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당(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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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주요 정당
(괄호 안은 영국 서민원 의석 수)
집권당보수당
(330석)
야당노동당
(229석)
스코틀랜드 국민당
(54석)
자유민주당
(9석)
민주통일당
(8석)
신 페인
(4석)
웨일스당
(3석)
사회민주노동당
(3석)
얼스터 연합주의자당
(2석)
녹색당
(1석)
무소속
(5석)
의장
(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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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

1 개요

1832년에 토리당이 이름을 바꾸며 생긴 영국의 정당. 당 이름과 같이 대놓고 보수주의 성향을 띤다. 노동당, 자유민주당과 함께 3대 정당이다. 당헌에 기재된 정식 명칭은 보수통일당(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이지만 이 풀네임을 일일이 쓰는 경우보다 Conservative Party 또는 Conservatives로 쓰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면 옛 이름을 따서 Tory Party, Tories라고 쓰든가... 참고로 2015년 5월 현재 영국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보면 그레이트브리튼의 정당 명칭은 Conservative Party#로, 북아일랜드의 정당 명칭은 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로 등록돼 있다.[1][2][3]

기원으로 따지자면 1780년대에 소 윌리엄 피트를 중심으로한 휘그당의 탈당파들로 올라갈 수 있다. 1832년 로버트 필이 토리로 불리우던 정당의 이름을 보수당으로 바꾸면서 현재의 이름응 얻게 되었다. 참고로 1678년부터 1760년대까지 존재했던 토리당과는 이름만 빼고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경쟁 정당이었던 휘그에 비해서 딱히 보수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1840년대 곡물법 폐지 논란을 기점으로 경제적으로는 보호주의vs자유주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사실 근대 정치가 갖추어지고 난 후에도 크게 정치적 논점이 차이가 난 것은 아니었으며,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입장이 정리되곤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당이 집권할 때 자유당보다 더 큰 개혁이 이루어지곤 하였다.

토리를 근대적인 정당으로서 보수당으로 변화시킨 로버트 필이 막상 자유무역 문제로 수상 임기 말년에 당을 쪼개자 20년 동안 휘그, 그리고 후신인 자유당[4]에 정권을 내주게 된다.

이 와중에 보수당을 변화시킨 것은 벤저민 디즈레일리였다. 그는 이른바 '진보적 보수주의' '일국 보수주의(one-nation conservatism)' 노선을 견지하여 보수주의를 근대적인 관점으로 끌어올렸으며 민주주의의 개념도 수용하였다. 그의 집권 기간에 보수당은 전통적 젠트리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지 중간 계급과 노동 계급에게도 지지를 끌어올린다. 반면, 디즈레일리 사후에 보수당(제3대 솔즈베리 후작)과 번갈아 집권한 자유당(글래드스턴 수상)은 글래드스턴이 아일랜드 자치 법안을 강행하자 당내에서도 반발이 생겼다. 자유당 내 아일랜드 자치 반대론자들은 1886년 자유통일당(Liberal Unionist Party)을 창당하여 보수당과 공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 20년 동안 보수당이 정권을 독점하게 된다.

1906년 부터 13년간 자유당에 다시 정권을 내주게 되었고, 귀족원(상원)이 평민원(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을 거부할 권한을 잃으면서 최악의 상황에 몰린다. 그러나 아일랜드 자치 법안이 다시 화두에 올라 정치적 혼란이 가속되어 1차 대전에 이르기 직전까지 제2차 영국 내전을 촉발시킬 수 있을 상황이 된다. 자유당은 "인민 예산"의 복지정책으로 지지를 크게 잃었다. 특히 1차 대전이 보수당 회생의 기회가 되었는데, 거국 내각의 로이드 조지가 보수당과 손잡고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자유당이 내분 속에 붕괴하고, 향후 2차 대전이 이르기까지 보수당이 사실상 정국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 사실 자유당이 몰락하고 보수당의 시대가 열린 것은 보수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자유당이 불화를 자초한 면이 크다. 1차 대전 이전의 혼란 시기 동안 보수당도 자유당에 대하여 딱히 뚜렷한 대안을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1912년에는 보수당과 자유통일당이 공식 합당하면서 현재의 보수통일당이라는 당명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Conservative Party라는 당명에 거부감을 느끼는 유권자가 많아 이 해부터는 자유통일당 노선을 따라 통일당(Unionist Party)라는 스코틀랜드만의 정당[5]이 자매 정당으로서 조직돼 활동하게 되었다.[6][7] 스코틀랜드의 통일당은 1965년까지 존속됐다가 보수통일당에 완전히 흡수된다.[8]

2차대전 직후에는 잠시 노동당에게 정권을 내준다. 2차대전 종전까지 보수당 소속의 처칠의 주도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에도[9] 영국 유권자들은 냉정하게 노동당을 집권시킨 것. 그러나 무리한 복지 정책으로 반발을 사자 보수당의 처칠이 다시 집권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보수당의 정책도 노동당과 뚜렷하게 다른 것은 아니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챙긴 셈. 아무튼 정권을 탈환한 처칠은 조지 6세의 마지막 총리이자 엘리자베스 2세 재위기의 첫 총리가 되었다.

보수당의 뚜렷한 정책 변화는 1970년대 후반기에 나타났다. 영국IMF구제 금융을 신청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고, 보수당과 노동당 그 어느 측에서도 이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러한 와중에 중간 계급 출신인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나타나 신자유주의를 들고 와서 보수당을 집권시키고 수상이 되었다. 전통적인 지배 계급인 젠트리도 아니고 더군다나 남성도 아니고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정권은 영국 사회의 변화를 암시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신자유주의 노선의 도입이 영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타협적인 당의 전통과 달리 비타협적이고 과격한 그녀의 정책은 그녀의 경쟁자에게나 당원들에게나 비호감을 샀다. 그런데도 포클랜드 전쟁과 같은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나 그녀는 계속 집권이 가능하였고, 보수당은 인두세 파동[10]을 빌미로 그녀를 거의 쫓아내다시피하였다[11].

이후 존 메이저가 총리가 되었고 1992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되며 승리하는 등[12] 어찌어찌 잘 버텨 나갔다. 하지만 연달아 터지는 스캔들과 백벤처[13] 통제 실패[14] 등으로 비틀대더니만, 결국 경제마저 주저앉으면서 1997년 총선에서는 인두세가 폐지된 후 다시 대거 선거인 등록을 한 노동당에게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하며 박살났다. 당시 토니 블레어가 이끈 노동당은 보수당을 상대로 418 대 165의 만화 같은 압승을 거두고 노동당의 암흑기를 끝내고 장기 집권 시대를 열었던 것.[15]

메이저의 뒤를 이어 윌리엄 헤이그가 보수당의 당권을 잡았고 2001년에 그의 첫 총선을 치렀다. 하지만 노동당은 5석만 줄고 보수당은 고작 1석만 늘어나서(413 대 166) 역시 노동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그래도 헤이그의 후임인 마이클 하워드는 2005년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를 상대로 또 지기는 했으나 이전보다는 당세를 회복했다(노동 355 : 보수 198).[16]

블레어가 2년 뒤에 총리직과 노동당 당수직을 사임하게 되고 고든 브라운이 그의 후임자가 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새로 보수당의 당권을 쥔 당내 중도파 데이비드 캐머런은 당의 로고를 녹색나무민주당?로 바꾸고 2010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과반은 확보하지 못해 자유민주당(자유당의 후신)과의 연정으로 집권했다.

집권 이후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영국 독립당(UKIP)이 잉글랜드 내 지방선거에서 보수당의 표밭을 잠식하게 되었다.[17] 그러자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한 캐머런은 차기 총선에서 집권할 경우 유럽연합의 간섭을 덜 받는 방향으로 재협상을 시도할 것이며 2017년까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18]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하게 됐다.

2014년에는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가 실시됐는데 투표 직전 한 번 찬성이 반대보다 높게 나온 여론조사가 나와 비상이 걸렸다. 보수당 뿐만 아니라 제1야당인 노동당과 연립정부 파트너인 자민당까지 스코틀랜드에 총출동해서 제발 독립하지 말아 달라며 호소하게 되었다(...). 캐머런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독립이 부결됐으니 망정이지 만약 독립하게 됐으면 총리직과 보수당 대표직에서 사퇴하는 상황에 몰렸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주민투표는 캐머런이 동의했기 때문에 실시됐기 때문.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는 좌파 정당인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은 2007년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총선에 이어 2011년에도 승리해 자치정부에서 재집권하게 되자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중앙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했고, 캐머런은 "어차피 여론상 독립 반대가 우세한데 차라리 이 참에 주민투표를 수용해서 독립론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놓자!" 이렇게 갔던 것(2012년 에든버러 합의[19]). 비록 처음 예상대로 독립 반대로 결정이 나긴 했으나, 기대와 달리 이전보다 찬성론자들의 수가 늘어나[20] 실제 독립 직전까지 갈 지경이었으니, 독립으로 결정 났더라면 캐머런은 당연히 사퇴해야 했을 것이다.

2015년 총선에서는 보수당이 단독 과반 의석을 달성하면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스코틀랜드 국민당과 노동당과의 연정이 이루워질것을 우려한 보수층들이 대거 결집한 영향인데 이번에는 단독 집권을 해서 자민당을 제외하고 보수당만으로 내각이 구성되었는데 이것은 1997년 이후 18년만에 처음이다.[21] 암흑기 탈출 성공 총선 전 영국의 보수적인 기업가들은 보수당이 이기면 유럽연합 탈퇴 문제로 리스크를 져야 하고,[22] 노동당이 이기면 경제 자체에 리스크를 져야 한다[23][24]며 푸념했는데 결국 둘 중에 유럽연합 리스크(기업인들의 관점에 따른다면)를 지게 됐다(...). 게다가 친유럽적인 SNP가 이번 총선에서 스코틀랜드에 할당된 전체 의석 59석 중 무려 56석을 차지한 상태라 유럽연합 탈퇴를 빌미로 독립을 재시도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는 중.[25] 그래서 미국 언론들은 총선 직후 영국이 유럽연합도 탈퇴하고 스코틀랜드도 잃어서 캐머런이 리틀 잉글랜드[26]의 건국의 아버지(...)[27]가 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테레사 메이가 새 총리로 취임하였다.

1.1 주요 지지기반

보수당은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중산층고소득층의 지지를 많이 받고, 세대 측면에서는 중장년층의 지지를 좀 더 많이 받는 편이다. 다만 세대 투표의 성향이 매우 강하고, 보수 여당에 대한 지지 또한 중장년층 이상에 매우 두드러지는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계급 사회의 전통이 잘 남아있는 나라답게 계급 투표의 경향이 세대 투표보다 훨씬 짙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보수 정당보다는 젊은 층의 지지를 더 많이 얻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28]물론 보수당을 지지하는 젊은 층은 대부분 동수저 이상인게 함정
지역적으로는 잉글랜드, 특히 잉글랜드 남부 지역에서 지지세가 강하다.[29] 즉, 브리튼 섬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보수당의 지지세가 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득 수준도 높아지고 보수당을 지지하는 잉글랜드 남부 지역은 첨단 산업과 고부가가치의 서비스업이 발달한 지역이다보니 중산층 이상이 많이 거주하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이다. 다만 런던은 좀 예외인게, 런던에서의 보수당의 입지는 새누리당의 서울에서의 입지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즉, 첼시같은 일부 부유한 동네에서는 60% 이상의 압도적 우위[30]를 차지하지만 전체적으로 노동당에 약간 밀린다. 그 외에도 인종별 인구 비율 측면에서 볼 경우 앵글로색슨족 영국인+부유한 서구 출신 외국인의 비율이 높은 동네일수록 보수당의 지지세가 강하다. 상단에서 언급한 잉글랜드 남부 지역은 해당 비율이 95% 이상인 반면, 대표적인 보수당 약세 지역인 버밍엄은 남아시아 인종의 비율이 20%가 넘는다.

1.2 당내외 관련 조직

1990년대 말에 스코틀랜드·웨일스 자치가 시작되고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내 지역 조직을 통솔하는 강력한 지부를 두게 되었다. 명칭도 스코틀랜드 보수(통일)당, 웨일스 보수(통일)당이라고 하며 자체적인 당 대표를 뽑고 지도부를 갖추고 있다. 이 점은 노동당·자민당도 마찬가지이다. 단, 보수당의 경우 북아일랜드에도 비슷하게 현지 조직을 공식적으로 갖추고 북아일랜드에서 치러지는 선거에도 입후보하고 있는데[31] 이 점은 북아일랜드의 선거에 입후보하지는 않는 노동당·자민당과 다른 점이다. 영국 전체에 당 조직을 공식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라리 영국 독립당(UKIP)과 비슷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32]

영국 보수당은 과거에 북아일랜드의 얼스터 통일당(Ulster Unionist Party, UUP)과 자매 정당급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UUP는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원으로 남는 것을 지지하는 중도우파 정당이니 보수당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북아일랜드 내 갈등 과정을 겪으면서 양당의 입장이 틀어져 서먹서먹해졌다.[33] 보수당은 아무래도 영국 전체의 정당이다 보니 북아일랜드의 연합주의자(unionist)들만 대변하려 드는 UUP와 이해 관계가 잘 안 맞은 듯. 보수당은 1989년에 북아일랜드에 직접 당 조직을 만들어 영국 총선과 지방선거 등 현지 주요 선거에서 보수당 소속의 후보들을 공천하고 있다. 다만 당선이 안 돼서 문제지[34]

하지만 보수당과 UUP는 2009년 유럽의회 선거와 2010년 총선에서는 오랜만에 북아일랜드의 보수당과 UUP 간에 선거 연대[35]가 체결돼 공동으로 선거를 치렀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보수-UUP 연합이 UUP 소속의 후보 1명을 당선시켰으나 2010년 영국 총선에서는 단 1석도 못 건지고 망했어요. 보수당은 원래 북아일랜드에 형식적으로만 공천을 했을 뿐 실제론 별 인기가 없었고, UUP는 2000년대 이후 더 보수적이고 강경한 노선을 취하는 민주통일당(Democratic Unionist Party, DUP)에게 밀리는 상태라 빚어진 참사였다. 이들의 연대는 2012년까지 유지되다가 해체되었고 이후 북아일랜드에서 치러진 선거에서는 보수당과 UUP가 별도로 공천을 했다. 참고로 2015년 총선에서는 UUP가 당세를 조금 회복해 2석을 당선시켜 하원 원내정당으로 복귀했다. 북아일랜드 보수당은 당연히 당선을 못 시켰다

보수당은 UUP와 더불어 모두 유럽회의주의·보수주의 노선의 유럽정당인 유럽보수개혁동맹(Alliance of European Conservatives and Reformists, AECR)에 가입돼 있으며 유럽의회 내에서 AECR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섭단체인 유럽보수개혁그룹(European Conservatives and Reformists, ECR)의 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보수당은 대한민국새누리당, 미국공화당 등 세계 각국의 주요 보수정당들이 가입돼 있는 국제 조직인 국제민주연합의 일원이기도 하다.[36]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보수당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대한민국의 경우 정당의 정식 명칭과 약칭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일일이 등록하는데 영국은 그렇게까지 하진 않는 듯하다. 그냥 적당한 이름 중에 하나만 당명으로 등록하는 식인 듯.
  2. 영국 선관위는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의 정당을 따로 등록해서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양 지역에서 모두 활동하는 정당은 각각 따로 등록한다. 그러다 보니 보수당처럼 두 지역의 정당명이 다르게 표기되기도 하는 듯.
  3. 영국의 주요 정당들은 그레이트브리튼에서만 활동하거나 북아일랜드에서 당원들이 활동하긴 해도 별로 힘을 발휘하진 못하고 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현지의 정당들이 꽉 잡고 있어서 영국 의회에서는 대개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의 성향이 유사한 정당들끼리 정책적으로 손을 잡는다든지 자매 정당의 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4. 휘그, 급진파(Radicals)에 필파(Peelite)가 연합해 자유당이 성립됐다. 이후 20세기에 자유당이 보수당과 신진 노동당에 끼여 몰락하고, 자유당의 잔존 세력과 노동당에서 이탈한 중도파가 연합해 현재의 자유민주당을 형성하게 된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고.
  5. 스코틀랜드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에 Scottish Unionist Party라고 표기하기도 했지만 정식 표기는 그냥 Unionist Party이다. 또한 Conservative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는 스코틀랜드 유권자가 많았어도 Tory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이 당을 스코틀랜드 토리당으로도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6. 이로써 스코틀랜드에서는 통일당이 유일한 '토리당'으로서 수십 년 간 활동하게 되었다.
  7. 본래 자유통일당의 당명에 있는 Liberal에 우호적인 스코틀랜드 유권자가 많았는지 선거 때 자신의 당을 'Liberal Unionist'로 표기하도록 한 후보들도 있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각 정당이 선관위에 자기 당을 설명하는 말(description)들을 여러 개 등록해 놓고 그 중에 하나를 자기 이름 옆에 기재하는 식이기 때문에 이게 가능하다. 반면 대한민국은 후보가 소속된 정당의 정식 당명이 이름 옆에 인쇄되도록 정해져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
  8. 이후 1986년에 스코틀랜드의 일부 보수당원들이 마거릿 대처 정권의 북아일랜드 정책에 불만을 품고 탈당해 스코틀랜드 통일당(Scottish Unionist Party)을 다시 만들어냈는데(다만 과거의 통일당과 달리 Scottish라는 단어가 정식 당명의 일부에 포함됨) 현재까지 그냥 이름 없는 군소정당으로 존속 중이다. 하필 탈당해 따로 당을 만들 정도로 북아일랜드 정책을 중시한 이유는 북아일랜드 내 친영(unionist) 주민들이 대부분 스코틀랜드계 장로교도들인 것과 관련이 있다. 스코틀랜드 내 보수주의자들은 이들과 민족적·종교적·문화적으로 유대감이 강하게 있었기 때문. 당시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와 협정을 맺고 북아일랜드 내 친영 세력과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의 타협을 모색했는데 이게 스코틀랜드 보수당원 일각의 반감을 샀었다고 한다.
  9. 단 이 시기에는 전쟁 거국 내각이라 보수당 단독 집권은 아니었다.
  10. 트라팔가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대가 폭동을 일으키는 등 엄청난 반발을 낳았다. 유투브에 poll tax riot이라고 검색하면 수없이 나온다(...)
  11. 정확히는 보수당 당수 선거 당시 대처가 1차 선거서 이기지 못하고 다크 호스 마이클 헤슬타인에게 쩔쩔매자 대처 측이 GG.
  12. 인두세 당시 세금을 피하려고 노동당 지지층인 서민들이 선거인 등록을 안 한 탓이 크다. 사실 말이 이긴거지 노동당한테 40석이나 털렸다.(...)
  13. backbencher. 영국 하원 내에서 뒷쪽 벤치에 앉아있는 일반 의원들을 가리킨다. 반면 맨 앞쪽 벤치에 앉는 사람은 frontbencher라고 한다. 하원의 프론트벤치에는 집권당의 각료와 제1야당의 예비 각료가 서로 마주 보게 착석하고, 나머지 의원들은 그들보다 뒷자리에 착석하기 때문에 이런 용어가 만들어졌다.
  14. 이 통제 실패가 가장 적나라하게 터진게 EU 핵심 조약인 마스트리히트 조약 관련 사건이었다. 조약 찬성파인 노동당이 반대를 날릴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그래도 다수당인 자기네 의원들 뿐인데, 반 유럽 통합파 의원들이 대놓고 반대표를 던져 조약 체결에 실패한 것. 얼마 뒤 신임 투표를 내걸고 다시 걸어 통과는 했지만, 메이저 체면은 치명적으로 구겨졌다.
  15. 하지만 대처 정권의 여파는 워낙 컸던 지라, 보수당 존 메이저 정부든, 노동당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정부든 정책상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영국적인 전통...?
  16. 비례대표제 없는 영국 하원의 특성 때문에 의석의 격차가 많이 난 것이다. 전국 득표율로 따지면 노동당이 35.2%, 보수당이 32.4%였으니, 보수당이 이미 힘을 많이 회복했다고 볼 수 있다.
  17. 이미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여론이 상당한 편이다. 게다가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UKIP이 영국의 다른 주요 정당들을 제치고 영국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유럽의회 선거는 완전 비례대표제라 비례대표가 없는 영국 총선에서와 달리 지역 기반이 약한 UKIP이 당선자를 내기가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게다가 유럽의회 선거는 회원국의 정권을 결정하는 선거가 아니라서, 유권자들이 회원국의 집권당이나 유럽연합 자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도구로 활용할 개연성이 크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UKIP은 아직 유럽의회 선거에서만 승승장구하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 외 다른 선거에서는 기존 정당들을 위협하는 정도다.
  18. 이것을 브렉시트(Brexit: Britain 또는 British와 exit를 합친 말)라고 한다.
  19. 영국 정부와 스코틀랜드 자치정부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협정. 2012년 10월 15일에 체결됐다.
  20. 2012년만 해도 독립 찬반이 30% 대 50% 정도였지만 투표 직전에는 찬성이 반대를 넘는 여론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비록 투표 당일 나온 결과로는 10% 정도의 차이가 났지만 2012년에 비하면 찬성자가 늘어난 셈이다. SNP 등 독립론자들이 자신들의 독립 후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홍보할 기회가 돼 버려 더 이상 스코틀랜드 독립이 낭만주의적인 상상의 영역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미래처럼 여겨지게 된 것. 게다가 이듬해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스코틀랜드 의석 59석 중 56석을 SNP가 싹쓸이했으니 말 다했다(2010년 총선에서는 6석 뿐이었음). 또 젊은 층일수록 독립을 지지하는 경향이 나오는데, 이들 중 다수가 나이가 들어서도 변함없이 독립을 지지할 경우 독립론자들이 스코틀랜드의 절대 다수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런 탓에 스코틀랜드가 2014년에는 독립에 실패했지만 미래에는 독립하게 되는 거 아니냐는 전망이 이제 제법 진지하게 나오고 있다.
  21. 앞서 말했듯이 1997년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대처, 메이저로 이어진 보수당 장기 집권 시대가 끝났다. 보수당이 정권에 복귀한 건 2010년이지만 이때는 자유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었으므로 보수당만의 단독 정부 수립은 1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22. 영국이 만약에 EU를 탈퇴하게 되면 유럽 단일시장에서 배제될 수 있는 데다가, EU의 정책에 영국의 입장을 반영할 길이 막히게 된다.
  23. 당시 노동당 대표인 에드 밀리밴드가 당내 좌파 라인이라 토니 블레어 시절의 소위 신노동당(뉴 레이버) 시절보다 더 좌파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그래서 기업의 우려가 컸다. 그래서 기업인들은 노동당의 경제 정책 중 보수당보다 나은 건 EU 탈퇴 리스크가 없다는 것 하나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24. 이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2015년 5월 2일자 커버스토리였다. 당시 표지
  25. 물론 주민투표가 가까운 시일 내에 재실시되기는 쉽지 않다. 주민투표가 실시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명분이 있는 데다가, 2014년에 예상과 달리 독립 직전까지 갔었던 충격과 공포 기억 때문에 향후의 영국 총리들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 실시를 받아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캐머런도 더 이상의 주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상태이고.
  26. 영국 국호에 들어가 있는 '그레이트 브리튼'을 비튼 표현이다. 물론 스코틀랜드(약 530만 인구)가 독립해도 웨일스(약 300만 인구)와 북아일랜드(약 185만 인구)가 영국에 남아 있지만 잉글랜드(약 5300만 인구)가 영국 국내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져 버린다(스코틀랜드가 빠진 영국 인구의 약 92%가 잉글랜드 거주자). 따라서 과장을 보태면 스코틀랜드가 없는 영국은 사실상 잉글랜드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27. 이 표현은 당연히 미국 건국의 아버지를 비튼 것이다.
  28. 실제로 영국의 어느 설문조사업체에서 2015년 영국 총선이 치루어진 후에 사후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거기서 2030세대에서 보수당과 노동당의 격차는 10% 미만이었고, 남성만 따졌을 때는 2030세대에서도 보수당이 우위를 보였다
  29. 특히 이들 지역 중에서도 남동부 잉글랜드(South East England)가 보수당 지지세가 압도적이며, 데이비드 캐머런테레사 메이의 정치적 기반도 이 지역이다. 영국의 TK
  30. 비록 영국에서도 지역주의는 있지만 한국처럼 80% 이상의 몰표를 주는 그런 지역은 거의 없다. 즉 60% 정도면 엄청난 몰표라 할 수 있다.
  31. 북아일랜드 보수당의 경우 1989년대부터 조직이 가동되고 있었다.
  32. 단 UKIP은 2015년 현재 잉글랜드 밖에서는 당원 수가 적은 탓인지 보수·노동·자민당처럼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에 강력한 당내 자치권을 누리는 조직을 두는 형태로 발전하진 못했다. 단지 권한이 약한 지역 조직을 두고 있다는 정도에 가까운 듯하다. 참고로 UKIP은 영국 내 다른 정당들과 달리 영국 본토 밖인 지브롤터(영국의 속령 중 유일하게 EU의 일부로 포함돼 있는 지역)에까지도 당 조직을 만들어 놨다.
  33. 정확하게는 1972년 서닝데일 합의에 대한 입장차 때문에 두 당의 관계가 나빠졌다.#
  34. 북아일랜드에서는 현지 기반의 정당들이 주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영국 주요 정당들은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도 보수당은 선거 때마다 형식적으로나마 북아일랜드에 후보를 내고 있지만, 영국의 다른 주요 정당인 노동당과 자민당은 선관위에 등록된 북아일랜드 내 당 조직도 없고 공천도 당연히 안 한다.
  35. 이들의 연합을 통칭 Ulster Conservatives and Unionists라고 불렀고, 영국 선관위에는 "Ulster Conservatives and Unionists – New Force"라고 등록돼 이니셜을 UCUNF라고 했었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한국에서와 달리 정당을 설명하는 문구(description)를 추가로 등록할 수 있는데, 투표 용지에 당명 대신 이 문구들 중에 하나를 골라서 인쇄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두 당은 선관위에 각각 "Ulster Conservatives and Unionists – New Force"를 description 중 하나로 등록해 놓고 투표 용지에 후보자 이름 옆에 기재할 당명/설명으로 이 문구를 사용하는 식으로 연대한 것으로 보인다.
  36. UUP는 여기에 가입돼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