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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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Kingdom–United States relation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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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수리사자.

1 개요

영미권에서 첫 번째로 큰 나라인 미국과 두 번째로 큰 나라인 영국의 대국관계. 1940년대부터는 special relationship, 특별한 관계귀축영미라고 부르기도 한다.[2]
두 나라를 합치면 미영제국이 된다 카더라

2 시대상

2.1 식민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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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기 전 영국과 미국의 사이는 의외로 그리 나쁘지 않았다. 미국인(당시에는 식민지인, 대륙인)들은 상당수가 영국계 미국인이었고 각 별로 동떨어져 미국인이란 인식도 없었다. 미국독립전쟁의 시발점이 된 사건들도 처음에는 본국의 부당대우에 대한 속령의 저항 정도였다. 그러나, 보스턴 차 사건같은 여러가지 분쟁으로 인해 미국의 국가 원형이 형성되면서 반영감정이 강해졌다. 그리고 결국 미국은 독립했다.

2.2 19세기

독립 후에도 미영전쟁[3] 등을 치렀으며 당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영국에 대한 반감이 컸다. 미국의 고립주의 탓에 미국은 유럽의 국가들과 정치적으로 큰 연관을 맺지 않았던 탓에 독립전쟁 당시의 반영감정이 그대로 이어진 탓도 컸다. 민간교류는 그와 별개로 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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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 이르면 미국의 공업화가 발달하면서[4] 미국의 경제력은 영국을 뛰어넘게 된다. 19세기 후반에 베네수엘라에서 미국과 영국이 충돌할 뻔한 사례가 있었으나 이미 노쇠해가던 영국이 한 발 뺐다.

2.3 20세기 초

고립주의를 유지하던 미국은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그 전부터 영국을 지원했다. 아무래도 영어라는 언어가 공통되고 민주주의 국가란 특성 탓에 미국인들은 심정적으로 영국을 지지했다. 전쟁이 끝난 후 전간기에는 협조도 하고 그랬지만 미국의 고립주의 탓에 영국의 경제적 고민을 미국이 무시하고 하는 일이 꽤 있었다. 영국인들은 양키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2차 대전 당시 영국 주둔 미군들에겐 영국인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도록 많은 훈령이 내려갔다.

2.4 갈등

윗 항목에서는 미국과 영국의 관계를 좋게만 서술했지만 현실에서 미국과 영국이 마냥 사이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외교에서 2차대전이후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지역 강대국으로 주저앉고 몰락해버린 영국과 소련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는 초강대국 미국인 만큼 미국이 서로 동등할리는 없다. 실제로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영국을 깔보고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일이 번번히 있었다 현재의 우호적이고 친밀한 관계는 영국이 국제정세에서 스스로의 독자노선을 완전 포기하고 미국의 국제전략에 대해 지지를 선언하며 동참한 것이 매우 크다. 물론 미국도 이에대해 영국의 포클랜드 전쟁에 대한 지지선언등으로 충실히 보답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핵무기 개발과 수에즈 운하. 영국의 핵개발항목을 보면 알수 잇듯이 미국은 이미 세계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일개 지역강국으로 주저앉은 영국따위와 핵개발에 따른 국제적인 영향력,권력을 나눠가진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기에 맥마흔 법을 통과시켜 핵물질 및 핵기술의 해외 이전을 원천적으로 금지하여 영국의 핵개발을 방해했다. 물론 영국은 핵무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데 성공한 이후에는 미국과 협약을 맺어 공동 핵무기 실험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영국은 미국에게 당했던 것을 그대로 프랑스에게 행한다. 물론 우디르급 태세전환영국과 미국의 무시에 분노한 프랑스도 좌우성향을 막론하고 핵무장을 지지하여 핵개발에 성공하엿다.

수에즈 전쟁은 영국이 이미 몰락한 자신의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미국을 무시하며 자기 멋대로 행동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영국과 미국이 사이가 좋은 것은 몰락해버린 영국이 초강대국 미국에 대해 양보하고 지속적으로 외교노선에서 공조를 하였기에 이뤄진 것이다. 물론 미국도 영국의 양보와 외교노선의 공조에 대해 지지선언및 협조등으로 확실하게 보답하는 중. 대표적인 사례로 포클랜드 전쟁이 있다.

2.5 특별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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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관계란 말은 1946년 윈스턴 처칠이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과 영국은 정보공유와 군사기지공유 등 정치외교적인 면에서 협조를 많이 했다. 영국이 독자적인 핵개발을 하는 등 미국의 심기를 거스를 때도 있었지만 관계는 잘 유지됐고, 21세기 들어서는 토니 블레어의 영국 정부와 조지 W. 부시의 미국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밀월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3 여담

미국이 최고의 동맹으로 여기는 세 나라가 이른바 ABC(Australia, Britain, Canada),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캐나다이다. 프리즘 폭로 사건 당시 미국은 자국을 포함해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만큼은 제외하겠다고 밝힌 바 있을 정도. 다만 이건 미국의 입장으로 영국은 정치적 및 군사적으로는 미국 편이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는(특히 경제적) 미국-유럽-러시아-중국-일본 사이에 문어발처럼 다리를 걸치고 있고, 캐나다는 제국 주변국 특성상 미국과의 관계가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국제적으로도 영국과 달리 미국 2중대 정도 취급이기도 하고.[5]
  1. 그림은 1898년 브리타니아(영국의 의인화)를 환영하는 컬럼비아(미국의 의인화)를 묘사한 풍자화.
  2. 미국과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으로 참전했다. 그 전에는 미국의 고립주의가 강했다.
  3. 영국군의 대부분은 사실 캐나다군이었다. 당시에는 독립된 군대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부자지간의 싸움, 혹은 형제지간의 싸움으로 볼수 있는게 애초에 미국을 구성하는 국민들 다수가 영국계라서 그럴지도. 물론 지금은 히스패닉도 무시무시하게 많아서 영국+스페인 짬뽕에 가깝지만
  4. 경영학이란 학문 자체가 이 시기에 미국에서 발생했다.
  5. 조지 W 부시 시절에 토니 블레어를 부시의 푸들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영국의 경우는 독자적인 외교를 할 만한 국력은 있기 때문에 이건 언제까지나 지나친 친미정책을 까는 용도로 쓰였지만 캐나다는 정말로 미국의 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