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영국 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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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저 | ← | 토니 블레어 | → | 고든 브라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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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토니 블레어 (Tony Blair) |
본명 | 앤서니 찰스 린턴 블레어 (Anthony Charles Lynton Blair) |
국적 | 영국 |
출생 | 1953년 5월 6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
정당 | 영국 노동당 |
학력 | 세인트 존스 칼리지, 옥스퍼드대학교 법학 학사 |
직업 | 정치인 |
신장 | 183cm |
가족 | 셰리 부스 (1980 – ), 3남1녀 |
종교 | 성공회 (1953 – 2007) 가톨릭 (2007 – ) |
서명 | |
링크 | > > |
1 개요
영국의 정치인.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지냈다.
2 생애
1953년 5월 6일 에든버러에서 태어났고 성장기의 대부분을[1] 스코틀랜드에서 지냈지만 스코틀랜드인은 아니다. 집안이 원래 잉글랜드 북부 출신이었고 결국 정치적 입지를 다진 곳도 잉글랜드였다.[2] 아버지 리오 블레어는 법률가로 보수당을 지지했다.[3] 10세때 아버지가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블레어는 페티스 칼리지(Fettes College)[4]을 다녔다. 페티스의 엄격한 교칙에 반발하여[5] 무단으로 교정을 이탈하기도 했으며, 록밴드 활동을 하는 등 반항아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71년에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1년 정도 알바를 하며 지냈고 그 탓에 프랑스어가 유창하다. 돌아와서는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다녔다.[6] 전공은 법학. 당시에는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다고. 대학 졸업 후에 영국 노동당에 입당했고 법률 사무소에서 만난 동료 셰리와 1980년에 결혼했다.
1983년 총선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공직에 입문한다. 하원의원 시절 노동당의 그림자내각(shadow cabinet)[7]에서 고용부, 에너지부 장관 등을 맡았고, 노동당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1994년에 노동당 대표인 정말 평범한 이름인 존 스미스가 급서하면서 열린 선거에서 노동당 대표가 된다[8]. 즉 노동당이 집권하면 총리가 되는 것. 그리고 이어진 1997년 총선에서 659석 가운데 419석을 획득하는 압도적 승리로 총리에 취임했다.
1997년 총선 승리 직후, 아내 셰리와 함께 다우닝가 10번지의 총리 관저에 도착한 모습.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2기와 같은 시기에 집권했고, 실제로도 클린턴의 선거 전략을 모방하여 1997년 총선에 승리하는 등 초기에는 중도 좌파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듬해 독일에서도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집권하면서 '제3의 길' 노선의 선두주자로 부각되었다.
취임한지 얼마 안 되어 다이애나가 죽었는데 영국 왕실을 압박해서 추모식에 참석하도록 이끌었다. 이 과정은 영화 《더 퀸》에 잘 나온다.[9]
노동당 출신이지만 노동당의 우경화가 계속된 탓에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펼쳤다. 때문에 비판자들로부터 '토리 블레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10] 이 시기의 미영관계도 상당히 밀월이라 테러와의 전쟁에 미군 다음으로 많은 규모의 숫자의 영국군을 파병했다. 오죽하면 부시의 푸들(Bush`s Poodle)이란 얘기도 들었다.[11]
이 시기 영국인들 중엔 자존심의 상처를 겪은 이도 많았고 《러브 액츄얼리》에서 휴 그랜트가 하는 대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영뽕에 취한다 블레어 본인은 자신은 휴 그랜트가 아니며 정치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미 공화당 소속이었던 아널드 슈워제네거와도 친했던 걸 보면 정말 노동당 출신이 맞는지 신기할 정도.
사실 이미 1999년의 코소보 내전 당시에 미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강경한 군사 개입을 주장한 바 있었다. 당시 미국은 클린턴이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 위기까지 몰려서 무기력한 상태였는데, 블레어가 미국을 직접 방문하여 코소보에 대한 '인도적 개입'을 촉구했던 것. 이를 보면, 부시 행정부 시절의 대테러 전쟁 개입도 단순한 '변절', '줄서기'보다는 그의 정치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맹(이라고 쓰고 보스라고 읽는다)이 막장이어서 도매금으로 취급 당했다
2007년 5월 10일에 10년간의 총리 생활을 마치고 퇴임했다. 총리 기간 중에는 명목상 성공회 신자였지만 가족이 모두 가톨릭이라 퇴임 후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총리가 되기 전 부터 가톨릭 미사 다녀오는 등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던 걸로 추정되지만 여러가지 제반 사정 등으로 개종은 퇴임 후에 했다.영문기사 2010년에는 야인 자격으로 국회에 출석해 테러와의 전쟁은 정당한 것이었다고 강변했다.
성경을 지속적으로 읽은 총리로 유명했다. 꾸란도 세 번 읽어봤다고. 나름 종교적인 신심이 있는 인물이라서 그런지 종교의 유용성에 관하여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TV 토론을 벌인적도 있다.
아들인 유안 블레어가 꽤나 꽃미남으로 유명해서 2000년대 초반 한참 국내에 꽃미남 열풍이 불 때 회자되기도 했다. 물론 영국 청년답게 기행으로도 유명했다
10년 동안의 임기 가운데 첫 3년은 미국 빌 클린턴 2기와 일치했지만, 대부분인 나머지 7년은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의 임기와 대체로 겹친다. 여기에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전쟁 참전까지 고려하면, 집권 초기의 개혁적, 중도 좌파적 이미지와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부시 시절 미국의 맹방'으로 더 기억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선 아예 푸들로 등장하기도 했다. 개정판에선 삭제됐지만. 사실 영국에서도 대놓고 부시의 푸들로 욕처먹었고 라디오 방송에 나온 조지 마이클이 우리 영국이 미국에게 꼬리흔드는 푸들 1마리 때문에 덩달아 욕먹는다며 이라크 전쟁당시 디스했다!
이렇게 이라크 전쟁으로 욕을 먹다보니 Bliar(Blair+Liar, 사기꾼 블레어)라는 별명도 생겼다.
비교적 근래에 활동했던 정치 지도자임에도 영화,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 편이다. 2007년의 영화 《더 퀸》, 2010년 HBO의 TV 영화 《특별관계》[12]가 대표적. 블레어 역으로는 모두 마이클 신이 출연.
그러나 부시와는 달리 유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지방자치를 강화하고[13] 귀족원이던 영국 상원은 직능대표적인 성격을 띄도록 꾸준히 개혁해 나갔다.
임기가 끝나고 중동 특사로 임명되었는데 아랍에서는 부시의 푸들답게 이런 땡보직 얻었다며 비아냥거렸다...
2015년 10월 25일, 2003년 당시 영국이 이라크전에 참전한 점과 또 전쟁의 여파로 ISIL의 세력확장 원인을 제공한 한 점에 대해 자신과 당시 영국행정부의 오판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음을 CNN과의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연합뉴스,BBC(비디오클립포함).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닌 '영국의 이라크전 참전은 2002-2003년 당시 미행정부가 주장했던 이라크 WMD보유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기인되었으며 전쟁의 결과로 이라크와 중동에서 일어난 오늘날의 후폭풍은 2003년 당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다. 또한 따지고 보면 해당지역의 오늘날 딜레마는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부터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고 더욱이 예로부터 시리아 및 이라크 북부에 존재해왔던 정치, 종교, 역사적 문제들과도 연결된 문제다' 로 일축 및 일관하는 떠넘기기식 뉘앙스를 보여 영국 내 이라크전 전사자 유가족들은 이리 무책임 할 수 없다며 포풍같이 분노하는중이다. 그리고 오늘도 중동은 헬게이트 진행 중
2016년 영국의 이라크 전쟁 참전에 대해 조사한 칠콧 보고서가 영국의 전쟁 참전이 블레어 총리의 오판에 의한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결론을 내리자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으며 올바른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고 항변했으나 오히려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은 데다 분노한 전사자 유족들이 전쟁 범죄자로 고소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들고 일어났다.
2016년 9월 이라크 전쟁에서 영국군이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블레어 본인이 직접 일으킨 전쟁인 만큼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블레어는 영국군을 두둔하고 있으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과 그 가족들에게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며 혐의를 조사하고 있는 위원회를 비판했다. 위원회 측은 영국 내에서 자체 조사를 면밀히 하지 않을 시, 국제 재판소에 기소될 수 있다며, 어느 측도 억울하지 않게 풀어가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여론 반응은 만약 군인들이 전쟁 범죄를 저질렀으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며, 불법 전쟁을 일으킨 토니 블레어도 법의 심판대에 올라야 한다는 반응이다.- ↑ 다만 유년기 일부는 호주나 잉글랜드 북부(더럼)에서 보내기도 했다.
- ↑ 지리적 출신지만 스코틀랜드이지 집안이 잉글랜드 출신이라서(한국식 개념으로 비유하자면 출생지, 성장지는 스코틀랜드이지만 본적지는 잉글랜드인 셈) 그런지 스코틀랜드 출신인 고든 브라운 전 총리와 다르게 스코틀랜드 억양이 드러나지 않는다.
- ↑ 근데 아버지도 본래는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다가 경제적으로 성공하면서 보수주의자로 전향했다.
- ↑ '스코틀랜드.의 이튼'이라 불리는 명문 칼리지이다. 이름은 칼리지지만 대학이 아니라 고등학교이다.
- ↑ 선배 학생들에 의한 부조리도 있었다고 한다.
- ↑ 이때는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고 록밴드 보컬을 하기도 했다.밴드이름은 어글리 루머스
- ↑ 의원내각제 국가에선 조건에 따라 언제든 수권정당이 될 수 있기에 미리 내각을 결정해둔다.
- ↑ 이때 당시 노동당의 차세대 지도자 후보로 각광받던 동료이자 라이벌 고든 브라운과 같이 식당에서 노동당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결국 두명이 합의하여 블레어를 먼저 밀어주고 그 다음에 브라운을 밀어주기로 약속한다. 이후에 브라운이 블레어를 밀어주며 블레어는 쉽게 노동당의 대표가 되고 총리가 된다. 문제는 블레어가 브라운을 밀어주기로 했을 2003년에 블레어 측이 통수를 쳤다. 그리고 2007년에 당권을 장악한 브라운이 분노의 빠와로 총리가 되면서 블레어의 정치적 인생은 쫑난다.
- ↑ 영화에서 그의 아내 셰리는 거의 공화주의자로 묘사된다.
- ↑ '토리'(Tory)는 노동당과 경쟁 관계인 우파 성향의 보수당을 지칭하는 별명. 쉽게 말해서 "당신 정책이 보수당이랑 다를 것이 뭐냐?"는 지적.
- ↑ 게이바 노래를 편집한 것 중에 블레어와 부시가 나오는 패러디도 있다.
- ↑ 원제는 'Special relationship'으로 미영 동맹관계를 지칭하는 관용어이기도 함. 내용 자체는 블레어의 집권 초기 클린턴 행정부와의 관계가 주를 이룬다. 르윈스키 스캔들, 코소보 전도 등장.
- ↑ 사실 강화라고 하긴 뭐한게 대처 정부에서 축소시켰던 것을 도로 원상복구한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