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 항목 :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목차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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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이렇게 떠나지 말아줘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남아야 하는 이유"[1] | "영국, 찢어지나? - 스코틀랜드 독립이 가져올 고통스러울 결과들"[2][3] |
무산된 멜 깁슨과 윌리의 외침 그런데 브레이브 하트는 역사 왜곡물이잖아?
2014년 9월 1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영국 서머타임)[4]까지 이루어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찬반에 관한 투표이다. 개표 결과 독립 반대표가 더 많아서 분리독립은 무산되었다.
조세권/예산권을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에 넘기는 당근을 제시하면서 영국 중앙정부에서는 분리에 반대했다.
투표는 16세 이상의 스코틀랜드 거주민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며, 유권자는 약 410만 명이었다. 스코틀랜드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스코틀랜드인은 투표권이 없었으며, 스코틀랜드인이 아니라도 스코틀랜드에 거주하는 경우는 투표가 가능했다.[5] 단, 영국군 소속(군인이나 민간인 신분의 군무원 등)인 경우 본인이 스코틀랜드 유권자로 등록돼 있으면 스코틀랜드 밖에서 거주하고 있더라도 투표권이 인정됐다. 외국인으로서 스코틀랜드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영연방 회원국이나 유럽연합 회원국[6]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 투표권이 인정되었다. 다만 수형자(죄수)는 투표권이 인정되지 않았다.[7]
스코틀랜드 독립의 배경과 그 영향 및 파급력에 대해서는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을 참고. 본 문서에서는 투표와 직접 관련된 정보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2 독립파의 공약
- 최저임금 인상.
- 장애인 등에 대한 복지삭감 복원.
- 베드룸 택스 폐지.[8] (베드룸 택스 폐지는 독립반대파도 공약사항)
- 보다 공평한 복지망 확충으로 질좋은 일자리 갖도록 지원.
- 영국 의료보험시스템 NHS 유지 및 무상교육 유지.
- 육아보조 강화.
- 소득세 차별적 설정. (반대파도 공약)
- 연금강화.
- 장애인이나 아이들 돌봄에 대한 수당확대.
- 생활비용 상승에 따른 세금 공제 유지.
- 임금 인상 지원.
- 안정적 일자리를 위한 노동자 권리 복원 등.
3 독립반대파의 공약
3.1 스코틀랜드 내부 반대파의 공약
3.2 연합왕국-영국정부의 공약
파일:Attachment/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Example.jpg
투표 당시 현재 보수당 내각의 영국정부는 기본적으로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에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만,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일단 영국정부는 투표가 부결될 경우 스코틀랜드에 더 많은 자치권을 이양하는 것을 약속했다. 부결 후 논의가 이루어지겠지만 교육과 정치, 사법, 조세분야에서 더 많은 자치권이 부여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독립투표가 통과될 경우 영국정부는 스코틀랜드 독립절차를 밟게 된다.
4 투표 전 진행 상황
2014년 9월 6일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 조사 결과에선, 처음으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찬성의견이 반대의견을 넘었다! # 그리고 영국 파운드-스털링 환율은 투자자들의 불안감 때문에 나날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반면 유학생들은 만세를 부르고 있다. 2014년 9월 8일 독립 찬성의견은 51%, 반대는 49%로 결과를 보이고있다. 투표가 임박하면서 찬반 여론이 혼전 양상으로 들어갔다.
북해 유전의 발견이 스코틀랜드의 경제적 독립을 가시화했고, 이것이 분리독립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있다. 그런데 북해 유전은 점점 채굴량이 떨어지고 있잖아? 하지만 천연가스가 있지 오일머니를 이용하여 노르웨이처럼 복지시스템을 갖추자는 것. 실제로 스코틀랜드 분리운동을 이끌고 있는 스코틀랜드민족당(SNP)은 영국 노동당보다 훨씬 진보적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토니 블레어 집권 이후 노동당이 '제3의 길' 슬로건 아래 기존 당 노선과는 굉장히 차이가 있는 우파적 정책을 제시하는 상태이긴 하다. 현재 집권 중인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과 비교해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정치적 성향을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다른 조사기관인 서베이션이 9월 1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독립 반대가 53%, 찬성이 47%로 독립 반대의견이 다시 역전했다.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고 답한 유동층 10%를 포함시킨 결과도 반대가 47.6%, 찬성은 42.4%로 오히려 5%p 이상 차이까지 넘어간 상황. 나흘 전 다른 조사기관인 유고브가 발표한 결과와는 큰 차이가 생긴 것이다. 독립 찬성 여론이 위축된 가장 큰 이유는 금융시장의 불안과, 영국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당근 정책 제시와 설득/호소였다. 유고브 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영국의 통화인 파운드 가치가 순식간에 떨어졌고, 이와 같은 현상이 파운드 스털링과 유로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게 된 상황에 놓여, 심각한 경제적 약점이 있었던 스코틀랜드 내부에 큰 불안감을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스코틀랜드 내부에서 역시 각종 유화, 우대정책을 내놓으며 접근하는 영국 정치권에게 충분히 얻을 만큼 얻었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상당히 독립 여론이 진정되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 북아일랜드, 웨일스 : 호오... 근데 우린 석유가 없잖아. 안 될 거야 아마
투표 하루 전날인 9월 17일까지 대부분 4%포인트 안팎으로 독립 반대의 의견이 근소하게 앞섰다.
5 투표 진행 상황
투표 결과는 한국시간으로 19일 오후에 발표될것으로 예상된다. 공식적인 출구조사는 없으나 언론사들과 여론조사 기관들의 조사결과는 투표가 끝난 후에 발표가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투표가 아니라 '선거'로 오인, 오기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9] 공직자를 뽑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투표는 선거가 아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오기는 서울시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를 선거라고 하는 격이다.
그리고 영국과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은 다른 것인데 동의어로 잘못 알고 쓴 기사가 너무 많이 나왔다. 기레기 녀석들애초에 영연방이라는 번역어 자체가 문제를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 기자들이 조금만 공부해도 영국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줄줄이 틀려서 굉장히 아쉬운 대목이다.[10] 같은 맥락에서 아직 연방제가 아닌 영국을 연방이라고 표현하는 오류도 자주 발견되었다. 또, 의미상 차이가 있는 영국/연합왕국(United Kingdom)과 대영제국(British Empire)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이 속출하였다. 이 사례들의 문제점은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항목에 자세하게 설명돼 있으니 참고할 것.
한편, 영국언론들은 스코틀랜드 독립투표가 너무 박빙이라 출구조사결과의 정확성이 보장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 출구조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개표방송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을거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독립투표는 투표개시 시점에서 깊은 안갯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5.1 개표 상황
한국시간 오전 11시~12시에 발표되고 있던 초반 개표결과는 매우 박빙이다. 북방 섬지역과 지방지역에서 반대표가 많이나와 전체결과 반대 쪽으로 기울더니, 던디 시의 투표함이 개봉되자 박빙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몇몇 지역이 찬성으로 나오면서 찬성표가 우세한 상황이 잠시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업치락 뒤치락 하던 끝에 반대표가 찬성표를 5% 포인트 내로 앞서는 상황이 되었다. 스코틀랜드 독립당의 본거지 근처인 앵거스에서도 반대표가 이기는 등 BBC 분석가들은 반대표가 우세하다고 예측하였다. 이 상황은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던 관계로 주요 외신들도 분석 기사를 재빠르게 내 놓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주요 포털에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고, 외신을 인용한 기사들도 쏟아졋다.
다만 실시간으로 개표 현황을 전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펜싱 찌르고 역기 들고, 달리기 경주하고 이런거 말고 어떤 지역의 개표가 완료되면 그 지역의 득표를 공개하는 식이었다. 사실 개표 초반부의 경우, 인구가 적은 지역 위주로 개표가 발표되어서 섣부른 예측은 힘들었다.
시간이 흘러 한국시간 오전12시 40분(오후 0시 40분), 스코틀랜드 독립투표 개봉결과 반대와 찬성의 표차가 10%이상으로 벌어져 반대표가가 우세해졌다. 대도시 지역인 애버딘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지역에서 반대표가 우세하게 나온 결과로 보인다. 아직 중심도시인 글래스고와 에든버러의 결과가 남아있긴 하지만, 상당히 많이 벌어졌다. (NO-56.25% Yes-43.75%)
한국 시각으로 오전 12시 55분, 스코틀랜드 최대 도시인 글래스고에서 찬성이 53%, 반대가 47%가 나왔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 반대에 대한 표가 압도적으로 나온 것과 다르게, 글래스고의 표차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시각 오후 1시 15분, BBC가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의 예상을 '반대표 우세'로 내놓았다. 결과가 독립반대 쪽으로 흐르면서 에든버러에 있는 독립파 투표사무소 집회장은 우울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BBC 기자의 현장취재트윗
한국시각 오후 2시, 마지막으로 남은 개표 미완 도시였던 에든버러의 결과가 반대-61%, 찬성-39%로 나왔다. 에버딘과 에든버러가 차지하는 인구 비중으로 볼 때, 사실상 반대표의 승리
한국시각 오후 2시 10분, 결국 파이프(Fife) 지역의 투표결과가 반대-55.05%(139,788), 찬성-44.95%(114,148)으로 나오면서, 이 지역을 마지막으로 반대 진영이 투표율로 계산한 승리 선 1,822,462표를 넘었다. 전체 투표에서 반대표의 비율이 50%를 넘겨 이 이상의 투표개봉결과와 상관없이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은 부결되었다.
6 투표 결과
아래 지역은 스코틀랜드의 실질적인[11] 최상위 행정구역 단위인 council area인데 '주(州)'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 유권자수 | YES | NO |
스코틀랜드 | 44.7% (1,617,989) | 55.3% (2,001,926) | |
애버딘 | 175,745 | 41.39% (59,390) | 58.61% (84,094) |
애버딘셔 | 206,486 | 39.64% (71,337) | 60.36% (108,606) |
앵거스 | 93,551 | 43.68% (35,044) | 56.32% (45,192) |
아가일 뷰트 | 72,002 | 41.48% (26,324) | 58.52% (37,143) |
클라크매넌셔 | 39,972 | 46.20% (16,350) | 53.80% (19,036) |
너 헬라넌 시어르[12] | 22,908 | 46.58% (9,195) | 53.42% (10,544) |
덤프리스 갤러웨이[13] | 122,036 | 34.33% (36,614) | 65.67% (70,039) |
던디 | 118,729 | 57.35% (53,620) | 42.65% (39,880) |
이스트에어셔 | 99,664 | 47.22% (39,762) | 52.78% (44,442) |
이스트던바턴셔 | 86,836 | 38.80% (30,624) | 61.20% (48,314) |
이스트로디언 | 81,945 | 38.28% (27,467) | 61.72% (44,283) |
이스트렌프루셔 | 72,981 | 36.81% (24,287) | 63.19% (41,690) |
에든버러[14] | 378,012 | 38.90% (123,927) | 61.10%(194,638) |
폴커크 | 122,457 | 46.53% (50,489) | 53.47% (58,030) |
파이프 | 302,165 | 44.95% (114,148) | 55.05% (139,788) |
글래스고[15] | 486,219 | 53.49% (194,799) | 46.51% (169,347) |
하일랜드 | 190,778 | 47.08% (78,069) | 52.92% (87,739) |
인버클라이드 | 62,481 | 49.92% (27,243) | 50.08% (27,329) |
미들로디언 | 69,617 | 43.70% (26,370) | 56.30% (33,972) |
머리 | 75,170 | 42.44% (27,232) | 57.56% (36,935) |
노스에어셔 | 113,923 | 48.99% (47,072) | 51.01% (49,016) |
노스레너크셔 | 268,704 | 51.07% (115,783) | 48.93% (110,922) |
오크니 | 17,806 | 32.80% (4,883) | 67.20% (10,004) |
퍼스 킨로스 | 120,015 | 39.81% (41,475) | 60.19% (62,714) |
렌프루셔 | 134,735 | 47.19% (55,466) | 52.81% (62,067) |
스코티시 보더스[16] | 95,533 | 33.44% (27,906) | 66.56% (55,553) |
셰틀랜드 | 18,516 | 36.29% (5,669) | 63.71% (9,951) |
사우스에어셔 | 94,881 | 42.13% (34,402) | 57.87% (47,247) |
사우스래너크셔 | 261,157 | 45.33% (100,990) | 54.67% (121,800) |
스털링 | 69,033 | 40.23% (25,010) | 59.77% (37,153) |
웨스트던바턴셔 | 71,109 | 53.96% (33,720) | 46.04% (28,776) |
웨스트로디언 | 138,226 | 44.82% (53,342) | 55.18% (65,682) |
파일:Attachment/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skott.png
투표 최종결과정리. 지역적으로 보면 거의 모든 지역이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반대했으나, 스코틀랜드 최대 도시인 글래스고를 비롯한 몇몇 도시 지역에서는 독립 찬성이 우세했다.[17] 즉 전체적 판세는 독립 반대파의 완벽한 승리. 그러나 44.7%의 독립지지세력이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특정지역에 독립파와 독립반대파가 몰리지 않고 스코틀랜드 전체적으로 독립과 독립반대파가 퍼져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스코틀랜드의 수도이며, 역사적으로 스코틀랜드 독립의 중심지였던 에든버러에서도 독립 반대가 높았던 것은 의미가 있다. 한편 이권 문제와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스코틀랜드 소속감이 낮아 별도의 자치권을 요구했던[18] 최북단 섬 지역인 셰틀랜드·오크니 제도, 그리고 잉글랜드와 경계선을 맞대고 있는 덤프리스 갤러웨이와 스코티시 보더스는 60% 이상의 높은 반대 비율을 보였다.
7 투표 이후의 영향
7.1 독립파
출처. (사진의 저작권 조건이 나무위키와 다르므로 사용에 주의.)
thㅔ처가 죽었다고 환호성을 치더니 분리독립 한다고 살림살이가 나아지셨습니까?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스코틀랜드 독립파는 투표가 부결되면서 굉장히 침울해하는 분위기다. 44.7%가 독립을 지지하지만, 퀘벡의 예에서 보이듯이 스코틀랜드 독립을 향후 50년 안에 다시 추진하기는 어려우므로 독립은 조금 먼 미래의 일이 되었다고 추측되었다.
앨릭스 새먼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160만명의 시민이 독립 찬성표를 던졌다는 결과에 주목하여 "민주주의의 승리다.", "독립에 찬성한 주민의 수도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보수당은 스코틀랜드에 더 많은 권한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라면서 "스코틀랜드는 이런 급격한 진전 속에서 영광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열고 "투표 결과를 받아들인다."며 패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모든 스코틀랜드인들도 결과에 따라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브렉시트 선거에서 영국의 EU 탈퇴가 기정사실화되면서, EU 재가입을 명분으로 최소 몇 개월~2년안에 다시 분리독립 투표를 실시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결국, 스코틀랜드 분리독립투표 2년 후 브렉시트가 현실로 일어나게 되면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영국정부가 약속한 자치권 확대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의 명분도 더욱 확실한 상황이다.
이로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파의 입지가 재차 높아지게 되었고 다시 한 번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를 추진할 것으로 보여졌고 알렉스 새먼드 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재투표시기를 2018년에 잡았다. #
다만 초기의 브렉시트에 대한 반발이 수그러들며 시간이 갈수록 잉글랜드 시장과 잉글랜드계 자본 투자에 의존적인 경제 문제나, 독립 후에 해야될 여러 외교적 행정적인 문제들, 영국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스페인이 버티고 있는 EU에 가입할 수 있느냐는 문제,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바라지 않는 영연방 국가들과의 관계 문제 등이 부각되며 독립 여론이 수그러들고 있다.
당연히 테레사 메이 총리는 독립 재투표 실시를 거부하였다.# 현재 여론 조사로 나타나는 스코틀랜드 민심이나 스코틀랜드 경제계도 독립 투표 실시에 반대하고 있어 독립 투표를 진짜 실시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지고 있다.
물론 영국이 EU 탈퇴를 실행한다면 여론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1차 투표 때도 투표일이 가까워지며 독립 지지율이 상승했으니. 단, 2016년 말 기준으로는 떡밥이 가라앉은 상태인듯.
7.2 정치권
한편, 투표가 부결되면서 영국 정치인들의 거취가 기대되고 있다.
- 고든 브라운 전 총리: 이번 분리독립 투표에서 가장 큰 수혜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코틀랜드 토박이 출신인[19] 브라운 전 총리가 적극적으로 독립반대 여론을 하나로 규합시키면서 분리독립 투표의 부결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 당장 노동당 내에서 브라운 전 총리의 입지가 강해질 것으로 보이며 차후 다시 총리 복귀의 가능성까지 열렸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총선 결과 그동안 텃밭이었던 스코틀랜드의 표가 전부 스코틀랜드 국민당으로 쏠려서 당의 입지가 많이 불안해진 것도 사실이라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 스코틀랜드 독립을 저지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스코틀랜드에 너무 끌려다닌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잉글랜드가 주류인 보수당 내에서도 스코틀랜드에 너무 많은 것을 퍼줬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중. 사실상 정치적으로 가장 큰 손해를 본 인물이며, 차후 정권유지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심지어 총리 사퇴설까지 나도는 상황이었지만 총선 결과 불안해진 보수층이 결집, 과반의석수를 확보하여 사실상 승자가 되었다.
- 알렉스 새먼드 당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분리독립을 전 세계적으로 공론화 했고 부결로 끝났지만 광범위한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받게 될 예정인데다가 인기 정치인이 되었다. 나름대로 이득을 챙겼다고 볼수 있다.
사실 이걸 노리고 분리 독립 여론을 띄운 것일 수도 있다. 정치 9단.[20] 단, 투표 부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치정부 수반(First Minister)직과 스코틀랜드 국민당(SNP)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부수반·부대표였던 니콜라 스터전이 새 수반·대표가 되었다.[21] 그래도 새먼드는 자치의회 의원직을 유지했고, 2015년 영국 총선에 출마해서 하원의원이 되었다.
-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대표: 브라운 전 총리를 앞세워서 스코틀랜드 독립 저지에는 성공했지만 캐머런 총리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는 큰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이며 당대표직 사퇴설까지 나돌고 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는 독립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SNP가 노동당보다 낫다는 인식이 퍼져 2015년 영국 총선에서 스코틀랜드 의석을 석권할 것으로 조사되고 있어 노동당에 비상이 걸렸다. 결국 2015년 총선에서 완패당하며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총선패배에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에서 사퇴했다.
- ↑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2014년 7월 12~18일자 표지.
- ↑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2014년 9월 13~19일자 표지
- ↑ 약자에 찍는 점들을 찍지 않아 '찢어지다'라는 의미와 R.I.P.의 중의적인 표현을 꾀한 것이 보인다(그리고 영국 영어에서는 미국 영어에 비해 대문자로만 이뤄졌거나 대문자와 소문자가 섞여 있는 약자에 점을 잘 안 찍는 경향이 있다. 소문자로만 이뤄져 있으면 일반 단어와 헷갈릴까봐 점을 찍는 경우가 많지만...). 즉 다른 표현으론 "영국, 고이 잠드는가?"
- ↑ 영국 서머타임(BST)은 UTC+1이며, 한국 시각으로 바꾸면 9월 18일 오후 3시부터 9월 19일 오전 6시.
- ↑ '스코틀랜드 국적'이라는 게 없으니 이렇게 규정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정확히 누가 '잉글랜드에 사는 스코틀랜드인'인지 '스코틀랜드에 사는 잉글랜드인'인지 가려낼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나마도 영국에는 한국과 같은 본적지/등록기준지와 같은 것이 없다. 만약 그런 걸 가려내려고 해도(예를 들면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서 스코틀랜드 밖으로 이주한 사람을 스코틀랜드인으로 간주한다든지 등등) 구체적인 기준을 놓고 이래저래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실 고향 문서에도 언급한 것과 같이 한 개인의 출신지를 단정할 깔끔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아예 깔끔하게 투표 당시 거주지를 기준으로 한 것. 물론 자신이 스코틀랜드 밖에 거주하면서 스스로가 스코틀랜드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불평하기도 했다.
- ↑ 단, 유럽연합 회원국 본토가 아닌 속령(해외영토 등)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유럽연합 회원국이지만 프랑스령 누벨칼레도니는 유럽연합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이다. 따라서 누벨칼레도니 사람이 스코틀랜드에 거주하고 있을 경우 투표권이 없었다. 반면에 프랑스령 기아나는 유럽연합의 일부로 포함된 지역이므로, 프랑스령 기아나 사람이 스코틀랜드에 거주하고 있었다면 이 주민투표에서 투표권이 있었다. 참고로 EU 회원국의 속령을 EU에 포함시킬지 말지는 케바케다. 각 지역 사정에 따라 결정하는 문제다.
- ↑ 영국과 EU에선 선거(election)가 실시되면 수형자에게도 투표권을 보장해야하지만, 이것은 주민투표(referendum)이지 선거가 아니라는 이유로 예외로 결정되었다.
- ↑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도입한 사회보장혜택 남용 방지를 위한 세금.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에게 지급하는 주택보조금에 과세가 되며 가족수보다 집의 방수가 많으면 주택보조금에 과세하게하며 10살 이하 아동은 성별 불문 같은 방, 10세 초과시 성인까지는 같은 성별끼리 같은 방을 쓰게하는 등을 골자로 한다.
- ↑ 물론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단어로써 뜻하는 의미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엄연한 오기다. 영어로도 선거는 election이고 주민투표는 referendum이다. 더 정확하게는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주민투표인 referendum과 plebiscite가 존재한다. 레퍼랜덤은 법적으로 주민투표를 하게 되어 있는 사항에 대해서 주민투표를 하는 것이고, 플레비지트는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다. 본문의 서울시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를 기준으로 보면, 무상 급식을 줄 것이냐 말 것이냐로 주민투표를 거는 것은 레퍼랜덤이고, 오세훈 시장이 여기에 자신의 시장직을 걸어서 사실상의 신임투표가 되어 버린 부분은 플레비지트이다.
- ↑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는 것을 영연방을 떠난다고 쓰는 기사가 너무 많은데 사실과 다르다. 스코틀랜드는 현재 영연방 회원국인 영국의 일부라 영연방에 소속돼 있는 상태이고, 독립을 하게 된다면 영연방에 신규 회원국으로 가입할 예정이었다. 따라서 스코틀랜드는 독립국이 되더라도 영연방을 떠날 일이 없다.
- ↑ '실질적인'이라는 말을 굳이 붙인 이유는 영국에 lieutenancy area라는 명목상의 행정구역도 있기 때문이다. Lord Lieutenant라는 여왕의 대리인이 전국 각지에 임명되는데, 각각의 관할 지역은 실질 행정구역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 ↑ 스코틀랜드 게일어 이름인데 원어는 Na h-Eileanan Siar(IPA: [nə ˈhelanən ˈʃiəɾ])이다. 영어화된 발음으로는 너 힐러넌 시어(/nə ˈhɪlənən ˈʃɪə(r)/)이다. 영어 명칭으로는 아우터 헤브리디즈(Outer Hebrides) 또는 웨스턴 제도(Western Isles)라고 한다. 이 지역은 스코틀랜드 게일어가 일상어로 쓰이기 때문에 근래에 행정구역(council area) 이름, 영국 의회 평민원(하원) 및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지역구 이름과 지방의회 명칭을 스코틀랜드 게일어로만 표기하게 되었다. 즉, 영어 문장에서도 스코틀랜드 게일어 명칭으로만 기재한다는 것.
- ↑ 원어 표기는 Dumfries and Galloway인데 이 표에서는 외래어 지명을 한글로 옮길 때 and를 빼는 관례#를 따랐다. 스코티시 보더스와 더불어 잉글랜드와의 접경 지역 두 곳 중 하나이다.
- ↑ 스코틀랜드의 수도.
- ↑ 스코틀랜드의 최대 도시.
- ↑ 잉글랜드 접경 지역 두 곳 중 하나. 다른 접경 지역은 덤프리스 갤러웨이.
- ↑ 이는 아무래도 도시 지역에 젊은 인구가 많고, 농어촌 지역에는 노인층 인구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 ↑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항목에 설명돼 있으니 참고할 것.
- ↑ 토니 블레어 전 총리도 스코틀랜드 지역 출신이나 집안 자체는 북부 잉글랜드 출신이다. 스스로 켈트족의 후예라고 생각할 리는 만무하다...
- ↑ 이미 영미권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냄새를 맡았는지2012년에 트위터에서 그를 영국에서 가장 영리한 정치인이라고 칭찬한 바 있다. - ↑ 니콜라 스터전은 여성 최초의 스코틀랜드 정부수반이 되었다.
어차피 최초라고 해봐야 스코틀랜드 자치정부(1999년 수립)의 역사 자체가 길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