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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해설자가 된 현재
이름 | Jon Steven "Steve" Young |
생년월일 | 1961년 10월 11일 |
출신지 |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 |
대학교 | 브리검 영 대학교 |
체격 | 188cm, 98kg |
포지션 | 쿼터백 |
프로입단 | 1984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순위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지명 |
소속팀 | 탬파베이 버커니어스(1985~1986)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1987~1999) |
1992년 NFL 정규시즌 MVP | |||||
서먼 토마스 (버펄로 빌스) | → | 스티브 영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 → | 에밋 스미스 (댈러스 카우보이스) | |
1994년 NFL 정규시즌 MVP | |||||
에밋 스미스 (댈러스 카우보이스) | → | 스티브 영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 → | 브렛 파브 (그린베이 패커스) |
제29회 슈퍼볼(1995) MVP | |||||
에밋 스미스 (댈러스 카우보이스) | → | 스티브 영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 → | 래리 브라운 (댈러스 카우보이스)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영구결번 | |
No.8 |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 출신. 유타 주에서 몰몬교를 정착시킨 제2대 지도자 브리검 영의 고손자라고 한다. 그래서 학교도 유타에 있는 브리검 영 대학을 나왔다. 이렇게만 써놓고 보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브리검 영이 자손을 워낙 많이 남겼어야지. 그냥 유비가 한나라 황실의 후손이라는 것과 흡사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존 엘웨이 비슷하게 드래프트 지명 받자 막장 팀 가기 싫다고 징징거려서 당시 신생 리그인 USFL 팀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NFL 뛰어넘겠다고 의욕적으로 출발한 새 리그의 전형적 테크로 1년만에 시망,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탬파베이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2년 있다가 샌프란시스코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리고...
전설의 뒤를 이은 전설이 된다. 조 몬태나의 대를 이어받아서 49ers의 황금기를 이룩한 왼손잡이 쿼터백이자 웨스트 코스트 오펜스의 상징. 제리 라이스와 콤비로 94년 슈퍼볼 우승을 이룩한다. 그는 선배인 조 몬태나와는 스타일이 달랐는데 백인이면서도 빠른 발과 수비의 빈틈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스크램블 능력의 소유자로, 통산 33124야드 232터치다운의 패싱 기록 못지 않게 자기 발로 4239야드 43터치다운을 만들어내는 듀얼 스렛 쿼터백의 원조격 인물이었다. 선수 시절 끝물에 당한 뇌진탕 때문에 의사로부터 당신 한번만 더 머리에 충격받으면 죽습니다 진단서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선 쿼터백이기도 하다.
주전 쿼터백의 가장 이상적인 계승 사례였던 스티브 영의 은퇴 이후로, 그의 쿼터백 후계자였던 제프 가르시아는 도합 슈퍼볼 5번 우승에 2명 연속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전설적 선배들때문에 주전으로 기용되고 나서 팀을 플레이오프로 진출시키는 등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언론 및 팀으로부터 팀의 화려한 전통에 먹칠을 하는 못난 쿼터백 취급을 받으면서 팀에서 방출, 결국 저니맨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는 플레이오프 진출도 힘겨운 막장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존 엘웨이와 비슷한 케이스.
현재 미국의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 ESPN의 풋볼 관련 프로그램에서 해설을 맡고 있다.
더 놀라운건 전설적인 활약을 보이던 때, 단순히 쿼터백만 한게 아니라는 것. 모교인 브리검영 대학교의 로스쿨에 진학해서 오프시즌때마다 로스쿨에 다녔고, 결국 법학 학위(JD)를 취득하고 변호사 자격증까지 땄다. BYU 로스쿨을 졸업한게 1994년. 슈퍼볼 우승한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