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농

神農

중국의 왕(삼황오제)
3대 복희4대 신농5대 황제
역대제왕묘 배향자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남방을 다스리던 자.

의 머리를 가진 반인 반수로 염제(炎帝)[1]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며,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인간에게 농사를 본격적으로 알린 것이 있다. 그래서 이름(神農)이 농사(農)의 신(神)인 듯 하다.

원래는 염제와 신농은 별개의 신이었지만, 세본(世本)에서부터 동일시시키기 시작했고 이 해석이 널리 퍼지게 됐다. 태호복희를 처음으로 합친것도 세본. 하지만 현재에는 다른 서적에 인용된 내용만 남아있을뿐 세본 자체는 전해오지 않는다.

당시엔 사냥이 주이다보니 인구 부양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식물을 대량으로 농사짓는 방법을 모색했고, 먹을 수 있는 식물과 없는 식물을 구분하기 위해 스스로 모르모트를 자처했다.

당연히 독초에 떡실신 된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를 알게 된 후부터는 웬만한 독초에는 몸이 상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먹은 독초는 차로도 해독하지 못해 죽게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전설에 따르면 몸속이 훤히 비치는 구조여서 어떤 풀이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게 되어 의술에도 능통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듯 의술과 농업에 관련 된 신인 염제 신농씨는 그만큼 백성들 사이에서 지지를 많이 받아서 황제에 관한 불만을 또한 나타내주는 신인지,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동제 태호 복희씨, 서제 소호씨, 북제 전욱씨와 비교해서 황제와의 전투가 매우 많은 편...이라지만, 소호와 전욱은 황제의 후손이자 후계자인데 황제와 싸운 기록이 있으면 그게 더 웃기다. 하지만 신화에선 헌원과 형제로 나올때가 많은데, 둘의 형제설이 기록된것 중 가장 오래된것은 중국 사서인 《국어(國語)》<진어(晋語)>에서 친형제로 날조한 것이다. 이후 이복형제설, 이부형제설 등 각종 이설이 발생했으며, 중국에서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어쨌든 형제설을 정설로 보게 된다.

일단 신농씨 스스로가 판천에서 헌원과 싸워 패배했고, 그의 후손인 치우와 그의 형제들, 공공, 그의 신하인 형천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들은 단순히 우주의 지배자인 황제에게 패하여 그의 명성을 드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층에 대한 서민들의 생각을 어느정도 담고 있지 않았을까. 과연 치우가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던 때, 그는 염제의 이름을 빌려 사용하였다. 또한 중국에게 지속적으로 침략당했던 베트남의 설화집인 영남척괴열전에서도 민족시조인 낙룡군을 염제의 후손으로 기술하고 있다.

또한 그를 보좌하는 신하로써 불의 신 축융(祝融)이 있다. 축융은 여름을 관장하기도 하며 용맹 또한 대단했던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의 용맹은 치우나 형천과는 조금 다른 쪽으로 묘사되는데, 대표적으로 황제의 명을 받아 신 공공을 참한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미 모시는 신인 신농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에게 반기를 든 신농씨의 신하들과는 달리 황제와의 전투기록이 달리 남아있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축융 항목 참조.

이렇듯 남방의 천제 신농씨는 생명과 관련 된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여름은 생명이 약동하는 봄을 지나 그 기운이 절정에 이르르는 시기이며, 또한 인류의 생명과 깊은 관련성이 있는 농업이나 의술의 신인 것으로 보아 그는 가히 생명의 신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도 농사와 한의학이 신농씨가 남긴 업적이라 하여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고 칭하며, 농촌에서는 신농유업이라는 구절을 쓴 깃발을 만들고, 한의원에서는 신농유업이라고 글씨를 써서 걸어두기도 했다. 요즘은 보기 힘든 모습이다.

황제 다음으로 중국인의 시조로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염제이다.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황제의 자손이라고 하지만, 그 외에도 염제와 황제 모두의 자손이라는 뜻에서 염황자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온양 방씨는 자기네 집안의 원시조가 신농씨라고 주장한다. 기원전 2357년 신농의 10세손인 유망황제(楡罔皇帝)가 장남인 휘 뢰(雷)에게 사패지(賜牌地)를 주어 하남성 방산(方山)지방에 봉하였고, 그 지명을 따서 방씨로 득성하였다. 온양 방씨의 시조인 방지는 방뢰의 134세손이었는데, 당나라한림학사로서, 신라 문무왕 9년에 나당동맹의 문화사절로 신라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진주 강씨 또한 자기네 집안의 원시조가 신농씨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증산계 종교의 교조인 증산 강일순이 진주 강씨였으며, 그래서 자기가 말한 종교적 주장에서도 신농씨에게 특별한 위상을 부여했다.

무쌍 오로치 시리즈 등장인물
진삼국무쌍 7 이후와 전국무쌍 4 이후는 제외
천계 인물콜라보레이션 캐릭터
무쌍 오로치오로치, 달기
마왕재림복희, 여와, 태공망,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타이라노 키요모리, 히미코, 손오공, 진 오로치
Z삼장법사, 무사시보 벤케이, 도도메키, 우귀
무쌍 오로치 2카구야, 스사노오, 나타, 주천동자류 하야부사, 아킬레우스, 아야네, 네메아, 잔다르크
SPECIAL아베노 세이메이레이첼
HYPER신농모미지
Ultimate타마모노마에, 응룡, 나타(과거), 구미호, 혼돈카스미, 스테르켄부르크 크라나하, 소피티아 알렉산드라
틀:진삼국무쌍 시리즈/등장인물
틀:전국무쌍 시리즈/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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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쌍오로치 2 하이퍼에 신캐릭터로 참전하게되었다. 성우는 후쿠하라 코헤이 힘들어하는 선계멤버들을 모른척하고 선계에서 편히있을수가 없었다나. 무기는 웬 막대인데 공격하면 찻잎이 튀어나온다.카구야 대항마 특이하게 동공은 반투명인데 약초를 구별하기위해 먹으면 눈의 색이 변한다고한다.적장 우려먹었다! 녹차 때문인지 의상이나 이펙트가 녹색 계열.[2]

  1. 엔테이의 이름은 여기서 따왔다. 炎帝=エンテイ.
  2. 신농을 그린 옛날 그림들을 보면 녹찻잎풀로 엮은 케이프를 입은 것으로 나오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