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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伯奢
생몰년도 미상
垂老歸林下(수로귀림하) : 늘그막에 시골로 돌아와서悠然世外思(유연세외사) : 유연히 세상 밖에 거했는데,
豈知滅門禍(기지멸문화) : 어찌 알았으리오, 멸문의 화가
即在宴賓時(즉재연빈시) : 빈객 모신 잔치 때 있을 줄을.
목차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조조의 옛 친구로 조조가 동탁의 추적을 피하는 과정에서 그의 집에 묵게 되었는데, 이후 조조에게 살해되었다.
그의 살해 정황에 대해서는 사서마다 기록이 약간씩 다른 점이 있다.
내가 세상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그들이 나를 저버리게 하진 않겠소(寧交我負天下人, 休交天下人不我) [1]
2 정사
정사 삼국지에서는 무제기에 단 배송지의 주석에서 언급되는데 출전마다 기록이 조금씩 다르다. 일단 조조가 여백사의 가족을 죽였다는 점은 같으나 위서에서는 조조의 정당 방위로 기록되어 있고, 세어와 잡기에서는 여백사의 가족이 무고하게 살해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대의 사학자들은 신빙성에 의심이 가고, 왜곡이 많은 위서보다는 조조가 무고하게 여백사의 가족을 살해했다고 적은 세어와 잡기의 기록을 믿는 편이다.
2.1 왕침의 위서
위서에서 이르기를 태조(조조)가 동탁이 끝내는 반드시 뒤집혀 패망할 것을 알고 마침내 등용에 응하지 않고 달아나 향리로 돌아왔는데, 몇 기를 데리고 옛 친구인 성고의 여백사에게 들렀다. 백사는 집에 없고 그 아들과 빈객들이 함께 태조를 겁박하여 말과 재물을 빼앗으려 하였는데, 태조는 손수 칼을 휘둘러 여러 명을 죽였다.
魏書曰: 太祖以卓終必覆敗, 遂不就拜, 逃歸鄕裏. 從數騎過故人成皐呂伯奢;伯奢不在, 其子與賓客共劫太祖, 取馬及物, 太祖手刃擊殺數人
여백사 사건을 부당한 것으로 비판했던 아래의 둘과 다르게, 왕침은 여백사 사건을 조조의 정당방위로 기록했다. 서진과 동진 시대에 살았던 후대인인 곽반과 손성과는 달리 왕침은 위나라에 살았지만, 또한 위나라 사람이라 당연히 조조에 대해 미화하는 경향이 클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위서 자체가 당나라의 유지기가 "사통"에서 엄격하게 지탄했을 정도로 왜곡이 많은 서적이다.[2] 때문에, 현대의 사학자들은 배송지가 그러했듯이 대부분 위서의 내용을 믿지 않는다.
거기다 이 왕침이란 사람은 따지고 보면 조조의 관점에서도 더러운 사람이다. (...). 진서와 한진춘추에 의하면 말년에 위의 마지막 충신들이 사마소를 공격하기 위해 일을 꾸미고 있던 중 왕침 역시 왕업, 왕경과 함께 위황제(조모)에게 불려가 그러한 계획에 대해 듣고 협력을 요청받게 된다. 그러나 앞으로 진의 시대가 올 것을 직감하고 왕업과 함께 사마소를 찾아가 이 사실을 밀고해 결국 조모가 시해되게 만든 인물이다. 이렇듯 왕침은 여러 역사서에서 기회주의적이고 천박한 자로 까이는 인물이기 때문에, 현대에는 그가 집필한 내용을 거의 믿지 않는다.[3]
2.2 곽반의 세어
세어에서 이르기를 태조가 백사에게 들렀다. 백사는 밖에 나가있었고, 다섯 아들들이 모두 집에 있어 빈 주례를 준비하였다. 태조는 스스로 동탁의 명을 저버린 것 때문에 그들이 자기를 도모하려 한다고 의심하여 손수 검을 휘둘러 밤중에 여덟 명을 죽이고 떠났다.
世語曰: 太祖過伯奢. 伯奢出行, 五子皆在, 備賓主禮. 太祖自以背卓命, 疑其圖己, 手劍夜殺八人而去.
2.3 손성의 잡기
손성의 잡기에서 이르기를 태조가 식기가 내는 소리를 듣고는 자기를 도모하려 한다 여기고는 마침내 밤중에 그들을 죽이고는 처량하고 구슬프게 말하기를 "차라리 내가 다른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다른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라 하고 마침내 떠났다.
孫盛雜記曰: 太祖聞其食器聲, 以爲圖己, 遂夜殺之. 旣而悽愴曰:「寧我負人, 毋人負我!」遂行
조조가 진궁에게 잡혔던 일도 정사에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조조가 중모(中牟)현을 지날 때 정장(亭長)의 의심을 받아 붙잡혀 현으로 보내졌는데 읍인 중에 몰래 그를 알아보는 이가 있어 그에게 청하여 풀려났다 한다.
세어에서는 현의 공조(功曹)가 조조를 알아보고 세상이 어지러워지는데 천하의 웅준을 구금해서는 안된다고 현령에게 아뢰어 풀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이 현령이 진궁이라는 언급은 없으며 정황상 진궁은 아닌 듯 하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선 조조의 아버지 조숭과 의형제를 맺은 인물로 등장한다. 또한 여백사의 죽음에 대해서는 세어와 잡기의 기록을 적절하게 섞어 재구성하였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동탁 암살에 실패하고 도망쳤다가 현령으로 일하던 진궁에게 붙잡혔는데, 진궁의 호의로 함께 떠나게 되었다. 잠시 하룻밤 묵어가기 위해 마침 도중에 있던 여백사의 집을 찾게 된다. 여백사는 진궁이 조조를 구해준 이야기를 듣고 마치 친아들을 구해 준 것과 같이 진궁에게 감사를 표하고, 둘을 후하게 대접하기 위해 가족들에게는 돼지를 잡으라고 시켜 놓은채, 자신은 술을 사러 옆 마을로 떠난다.
하지만 밤중에 조조와 진궁은 여백사의 가솔들이 "묶어서 죽이자."라고 중얼거리는 수상한 소리를 엿듣게 되고, 그들이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고 판단한 조조와 진궁은 여백사의 가솔들을 모두 베어 죽인다. 그런데 모두 죽이고 보니 부엌에 돼지 한 마리가 묶인채 꿀꿀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백사의 가족과 하인들은 조조와 진궁을 대접하려고 돼지를 잡으려 했던 것인데, 두 사람은 그걸 오해하여 오히려 은혜를 악으로 갚아 사람들을 몰살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 버린 일, 어쩔 수 없으니 둘은 다시 길을 떠난다.
그런데 도중에 멀리서 술을 사가지고 돌아오던 여백사와 마주치게 된다. 여백사는 왜 벌써 가는지 물어보지만, 조조와 진궁은 급한 일이 있다면서 황급히 길을 서두른다. 그런데 갑자기 조조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여백사에게 "저쪽에 오는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말해서 고개를 돌리게 하고 그대로 여백사까지 베어 죽인다.
놀라는 진궁에게 조조는, "이 사람이 돌아가서 가족들이 죽은 것을 보면 반드시 자신에게 원한을 품어 신고할 것이니,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대답한다. 이어서 "내가 천하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寧敎我負天下人, 休敎天下人負我 영교아부천하인, 휴교천하인부아)는 말을 남긴다. 진궁은 조조의 잔혹함에 경악한다.
조조가 악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진궁은 밤중에 몰래 조조를 죽이려 하지만, 차마 그런 비겁한 행동을 할 수 없어 조용히 떠나게 된다.
짧고 간결하지만 삼국지연의의 명 에피소드 중 하나.
겉으로 보이는 공명정대한 선량함 속에 냉혹함과 잔인함을 감추고 있는 조조의 캐릭터를 인상 깊은 에피소드를 통해 잘 묘사하였다.
또한 진궁을 등장시킴으로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복선을 깔아놓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서주대학살사건이나 아무 잘못이 없었던 부하장수를 희생해 수춘성을 공략하는 에피소드를 접했을 때, 독자들이 조조의 성격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개연성을 느낄 수 있는 징검다리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이 에피소드 이전까지만 해도 조조는 선역에 가까운 영웅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에피소드에서 나타난 조조는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악당이다. 아무리 실수라고 해도, 실수임을 스스로 인식한 뒤 취한 조조의 행동(목격자 제거)을 보면, 도저히 그를 위해 변명해 줄 기분이 들지 않는다. 암살에 실패한 상태에서 도망치고 있었으니, 불안한 마음에 오해를 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이해하지만,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고 친척인 일가족을 살해하는 건, 서브컬쳐나 현실에서도 극악한 살인마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
특히 자신이 한 짓이 오해의 결과물인 걸 알고도, 조조는 여백사에게 사죄를 한 후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자신이 한 짓이 알려질까봐 오히려 여백사를 죽였다. 도덕 이전에 인간으로서 실격이다. 현대의 연쇄살인범들이 하고 있는 목격자 처리와 뭐가 다를까? 지금까지 책에 나온 그 인물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조조라는 인물의 이중적인 본성의 실체를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이후에 이어지는 그의 악행들을 예고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후 그 업보를 제대로 받는다
기타 창작물에선 이때 조조가 냉혹한 모습을 보이거나, 조조에게 더 동정심을 보이는 경우는 그가 속으로 후회하고 있었다고 미화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후회했다면 서주대학살을 일으켰을리가
분명 존재했던 사건을 나관중이 조합해서 만든 장면이다. 소설적 의미로만 봐도 의미가 깊은 장면이지만, 극적인 복선까지 만들어낸 나관중의 조조 캐릭터가 현대의 얼빠진 조조 찬양이론보다는 몇 배는 선진적이고 재미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위서에서도 정당방위라고 조조를 변호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현대에 들어 조조 재평가가 극단적으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게다가 '남이 나를 버리게 하진 않겠다'라는 식의 말을 "내가 천하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는 연의만의 명대사로 탈바꿈 시켜 조조가 천하를 삼키려하는 야심 많은 간웅임을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만들었다. 연의의 조조가 '간교하지만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이라는 캐릭터를 얻은건 이 순간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미디어 믹스
4.1 창천항로
위의 설 두 가지가 반 씩 섞였다. 낙양의 상인으로 나오는 데, 동탁에게 어그로를 잔뜩 끌고[4] 도망치던 조조가, 떡하니 자기 지명수배서 앞에서 자세 잡고 당당하게 서 있는 걸 보고는, 그 모습에 당황해하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은근슬쩍 말을 꺼내 빼낸 뒤, 동탁을 척살하려는 대의에 공감한다며 자신도 끼워달라고 했다. 이때 본인이 한 말로 미루어봐서 이건 꾸밈없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정작 여백사의 식솔들은 여백사 모르게 조조를 죽이려고 들다가, 눈치 빠른 조조가 사전에 배치시켜놓은 병사들에게 모조리 때려잡혀서 역관광당한다. 이에 여백사는 천하를 논한 주제에 정작 자기 식솔들 관리를 못했으니 이건 죽어도 할 말 없다며 고개를 떨구나, 조조는 그런 그를 용서하는 대신, 그 이름에서 '사'자를 빼서 여백이란 이름을 칭할 것을 명한 뒤, 상인의 능력을 살리라고 한다. 이렇게 그는 조조의 돈셔틀이 되는걸로 초반부에 한 두번 등장하는 걸로 출현이 끝났다(...).
4.2 고우영 삼국지
조조에게 죽은 여백사가 혼령으로 나와 나중에 조조의 아버지 및 식구들을 죽게한다는 이야기를 창작했다. 물론, 여백사 혼령이 직접 죽인 건 아니지만 조조네 식구가 몰살당한 자리에서 웃으며 바라보는 모습으로 나온다. 현대에 부쩍 늘어난 여백사 사건 부정파보다는 훨씬 나은 장면이다. (...).
4.3 삼국
진궁이 처음으로 여백사의 하인들의 이야기를 듣고[5] 식솔들을 죽이자고 제안한다.[6] 술을 사와서 웃으며 오는 여백사를 조조가 찔러 죽인뒤에 시체를 유기하려 하고 이를 진궁이 꾸짖는다. 이때 조조는 그 유명한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릴 수 없다"는 말을 하며 허탈하게 웃는다. 부싯돌로 여백사의 시체를 태우려던중 하늘에선 번개가 치고 음악도 구슬픈 음악이 나오는데, 배우인 진건빈이 인상이 선해보여 냉혹한 장면인데도 슬픈 느낌이 난다. 결국 시체를 태우지 못하고 마을로 가지고 가, 세상이 백부님을 죽였으니 반드시 원한을 갚아주겠다는 적반하장 이야기를 하고 시체 앞에 두번 절한 후 요리하던 고기를 웃고 즐기며 처묵처묵한다.(...) 조조의 호탕함과 동시에 뻔뻔함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4.4 삼국지 시리즈
아주 드물게 이벤트 용으로나 등장하는 정도[7]였는데, 삼국지 11의 콘솔판에서 특전무장으로 참가했다. 능력치는 모든 면에서 동백만도 못하지만, 특기로 지닌 부호 덕분에 그냥 도시에 박아두기만 해도 제 몫은 해낸다. 대신 등장시켜도 일반 시나리오에선 수명이 얼마 안남았으니 주의.
연의의 안습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상성과 친애무장은 조조로 맞춰져 있다. 거야 죽는 그 순간까지 조조가 그렇게 배은망덕한 짓거리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조조 세력에 소속시키면 초반 진행의 몇 안되는 약점인 자금력이 보완되므로 훨씬 쾌적한 진행이 가능해진다.
4.5 적벽대전
90년대 삼국지 무장쟁패 시리즈로 유명했던 팬더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RPG게임 적벽대전에서도 등장한다. 플레이어가 조조, 유비, 손권 세 영웅 중 조조를 골라 플레이하면 여백사 이벤트를 볼 수 있다. 여기에서도 삼국지연의처럼 조조가 여백사에게 "저쪽에서 오는 사람이 누구입니까?"하고 속여서 고개를 돌리게 하여 죽이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 과정에서 조조와 여백사의 전투모드가 따로 구현되어 있다.
전투에서 여백사는 홀홀단신인 반면 조조는 휘하에 조인, 조홍, 진궁 등의 장수와 수천의 사졸들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공격 한방이면 손쉽게 여백사를 처치할 수 있다.
물론 여백사를 죽이지 않고 퇴각 명령을 내려 그냥 도망가면 좋겠지만, 본 게임상 이 전투모드는 강제 전투이므로 도망은 100% 실패한다. 고로 여백사를 공격해 죽이던지 일기토로 죽이던지 반드시 죽여야(...) 게임이 진행된다. 조조가 전투를 단념하고 계속 도망가려고 발버둥 친다거나 공격을 하지 않고 뜸을 들일 때 마다 조조나 그 휘하 장수들에게 일기토를 걸며 계속 도발해오는 여백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인용 오류: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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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끝나면 진궁이 휘하에서 이탈해버린다. 전투모드에서 여백사를 진궁과 일기토를 붙여서 죽게 끔 해도 게임 스토리상으로는 조조가 여백사를 속여 살해한 것으로 처리되므로 전투 종료 후 진궁은 조조의 잔혹함을 욕하고 조조는 연의에 나왔던 그 명대사를 날린다(...)
4.6 영웅조조
조조가 동탁을 피하는 길에 진궁과 함께 찾아오자 관아에서 자네(조조)를 찾기 위해 현상금까지 걸고 자네의 아버지(조숭)는 고향집으로 피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조조, 진궁을 대접하면서 저자에 술을 사러 가는데, 조조가 오해로 여백사의 가솔들을 죽이면서 도중에 길을 떠나는 조조와 만난다. 그러나 조조가 뒤에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그 말을 듣고 여백사는 뒤를 돌아봤다가 그 틈에 조조의 칼을 맞고 죽는다.
- ↑ 현대 중국어 문법으로는 宁我负天下人, 不可天下人负我, 또는 약간 더 옛스럽게 宁肯我负天下人, 休叫天下人负我 라고 한다. 신삼국에서는 뒷문장이 조조의 대사로 나온다.
- ↑ 유지기가 위서를 보고 그 왜곡에 어찌나 열을 받았던지 사통 곡필편에서 "왕침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첨하여 기술하였다"고 한후 "기록의 간적, 대필의 흉인"이라고 걸쭉한 욕을 내뱉으며 "시호(호랑이)의 먹이로 던져넣어도 상관 없다"고 일갈했다.
- ↑ 위서의 왜곡이 어느 정도냐면, 예를 들어 문소황후를 죽인 것이 바로 문제(조비)인데 왕침은 위서에 문소황후가 죽자 문제가 매우 애석해했다고 적어놨을 정도이다. (...). 위서의 기록이 연의(소설)보다 정확하다고 맹신하는 건 7080년대 중국의 마오이즘, 8090년대 이후 한국와 일본에서 퍼진 관점이다. 이후에는 위서도 전형적인 어용학자의 기록으로서 의심하고 본다.
- ↑ 원본에서와는 달리 동탁을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그냥 자기 포섭하려던 동탁한테 가서 누가 먼저 이 세상 집어삼키나 두고 보자고 어그로를 끌었을 뿐....
- ↑ 묶어놓고 죽이자는 물론이고 도망 못가게 대문을 막으라는 이야기도 있다. 완전히 오해 살만한 이야기들
- ↑ 앞 부분에서 여백사가 하인들에게 술을 구하게 하자, 그렇게 되면 누군가가 밀고할수 있다고 여백사가 손수 가겠다는 복선을 깔았다
- ↑ 예를 들어 삼국지 10. 시랑군림 시나리오에서 조조로 플레이하면 쉽게 볼 수 있다. 여기선 선택지를 통해 여백사를 죽이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