Алексей Николаевич (Рома́нов)
1904년 8월 12일 ~ 1918년 7월 17일.
1 생애
1.1 마지막 황태자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황족으로, 러시아 제국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아들로 마지막 황태자로 유명하다.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4년 8월에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1] 황후 사이의 1남 4녀 중 막내이자 외아들로 태어났다. 딸만 내리 넷을 낳은 뒤에야 비로소 황위계승자가 될 고명아들을 낳은 거라[2] 알렉세이가 태어났을 때 니콜라이 2세 부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하며, 아들을 '해님'이라고 칭할 정도로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라 황후가 혈우병 보인자[3]였기 때문에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나는 바람에, 니콜라이 2세가 그토록 오래 기다려 얻은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탄생은 로마노프 왕조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측근들의 증언에 따르면 알렉세이는 '동화 속 왕자님'같은 미소년이었다고 하나, 혈우병 때문에 안색이 늘 창백했으며 잔병치레가 잦은 병약한 황태자였다고 한다. 감기에 걸려 코를 세게 풀면 코 안의 점막이 헐어서 바로 피가 나왔기 때문에 어머니인 알렉산드라 황후와 누나들인 황녀들, 그리고 주변 시종들은 늘 그의 건강 때문에 노심초사했다고. 이렇게 몸이 좋지 않다 보니 야외 활동에도 자연히 많은 제약이 따라서, 그가 남긴 일기를 보면 친구들과 직접 같이 놀지는 못하고 친구들이 노는 것을 지켜 봤다는 기록만 있다. 혈우병 때문에 몸이 늘 불편해서 신경질적인 모습도 자주 보였다. 실제로 알렉세이가 공식석상에서 아프다며 칭얼대자 첫째 누나인 올가 황녀가 그러지 말라고 점잖게 만류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알렉세이는 도리어 더 신경질을 내며 올가 황녀의 뺨을 때리는 무례한 짓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주변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몹시 당황했음에도 불구하고 올가는 병약한 남동생을 탓하지 않고 이해해 웃어 넘겨 상황을 무마시켰다.
어쨌든 알렉세이가 지병 때문에 종종 예민하게 굴었어도 니콜라이 2세 일가는 대체로 화목한 가정이었고 알렉세이도 4명의 누나들과 친한 편이었다. 특히 친한 누나는 바로 위의 누나이자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녀로서 수많은 매체에서 다뤄진 그 유명한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였다. 아나스타샤는 아파서 힘들어하는 알렉세이와 재밌게 놀아 주어 웃게 만들었으며 늘 다정히 돌봐줬다고 한다.
한편 알렉산드라 황후는 외아들의 혈우병을 치료하기 위해 종교적인 방법까지 시도했다. 그때 한 사람을 기용했는데 그가 바로 그리고리 라스푸틴.. 신기하게도 라스푸틴이 알렉세이를 위해 기도해 주면 알렉세이가 차도를 보이는 등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데, 예전부터 악마의 힘이나 마법을 사용했다는 말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그냥 단순히 안정을 취하게 해 스스로 회복하게 만들었을 확률이 높다.
혈우병 때문에 단명할 거라는 예상이 많았고, 실제로 본인도 자신이 오래 살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훌륭한 황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고 한다. 밀리터리 마니아라 제1차 세계대전에 군복을 입고 (후방이었겠지만) 병장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질병이 아니라 혁명이었다.
1.2 2월 혁명 이후
1917년 러시아 혁명(2월 혁명)이 일어난 이후 황제와 황후, 그리고 황녀들과 황태자는 연금 되었다. 임시정부의 수장 케렌스키는 이들을 외국으로 망명시키려고 했으나, 연합국 어느나라도 이들을 받아주기를 꺼려했다. 이어 10월 혁명이 벌어져 볼셰비키가 집권하자 이들은 우랄 산맥으로 끌려가 유배 생활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유배생활을 하던 중에 알렉세이는 혈우병이 도지는 바람에 다리를 아예 못 쓰게 돼서 이동해야 할 때에는 니콜라이 2세가 아들을 직접 안고 이동해야 했다고 하니 당시 황제의 가족이 겪은 비참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다 1918년 7월에 14번째 생일을 불과 1달쯤 앞두고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적색군에 의해 니콜라이 2세를 비롯해서 일가족 모두 사살당했다.
첫째 누나 올가 황녀와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
2 유해 발굴, 그리고 음모론(생존설)
그의 시신은 바로 위의 누나인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처럼 오랫동안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남은 마지막 러시아 황태자라고 주장하는 이는 여럿 있었다. 그러나 알렉세이가 혈우병 환자인데다가 처형 당시에 몹시 허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총상이나 총검에 찔려 자상을 입었을 경우 살아남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라, 생존설을 반박하는 쪽도 만만찮았다. 그러나 자신이 알렉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나타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사람은 바실리 크세노폰트비치 필라토프(1907~1988)였다.
사진 비교
1907년에 태어난 그는 공식적으로 알렉세이보다 3살이 어렸다. 세례를 받았던 교회에 출생기록이 남아있었으므로, 나이가 거짓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일개 구두 제화공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오르간, 피아노, 하프시코드, 아코디언과 같은 악기들을 연주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베토벤, 차이콥스키, 쇼팽 등 고전 음악과 러시아의 민속 음악, 오페라에도 조예가 깊었고, 러시아의 역사, 특히 전쟁사에 박식해 알렉세이 역시 밀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긴 하다. 아이들에게 항상 자세히 이야기 하곤 했으며, 독일어,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프랑스어 등 6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또한 푸시킨, 체호프, 괴테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의 시를 외우고 있었다.
워킹 클래스로 태어났음에도 상식적으로는 납득될 수 없는 다양한 교양을 갖고 있던 그는 13세부터 22세까지는 구두 수선공으로 있었고 이후엔 고등학교 지리 교사로 일했다. 그리고 임종을 앞둔 시점에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를 자신의 누나라고 하면서 자신이 러시아의 마지막 황태자라 고백했다. 실제로 필라토프의 전체적인 골격과 얼굴 생김새 등이 알렉세이와 매우 유사했으며 DNA 검사결과 자손들의 유전자와 로마노프 황족의 유전자가 일부 일치했다. 그에 관한 기사 # 다른 관련 글 또한 필적이 같았다는 말도 있다.
비록 필라토프가 혈우병 증세를 보이진 않았어도[4] 유전자 검사 결과가 일부 일치하는 것으로 나오자 이는 거의 결정적인 증거로 취급되었다. 사실 일부 학자들도 이렇게나 알렉세이와 일치하는 점이 많았던 필라토프를 알렉세이라고 믿고 싶어했었다. 실제로 1991년에 발굴된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시신에서도 아나스타샤와 알렉세이는 없었는데, 이것이 알렉세이 생존설의 한 증거이자 필라토프가 알렉세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간접적인 증거가 되기도 했다.
물론 필라토프를 알렉세이로 보기 어려운 근거도 상당히 있었다. 필라토프는 혈액 관련 질병이 있긴 했으나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생전에 병원도 거의 가지 않았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고 유배 생활 중에 걷지도 못하게 되었던 알렉세이가 갑자기 건강체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필라토프는 진짜 바실리 필라토프는 죽었고, 그 부모가 알렉세이였던 자신을 거둬 아들인 바실리 필라토프의 인생을 살게 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사실을 증명해줄 사람도 없었다. 갓난아기도 아니고 열 몇 살 먹은 남자아이가 다른 사람으로 바꼈다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했을 법한데 필라토프의 어린 시절 이웃들은 그런 사실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2007년에 셋째 누나 마리야와 함께 진짜 알렉세이의 시신이 발굴되었다!! 결국 필라토프는 진짜 알렉세이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여담이지만 2007년에 발굴된 시신 3구를 분석한 결과, 아나스타샤의 시신은 1991년에 이미 발굴됐던 9구의 시신 중 하나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 당시에 마리야로 판명됐던 시신이, 사실 아나스타샤의 시신이었던 것. 당시 처형에 가담했던 자들의 친척 등의 증언에 따르면, 처음에 알렉세이와 마리야의 시신을 묻고 그 근처 다른 곳에 남은 시신들을 묻었기 때문에, 알렉세이와 마리야의 시신만 뒤늦게 발굴된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알렉세이의 시신은 찾았지만, 바실리 필라토프가 왜 자신을 황태자라고 주장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자신이 알렉세이라고 주장했던 자들 태반은 가짜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처럼 돈과 명예를 얻어보려고 되도 않는 사기를 친 것이었지만 이 자는 그 어떤 가짜들보다도 파급력이 큰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도 평생 나서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아나스타샤까지 운운하며 자신을 알렉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렇다면 바실리 필라토프는 대체 누구인가가 문제가 된다. 특히 DNA 검사 결과가 문제시됐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DNA가 사람의 고유한 식별 정보이며 생판 남인 사람끼리 DNA 정보가 일치할 확률은 극히 희박한 점을 감안하면 이렇게 보긴 힘들다. 그래서 일각에선 로마노프 황가의 방계 후손[5]이 아니겠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의문점은 많지만 당사자인 필라토프 본인이 이미 사망했고, 자녀들도 부친의 임종 직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데다가 이 사실을 알고도 그 후에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서 학계에서도 더이상 알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3 대중매체에서
1986년에 방영한 TV영화 <아나스타샤>에서는 당시 12살이었던 아역배우 크리스찬 베일이 알렉세이를 연기했는데 이것이 그의 연기 데뷔작이었다. 극중에서 알렉세이는 유배 생활에 절망하다 계단에서 구르는 방식으로 자살 시도를 하는 바람에 크게 다쳐 다리를 못쓰게 되는 것으로 묘사됐다.
사무라 히로아키의 만화 춘풍의 스녜그로치카에서는 알렉세이 황태자가 사실은 생존해 있다는 가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이다.
- ↑ 당시 러시아 제국에서는 황자에게만 황위계승권을 인정하는 계승전범을 택하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저 사실을 모르고 시집 온 알렉산드라는 처음에는 막연히 장녀 올가가 황위를 계승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시어머니로부터 계승자가 될 아들을 출산하라는 압박을 심하게 받으며 고부갈등을 겪었다고.
- ↑ 혈우병 보인자를 가진 빅토리아 여왕의 딸들이 유럽 각국의 왕실로 시집가서, 유럽 왕실마다 혈우병이 퍼지게 되었다.
- ↑ 다만 군대는 혈액 관련 질병 때문에 면제받았다고 한다.
- ↑ 아마도 니콜라이 2세의 남동생인 미하일 대공의 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