齐妃 |
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 장아맹 役 |
옹정제의 후궁일람 | |
옹친왕부 | 순원황후 황후 단비 화비 제비 경빈 여빈 조귀인 흔상재 |
황제로 오른 뒤 첫 수녀선발 | 황후 화비 단비 제비 경빈 여빈 조귀인 부찰귀인 심귀인 완상재 박이제갈특귀인 흔상재 하상재 순상재 안답응 여답응 지답응 |
막수시절 | 황후 단비 경비 제비 기빈 안빈 혜빈 흔귀인 녕귀인 |
환궁 | 황후 단황귀비 경귀비 희귀비 리비 혜비 흔빈 녕빈 기귀인 영귀인 그 외 무수한 상재 답응들 |
1 소개
품계 | ||||
격격 | -> | 측복진 | -> | 제비 |
품계(원작) | ||||||||||||
종5품 탕양제 | -> | 종4품 탕순의 | -> | 정4품 탕용화 | -> | 정3품 각(慤)귀빈 | -> | 종2품 탕소의 | -> | 정2품 각비 | -> | 정1품 공각(恭慤)현비[1] |
견환과 같은 한군기 하5기 출신으로 거주하는 궁은 장춘궁.[2] 황후의 말에 의하면, 본래 왕부에 격격으로 들어왔으나 3황자 홍시를 낳아서 측복진이 되었고, 옹정제 즉위 후 비로 봉해졌다고 한다. 근데 사실 안습인 게, 같은 비 중에서는 서열이 이쪽이 가장 낮다(...).[3] 내무부 통솔권을 지닌 화비보다 제비가 낮은 건 당연하고,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하나 없고 평생 없을 단비보다 제비가 낮다.[4] 빈이었다가 비로 올라온, 출신도 안 좋은 경빈도 경비가 되자 제비보다 앞에 서고 먼저 호명되며 내명부 통솔권을 받는 등 더 윗전으로 대우받는다. 희비 견환이야 언급할 필요도 없고. 제비가 아들도 없었으면 얼마나 비참했을지 상상도 안 간다
그녀의 부친은 종 4품 지부 벼슬을 지낸 이씨라고 하는데, 이는 실제 옹정제의 후궁 제비 이씨와 일치한다. 극중에서는 그녀의 부친 이씨가 뇌물을 받았다가 강희제에 의해 유배를 가게 된 것으로 나온다.
2 작중행적
이 여자가 하는 일은
1. 화비와 싸우기 -> 화비 항목 참조
2. 아들인 홍시 걱정하기 -> 이 밑의 "아들, 아들, 아들" 참조
3. 그냥 앉아 있다가 까이기~~ -> 이 밑의 "성격", "작중역할" 참조
(...)로 대부분이 설명이 된다.
참으로 안습한 캐릭터. 뭐 하나 잘하는 것도 없고 칭찬을 들은 것도 없으며 극 내내 면박만 듣는, 참으로 일관된 캐릭터이다(...).
3 성격
한줄요약: 멍청이+찌질이+소인배
황제의 평에 따르면 "주관이 없다"
유난히 찌질대는 성격 때문에 화비의 꼼수에 넘어가 괜히 견환에게 시비를 걸기도 했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말싸움이 대단한 견환도 이기지 못할 정도였다(...). 견환이 공적인 자리에서 조귀인의 비위를 맞춰준다고 온의공주처럼 귀여운 딸아이가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빈말을 하자, 화비는 그걸 꼬투리잡아 견환도 3황자보다는 온의공주가 낫다고 생각한다며 비웃고 제비는 빡쳐서 견환에게 화를 낸다(...). 이건 황후도 민망하게 여겼던지 왜 완빈 따위와 싸워서 구설수에 오르냐고(...).
어느 정도 만만한 상대가 되니 자기가 기분이 안 좋은 것을 풀기까지 한다. 특히 부찰귀인의 충동질이 있었다지만 대로에 꿇어앉히고 뺨을 치게 만들기까지 했다. 그래놓고 네 편은 아무도 없고 협죽도 사건은 증거도 없으니 입다물고 있으라는 협박질까지 했으니 참으로 대단한 소인배.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해 놓고도 견환이 총애를 회복한 후에 부찰귀인을 방법시킨 것을 보고 단단히 쫄았는지 용서를 받으려고(!) 눈보라치는 날 쇄옥헌 문앞에 와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이것도 참(...).[5]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후궁들을 화비처럼 대놓고 괴롭히지는 않지만 사실 괴롭힐 힘도 없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미묘하게 무시하고 있는 듯하다. 견환이 자기에게 부딪혔을 때 처음에는 그냥 가려고 했는데, 이것은 견환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그냥 씹고,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때 한 대사, "그냥 가자, 됐어. 재수 없어."(...) 그리고 이후 본궁은 너 따위를 상대할 시간이 없다(...).
당시 상재였던 안릉용이 공손하게 말을 걸자 새침하게 귀찮다는 듯이 대꾸한 것도 그렇고.[6] 반면 자기보다 높은 신분에 대해서는 미묘하게 이쪽이 찌질거리는 것 같은데, 꼭 높은 신분이 아니더라도 위계가 같은(둘 다 봉호를 받았고 둘 다 비의 품계) 화비에게 먼저 인사하는 등(이 점은 황후도 지적하고 그러지 말라고 한다.) 알아서 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근데 그러는 것치고는 화비와 맨날 너무 싸우는데
4 아들, 아들, 아들
홍시의 자질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홍시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양인데, 황후에게 자애롭다고 덕담을 한 대꾸로서 황후로부터 "3황자의 효심도 깊어서 좋겠군~"이라는 말을 듣자 좋아한다. 홍시가 선물로 준 손난로도 꼭 들고 다닌다. 그리고 홍시를 까는 말을 들으면 발끈한다.
홍시의 앞날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일단 장자긴 하지만 만주족들은 꼭 장유유서로 후계를 정하지는 않았는데다, 홍시의 능력도 보잘 것 없는 상황이고, 제비가 나름 비(妃)의 지위에 있긴 하나 친정의 문벌도 대단치 않고 황제의 총애 역시 받지 못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어미의 신분 버프도 줄 수가 없다. 그 탓에 황후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홍시가 태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제비가 작중에서 친 2가지 대형사고, 즉 견환에게 보낸 협죽도 떡과 섭란의에게 준 대추탕 모두 홍시의 앞길이 견환이나 섭란의의 미래의 아이에 의해 막힐까 염려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먼저 1부에서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견환이 회임을 하자 황후의 암시와 본인의 충성심을 통해 협죽도(가루에 독이 들어있다.)로 만든 떡을 자기 시녀를 시켜 보내는 초강력 무리수를 둔다.(...) 아! 얼마나 멍청한가!
그리고 마침 견환과 같이 있던 안릉용에 의해 이 사실이 들통나고 견환 측은 이 사실을 덮기로 결정하지만 황후는 견환도 납득이 갈 벌을 줘야 견환이 입을 다물고 있을 거라며 홍시의 양육권을 빼앗아간다. 안릉용 역시 황후의 사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일은 자식이 없던 황후가 양육권을 빼앗으려 의도적으로 꾸민 짓이 분명하다. 그리고 견환이 출궁하고 난 뒤 천한 섭답응(녕귀인)이 총애를 독식하자 그 몸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이에 대한 황제의 사랑이 홍시를 추월할 거라는 황후의 충동질을 받아 섭답응에게 대추탕을 먹여 불임으로 만든다. 근데 이 때 또 자기 시녀 취과를 시켜서 보냈다.(...) 어찌보면 참으로 답답할 정도로 머리가 안돌아간다.
그녀의 작중행적은 오로지 홍시의 앞날을 염려한 데에서 시작과 끝을 보았다.
제비의 최후의 첫걸음은, 홍시를 몰래 만나러 온 데서 시작한 것이다. 제비는 황후에게 양육권을 뺏긴 이후로 자식도 마음놓고 만나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지만 홍시가 훗날 태자의 자리에 오르면 자신 또한 성모황태후가 될 것을 생각해 참고 견디고 있었다. 그러나 견환이 출궁한 후에 무리를 하던 황제가 병석에 눕고, 황후가 간호를 하는 틈에 홍시를 만나서 자신의 신세를 토로한다. 이에 홍시는 자신이 황제에 오르면 어머니를 황태후로 만들겠다고 말하는데 홍시에게 음식을 전하려 온 황후의 시녀인 전추가 듣게 되고 당연히 황후의 눈에 그게 곱게 보일리가 없었다!
결국 황후는 제비를 교묘하게 충동질해 녕귀인을 불임으로 만든 일을 빌미로 삼아, 황제가 홍시를 볼 때마다 제비의 이 만행을 떠올려 결국 홍시가 태자가 못될 것이라는 논리를 펼쳐 제비를 몰아붙이고, 결국 제비는 자식을 위해 장춘궁에서 비단으로 목을 매어 자진하게 된다. 그래도 이후 67화에서 황제가 살아있는 후궁, 죽은 후궁 모두를 승격하는 장면에서 "그래...3황자 홍시를 위해서도 제비만 승격에서 제외시키는 것도 좀 그렇긴 하지."라는 차원에서 간신히 귀비가 되어서 죽어서나마 잠깐이지만 해피하게 끝나나 싶었지만 결국 아들 홍시를 위해 희생했어도 홍시의 앞날을 생각하면...그저 안습.
왜냐하면 홍시는 자신에게도 효심이 지극했지만, 황후의 아들로 들어간 이후로는 자신에게 했던 것보다 더 효성을 다했고 무엇보다도 황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8황숙과 14황숙의 명예회복을 주장하는 병크를 터트리다가 8황숙의 양아들로 입적된 이후에 황실 족보에서 제명되는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다.
5 작중 역할
5.1 황제의 동네북
3황자 홍시의 생모로 황자를 낳았지만 아버지가 황제가 그렇게 혐오하다 못해 증오하는 부정축재로 인해 유배를 갔고 본인역시 멍청하고 이미 나이가 많이 든 데다 아들인 홍시마저 어미를 닮아 자질이 떨어지는 탓에 황제의 냉대를 받고 있다. 황자를 낳지 않았으면 비의 자리에 앉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황제전용 동네북과 같은 인물이다. 황제에게 전혀 총애를 받지 못한다. 황제와 단둘이서 있는 장면이 딱 한번밖에 나오지 않으며, 이것도 완귀인 시절의 견환이 자신에게로의 폭딜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다른 후궁들에게 가도록 황제를 밀어내 억지로 집어넣은 경우이다(...). 그러나 이 때 알콩달콩한 장면 연출은 커녕 면박이나 잔뜩 얻어먹은 후 황제는 다시 견환의 쇄옥헌으로 가버린다(...).
사실 꼭 젊고 예쁜 후궁만이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니고, 나이가 있는 후궁이라도 황제와 대화를 하거나 편안하게 배려해주는 것으로 총애에 버금가는 존중을 받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경빈, 단비, 황후가 바로 그 예로, 경빈의 경우에는 황제가 불러서 바둑도 같이 두고 페르시아 눈썹먹을 후궁들에게 나누는 문제로 곤란해할 때 바로 앞에 있는데 안 줄 수도 없어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7] 황후하고는 황실 예법을 반드시 지켜 매월 보름이면 꼬박꼬박 밤을 같이 보냈다. 단비 또한 황제가 직접 보러 가지 않을 뿐이지[8]
드물게라도 공식석상에 나타나면 굉장히 염려해준다. 또한 여자로서의 매력은 다하고 자식빨로 근근히 목숨을 붙이고 있는 처지는 조귀인, 경빈도 마찬가지지만,[9] 이 둘은 제비보다는 훨씬 총명하여 황제와의 대화도 통하기 때문에 박대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녀들이 황제와 단둘이서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심심찮게 목격되지만 제비의 경우엔 대화를 시도하자 황제는 바로 갈궈서 입을 막아버린다(...).
최종적으로 안릉용과 견환이 요즘 황제폐하가 뜸하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우리는 나은 편, 제비마마는 황제폐하를 단독으로 뵈신 적이 없대요..."라고 말하는 걸로 확인사살이다. 근데 이 확인사살, 견환이 출궁 후 황제가 쓰러졌을 때 황후가 한 번 더 한다.부관참시도 아니고
총애를 안하는 건 그렇다치고, 사실 뭐든간에 면박을 주는 황제의 태도를 보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이다. 드라마 설정상 제비의 아버지는 부정부패 축적으로 유배를 갔는데 실제역사에서나 극중에서나 부정부패를 매우 혐오하는 황제의 특성상 그 영향으로 대놓고 문전박대하는 것으로 추정이 된다. 견환의 충고로 제비에게 찾아갔을 때 "왜 자꾸 먹을 것만 내오냐", "책 읽게 저리로 좀 비켜라"라는 등 막말을 계속한다. 3황자 이야기를 꺼내자 그 얘기는 너무 많이 해서 3황자 귀에 못이 박혔겠다고...옛날엔 분홍색 옷이 어울린다고 하더니 지금은 나이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던지. 막상 황후가 분홍색 옷을 입을 때는 아무 말도 안했으면서![10]
제비가 황제를 만나러 찾아갔을 때는 바쁘다고 해놓고, 그 자리에서 견환이 오자 바로 들여보내 준다. 유주가 "제비마마 표정이 썩었네요"라고 말할 정도니(...). 달을 감상하는 창춘원 연회에서 말 좀 했다고 그 입으로 포도를 먹지 왜 말을 하냐고, 그럴거면 포도나 달라고 면박을 준다던지...게다가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11] 말도 하지 말란 건가 이 말을 한 다음에는 화비한테 또 까였다.[12]
심미장의 거짓회임 사건 당시 심미장을 감싸려던 견환을 보고 "완귀인은 혜귀인과 친하니~"라며 끼어들다가 황제에게 입 닥치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화비 몰락 사건 때 조귀인도 처벌할 것을 제비가 주장하자 황제는 오히려 조귀인을 빈으로 올리고 봉호까지 내려 제비를 심히 뻘쭘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자살했을 때도 황후가 울며불며 한순간의 실수로 그랬으니 용서해 줄 것을 청했음에도 불구하고[13] 황제는 "참으로 독하구나. 자살도 후하다!"라고 말하며 일말의 동정도 보여주지 않고 사후 추존도 해주지 않았다.[14] 아마 더 심한 처벌을 내릴 예정이었을 듯하다. 물론 그 때 섭란의를 한창 총애하던 중이어서 더했겠지만...
총애를 잃은지 오래되어 그런지, 비의 지위임에도 불구하고 호갑이나 머리장식 등이 수수하고 별볼일 없는 인상을 준다. 황후처럼 장중하지도 않고, 갓 입궁한 젊은 후궁들처럼 수수하면서도 상큼하지도 않고(...) 게다가 옷도 없다(...). 병석에 누워 있던 1부의 단비도, 하다못해 답응인 안릉용만 해도 나올 때마다 다른 옷을 입고 나오는데 이쪽은 사시사철 저 초록색 옷만 입고 다닌다. 사실 조귀인도 옷이 없다. 한벌로 버티는 그녀들
5.2 황후의 장기말
일단 제비는 황후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홍시를 위해 황후의 장기말로 쓰인 바 있다. 그래서 황후를 매번 무시하는 화비와는 견원지간이지만 같은 황후파인 부찰귀인과는 좀 친하다.[15] 부찰귀인이 작중에서 두 번 정신줄을 놓는데[16] 이 두 때 모두 부찰귀인에게 병문안을 오는 모습으로 옆에서 등장한다.[17] 그런데 원작에서는 협죽도로 만든 떡을 견환이 아닌 부찰귀인에게 보냈으며팀킬, 그 일로 자살하게 된다. 그 이후에 황후가 3황자의 양육권을 맡는다고...
그런데...아무래도 멍청한 제비에 황후가 질려버린 것 같다. 쓸모없어진 장기말을 계속 가지고 있을 만큼 황후는 착하지 않다. 제비는 멍청해서 안릉용처럼 교활하지도[18], 다 늙어버려서 기귀인처럼 예뻐서 황제를 붙들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뇌물을 받아 사사되는 바람에 집안도 다 날아가 부찰귀인처럼 집안이 빵빵해서 황제가 계속 찾아올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도 아니고, 유일한 장점이자 필요성은 애가 있다는 점 하나인데 그 아이를 자신이 확보한 시점에서 이미 제비의 필요는 없어졌던 것이다. 안릉용은 황후가 그래도 나름의(?) 방법으로 예뻐해주기는 한다. 안릉용이 아버지를 구명해 달라고 울며 징징거리자 황후가 방법을 생각해줄 정도의 성의는 보이는데, 제비는 아무리 울고 징징거려도 가차없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자살을 종용한 것도 황후이다(...).
6 기타
옹정제의 후궁인 제비(齊妃) 이씨를 토대로 한 인물이다. 제비 이씨는 종 4품 지부 벼슬을 지낸 이문엽의 딸이었고, 극중 제비 역시 지부 이씨의 딸로 나온다. 실제 제비 이씨는 왕부시절에 들어온 측복진이자 왕부시절 옹정에게 엄청난 총애를 받았고 세 명의 왕자, 한 명의 공주를 낳았다. 그리고 옹정제 즉위 후 옹정초에 제비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3황자 홍시의 병크로 총애를 잃어버리고 비(妃)직위만 유지한 채로 간간히 살았다고 한다.[19]
특기가 뭔진 안 나왔지만, 황제가 안 오는 밤 혼자서 주사위를 굴리며 골패[20]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또한 동물 애호가인 듯 황후와 같이 금붕어를 보고 이게 예뻐요~ 눈이 볼록한 게 귀여워요~ 라고 좋아하던 장면도 있고, 황후 고양이 송자도 원래 이 사람 고양이였다.
극중 설정으로는 옹정제를 21년간 모신 걸로 나온다. 순상재같은 예외도 있지만 보통 16-7세 정도에 남편을 맞는 걸 생각해보면 40대에 가까워져가는 나이.
그녀의 사후 장춘궁은 영귀인의 차지가 된다. 그런데 영귀인이 아이러니하게도 그 제비의 아들에게 걸려서 생을 끝낸 것을 생각하면(...).
실제 배우는 나이가 좀 있긴 하지만 의외로 꽤 미인이며, 온실초 역의 장효룡의 첫사랑(!)이었다고. 사귀거나 하는 첫사랑이라기보단 동경에 좀 가깝지만.
- ↑ 후궁 대승급 때 추존
- ↑ 훗날 제비가 죽고 나서 영귀인이 장춘궁에 거주하게 된다. 하지만...영귀인 그녀도 제비처럼 자결하게 된다. 그것도 전 주인 제비의 아들 때문에...
저주받은 장춘궁같으니... - ↑ 물론 잠시 봉호를 뺏겨 연비가 된 화비가 제일 낮아진 적이 있긴 했다.
- ↑ 견환 등 새로 간택된 후궁들이 황후와 화비에게 인사를 드릴 때 단비의 의자
비어 있었다가 제비보다 상석에 위치해 있었다. - ↑ 견환은 제비는 자식을 위해 그랬던 것이고 부찰귀인도 미쳐버렸으니 뭘 더 어쩌지 못할 것이라며 용서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제비를 건드리면 그 아들인 3황자까지 연관되어 상황이 복잡해지고 궁중암투 이상의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스토리도 더 꼬이고견환 입장에서는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현명한 처신. 제비가 견환에게 협죽도떡을 먹이려다 들켰을 때 안릉용과 황후가 견환을 자제시키며 내세운 이유도 3황자였다.(실제이유는 황후의 이해였지만) - ↑ 물론 그 다음에 협죽도의 독성을 듣자 펄쩍 뛴다.
- ↑ 물론 마음씨 착한 경빈은 선수를 쳐서 자기 머리는 검어서 필요없다며 양보했다.
- ↑ 추정컨대 화비 유산 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탓일듯. 단비를 보면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날 테니...
- ↑ 황제와의 침실신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캐릭터는 제비와 조귀인, 경빈 셋 뿐이다.
- ↑ 근데 까일 만 했다. 마시라고 준 걸 다 마시니 또 다른 마실 걸 주고, 책 읽는데 눈치없이 등불 가리고 서있고, 말 주변은 없지 하는 이야기는 아들 이야기 뿐이지, 나이 들었으니 옷도 좀 점잖게 입으라 한 마디 한 걸 가지고 늙어서 싫으냐고 눈치없이 대답하지...
완전 씨눈 - ↑ 한참 노래로 주가를 올리고 있던 상재 안릉용을 칭찬했다.
- ↑ "폐하는 언제나 신첩을 놀리십니다"라고 제비가 말하자 화비는 "과연 그럴까여? 요즘 황제폐하께서는 안상재만 놀리시던데요~"라 디스한다.
- ↑ 물론 연기였다.
- ↑ 그래도 나중에 견환이 안릉용의 비 승격을 견제하기 위해 경빈, 단비 등을 도매급으로 지위를 올리려 할 때 얼결에 묻어가서 이쪽도 추존되어 시호를 받게 된다.
- ↑
근데 안릉용과 기귀인은 왜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일까... - ↑ 귀신소동이 일어났을 때와 견환이 인간돼지 고사를 들려주었을 때.
- ↑ 부찰귀인도 제비와 친한지 견환과 마주쳤을 때 "제비마마와 연극을 보러 가야 한다고요~"라고 발뺌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 ↑ 자기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안 것은 안릉용 뿐이었다. 부찰귀인, 제비, 기귀인 모두 깨닫지 못했다.
- ↑ 화비의 모태가 되는 돈숙황귀비 연씨도 제비와 같은 왕부시절 측복진이였으나 돈숙황귀비는 엄청난 총애를 받았고 직위 역시 비보다 높은 귀비 직위였덴다가 사후 황귀비로 추존되었으니 제비의 처지와는 극과 극이였다.
- ↑ 서양으로 건너가 도미노(넘어뜨리는 것 말고)의 기원이 되었으며, 마작의 기원이 되기도 한 것. 뼈나 나무로 만든 사각형 패(牌)에 점으로 숫자를 새긴 것이다. 송나라 때 만들어져 조선에도 전해졌다. 물론 패맞추기 등도 가능한데, 혼자서 주사위를 굴리면서 하고 있었던 걸 보면 아무래도 도박같다(...). 실제로도 주로 도박 용도로 많이 쓰여서 우리나라 해방 전 신문에서도 골패도박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민요도 구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