이 더 심하다.
  • 드라마에선 욕을 많이 먹는데 원작에선 욕도 많이 먹고 팬도 많다. 한마디로 애증의 대상. 남캐들 중 가장 인기는 많으나 원작이나 드라마나 만악의 근원이라 보는 사람이 많고 찌질한 언행이 많으며 의수에게 말한 당신 언니가 아이를 가졌으니 그 애는 당신의 아이라는 망언이 두고두고 씹혀 안티는 더 많다.

4 후궁들과의 관계

제일 중요한 견환부터. 황제에게 있어서의 견환은, 순원황후의 대역이라 믿었지만 결국 자신의 또 다른 사랑이었다. 황제는 견환을 순원 대신이라 여겼기에 순원의 애칭인 '완완'을 따서 완 봉호를 내려주고 견환을 '환환'이라고 불렀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견환 대신 완완을 찾던 황제는 견환이 감로사로 떠난 이후, 환환(견환)을 부르며 그녀를 찾게 된다. 또한 순원의 대례복을 입은 일로 견환이 해명할 틈도없이 내친 뒤 관계가 한 번 파탄났음에도 불구하고, 견환이 떠난 쇄옥헌을 들여다보거나 그녀의 생일을 잊기 위해 무리해서 일하다가 안릉용의 처소에서 실신해 중병에 걸리기도 한다. 직전까지는 폐하를 어떻게 모신 거냐고 안릉용을 갈구던 사람들도 쓰러진 날이 견환 생일이었다는 걸 알고 아~하고 납득할 정도(...). 시와 역사는 물론이고 정치와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그와 화제를 나눌 수 있고 마음이 맞던 견환이야말로 진정으로 속내를 나눌 수 있는 여인이었으나, 오로지 자신의 집착과 이기심과 의심으로 그 관계를 망쳤다. 황제는 순원을 유일한 아내라 말했지만 서로 쓴맛, 단맛 다 맛 본 사이라는 점에선 견환과 더 부부같은 관계이다. 황제 평하길 견환은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여인이라고.

그 다음은 황후 마마. 부부는 닮는다더니 이 둘은 닮았다(...). 황후가 자기 남자의 마음을 홀린 자기 언니에 열폭하다 못해 언니를 죽인 것을 듣고는 황후를 천하의 개썅년 취급을 하지만 결국 자기도 별로 다를 바 없다. 황제 자기 역시 자기 여자의 마음을 홀린 자기 동생에 열폭하다 못해 자기 동생을 죽였으니...

여자 취향이 분명히 갈리는데 총명하고 재기 있는 타입[14], 머리는 비고 예쁘고, 그 제멋대로인 면이 오히려 매력적인 타입[15], 얼굴은 별로여도 얌전한 현모양처 타입[16]으로 나뉘는 듯. 뭐 후반 가면 이 후궁 저 후궁 건드리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다(...). 잡식성 "궁정 여자들은 다 고만고만하고 똑같아, 왜 다 똑같을까..."라는 개드립을 하기도 한다. 이 개드립을 들어준 게 다름 아닌 소배성이다!
왕부 때부터 자신의 지위와 성격을 두려워하는 여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화비는 이런 와중에 거침없이 굴어서 더욱 총애를 얻은 듯하다. 실제로 후궁에 들어 온 견환을 처음 만났을 때도 아첨하고 두려워할 것을 저어해서 과군왕을 사칭했다. 나아가 거침없이 말을 모는 섭란의를 매의 눈으로 눈여겨보곤 후궁으로 들인다. 그런 주제에 또 너무 입바른말 하면 기가 세다고 싫어한다(...).이 새끼 뭐야
그래도 여자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심미장을 간택 때 일견 마음에 들어하면서도 심미장이 책을 안 읽었다고 하자 표정이 팍 썩었고, 이후 과군왕과의 대화에서 여자는 아무리 예뻐도 머리가 비면 즐겁지 않았다고 했다.

굉장히 세련되고 세심한 면이 있어 감각이 뛰어나다. 밤중에 언뜻 보고도 화장법을 눈치챌 정도로 매의 눈을 지닌 데다가 여심을 공략하는 로맨틱한 대사도 잘 친다. "짐이 사랑하는 여인을 아껴주겠다는데 남들이 무슨 상관이지?", "가을에는 둘이서 술을 담그고, 겨울이 되어 눈꽃이 날리면 짐은 너와 너는 짐과 함께할 것이다." 등등... 입만 살아갖고 후궁들의 결혼기념일[17], 생일[18], 혼수[19], 자신이 준 선물[20], 특별한 추억 등등도 다 기억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인도 몇 있었으나...물론 특별히 총애하거나, 이용 가치가 있는 후궁 한정. 딱히 관심없는 후궁에게는 한없이 무심하고 냉정하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후궁들을 마음 아프게 한 일이 굉장히 많다. 이럴거면 후궁을 많이 들이질 말던가... 영귀인의 경우 홍시가 러브레터를 보내자 홍시를 보호하기 위해 바로 영귀인에게 자살을 하라고 명령했고, 화비는 연갱요를 경계해서 환의향에 당문자(사향)를 끼얹어서 불임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이 과정에서 경빈여빈(원작 한정)을 불임으로 만든 건 덤이었고, 화비의 유산 책임을 또 단비가 뒤집어쓰는 것을 묵인하고 단비까지 불임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 병권을 장악한 연갱요의 눈치를 보느라 화비의 안하무인 짓을 내버려둬서 간접적인 피해를 받은 후궁들이 꽤 있다. 심미장(화비 때문에 거짓회임 누명을 쓴데다가 답응으로 강등당하고 몇 달간 감금당했었다.), 견환, 조귀인(딸 온의공주를 화비에게 빼앗긴데다가 화비가 황제의 환심을 살려고 약을 먹여서 배탈을 내는 등 피해를 당했다.) 등...

사실 정치적인 이유를 배제하고 봐도 후궁들에게 좋았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후궁들의 마음에 스크래치 잔뜩 내놓고는 정작 자신이 심하다는 생각을 안하기 때문이다. 그 성향은 심미장을 유폐, 감금시켜 놓고서 감금 좀 한 거 가지고 ㅉㅉ 했을 때, 견환을 쇄옥헌에 유폐, 감금시켜 놓은 후 견환이 냉랭해지자 견환이 너무 성격이 세다면서 ㅉㅉ 했을 때 아주 절정을 찍는다.(...) 그리고 더 드센 섭란의를 들인다 물론 미안한 기색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잠깐 그럴 뿐. 무엇보다도 황제의 체면이 있어서인지 절대 잘못한 당사자 앞에서 자기 입으로 사과하지 않고, 태후 앞에서나 소자의 잘못임요ㅠㅠㅠㅠ 하고 찌질거릴 뿐이다. 혜빈 심미장에게는 "내가 널 힘들게 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난 황제이다! 그리고 나도 힘들다!"라는 말도 했다. 이 색히 한 대 때려주고 싶다

게다가 70화에서 드러난 사실인데, 황후가 현모양처가 아니고, 내명부가 개판이며 여러 계략과 음모술수가 횡행한다는 사실을 황제는 이미 전부 알고 있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었던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를 찾지 않고 방치한 이유는 귀찮기도 하고 순원에 대한 정 때문에 그대로 놔두었다.(...) 이미 죽은 사람 하나 때문에 헬게이트가 열린 내명부를 방치해두었고 이 지옥 같은 내명부에서는 그 결과로서 열 손가락으로 세기 힘든 후궁[21]들이 죽어나갔으며, 그 황후 손에 죽어간 황손들도 많다. 결국 황후 하나 살리자고 자기 자식들을 죽인 셈. 그마저도 황후(의수)가 순원황후를 죽인 것을 알자 이제서야 처벌을 했을 정도다.
그렇기에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중 열에 일곱은 황제를 욕한다.(...)솔직히 욕 나오게 행동한다. 심지어 촬영 현장에서 옹정제 역의 배우가 후궁 역의 배우들로부터 왕따였다고 배우들이 직접 언급한다(...). 배우들도 찍다가 질린 모양

후궁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혜비 심미장은 총애의 절정을 달릴 때 딱 그 때 죽는 바람에(...) 엄청난 애도를 받았다. 황제가 애도하느라 다른 후궁들에게 가지 않았다. 안릉용 인증하기를 "다른 후궁들에게도 가시지 않는다...혜비를 애도하시는 중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릉용이 코웃음치며 하는 말, "걱정마라, 내가 잘 아는데, 곧 괜찮아지실 것이다." 그렇다. LTE급의 속도로 괜찮아졌다(...).

설령 사랑한 사람이라도 순원황후를 투영해서 사랑하거나 그냥 애완동물 정도로 예뻐하거나 한 정도이다. 전자, 즉 순원황후의 대역으로 들어온 견환, 안릉용, 여답응은 말할 것도 없고, 원작에선 심지어 견환이 출궁하자 견환의 대역까지 들인다. 어쩌면 섭란의도 드센 성격이 견환을 떠올리게 해서 총애한 걸 수도 있다. 섭란의를 후궁으로 들였을 때 한창 견환을 그리워 했을 때고. 후자인 애완동물은, 안릉용이 자기가 꾀꼬리일 뿐이었다고 마지막에 대든 것과, 화비가 "너(온의공주)는 황제폐하의 딸이니까 뭘 해도 용서받겠지! 그치만 나는 뭐냐, 마음 내킬 때만 예뻐하고, 그뿐이지 않느냐!"라며 처지를 비관했는데 마음 내킬 때만 예뻐하는 이거, 그게 딱 애완동물이다(...).

그러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주제에 독점욕은 엄청나게 강해 이건 뭐 얀데레도 아니고 얀데레라면 모에하기라도 하지 후궁의 사통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다. 견환-과군왕 뿐 아니라 손답응이 시위랑 사통하다 걸렸을 때 이성을 잃고 분노할 정도이다. 견환이 죽어가는 황제를 빡치게 하려고 남긴 말이 정화공주의 친아버지는 온실초이고, 홍염, 령서 남매의 친아버지는 바로 과군왕이었다는 말이었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여자의 독점욕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22] 내가 하면 로맨스고 니가 하면 불륜 황후가 황제 앞에서 독점욕을 드러내자 "독사 같은 마음이로다"라는 짧은 코멘트를 남겼다.

또한 사랑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했는지도 의심스러운데...과군왕이 아내로 완벽을 들이겠다고 하고 딱 하나만 들여서 완벽 마음에 상처를 안 주겠다는 대인배스러운 발언을 하자 아내를 하나 더 들이기를 강요한다. 과군왕은 "여자를 더 들여서 아내가 될 완벽에게 상처를 주겠다는 겁니까?"라며 항의해보지만 무다무다. 일단 황제의 논리는 패국공의 딸 맹정한이 오랫동안 과군왕에게 혼담을 넣어왔다가 결혼 소식을 듣고 충격받아 드러누웠으니, 이걸 내버려두면 공신인 패국공이 불만을 품는다는 이유. 사랑도 정치적인 이유가 있으면 철저하게 이용하는 황제답긴 하다.

실제로 후궁들 중 황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사랑한 사람[23]을 세는 게 빠를 정도...황제에게 억지로 끌려오다시피 한 녕귀인은 말할 것도 없고, 한때 황제에게 잘보이려고 했던 심미장도 황제의 이기심과 뻔뻔함 때문에 아예 정을 뗀데다가 견환도 애증하게 되었고 그 얌전하던 안릉용도 몰락 당시 황제에게 자신을 하나의 인간으로 안 보았고 그저 꾀꼬리 취급을 했다고 대든데다가 황제를 진심으로 사랑한 황후마저 황제에게 대들었다.[24][25] 결국 견환에게 진실을 들으면서 쓸쓸히 외롭게 죽었으며, 그나마 죽은 이후에도 경귀비와 흔빈은 매우 심하게 멀쩡했기에[26] 그녀들이 황제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증때렸다.

5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매화나비를 좋아한다. 홍매화는 순원황후와 연관이 있어서 보면 슬프기도 하고 울적해지기도 하지만[27] 기본적으로는 좋아하는 듯하다. 황후도 이걸 아는지 안릉용에게 빙희(라고 쓰고 피겨라고 읽는 것)을 시킬 때에도 엑스트라 시녀 빙희 무희들에게 매화 가지를 들게 시켰다.[28] 또 나비를 좋아하는데, 못생긴 데다가 신분도 한미한 안릉용을 간택한 이유가 나비 때문이고[29], 견환의 첫 유산 이후 견환을 다시 총애하게 된 계기도 나비 때문이다. 다만, 매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순원 때문이라면 나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불명.

국화도 좋아한다고 말은 했지만 이것은 가을에 호젓하게 피면서 여름 꽃과 다투지 않는다, 즉 질투를 하지 않는 여자를 빗댄 것에 가깝다. 심미장을 한창 총애할 때 그녀를 두고 한 말.
왠지 그렇게 안 보이지만 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음악 미술 등 각종 방면으로 조예가 깊다. 명화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으며, 퉁소도 좀 불 줄 아는 것 같다. 당시 완상재였던 견환과 첫만남을 하고 퉁소를 꺼내서 좀 불어 보는데 자기가 봐도 이건 영 아니다 싶어서 내려놓는다.[30]

뭔가 연자, 즉 연밥을 자주 먹는다. 황후 왈 황제는 연자를 좋아한다고. 그리고 그 연자를 매번 손톱이 부러져라 까는 사람들은 비빈들이다(...).[31] 또 화비 왈 오이를 좋아한다고.

싫어하는 것은 미신과 부정부패이다. 귀신 소동이 일어났을 때 제비[32]와 화비가 입을 모아 황제가 미신을 제일 싫어하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천문이 가리키는 운세가 나쁘다는 이유로 안릉용을 한동안 찾지 않거나, 후궁에는 여자들뿐이라 음기가 강하여 온의공주가 울기 때문에 익곤궁에 있어달라는 화비나, 음기가 강해 병이 나고 악몽을 꾼다는 기귀인의 말을 듣고 그 옆에 머무는 것을 보면 사람 마음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 견환이 환궁을 꾸밀 때 소배성도 2월 2일 용대두의 날에 용이 머리를 들어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을 들먹여서 황제가 감로사로 행차하도록 낚았다.

부정부패의 경우, 황후가 자기 입으로 "폐하는 부정부패를 제일 증오하시는데 후궁(화비)이 부정부패를 한다니!"라고 분노하며 인증했다. 황제도 책상에 앉아 셈을 해보며 "매년 돈을 걷는데 매년 돈이 모자라? 이것들이 부정부패를 하니까 이러는 거지!"라며 분노하는 장면이 나온다. 후궁들의 아버지들 중 사사된 아버지들은 기귀인, 안릉용, 제비의 아버지 셋인데, 이들을 모두 부정부패 내지 부정축재 때문에 사사당했다. 화비의 오라버니까지 포함하면 넷. 후궁의 아버지들이라면 장인어른인데, 이들을 사사시킬 정도니 얼마나 심각한 취급을 하는지 알 수 있다.[33]

그리고 그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8황자당, 즉 8황자 윤사, 9황자 윤당, 14황자 윤제이다. 개돼지라는 새 이름을(...) 친히 하사할 정도였다. 융과다가 "그래도 폐하의 친형제니까 종실 어른을 보내 잘 훈계하라"라는 미온적인 의견을 냈을 때 표정이 썩었고, 그 후로 8, 9왕에 대해 강경책을 진언한 견원도에 대해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태후가 죽어가면서 한 번만 14황자를 다시 보게 해달라고 부탁하는데도 들어주지 않을 정도. 74화에서 황제가 견환에게 과군왕을 죽이라 명할 때, 어떻게 감히 형제를 죽일 수 있냐고 경악을 한 견환에게 "나와 엄마가 황위를 쟁취하려고 작당했었을 때, 그때 이미 우리 살생부에는 14황자의 이름도 있었어. 친동생이고, 친아들이고 상관없어."라고 말할 정도.

3황자 홍시가 부족한 자질로 끊임없이 실망을 안겨주고 심지어 자신의 후궁인 영귀인에게 집적거리기까지 했는데도 겨우 하루 웬종일 무릎꿇게 하고, 싸대기 2대 때리고, 꾸중만 하고 끝까지 용서했었지만, 그가 8황숙과 14황숙의 용서를 구하는 순간, 아무런 망설임없이 족보에서 파내버리고 8황숙 윤사의 아들로 만들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준가르의 침략으로 긴박한 상황에 빠지고, 최측근 충신인 장정옥 역시 조심스럽게 청을 올렸는데도, 14황자를 등용하는 일만은 끝내 거절했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부정부패와 자신과 황위경쟁 레이스를 펼친 8황자당은 매우 싫어했다. 그러나 14황자는 동복형제라서 그랬던건지 죽이지는 않았고 유배만 보냈다.

하지만 역시 최고의 역린순원황후에 관한 것과, 후궁의 사통과, 자신의 아이가 해를 입는 것. 이 세 가지를 건드리면 그야말로 격노한다. 관계자를 처형하고, 변명도 듣지 않고 당사자를 감금하는 등. 화비의 아이를 자신의 명령으로 낙태시키고 난 뒤, 그 원한으로 이후 잉태되는 아이들이 해를 입는 게 아닌가 괴로워하고 있었다. 태후는 자신이 한 일이라며 감싸지만...그런 주제에 황후는 방치하다니 이중잣대 쩐다

서출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서출 콤플렉스는 없는데 72화에 황후가 순원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황후와 독대를 하였을 때, 황후가 "첩이라는 이유로...서출이라는 이유로 저와 제 어머니가 얼마나 서럽게 사셨는지 아시는지요, 황상? 이미 제 아이는 죽고 없지만 언니를 적복진으로 삼으셨을 때 제 아이도 신첩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야만 하냐는 생각은 안해보셨습니까?"라고 묻자 황제는 "나도 서출이고, 짐의 어머니도 서출인데 무슨 소리인가? 내가 언제는 그런 (적서) 차별을 하는 사람이었단 말인가? 니가 그런 고생을 한 것을 잘 알기에 내게 시집 온 너에게 잘 대해줬었다. 또한 순원이 들어온 이후로도 그에 못지 않게 대우해줬어. 하지만 너는 욕심이 끝도 없었더군."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다지 서출에 대한 서러움은 받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후궁이긴 하지만 만주 정황기 출신인데다가 자신보다 모친의 신분이 낮은 황자(대표적으로 관비의 신분이었던 양비의 아들 8황자나 한족 출신과 침모의 아들인 과군왕과 신패륵 등)들도 여럿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6 옹호론

우선 어릴 때 어머니의 부정을 직접 목격한다. 장막 뒤에서 태후가 융과다 품에 안겨있는 걸 목격했다.[34] 아이러니한 건, 친동생들에게서 황위 계승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가장 큰 뒷받침이 되어준 것이 바로 태후와 융과다. 즉 자신의 친어머니와 바람핀 남자가 명목상의 외삼촌[35]인데다 자신의 가장 큰 후원자인 상황이 되버렸다. 황제가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에 격분하는 이유는 형제들의 문제 뿐만 아니라 여기에도 있다.[36]

더군다나 그 어머니는 친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직접 양육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친동생(14황자)은 그 어머니가 직접 길렀다. 거기다 아버지인 강희제는 다른 아들[37]을 더 총애하고 있었고...이 열등감은 두고두고 터져나온다.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아이를 낳자마자 죽어버리고, 그 여인의 직접적인 부탁과 어머니의 영향으로 좋든 싫든 그 여인의 동생을 정실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데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준 화비가 임신할 수 없도록 직접 손을 써야만 했다. 인생 참 험난하다.

간단히 말해서 이쪽도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 볼 수 있다. 태후의 죽음 앞에서 자장가를 불러달라 청하는 장면이나, 죽기 전 견환에서 한번만 4랑이라고 불러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이 그의 외로움을 보여준다. 화비의 처분도 황후에게 맡기고 알리지도 말라고 했지만 두고두고 끝까지 화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안릉용이 유산했을 때는 자신의 탓이라며 견환도 달래지 못할 정도로 상심한다. 화비의 일로 누명을 썼던 단비, 늘 현명하게 처신하는 경비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은 늘 갖고 있다.총애하지 않아서 문제지[38]

어머니의 부정으로 여성을 못믿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혐오하였다. 그러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같은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순원황후를 유일하게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녀마저 일찍 세상을 떠남으로서 마음의 문을 아예 닫아버렸고 그녀의 대역으로 들여왔지만 또다른 사랑인 견환을 뒤늦게 찾았으나 본인의 잘못으로 자신의 곁에 있던 사랑마저 자기 손으로 떠나보냈고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39] 고독하게 죽은 어쩌면 제일 불행한 사람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즉 본인의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해 트라우마가 남았고, 자신이 사랑받고 사랑한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깨닫지못해 남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며 피해자들을 양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토록 황제를 미워한 견환조차, 황제와 나눴던 사랑을 전면부정한 적은 없다. 환궁할 때 황제가 건넨 말에 살짝 미간이 떨리더라며 근석이 이야기하자 상처를 입히고 약을 바른들 무슨 소용이겠느냐며 대답하기도 하고, 황제가 숨을 거두자 그때서야 4랑이라고 불러주며 과군왕의 이름을 빌어 만났을 때 부터 잘못되었을 거라며 독백하는 장면은 견환이 황제 역시 진심으로 사랑했었음을 보여준다.

비록 견환이 환궁한 뒤에도 옥요에게 집적대는 등 주책맞고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는 순원황후와 다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이 일종의 습관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즉 못 다한 진심과 사랑에 목말라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러다가 정말 소중한 것을 놓쳐버린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사람이 극 중에 하나 더 나오는데, 바로 온실초. 황제는 황제이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지 않으려 애썼고, 온실초는 한 사람에게만 진심을 다하여 지키겠다고 결심하고 노력하며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말은 둘 다 진정한 사랑을 놓치며 안타깝게 끝날 수 밖에 없었다.

황제의 성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은 바로 견환이 화비로 인해 유산한 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 이 때가 총 76화의 긴 내용 중에서 유일하게 황제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황제가 쌩뚱맞게도 견환에게 왜 화비 말을 또 그렇게 잘 들었냐며 뭐라고 하자 견환이 반박한 후에 화비의 성격이 그토록 나쁜 걸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큰 권리를 주셨느냐고 따질 때 눈물을 한 방울 떨군다. 그 전 장면은 화비에게 대놓고 독한 말을 하며 화내는데 이 역시 유일한 장면. 즉, 사실 속은 여리고 감정이 충만한 인물이면서도 책임감과 부담감(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들)에 짓눌려 자신은 대의를 위했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합리화하는 심리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 누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무슨 옷을 좋아하고 어떤 옷이 잘 어울렸는지 무슨 장신구를 하사했었는지, 심지어 시집온 날, 혼수품, 첫날밤의 대화, 궁녀의 성격과 얼굴까지 죄다 기억하는 흠좀무한 기억력도 자주 보여주는데, 단순히 여색을 탐하는 수준이 아니라 굉장한 미적 감각과 까다로운 취향, 세심한 마음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토록 마음이 여리고 세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욱 쉽게 상대에게 실망하고 싫증을 내고 또 의심한 건지도. 작가인 류렴자가 순원황후가 요절하지 않았으면 그 역시 싫증냈을 것이라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은 감정적으로 여린 사람이라는 것이 곳곳에서 드러나긴 하는데, 그게 하필이면 화비를 처리하는 일에서 가장 오래 질질 끌면서 표현되고(...) 더군다나 화비의 일은 황제가 미안할 것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 불분명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조귀인도 "원래부터 별로 신경도 안 쓰던 미천한[40] 막내 동생 공주" 라고 인증한 조괴공주가 준가르로 화친을 위해 시집갈 때 울었다는 이유로 우울해하면서 견환에게 찾아온 것[41], 자신의 아이들이 자꾸 태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지은 죄가 많아서 그렇다고 자책하는 등의 모습으로 볼 때 냉혹한 면 뒤에 감정적으로 여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떠한 일이 있을 떄 자기가 불리하면 후궁들에게 지금 짐을 탓하느냐(혹은 원망하느냐) 라고 자주 묻는데, 이 역시 단지 황제로서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 뿐만 아니라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버릇이다.[42]

물론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가 아무리 크고 황제로서의 삶이 아무리 가혹하고 자신을 사랑한 여인들에게 나름대로 (한때) 배려하고 베풀었다고 해도, 황제라는 그의 입장상.... 그리고 결과적으로 막대한 피해자가 양산되었기 때문에 까이는 건 어쩔 수 없을 듯.

7 기타

작가는 역사 속에 많은 군주들이 양귀비같은 여자들에게 홀려 나라를 말아먹었기 때문에 황제로서 후궁들을 사랑하지 않고 총애만 하는 것이라 했다. 또한 순원황후가 죽은 후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견환을 만나기 전엔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탓도 있다고 한다.

실제 역사에서의 옹정제는 드라마의 의심병 옹정제와 다르게 자신의 형제들을 엄청 아꼈으며 정확하게는 자기 편인 형제만 과군왕과 특히 사이는 좋았다고 한다. 과군왕은 옹정제가 황자일 때 4황자당이었고, 즉위하고 나서 몇 년이 지나 친왕으로 품계를 올려준다.

배역을 맡은 진건빈의 부인 장근근의 외모가 실제로 손려와 닮았다. 심지어 견환의 동생 견옥요를 맡은 서로도 약간 닮았다. 옹정제의 첫사랑인 순원 황후와 견환 자매가 닮았다는 설정에 맞춰 보면 그야말로 최적의 캐스팅.

촬영 중 갈등이 빚어지는 씬만 찍고 나면 후궁 역의 배우들이 몰려와 진건빈을 보고 전부 황상 때문이라며 재잘거리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배우는 무슨 죄야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설정 상 피부가 까만 것 같다. 태후의 말에 따르면 태어났을 때부터 피부가 매우 까만 편이었다고(...).

  1. 저 스샷의 황제는 40이 넘었고, 견옥요를 탐낼 때는 50이 넘었다(...). 그 때 견옥요는 십대였다.
  2. 극 최후반 근석이 "폐하는 권력을 가장 염려하시니"라고 표현했다.
  3. 정확히는 진건빈이 말한 것을 작가가 맞장구쳐준 것이다.
  4. 그래서인지 실제 역사상과 별개로 드라마속의 옹정제는 헨리 8세, 우리나라의 숙종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자금성의 똥차
  5. 보다 못한 태후가 한 마디 하자 대충 보고 이름이 재밌다고 하동춘을 고른다(...).
  6. 다만 여기에는 견원도가 제 무덤을 판 부분도 있다. 연갱요를 비판하는 시를 지어 올리라고 했는데 거부했고(물론 이건 옹정제가 치졸하게 군 거지만 엄연히 황명을 거부한 것이다.), 연갱요를 아부하는 글을 쓴 전명세의 글을 갖고 있기도 했다. 쓸데없이 강직한 성품이 의심병 환자인 황제를 긁은 것.
  7. 윤례가 매일 밤 꿈에서 나온다고 탄식했다.
  8. 실제 역사상으로 옹정제의 사망 원인으로 지나친 업무로 인한 과로사가 꼽힐 정도이다.
  9. 이것도 녕빈의 수작이었다. 단약의 재료로 쓰이는 주사와 최음향을 같이 쓰면 겉으로는 건강해보여도 매우 몸에 해로운데, 계속 황제가 쓰도록 했다.
  10. 이름 혹은 지위명이 나온 인물만 세도 황후 2명, 추존 황후 2명, 후궁 54명이 있으나 더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1. 이수용과 사미인은 나중에 총애를 잃었다. 이수용은 유산으로, 사미인의 경우 코가 여전히 예뻤지만 나중엔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12. 서연의는 견환의 얼굴이 견환의 출궁 후에 총애를 독차지한 부여음과 닮은 것을 보고 황제가 사랑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눈치챈 후 견환을 도와준다.
  13. 위균은 견환을 더 닮았고 강씨는 그렇게 닮지는 않았으나 묘하게 흡사하다고 한다. 견환은 수녀간택 당시에 그 모습을 직접보고 혀를 찼다. 현릉은 견환의 눈치가 보였는지 뽑으면서도 대놓고 기뻐하지는 않는다.
  14. 순원, 견환, 심미장
  15. 화비, 기귀인, 여빈
  16. 황후, 단비, 안릉용 등. 그러나 황후는 평범할 뿐이지 못생긴 얼굴은 아니고 단비는 드라마에서 묘사가 없지만 원작 묘사에 따르면 빼어난 미인이고 안릉용은 드라마에선 설정이 바뀌었지만 원작에선 미인이다. 원작에선 여자의 외모를 보는 안목이 높다고 묘사된다. 후궁들 모두 못해도 보통은 된다.
  17. 화비의 결혼기념일을 기억한다.
  18. 견환의 생일을 기억하나, 출궁하자 의도적으로 잊으려고 한 듯하다.
  19. 단비의 혼수인 목걸이
  20. 심미장의 팔찌, 견환의 촉금 신발, 견환의 비취 팔찌, 화비의 봉황 비녀
  21. 황후의 음모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다 포함하여 안릉용, 심미장, 화비, 제비, 방귀인, 기귀인, 영귀인 등이 죽어나갔다. 극 시작 전에는 더 많았으리라.
  22. 남존여비가 일반화된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23. 순원, 황후, 화비, 단비, 서연의(원작)
  24. 이전에는 화비도 대들었다고 되어 있었으나, 죽는 방법을 결정해준 것은 황후로 그 때문에 화비가 자결하지 않고 황제의 성지를 가져오라고 뻗대고 있었다. 때문에 황제에게 직접 대들거나 거역한 것은 아니다. 다만 죽기 직전에야 비로소 "폐하! 세란에게 너무도 하십니다"라고 절규하며 원망했다.
  25. 황후의 경우, 마지막 황제와의 독대에서 너 나 적복진(정실부인)으로 삼아 준댔는데 왜 나 대신 내 언니를 적복진으로 삼았냐면서 대들었다.
  26. 다만, 단비와 황후는 황제를 위해 울어주었다.
  27. 섣달 그믐날 황실 연회에서 화비가 사연을 모르고 갖다놓은 매화를 보고 급우울해져서 눈 속에 핀 매화를 보러 나갔다. 그리고 견환과 마주쳤다.
  28. 정작 황제는 황후가 언급하기 전까진 순원황후가 아닌 견환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29. 사실 나비 보다는 나비가 날아들어 해당화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순원황후가 해당화를 좋아했다.
  30. 물론 소배성은 칭찬해주지만 아첨일 확률이...
  31. 관계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연자(蓮子)는 연자(戀子), 즉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과 발음이 비슷해 한시에서 종종 쓰인다.
  32. "폐하는 미신을 가장 증오하셔. 자신 있으면 자네가 해."
  33. 실제 역사상으로도 청나라 때 가장 부정부패가 없었던 때가 옹정제 재위기간이다. 훗날 역사학자 장학성이 옹정제가 관료사회를 개혁하여 기강을 바로잡은 일은, 실로 천년에 1번 있을 만한 쾌거로다!라 평가할 정도.
  34. 이건 드라마 기준이고, 원작에서는 심지어 검열삭제 장면까지 어린 시절 목격한 듯하다. 흠좀무.
  35. 강희제의 정실인 효의인황후의 남동생이었기 때문. 옹정제에게 있어서는 군사력 외에도 정치적인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인물이었다.
  36. 태후에게 "아바마마께서 모르셨다고 해서 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라며 화내는 장면이 있다.
  37. 극 중에서는 과군왕으로 나온다.
  38. 상대적으로 이 둘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 것이 견환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단비의 경우 근석과 소배성의 일 때 살짝 의심받았긴 하지만 그 외에는 단비고 경비고 단 한 번도 의심받지 않을 정도로 황제가 신임하고 있었다.
  39. 사실 알았지만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하다. 견환이 환궁한 뒤에 고생했던 것의 보상이라며 총애를 퍼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40. 생모가 선대 황제의 귀인으로 선황제 사후 태빈으로 품계가 올랐다.
  41. 견환도 잠시 황제의 시침을 거절하고 있다가 이 때 맞아준다.
  42. 지금 감히? 라는 뉘앙스로만 묻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견환이 유산 후 아기의 배내옷을 쥐고 잠든 걸 보고 "이렇게 아이를 못 놓아주는 것은 짐을 원망하는 것이냐..."라고 혼자 되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