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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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바논역사를 다루는 문서

1.1 고대, 중세

페니키아의 땅으로 페니키아의 중심도시인 티레, 시돈은 지중해 최대의 도시로 번성하였다. 그러다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로마 제국 등 많은 나라들이 이곳을 차지했다.

동로마 제국 시기의 종교 분열로 현재의 가톨릭-정교회에서 중동 대부분의 지방이 오리엔탈 정교회를 받아들여 분리되어 나갈 때, 이 지역의 사람들은 정통파-가톨릭을 지지했고 이는 마론파의 기원이 되었다. 이슬람이 이 지역에 퍼진 뒤에는 십자군 전쟁 중 십자군 세력의 주요 거점이었다.

1.2 근세, 근대

오스만 제국이 번성한 뒤에는 오스만 제국의 땅이 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중동의 일반적 이미지와 달리 고대부터 가톨릭 계열의 마론파가 주류였고, 또한 십자군이 오랫동안 점령했던 지역이기에 기독교 계통인 마론파의 비중이 상당한 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계속되는 무슬림과 마론교도간의 다툼에 프랑스가 개입하여 1861년 자치권을 얻어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전하자 프랑스 제3공화국은 시리아와 함께 이곳을 위임 통치하기 시작했다. 이 때 시리아 내륙부 영토 중 일부도 레바논으로 편입되면서 기독교인이 다수지만 무슬림들의 비중도 상당해졌다. 이렇게 된 이유는 프랑스에서 레바논의 독립운동을 효과적으로 저해하기 위함이었고, 실제로도 독립운동 과정에서 원래부터 레바논이었던 지역에서 많이 살던 마론파 교인들은 소 레바논주의를 주장한 반면에 타 기독교 종파와 드루즈파,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계열은 아랍 민족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대 레바논주의를 주장했다. 이 갈등은 1943년 국민협정으로 다수의 마론파 기독교도가 대통령직을 차지하고 수니파와 시아파 등의 종파들이 각각 국무총리와 국회의장 등의 각료를 나누어 가지는 식으로 권력이 배분되는 형태로 끝났다.

1.3 현대

그러나 이후에도 갈등이 지속되어 1950년대 중후반에 샤문 대통령이 친서방 정책을 펼치자 아랍민족주의를 주장하던 수니-시아파계가 대대적으로 반발해서 내전이 일어나는 사태까지 벌어져 미국이 개입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는 일단 평화를 유지하지만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걸쳐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레바논 남부로 대거 유입되고 마론파는 이스라엘로부터 지원을 받아 이를 막으려고 하면서 정치적으로 급속한 혼란을 겪게 된다. 일차적인 원인은 고질적인 종파간 균형 문제에 기인한다. 레바논은 1950-70년대 초반에 중동 최고의 금융허브로 꼽혔을 정도로 경제력이 강했지만 그 혜택이 주로 정치적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마론파 기독교인들에게 돌아오고 타 종파들에게 별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발전에서 소외된 무슬림계 종파들이 종파별 인구조사를 다시 시행할 것을 요구했지만 인구조사 재시행은 이뤄지지 않았고, 마론파와 타 종파들간의 사회적인 위화감은 심화되어 갔다. 두번째로는 하나된 국가라는 인식이 약했던 것에 있는데 애시당초 기독교든 이슬람이든간에 종파별로 각자 따로 살다보니 뭉칠 일이 거의 없었고, 그러다보니 종파적인 정체성은 강했어도 레바논 국민이라는 정체성은 희미했던 것도 한몫하였다.

어쨌거나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에 걸쳐 요르단 서안지역 상실과 요르단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추방으로 갈곳이 없어진 팔레스타인계 아랍인들이 레바논으로 대거 밀려들어와 마론파 이외의 종파의 인구비율이 급속히 늘어나 마론파 기독교인의 비율이 과반을 넘는 수준에서 1/3 수준으로 급감하자, 타 종파로부터의 총리와 국회의장 등의 권한 강화 및 부의 재분배 요구를 우려한 마론파 기독교인 사이에서 이들에 맞서는 기독교계 팔랑헤 민병대를 창설했고 팔레스타인 난민 추방을 구호로 내걸었다. 이에 따라 타 종파들도 서로 민병대를 창설하였다. 레바논 군과 정부가 이를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던건 아니었지만 애초에 종파간의 자립이 강했고 종파간 빈부격차 문제나 정치성향 차이로 인해 제어 자체가 안되던 상황이었다. 기독교계가 대체적으로 전형적인 보수성향을 띠고 있다면, 이슬람계는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다만 당시 선거 결과를 보면 무소속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레바논 정부에서 마론파 교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어업권을 주자 시아파 어민들이 이에 반발하여 저항운동을 벌였다. 이에 레바논군에 의해 시아파 어민들이 진압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PLO계열 단원들이 먼저 팔랑헤에게 공격을 가했다. 그러자 팔랑헤가 PLO계열 단원들에게 보복을 가하면서 내전이 시작되었다. 팔레스타인 난민촌과 마론파 기독교인 거주지가 각각 잿더미가 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경찰은 종파간 갈등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채 무력화되었다. 또한 수도인 베이루트는 금융허브라는 명성을 잃고 테러와 범죄가 횡행하는 분단도시라는 오명만 남게 되고 말았다. 드루즈파들은 원래 마론파와는 큰 적대관계를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신도가 팔랑헤에게 살해당하는 상황이 오면서 마론파와 척을 지게 되었다. 내전 중 PLO에게 열세에 놓인 레바논 정부군은 시리아에게 지원을 요청했는데 시리아는 레바논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레바논에 파병하였다. 시리아는 범아랍주의를 표방하고 있던 국가였음에도 범아랍주의를 지향하던 단체들을 적대하였다. 결국 시리아가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우위를 차지하면서 일시적으로 평화가 오는듯 했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이었고 마론파가 배신하면서 내전은 다시 활발해졌다. 한편 시리아가 내전에 참전하자 불안해진 이스라엘도 내전에 개입하였고, 레바논 내전은 사실상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대리전으로 변모하였다. 이를 중재하기 위해 UN 평화유지군이 레바논으로 파병되었지만 내전 종식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며, 이후 미국이 기독교-우파를 지지하고 소련이 이슬람-좌파 민병대를 지지하는 양상으로 확산되었다. 이후에 이슬람 종파 내에서도 좌우간의 갈등은 심해지고 기독교 종파에서도 마론파와 시리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정교회간에 전투도 벌어지는 등 혼란상은 극심해져 갔다. 그러다가 1990년에 협의를 통해 기독교와 무슬림간의 의석이 64:64로 균형을 이루게 되었고 재건 작업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결국 2000년에 내전이 완전히 종식되었지만 종파간 갈등이나 테러 문제 등은 여전히 잔존해있으며 이번에는 친 시리아계와 반 시리아계간의 갈등이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다. 2005년 친 서구파인 라피크 바하 엘 딘 알 하리리 총리가 차량폭발로 죽었다. 지지파들은 시리아헤즈볼라가 저질렀다고 주장했고 결국에는 라피크의 아들인 싸드 하리리가 2009년 총리로 임명되었지만 정계로 나온 헤즈볼라와의 갈등으로 사퇴하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이스라엘과의 갈등을 빼면 꽤 평온한 편이라 한다. 이라크 주둔군 출신인 다른 나라 평화유지군들 증언을 봐도 이라크와 차원이 다르게 평온하다고 한다. 평화유지군 소속 차량이나 전차가 길에서 현지인 차량이나 당나귀, 양떼에 길이 막혀 한동안 찻길에 방치되어 있어도 거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고. 이라크라면 이런 일이 있다면 공격받을 가능성이 압도적이라 긴장해야 하고 이 와중에 긴장감에 애꿎은 현지인을 실수로 쏴죽이면서 대민활동에 타격이 가는 일이 많지만 레바논은 아직껏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헤즈볼라로서도 다국적 유지군과 마찰을 빚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헤즈볼라에서도 강경파로 현 헤즈볼라랑 마찰을 빚어 분열된 세력이 종종 외국인에게 테러를 가한다는 점이다.

물론 감시 도중 이상 징후를 포착해도 직접 전투를 벌이기보단 레바논 정부군에게 통보하거나 이를 지원하는 형식이다. 어차피 평화유지군은 스스로를 지키는 상황이 아니라면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도 곤란하고 감시활동 자체가 원래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이다. 애당초 통제할 힘이 있었다면 헤즈볼라가 그토록 활개치지 못했을 거고 이스라엘도 대놓고 레바논 정부를 무시하진 않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