탬파베이 버커니어스

National Football Conference
남부지구 소속구단
뉴올리언스 세인츠
(New Orleans Saints)
애틀랜타 팰컨스
(Atlanta Falcons)
캐롤라이나 팬서스
(Carolina Panthers)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Tampa Bay Buccaneers)
로고워드마크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Tampa Bay Buccaneers
창단1976년
NFL 가입1977년
연고지플로리다 주 탬파
구단 연고지 변천탬파(1976~)
구단명 변천탬파베이 버커니어스 (1976~)
홈 구장탬파 스타디움(1976~1997)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1998~)
구단주 겸 사장글레이저 가문(Glazer Family)[1]
단장제이슨 리히트(Jason Licht)
감독더크 케터(Dirk Koetter)
약칭TB
홈페이지
우승: 1회
슈퍼볼 우승XXXVII(2002)
컨퍼런스 우승: 1회
NFC2002
디비전 우승: 6회
NFC Central1979, 1981, 1999
NFC South2002, 2005, 2007
플레이오프 진출: 10회
NFL1979, 1981, 1982, 1997, 1999, 2000, 2001, 2002, 2005, 2007

NFL]의 미식축구팀. NFC 남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탬파. AFL-NFL 통합 이후에는 최초로 등장한 확장 프랜차이즈이며, 해외축덕, 특히 맨유팬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 팀[2]. 버커니어란 명칭은 해적. 주로 벅스(Bucs)로 줄여서 부른다.

1 역사

1.1 신생팀 시대

AFL-NFL 통합 이후 NFL의 성장세가 두드러지자 NFL은 이제 마켓을 전미로 확대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 시작이 가장 늦게 주목받은 지역인 북태평양지역, 그리고 풋볼 열기가 뜨거워 한 팀만으로는 성이 안차는 플로리다 지역이었다. 북태평양의 중심 시애틀시애틀 시호크스를 창설할 때, 탬파, 세인트피터스버그, 클리어워터 등을 일대로 묶은 지역인 일명 '탬파베이'라는 통합연고로 필라델피아 출신 사업가 톰 맥클로스키가 창단 신청을 했지만 이런저런 문제로 거절당해 휴 컬버하우스가 구단주로 올라 훌리한 스타디움[3]을 홈구장으로 삼아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를 창단한다[4].

신생팀으로 창단한 탬파베이는 첫해 14전 전패를 하는 등 힘든 성장통을 겪었고, 시애틀 시호크스에도 나와있는 지구 이동을 한번 하면서 3년간 밑바닥을 전전했다. 이후 명예의 전당 수비엔드 리 로이 셀먼 리로이 젠킨스아님쿼터백 덕 윌리엄스, 러닝백 리키 벨을 중심으로 팀을 만들어 1979년 신생팀 최초로 지구 우승을 거두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등 짧은 승리를 맛봤다. 하지만 팀의 짧은 성공뒤 긴 나락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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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언급한 쿼터백 덕 윌리엄스는 워렌 문과 같은 흑인 쿼터백으로 신생팀 탬파베이에 1라운드 17번으로 선택되었던 선수다. 앞서 등장한 워렌 문이 같은 해인 1978년 드래프트에서 끝내 지명을 못받고 CFL로 눈을 돌리던 때, 윌리엄스는 탬파베이 5년간 주전 쿼터백으로 활동했으며 플레이오프를 이끌기도 했다. 5년의 시간이 흘러서 자유계약을 앞두고 있던 시점. 덕 윌리엄스는 당시 NFL 쿼터백 기준으로는 최하에 가까운 12만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실력에 비해 매우 연봉이 저평가되어 있던 덕 윌리엄스는 '플레이오프를 이끈 쿼터백이니 받을 만큼 받아야겠다'라고 선언했고 60만 달러의 연봉을 요구했다. 헤드코치 존 맥케이도 덕 윌리엄스만은 잡아야 된다고 구단주 휴 컬버하우스를 설득했으나 구단주는 윌리엄스의 연봉 인상 요구를 거절했다. 그 마지노선은 40만 달러. 당시 윌리엄스 연봉의 3배였지만 그 조차도 NFL 쿼터백 중 꼴찌였다. 결국 화가 잔뜩난 덕 윌리엄스는 탬파베이와 계약을 포기하고 신생리그였던 USFL로 진출해 NFL을 4년 간 떠나 있었다. 그후 USFL의 실패로 NFL에 리턴, 1986년 워싱턴 레드스킨스에 입단한 뒤 제22회 슈퍼볼(Super Bowl XXII)에서 덴버 브롱코스를 꺾고 슈퍼볼 MVP를 차지한다. 워렌 문처럼 커리어가 파란만장하진 않았지만 흑인 쿼터백으로서 입지전적인 선수로 어찌보면 쿼터백 인종차별의 희생양.

앞서 미식축구나 쿼터백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좋은 쿼터백을 내다버린 팀이 어떤 말로를 겪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렇게 염가봉사를 한 덕 윌리엄스를 내다버린 탬파베이는 후계자 쿼터백을 구하지 못한 채 그대로 꼴찌팀으로 추락해 10년 넘게 리그 최악의 프랜차이즈로 전락했다. 물론 벅스에게 시궁창을 벗어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 기회도 수포로 돌아갔다는게 문제일 뿐. 1985년 1라운드에는 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쿼터백 스티브 영을 지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은 비전 없던 탬파베이 구단 입단을 거부하면서 USFL 등을 전전하면서 버티다가 1985년 시즌 후반에나 입단해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하고 뛰었고 1985~86시즌을 거하게 말아먹었다. 그 후에도 스티브 영은 계속 탬파베이에서 못 뛰겠다고 징징대다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로 트레이드 되고 나서야 레전드 쿼터백이 되었고, 스티브 영의 대안으로 생각했던 1987년 전체 1순위로 지명한 쿼터백 비니 테스타버디도 성공률 50%대의 막패스와 인터셉트 공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방출되고 나서 30대 중반에 볼티모어 레이븐스에서 포텐이 뒤늦게 터져서 커리어를 이어갈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1.2 맬컴 글레이저 시대

선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구단주 휴 컬버하우스는 심각한 짠돌이 구단주로 팀의 승패보다는 수익을 내는데 신경을 쏟았고 선수에 투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이윤을 냈기 때문에 구단은 안으로 썩어가고 있었고, 이렇게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 수익 때문에 허덕이다 1994년에 휴 컬버하우스가 폐암으로 타계한 이후 부실한 재정상황이 드러나 1995년에 파산. 결국 아들인 휴 컬버하우스 주니어는 팀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조지 스타인브레너등 여러 풋볼팀에 관심많던 부자들이 탬파베이를 노렸지만 이 경쟁을 승리자는 1억 9200만달러를 부른 말콤 글레이저. 말콤 글레이저는 192M을 부름과 동시에 탬파베이 지역에 새 구장 건설을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여 탬파 스타디움대신 새롭게 지은 레이몬드 제임스 스타디움으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팀을 재건하기 위해 당시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흑인 수비 코디네이터를 들여오게 된다.

그 흑인 수비 코디네이터의 이름은 토니 던지. 토니 던지는 당시 NFL에서 잊혀져가던 커버-2 디펜스를 다시 꺼내들고, 이를 착실하게 가다듬은 탬파-2라는 자신만의 수비 전략으로 만들어냈고, 그에 맞게 수비 엔드 시미언 라이스,수비 태클 워렌 샙, 라인배커 데릭 브룩스, 코너백 론데 바버, 세이프티 존 린치등 걸출한 선수들을 찾아내 수비진을 만들어냈다. 또한 공격진에는 러닝백 워릭 던,풀백 마이크 알스톳이라는 러싱공격을 갖춰놓으며 점점 강호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러싱 공격에 비해 패싱 공격이 약하고 쿼터백이 불안정하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수비의 강력함으로 이를 상쇄할 수 있었으며, 2000년대 영입한 뉴욕 제츠의 스타 리시버 키션 존슨과 미네소타 바이킹스,워싱턴 레드스킨스를 거친 베테랑 쿼터백 브래드 존슨을 영입하면서 패싱공격의 강화도 이루어냈다. 하지만 토니 던지의 지도하에서는 매번 플레이오프에서 좌절했다. 1997년 첫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이래 4번의 플레이오프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2002년 드디어 팀은 결실을 맺는다.

결국 2002년 제37회 슈퍼볼(Super Bowl XXXVII)에 진출해 오클랜드 레이더스를 관광 태우고 창단 첫 우승을 거둔다. 아쉽게도 탬파베이를 이끈 토니 던지가 아닌, 바로 직전해까지 슈퍼볼 맞상대팀 오클랜드 레이더스를 이끌던 존 그루덴이 우승 과실을 따먹긴 했지만. 토니 던지의 이후 행보는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참조.

2002년 우승을 거두긴 했지만 이는 특출난 쿼터백 없이 이룬 굉장히 이례적인 우승사례이며[5] 오클랜드 레이더스의 결정적인 삽질 + 존 그루덴의 강단있는 지도력이 겹쳐진 결과였다. 그만큼 쿼터백은 미식축구 팀의 구성에 중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 존 그루덴 역시 토니 던지처럼 팀을 이끌 프랜차이즈 쿼터백만큼은 찾아내지 못했으며 이후에는 플레이오프에 간간이 진출하는 팀 정도로 돌아왔고 그루덴은 2008년 사임해 ESPN 해설자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탬파베이의 쿼터백 찾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쯤되면 덕 윌리엄스의 저주인지도...

1.3 2013년 시즌

1.3.1 전반기

망했어요

뉴욕 제츠로부터 스타 코너백 테럴 리바이스를 영입하면서 그 옛날 리즈시절 처럼 수비로 일을 내려고 한 것 같긴한데 역시 현실은 시궁창. 8주차까지 0승 7패로 전패. 도무지 점수를 낼 방법이 없는 공격진이 문제다. 발전의 기미가 안보이는 조쉬 프리먼을 3주차만에 쿼터백 자리에서 내쫓은것 까진 좋았으나 그 후임이 올해 3라운드 76번 픽으로 뽑은 생판 신인 이었으니... 설상가상으로 작년 시즌 루키 로서 팀의 러싱을 책임졌던 덕 마틴 까지 부상으로 아웃되니 공격진은 그야말로 더이상 버틸수가 없는 수준. 아무리 NFL의 속설에 '인기를 추구하려면 공격, 우승을 추구하려면 수비'라는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조악한 공격력 가지곤 수비로 일 못낸다.

1.3.2 후반기

뒷북

급기야는 9주차에 지구라이벌 캐롤라이나 팬서스전의 패배로 시즌 전 강력한 0승16패 후보였던 잭슨빌 재규어스에게도 추월당한 채 2013시즌 최후의 무승팀으로 남는 굴욕을 겪었다. 잭슨빌과 별차이 없는 한심한 팀 전력으로 새로운 0승16패 후보가 되는가 했더니 바로 다음 주에 AFC의 플레이오프 마지막 한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던 마이애미 돌핀스에게 불의의 일격을 날리며 시즌 첫승을 거두더니 그대로 3연승을 내달리면서 탈꼴찌에도 성공했다. 특히 3연승에는 플레이오프 컨텐더인 돌핀스와 라이언스전이 포함되어 있어 플레이오프 전망에 의외의 복병으로 자리잡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도 13주차에 팬서스전 패배로 도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새. 결국 4승 12패로 남부지구 꼴찌로 시즌을 마감했고 팀의 헤드코치와 GM이 모두 잘렸다. 그리고 새 헤드코치로 2007년 시카고 베어스슈퍼볼로 이끈 러비 스미스를 영입하여 재건에 나섰다.

1.4 2014 시즌

어차피 쉬어가는 시즌이지만 좀 아닌 것 같다는 반응. 1승 8패로 NFC 최하위에 처져있다.

러비 스미스는 시카고 베어스 시절에도 B급 쿼터백을 주전으로 활용하는 등 공격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2014년에도 가장 중요한 쿼터백자리를 전년도 베어스에서 커틀러 백업으로 괜찮은 모습이었던 1979년생 노장 조쉬 맥카운을 영입해 지난해 후반기를 이끈 2년차 마이크 글레넌 대신 주전으로 내세웠는데, 거하게 망했다.

수비 역시 자기 시스템에 맞는 선수들이 없어서 2년전 전체 7번으로 뽑았던 세이프티 마크 배런을 겨우 4,6라운드 픽 받고 트레이드 하는등 체질 개선하는 거 치곤 너무 손해만 보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그래서 별로 달라진거없이 작년보다 더 막장인 2승 14패를 거두며 나가떨어진다. 게다가 2015년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를 따먹기 위해서 일부러 탱킹을 했다는 의혹까지 받으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시즌 마지막 플레이오프가 좌절된 지구 내 라이벌 뉴올리언스 세인츠를 상대로 4쿼터 시작 때까지 13점을 앞서고 있었으나 4쿼터에만 16점을 내주면서 23 대 20으로 역전패 했다. 탬파베이 측은 그런 의혹을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그 때까지 같은 조건에서 탬파베이의 역대 통산 성적이 72승 2패였다는 점을 들어서 드래프트 1순위를 차지하기 위한 의도적인 져주기 게임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탬파베이는 2015년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를 차지했다.

1.5 2015 시즌

어찌됐든 꼴찌의 보답으로 드래프트 전체 1번 픽을 얻게 됐다. 벅스의 선택은 플로리다 스테이트 세미놀스에서 하이스만을 수상하며 우승을 이끈 바 있는 프로스타일 쿼터백 제이미스 윈스턴. 아무래도 팀의 얼굴인 프랜차이즈 쿼터백으로 인성 쪽에서 말이 좀 있는 선수지만 대학 시절 보여준 실력은 확실하기 때문에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데뷔전에서 프로 첫 패스가 Pick Six로 이어지는 굴욕을 당하더니 결국 라이벌 마커스 마리오타테네시 타이탄스와의 개막전에서 패배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영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 아무래도 루키 시즌이니 큰 기대를 할 수는 없지만 드래프트에서 2번 픽이던 마리오타가 더 나은 활약을 펼치는 것 때문에 조금 아쉽다는 평이다.

하지만 중반을 거치며 수비진 정비가 어느정도 이뤄지고, 윈스턴도 드디어 차차 리그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나아지더니 9주차 3승 5패, 12월에는 무패팀 캐롤라이나에 이어 6승 6패로 5할 승률을 맞추며(?!) 디비전 2위까지 오르게 됐다. 비록 막판 연패를 달리며 지구 꼴찌로 내려 앉아버렸지만...

어쨌든 제이미스 윈스턴은 시즌 4,000야드 패싱 기록과 함께 인상적인 루키 시즌을 마치게 됐다. 각종 프랜차이즈 기록을 깨는 활약이었으며 본인도 프로 볼에도 선정되고 리그 신인상도 타게 됐다. 앞으로 차차 전력 보강이 제대로 이뤄지면 팀을 제대로 이끌 재목으로 성장할 수 있을거라 기대받고 있는 중이다.

2 영구결번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의 영구결번
556399
데릭 브룩스리 로이 셀먼Warren Sapp

3 홈구장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 항목 참고

4 기타

  • 알려진대로 이 팀의 구단주 故 말콤 글레이저는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했다. 그리고 맨유 팬들이 글레이저를 싫어하는 이유는 구단 부채를 잔뜩 늘렸다는 점과 그 때문에 주축 선수들을 팔아제꼈다는 것. 그래서 맨유팬들은 능력도 없으면서 구단 2개나 굴리는 글레이저를 매일같이 까댔다. 그래도 글레이저는 생전에 맨유에 부족하지 않은 투자를 했고 수익을 끌어와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팔 때만큼의 비난은 지금 받고 있지 않다. 2014년 4월 28일에 작고.
  • 반면 버커니어스는 존 그루덴의 사임 이후로는 팀에 투자가 줄어들어 2010년엔 홈 관중을 채우지 못해 블랙아웃을 당하는등 90년대 시절 스몰마켓 행보를 그대로 밟고 있다.
  • 그리고 이 문서를 끝으로 NFL 소속 전 32구단의 문서작성이 완료되었다. 앞으로는 각 구단 문서에 여러 미식축구 오덕들이 내용을 추가바람
  1.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2. 버커니어스의 구단주인 말콤 글레이저가 맨유의 구단주이기도 하기때문인데 미국식 프로구단 경영방침을 이유로 밉상취급 당하는 중
  3. 원래 이름은 탬파 스타디움. 구장 모양이 멕시코의 전통모자 솜브레로를 닮아 빅 솜브레로라고 불렀는데, 1996~1999 이 시기동안 네이밍 스폰서를 통해 훌리한 스타디움으로 불렀다.
  4. 이 당시 사용했던 팀 색상때문에 상당히 디스를 당하기도 했는데, 붉은색과 오렌지색이 상당히 우스꽝 스러워 무슨 플로리다 오렌지 광고 하삼해댔을 정도.
  5. 이와 비견될만한 우승은 트렌트 딜퍼라는 어중간한 쿼터백을 데리고 강력한 수비 드라이브로 우승을 따낸 2000년의 볼티모어 레이븐스정도 이다. 그래도 트렌트 딜퍼와 비교하는 건 존슨에게 실례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