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가수활동

1 개요

20년을 넘는 가수 인생 동안 승승장구한 최고의 여성 가수. 당시의 유행에 맞으면서도 쿨한 느낌의 노래를 꾸준히 발표해 온 세월이 20년. 대한민국에서의 위치라면 마돈나와 비견 가능할 만한 유일한 여가수. 가수로서 전성기는 역시 1990년대지만 2000년대에도 히트곡이 꽤 있다.

뛰어난 연기력이 뒷받침된 그녀가 연출할 수 있는 무대는 무궁무진하고 음악적인 폭도 넓고 좋은 음색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음악적인 감도 무척 좋다. 다만 이 모든 탁월함에 비해 가창력이 아쉬운 게 가장 큰 흠. 일단 합창단 출신답게 음색이 명료한 편이고 음역대가 (생각보다) 꽤 넓지만, 가수로서의 성량이 아쉽고 라이브할 때 굉장히 불안하다. 하지만 또 불안한 와중에도 고음 처리를 다 하는 신기한(?) 가창력을 지닌 가수. 그런데 갑상선암 수술 이후로는 예전만큼 고음을 내지는 못한다고 한다.

2 도약기

2.1 1집 'Sorrowful Secret' (1993)

1993년에 발매한 1집 'Sorrowful Secret'에서는 그녀가 출연한 유하 감독의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음악 감독이었던 신해철의 곡을 받아 OST의 성격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음반 판매량으로 겨우 8만장을 기록하여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을 지 몰라도, 영화에서 엄정화가 맡았던 카페 가수 캐릭터를 기반으로 삼아 당시 대세였던 강수지, 하수빈을 위시로 하는 청순가련형 여가수들과 차별화된 몽환적이며 에로틱한 컨셉으로 공략을 시도하여 군부대를 중심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모았고, 이 덕분에 엄정화는 가수 데뷔 첫 해부터 군인이 가장 좋아하는 여가수로 선정되는 등 섹시 디바로서의 성장 가능성이 점차 엿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이 곡은 데뷔 시절 엄정화라는 가수의 고유 컨셉을 정확히 잡아준 가이드라인 같은 곡이어서 엄정화 본인이 매우 애착을 가진다고 KBS 불후의 명곡에서 밝히기도 했는데, 사실 이 컨셉은 다름아닌 신해철이 직접 잡아준 것이다. 신해철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신해철이 본 엄정화의 첫인상은 섹시와는 거리가 먼 청순한 느낌이었고 소속사 측도 가요계의 대세였던 청순가련 여가수 컨셉으로 엄정화의 데뷔 앨범을 만들고 있었으나, 엄정화를 본 신해철은 그녀의 섹스어필 포텐을 간파하고 앞으로 청순가련 트렌드는 저물고 남자들이 여가수를 보면서 섹스어필을 즐기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으며 엄정화는 섹스어필 쪽으로 내재된 끼가 있다고 매니저를 설득하고, 녹음과정에서도 레코딩 엔지니어를 제외한 매니저 및 스탭들을 모두 쫒아내고 엄정화의 내재된 끼를 끌어내기 위해 혼도 많이 내고 북돋아주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엄정화 본인도 엄정화 고유의 컨셉을 잡아준 가이드라인으로 생각하며 애착을 가질 정도에다, 훗날 신해철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빠께 정식으로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눈동자'라는 곡이 없었으면 그동안의 엄정화란 가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거에요라고 고인이 된 신해철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하기도 하였다.

2.2 2집 'Uhm Jung Hwa 2' (1995)

1995년에 발매한 2집 'Uhm Jung Hwa 2'에서는 최준영이 작사/곡한 타이틀곡이었던 '슬픈 기대'가 다채로운 색상의 가발을 쓴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으며 차트 10위 권에 안착하는 등 전작에 비해서는 나아졌으나, 대중들로 부터 큰 반향을 얻기에는 아직 부족한 감이 있었다.[1] 하지만 사실 '슬픈 기대'라는 곡 자체의 멜로디는 나쁜 편이 전혀 아니었으며 음악적 측면에서나 무대 스타일 측면에서나 전작인 1집에 비해 한층 강렬한 느낌으로 진화한 덕분에 엄정화가 섹시 댄스 디바로 나아가게 하는 교두보가 되어 주었고, 후속작인 3집에서의 '배반의 장미' 활동시 컨셉이 당시로서는 매우 강력하고 파격적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한편 김형석이 작사/곡하고 후속곡으로 활동한 발라드인 하늘만 허락한 사랑은 타이틀곡 '슬픈 기대'와는 달리 대중들로 부터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가요 프로그램에서 상위권을 차지했고 mbc에서는 1위 후보까지 오르면서 이 곡 덕분에 2집의 음반 판매량 또한 전작의 배를 넘는 20만장을 기록하는 등 가수로서의 커리어에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된다. 참고로 이 곡은 엄정화의 대표 발라드곡으로서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데, 실상 가사 내용은 NTR 수준으로 워낙 막장이라 가사가 시궁창/한국 항목에도 당당히 수록(...)되어 있다.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2집의 원래 타이틀곡은 1번 트랙인 사랑 갈등이었다. 이후의 타이틀이었던 슬픈 기대를 제외한 2집 전곡의 작사를 윤성희가 담당했는데, 그녀는 90년대 초반 방송작가로 데뷔한 이후 윤종신, R.ef 등의 가수들과 작업했다. 무엇보다 90년대 초중반 젊은 연인들의 사랑방식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능통했고 엄정화 2집에서 꽃을 피웠던 것이다. 그 당시 나름대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앨범.

3 전성기

3.1 3집 '후애' (1997)

1997년에 발매한 3집 '후애'(대표곡 배반의 장미 후애 삼자대면)에서는 주영훈이 작사/곡 한 타이틀곡 배반의 장미가 데뷔 이후 최초로 가요 차트에서 1위를 하는 기록을 안겨주고 음반 판매량 40만 장으로 전작의 곱절 수준으로 뛰어넘는 등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인기 여가수의 반열에 오르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장미 가시를 상징하는 뾰족하게 세운 헤어 스타일,[2] 짙은 화장, 검은색 무대 의상 등 아방가르드한 무대 스타일로 섹시함을 포인트로 잡은 이 노래로 엄정화는 각 음반 및 가요 차트를 휩쓸었고, 뛰어난 퍼포머로서의 역량을 과시했으며 후속곡인 삼자대면도 상위권에서 오르면서 선전했다.


그 뒤 3집 활동 막바지 때 대 신인이었던 지누션의 데뷔앨범 후속곡인 말해줘에 피쳐링을 맡았는데, 곡도 좋은데다 엄정화의 인기효과까지 결합되면서 당시 신인이었던 지누션은 이 곡으로 가요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하며 메이저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엄정화 또한 사실상 후속곡 수준으로 활동하며 인기를 이어가게 되었으며 삼속곡인 발라드곡 후애도 가요차트에서 상위권에 랭크되었다.[3] 실제 이 곡은 지누션에게 주어지기 전부터 엄정화가 솔로곡으로 탐을 무척이나 내던 곡이었으나, 사실 이곡의 작사/작곡자인 이현도는 당시 양현석과 함께 공동 프로듀싱을 하고 있어 지누션에게 끝내 이 곡을 주게 되었고, 결국 엄정화는 보컬부분 피쳐링으로라도 참여 가능하도록 부탁하여 성사가 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 곡으로 활동하면서 지누션 멤버들과의 스캔들 때문에 지누션 팬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어서 고생도 많이 했다고 한다.

3.2 4집 'Invitation' (1998)

3집의 대성공으로 주영훈과 다시 한번 손잡고 만들어 1998년에 출시된 4집 'Invitation'(대표곡 초대 POISON, 숨은그림찾기[4])는 엄정화의 명곡들이 쏟아져 나온 명반으로 음반 판매량 또한 47만장으로 전작보다 상승하며 실질적으로 엄정화의 리즈 시절을 대표하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타이틀곡 '포이즌'은 전작인 '배반의 장미'에서 보다 세련된 스타일로 다듬어진 멜로디와 편곡 덕분에 국민적 사랑을 받았으며, 당시 여성들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5대 5 가르마의 스트레이트 단발머리를 선보이며 패셔니스트답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모델로 이름을 날리던 차승원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도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코요태김종민은 이 곡에서 부터 엄정화의 백댄서로 연예계에 입문하여 준수한 외모 덕분에 엄정화의 댄스 파트너 급으로 급부상하며, 개인 팬클럽이 생겼을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여담으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Sleep Now In The Fire'을 들어보면 맨끝부분에 레코딩 중 한인방송이 혼선되면서 포이즌 곡이 실리게 되자 멤버들은 이때문에 재녹음을 했을 때 오히려 혼선되어 들어간게 녹음이 더 잘 되기도 했고, 어쩐지 재밌을 거 같아서 그대로 앨범에 넣어 버리면서 알려지게 된 이야기는 KBS 스펀지 41회 방송분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


4집 후속곡으로 활동한 박진영이 작사/곡의 '초대'는 파격적인 노출 수준의 뮤직비디오[5] 부채를 활용한 섹시 안무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참고로 이 곡의 랩 파트는 god 데뷔전이던 데니안과 박준형이 맡아서, 후속곡 활동 초기에는 둘이 무대에 나오기도 했으나 이후 리믹스를 하면서 백댄서이던 김영완이 데니안 파트만 부르는 것으로 바뀌었다.[6]

3.3 5집 '005.1999.06' (1999)

1999년 발매된 5집 '005.1999.06'(대표곡 몰라, FESTIVAL, SCARLET)에서는 3집과 4집에서의 연전연승으로 솔로 여가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진 엄정화가 당시 테크노 트렌드에 발 맞추어 귀마개에 물이 들어가 있는 일명 물병헤드폰을 쓰고 나오며[7] 패션 아이템으로 까지 승화시키는 등 대 히트를 기록하였으며 음반 판매량은 엄정화 역대 앨범 사상 최고 수준인 55만장으로 기록될 정도로 엄정화는 이 앨범에서 인기도의 정점을 찍게 된다.

3집과 4집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주영훈의 곡이 아닌 김창환의 곡인 몰라를 타이틀로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참고로 엄정화는 김창환에게 이 곡을 받기 위해 2년 가까이 삼고초려를 했을 정도로 매우 공을 들인 것으로 훗날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이 당시에는 그녀가 이미 유명세를 떨치던 톱스타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삼고초려하는 것 뿐만 아니라, 김창환의 지시대로 당시 거의 무명이었던 가수 김태영[8]의 지도까지 성실히 받는 등 정성을 쏟아준 덕분에 김창환도 상당히 흡족해했다는 후문이다.


주영훈이 만든 후속곡 '페스티벌'은 그동안 엄정화가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던 밝고 경쾌한 컨셉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였는데, 활동시기가 한창 여름일 때라서 피서 시즌과 맞물려서 길거리 마다 이 노래가 나왔을 정도로 타이틀곡 못지않게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5집 음반 판매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사실 처음 주영훈이 이 곡을 쓰고 컨츄리꼬꼬에게 주었으나, 가뜩이나 가벼운 그룹 이미지에 이 곡까지 해버리면[9] 이미지가 더 가벼워질 것 같아서결국은 한없이 가벼워졌다는건 안자랑 거절했고, 그 다음에 결국 엄정화에게 돌아갔지만 엄정화도 처음에는 하기 싫다고 울었을 정도였는데 결과는 알다시피 여름만 되면 ATM으로 변하게 되는데(...) 참고로 그 당시 이승엽이 홈런 쳤을 때 나오던 음악이었다.


전작의 인기를 꾸준히 이어가며 대한민국 대표 여가수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면서 그 해 KBS 가요대상 청소년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 말에 5.5집의 성격으로 베스트 앨범을 발표하고, 주영훈이 만든 '크로스'라는 신곡으로 활동을 이어가며 14만장의 음반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전성기의 끝자락을 예고하게 된다.

4 성숙기

4.1 6집 'Queen of Charisma' (2000)

2000년 6집 'Queen of Charisma'(대표곡 Escape, )은 고품격의 귀족적 컨셉으로 접근했다. 'Queen of Charisma'라는 범상치 않은 앨범 타이틀에 세계적 포토그래퍼 리 젠킨스와 호흡을 맞춰 찍은 이번 앨범의 자켓과 사진집은 언뜻 보아도 굉장히 럭셔리할 정도로 국내 가요계에서의 엄정화의 위상을 대중들에게 뽐내는 듯한 컨셉으로 접근했으며 전성기때의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주영훈 스타일의 댄스곡들로 승부를 걸었다.[10]


하지만 화려한 포장과는 달리 속의 알맹이는 그렇게 알차지 못했다. 타이틀곡 'Escape'에서 엄정화는 스팽글이 달린 와이드 팬츠와 한층 올린 업헤어를 '카리스마'라는 콘셉트에 맞춰 내세우지만 전작들이 얻었던 광범위한 지지를 시장에서 이끌어내는 것에는 실패했으며, 킹콩이 등장하는 뮤직비디오를 기반으로 활동한 (김건우 작곡가가 야심차게 만든) 일렉트로니카 풍의 댄스곡 '틈'을 후속곡으로 내세우며 이때부터 일렉트로니카 쪽으로 음악적인 시도를 했지만 프로듀서였던 작곡가 주영훈은 일렉트로니카 장르와 인연이 없었기에 음악성에 있어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어려웠던데다, 이때 그녀는 아직 하우스 댄스 장르를 기반으로 인기를 얻고 있던 시기인지라 대중들의 반응은 시원찮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전작들과 차별화되지 못한 진부한 음악 스타일에다 6집 활동시기이던 2000년 하반기 당시에 쟁쟁한 가수들이 대거 컴백하는 바람에 3집 활동곡은 가요프로그램에서 10위 권 안에 드는 등 선전했음에도 음반 판매량은 전작인 5집에 비해 반토막 수준인 23만장으로 급감하는 굴욕을 당했다.

4.2 7집 '화(花)' (2001)

이듬해인 2001년에 발매한 7집 '화(花)'(대표곡 다가라)에서는 기존의 강력한 비트의 하우스 댄스에서 다소 편한 느낌의 디스코 풍의 음악과 복고 스타일의 의상으로 무대에서 어필했다. 타이틀곡 '다가라'는 6집 보다는 나은 반향을 보이며 케이블 뮤직차트에서는 1위를 기록했고, 공중파 차트에서는 1위 후보에 오르는 등 괜찮은 행보를 이어가며 음반판매량 또한 전작인 6집보다 약간 적은 수준인 20만장으로 선방하게 된다. 인기에 있어서 성장세는 멈췄을지 몰라도 그동안 공고히 다져온 대표 여가수로서의 명성은 어디 가지 않는지 '오드리 헵번 스타일'을 키워드로 앞머리를 짧게 자른 뱅헤어가 화제를 모으며 유행이 되기도 했다.

이 앨범이 출시된 이후 2002년부터 국내 가요계 음반 시장이 급속도로 침체의 길을 걷게 되었고, 엄정화 가수 본인으로서도 연령대가 30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걸그룹을 비롯한 10대 여가수들과 경쟁하기 점차 힘들어지게 되자 인기도에서 한계를 느끼게 되는 등 댄스 여가수로서 위기가 찾아왔다. 연령대에 맞게 발라드로 전향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도 많이 있었으나, 엄정화는 이를 마다하고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댄스 여가수로서 음악적으로나 스타일로나 성숙되고 진보된 모습으로 다시 한 번 차별화를 시도하는데 집중하게 된다.

4.3 8집 'Self Control' (2004)


엄정화 - Eros

2004년 발매한 8집 SELF CONTROL에서는 엄정화 정규앨범 사상 최초로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는 시도를 했다. 이 앨범은 더블 앨범으로, 한 장은 일렉트로니카곡들 위주의 'self side', 다른 한 장은 기존과 비슷한 이미지의 댄스곡 위주의 'control side'이다. 실질적으로는 self side에 수록된 정재형 작사/곡의 <Eternity>와 control side에 수록된 주영훈 작사/곡의 <Eros>로 더블 타이틀 활동을 했다. 의외로 차라리 과도한 일렉트로니카보다는 기존 엄정화 스타일을 살린 'control side'를 더 높이 평가하는 평론가도 많았다.

일렉트로니카인 'Self Side'에 참가한 작곡가들의 면모는 화려한데 정재형, 롤러코스터, 윤상, 프랙탈, 달파란 등 당시 한국에서 일렉트로니카풍 가요를 한다는 아티스트들은 다 불러왔다. 본인이 일렉트로니카를 하고싶어 직접 발로 뛰며 섭외했다고. 다만 이 막강한 프로듀서진에 엄정화가 잘 녹아들지 못했고 엄정화의 앨범이 아니라 오히려 각 프로듀서들의 곡에 엄정화가 피처링한 곡들을 모아놓은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타이틀곡의 대중성도 심히 떨어지는 바람에 유일하게 차트제를 운영했던 MBC에서는 20~30위 권에 턱걸이했고 음반판매량도 전작인 7집의 1/8 수준인 2만 5천장에 머무르며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했다. 활동 자체도 길지 않아 엄정화의 8집 활동 자체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 다만 이 앨범의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다음 앨범인 9집 Prestige의 수준있는 음악성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타이틀곡 'Eternity'는 마돈나의 10집 수록곡 'Don't Tell Me'의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카피했는데, (멜로디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표절은 아니다) 불행히도 그녀의 가창력은 마돈나가 아니었으며 정재형도 미르와스 아마드자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망했다. 특히 오토튠을 과도하게 사용했고 음악방송에도 DJ세트를 마련, 라이브로 오토튠을 사용하는 등의 혁신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오토튠의 음성왜곡 효과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보컬과 프로듀서의 역량이 둘다 받쳐줘야 한다. 보컬은 배음을 최대한 빼고 음을 직선적으로 불러야 하고, 프로듀서는 그 보컬의 목소리를 편집증적으로 1/100초 단위로 자르고 이어붙여야 매끄러운 결과물이 나오는 법인데... 결정적으로 '그냥 엄정화' 목소리에 오토튠 효과만 줘서 뭔가 제대로 사요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조금 변명하자면, 2004년에는 오토튠을 사용한 기법이 2010년대만큼 널리 퍼져있지 않았다. 실제로 오토튠 자체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것 자체도 2005년의 티페인 이후이고... 이 당시 잘 알려져 있지 않던 것을 혁신적으로 도입했다는 것은 맞다. 노하우까지 익히지 못했을 뿐,

엄정화 - Eternity

Madonna - Don't Tell Me

4.4 9집 'Prestige' (2006)

38세 때인 2006년에 발표한 다음 앨범인 9집 Prestige에서는 전작의 방향을 이어와서 앨범 전체적으로는 지누, 캐스커, 페퍼톤스, W 등을 영입해 일렉트로니카가 주류였다. 활동이 많지 않았기에 대중적인 반향도 미미했고 음반 판매량도 6천장 수준으로 바닥이었지만 외적 이슈와 관계없이 음반만큼은 전문가들에게 호평을 받아 그 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앨범상'을 받았다. 지난 앨범에서도 일레트로닉을 시도했지만 엄정화 본연의 색깔이 전혀 녹아들지 못했던 반면, 본작에서는 앨범의 주인이 엄정화임이 분명해졌다. 앨범의 전반적인 컨셉 및 장르는 영국 일레트로닉 밴드인 모로코와 마돈나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현재 일렉트로니카가 주류를 이루는 2010년대의 가요계 트렌드를 감안하면 상당히 앞서가는 앨범이었기에 어찌보면 비운의 명작이라 불릴 정도.

앨범의 전체적 컨셉은 당당히 사는 여성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동안 섹시가수 이미지를 버릴 수 없어서인지 타이틀곡은 노골적인 섹스어필을 나타내는 방시혁이 작곡한 'Come 2 Me'를 선정했지만 좋은 반응을 이끌지 못했다. 이곡은 원래 앨범 발표 후 얼마동안 Cum 2 Me로 명명했다가 Come 2 Me로 변경되었다. 이 때 제목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cum'이라는 단어는 영어 속어로 '사정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선정적이라는 것이다[11]. 가사 내용도 '너만 생각하면 달아올라, 너의 손길에 쓰러지고 싶어'라면서 대놓고 성관계를 비유하였기 때문에 논란이 컸다. 또한 노래 자체도 당시 유행하던 팀벌랜드의 사운드를 차용해서인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곡들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앨범 발매 직후 마돈나를 벤치마킹해 이태원의 D모 게이클럽에서[12] 쇼케이스를 열기도 했다. 사실 'Come 2 Me' 활동 때도 하드게이풍의 게이 스타일 백댄서들을 대동했다. 사실, 엄정화는 이효리와 더불어 게이들에게 가장 상징적인 게이 아이콘으로 손꼽힌다. [13]


tvN 개국방송에서 최초로 'Come 2 Me'의 방송무대를 선보였는데, 무대 의상이 가히 속옷에 가까워 큰 이슈가 되었다.[14] 당시 여론은 노골적인 의상에 악플로 도배되었고, 나이 많은 여가수의 추태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허나 이는 당시 대한민국의 정서상의 문제로, 서양에서는 레이디 가가, 마돈나[15], 리아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의 디바급 여가수들은 이런 옷을 매 공연 때마다 입는 등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다. 특히 마돈나는 50살이 넘어서도 이런 옷을 즐겨 입고[16], 그리고 먼 훗날 아예 이런 옷이 컨셉인 걸그룹까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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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하앍하앍이 뭔지 제대로 보여줄게.
위의 의상은 모로코의 의상을 차용한 듯하다.

5 제2의 전성기

5.1 미니앨범 'D.I.S.C.O' (2008)

연기로는 승승장구, 하지만 앨범은 대중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중 한국나이 40세였던 2008년에 발표한 일렉트로니카 클럽 사운드 풍의 'D.I.S.C.O'가 차트 1위에도 오르고 음반판매량 또한 8천장을 기록[17]하는 등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 곡은 YG 프로듀싱진에 의해 완성된 미니앨범의 타이틀곡으로, 2007년 빅히트를 친 빅뱅거짓말을 듣고 노래에 반한 엄정화가 YG의 수장인 양현석에게 직접 연락하여 앨범을 함께 내고 싶다고 먼저 요청하여 이루어진 것.[18]

이 노래로 활동 시 파워숄더에 형광색인 극도로 과장된 복장이여서 '기뉴특전대'의 대장 기뉴의 옷차림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엄기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타이틀곡 활동 기간동안 빅뱅T.O.P가 래퍼로 피쳐링 하여 무대에 올랐는데, 엄정화가 워낙 이모뻘로 나이가 많은 탓에(…) 지누션 때와는 달리 스캔들 같은 악재가 전혀 없어서(…) 빅뱅 팬들을 사로잡으며 인기를 끌 수 있었다고 엄정화가 회고하기도 했다. 수록곡 'DJ'는 2NE1CL이 랩으로 피처링해 2NE1의 데뷔 전 미리 무대에 서기도 했다.

5.2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 (2015)

1990년대 뮤지션들을 재조명하는 취지로 기획된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에 극적으로 출연하며 화제가 되었다. 별다른 노출 없이도 심플한 듯 한 의상컨셉만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관객들을 매료시킬 정도의 섹시함과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하여 대중 및 언론으로 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국내 유수 음원사이트에서는 그녀의 활동곡이었던 4집의 '포이즌'과 '초대'가 실시간으로 상위권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2000~2010년대의 걸그룹을 중심으로 과도한 노출과 수준 이하의 민망스런 안무들 때문에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엄정화의 무대를 통해서 가요계에서 섹시 컨셉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을 정도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론도 있는데 사실 엄정화 4집도 1990년대 말 당시의 기준으로는 민망스런 에로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안무로 여겨졌다. 어디까지나 시대상이 바뀐 것 뿐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동시대의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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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시 섹시컨셉으로 나오는 가수들은 반응이 좋지 않았는데, 아직 어린 나로 데뷔하고 이후 예능에서 이주일 성대모사로 유명해져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섹시컨셉의 변신을 타이틀로 들고 나온 신수경은 후속곡이었던 리메이크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에서야 주목받을 수 있던 정도였다. 민해경은 공백기 이후 아예 섹시의상을 입고 강한 퍼포먼스의 너를 다시 보게 됐어를 여름에 선보였으나, 얼마 못 가서 접어야 했다.
  2. 엄정화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로선 워낙 파격적인 컨셉이다 보니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일부 머리카락만 세웠으나, 곡이 점차 인기를 얻으면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완전 번개머리 수준으로 강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3. 이 때 시작된 양현석과의 좋은 인연은 10여년 후인 2008년 미니앨범의 'D.I.S.C.O.'로 다시 이어진다.
  4. 솔리드 출신 프로듀서 정재윤이 만든 곡이다.
  5. 상체 누드로 엎드려있는 엄정화의 등을 웬 할아버지 스님이 나와서 밀어 주신다(...) 참고로 이 장면에서 엄정화가 상반신 누드로 엎드려 있는 모습이 나와 뮤직비디오가 일부 공중파 방송에서 방송금지 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6. 참고로 이 김영완이란 사람은 그룹 콜라의 리더 출신으로 코요태 4집 '비몽'시절 마약사건으로 탈퇴한 김구를 대신해 객원랩퍼로 활약하기도 했다. 무한도전 토토가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사람이 출연해 랩파트를 담당했다.
  7.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이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8. 1999년 클론의 3집 객원보컬로 유명해지며 가수로서도 알려지게 된다.
  9. 전주에 337박수가 들어가면서 응원가 분위기가 날 정도다.
  10. 앨범의 디자인은 이승환과의 인연으로 앨범 디자이너를 시작한 GIGIC 이강현 실장의 작품. 이승환 6-9집까지의 앨범, 크로스진 데뷔앨범, 엠블랙 데뷔~미니5집 리패키지까지의 앨범 등등 다수.
  11. 점잖게 표현해서 사정이지, 실제로는 '싸다'라는 어감이다. 우리말의 '사정하다'에 해당하는 생물학 용어는 'ejaculate'.
  12. 제대로 된 무대가 있던 유일한 게이클럽이었다. 현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하드락 카페가 들어왔다가 망했다.
  13. 미국에서는 마돈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레이디 가가. 대한민국에서는 엄정화, 이효리, 일본에서는 하마사키 아유미 등이 있다.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유독 여자 솔로 가수가 인기를 얻는다. 특히 한물 간 여자 가수가 인기가 높은 것 같다거나, 대중이 주목하는 여가수들은 그들의 취향을 비껴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마돈나의 경우 전성기 때부터 게이 아이콘으로 주목받았고 레이디 가가 또한 데뷔 초부터 그러했으므로 잘못된 시각이다. 단지 카리스마 넘치고 당당하고 중성적인 느낌의 여가수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이다.
  14. 훗날 엄정화가 당시의 패션에 대한 해명을 인터뷰에서 밝히길, 속옷 모양의 의상이 아니라 진짜 팬티였다고 한다. 본래는 다른 의상이 준비되었으나, 사이즈가 안 맞아서 급한대로 코디들이 사온 팬티를 입고 나갔었다고..... 여기서 영감을 얻었는지 나중에는 속옷브랜드도 런칭한다.
  15. 실제로 엄정화의 저 의상은 당시 마돈나의 hung up 의상에서 차용한 듯한 인상이 있다
  16. 물론 서양이라고 비판 여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로 그들의 비판의 초점은 가수의 자기관리에 있다. 실제로 브리트니의 2007 vma 같은 경우는 비대해진 몸매로 큰 곤욕을 치뤘다
  17. 많지 않은 판매량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음원 중심으로 이동된지 오래인데다 정규도 아닌 미니앨범으로 이정도 판매량을 보인것은 선방이라 할 수 있다.
  18. 이전에 지누션의 '말해줘' 에서 피쳐링 해주어 지누션의 인기를 올린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연락을 못했어도 엄정화 본인으로서는 거리낌 없이 요청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