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중앙아메리카의 국가

과테말라

벨리즈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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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제국가는 바이아 섬(Isla Bahía)을 제외한 전지역이 해당.

온두라스의 국가정보
국기270px-Flag_of_Honduras.svg.png
공식명칭온두라스 공화국(República de Honduras)
면적112,492㎢
인구8,746,673명(2016년)
종족구성메스티소(90%), 아메리카 원주민(7%)
수도테구시갈파
정치체제대통령제
대통령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임기2014년 1월 27일 ~ 2018년 1월 27일 (예정)
명목 GDPGDP153억 4700만 달러(2010)
1인당 GDP2,015$(2010)
GDP(PPP)GDP336억 3100만 달러(2010)
1인당 GDP4,417$
지니계수0.553(1992-2007)
공용어스페인어
종교기독교 87%(가톨릭 46%, 개신교 41%), 기타 종교 2% 등(2014)
화폐단위렘피라(Lempira)
국가(國歌)온두라스 국가(스페인어: Hinmo nacional de Honduras)
모토자유, 자주, 독립(Libre, Soberana e Independiente)
Libre, Soberana E Independiente

자유, 자주, 독립

1 개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 수도는 테구시갈파(Tegucigalpa).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2 역사

온두라스는 마야 문명의 영향권의 동쪽 끝으로 코판 등에서 1,500년이 넘은 마야 유적지가 발견된다. 그리고 동부의 황량한 평원 지대엔 여러 부족이 살았다. 16세기 콜럼버스가 온두라스에 도착한 이래 에스파냐의 침략을 받았지만 렝카 족의 렘피라 등이 강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식민지가 되었다.

온두라스의 수도는 처음엔 온두라스 북부 해안의 트루히요였으나 코마야과를 거쳐 남부 고원의 테구시갈파로 옮겨 갔다. 스페인 식민 시기 동안 온두라스는 자원도 부족하고 인구도 적어 낙후되어 있었으며, 그나마 은을 캐서 경제가 유지되었다. 한편 영국은 동부의 모스키토모기 족의 지원으로 동부 해안을 점거하고 목재를 가져갔다.

19세기부터 중남미 곳곳에서 엘리트층이 주도한 독립 운동이 일어났고, 1821년 온두라스는 중미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을 선언해 1823년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로스알토스[1]와 함께 중미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했다. 중미 연방은 20년도 못 버텼지만 그 동안 무려 18명의 국가원수가 재임하는 등 혼란상을 보이다 1838년 온두라스가 독립을 선언하고 비슷한 시기 와해되었다.

독립 이후에도 온두라스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1876년까지 82명이 권력을 잡았고 수백 건의 내란이 발생했다. 1876년 이후에도 혼란상은 별로 변하지 않았으나 온두라스는 근대화를 추진하고 바나나 농장과 광산을 외국에 개방했다. 외국 바나나 회사는 나중엔 철도 부설권까지 따냈고, 정권에 붙어 타 산업을 통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온두라스는 바나나 공화국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바나나 회사 외에 미국도 온두라스에 개입했으며 내부적으로 혼란이 심해 20세기 초반만 해도 159번의 반란과 18회의 정권 교체가 이어졌다. 1930년대엔 안디노의 군사 독재가 이어지다 물러났고 민간 정부가 세워졌지만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다. 한편 온두라스의 이웃나라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 면적의 5분의 1에 불과한 소국이었으나 인구는 서로 비슷했는데, 땅이 부족한 엘살바도르인들은 일을 찾아 온두라스로 건너왔다. 온두라스에선 1963년 기업이 외국인을 10% 이상 고용 못 하게 했고 1968년 엘살바도르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했으며, 결국 1969년 갈등 속에 그 유명한 축구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1981년까지 군부독재는 계속되었으며, 온두라스의 상태는 군부독재 때나 이후나 이웃나라들과 비슷하게 영 좋지 않았다. 온두라스에 있는 미군기지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반대하는 콘트라 반군 기지로 이용되었는데 당시 오요 대통령은 이들의 온두라스 주둔 금지를 공약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2006년 당선된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은 친(親)우고 차베스 성향으로 대통령 재선을 허용하도록 헌법을 고치는 국민 투표를 할 예정이었는데 2009년 군사 쿠데타로 쫓겨나고 미국은 처음엔 이를 비난하다 나중에 이를 승인했다.

군부와 야권 세력은 이것을 헌법 유린으로 트집잡아 쿠데타가 아니라 헌정 질서 회복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마누엘 셀라야의 지지자들을 빼면[2] 거의 온두라스의 모든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상황이었다. 오히려 쿠테타가 일어난후 마누엘 셀라야가 떠났다며 기뻐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마누엘 셀라야의 언론플레이와 미국의 비난으로 나라가 고립이 되어버리는것 아니냐, 내전이 일어나는것 아니냐는 흉흉한 소문이 한동안 돌기도 했다. 후에 수상이었던 로베르토 미첼레티가 임시 대통령직을 수행했으며 혼란속에 빠질뻔했던 나라를 잘 이끌어냈다.

2013년 대선에서도 마누엘 셀라야에 이어 국민당의 후안 에르난데스가 30%대 득표율이긴 하지만 당선되었다.

3 사회

주민 대다수는 유럽인과 아메리카 토착민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차지한다.

살인적인 살인률의 나라
살인(고의 살인. 실수로 죽인 과실치사 제외) 사건 비율이 세계 최고를 달리는 나라. UN 마약 범죄 사무소(UNODC)의 통계에 의하면 10만명당 91.6 건의 살인이 발생해서, 2위인 엘살바도르(69.2건)를 현격한 차이로 따돌리고 1위를 했다.# 그런데 이 정도 막장 치안이면 보고되지 않은 사건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10만명당 0.7건 정도.

2012년 2월 14일 경 온두라스의 옛 수도인 코마야과 시의 교도소에서 화재가 나 35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250명 정원의 교도소에 무려 800 명 이상의 죄수들이 수용되어 피해를 키웠다고 한다. 무려 6,7단 침대까지 있었다고 하니 이건 뭐... 밑에 있는 링크에 나오는 감옥도 800명 정원의 교도소에 2137명이 수용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나라 교도소들의 대부분이 간수에 의해 관리되는게 아니라 수감자들에 의해 운영된다는것이다! # (영어 필요) 이 링크 사진에 볼수 있듯이, 그냥 점거수준을 넘어서 마을을 차려놨다(...)아캄 시티 가족들과 만날수도 시장에 갈수도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볼수도있는 좋은감옥 간수들도 딱히 별수는 없는지 세금을 받으면서 선을 넘으면 쏘는거 말고는 하는게 없다. 이걸 취재한 기자들도 교도소장이 아니라 "선거"로 뽑힌 죄수들의 두목과 거래를 해서 찍을정도.[3] 보너스로, 방마다 빠루랑 열쇠가 구비돼있다고한다. 왜냐면 불이나도 경찰들이 구하러 들어올리가 없기때문(...) 소화기는 안 놔두나?

그리고 살인율이 세계 최고인 나라답게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도시도 있다.

그 악명높은 시우다드후아레스가 2위?[4]
이 비디오를 보면 산 페드로 술라(San Pedro Sula)라는 도시의 살인율이 10만 명당 158.87건이다.[5]

4 경제

중남미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주요 수출품 중 하나가 커피이다. 2007년도에는 이 나라의 한 커피 농장에서 생산된 원두가 Cup of Excellence 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온두라스 커피는 매우 깔끔한 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며, 부드러운 느낌이 특징이다. 바나나 역시 매우 유명하다.

5 스포츠

축구전쟁을 벌였던 만큼 지금도 축구인기넘사벽. 북중미에선 제법 축구를 잘하는 나라이다.침대축구 물론 메이저 대회 같은 데서는 동네북이라서 그렇지. 국대에 대해 자세한 것은 온두라스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6 정치

  •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 모든 권한과 실권은 대선으로 이루어져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 대통령의 임기는 4년 단임제이며 단 1회에 한하여 중임할 수 없다.
  • 현재 대통령은 2014년 1월 27일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이다.
  • 현 대통령인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는 2018년 1월 27일에 퇴임 할 예정이다.
  • 다음 대통령 선거는 2018년 1월 27일에 열리는 예정이다.
  • 삼권 분립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7 외교관계

주변국인 엘살바도르와는 축구 전쟁을 계기로 사이가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 축구 전쟁을 통해서 전투를 벌였던 적이 있었으나 참패하고 결국에는 단교까지 가기도 하였으나 평화협정을 통해서 해소되었다. 전쟁 이전에도 양국은 국경분쟁도 겪었던 사이이기도 하다.

한국과는 1962년에 단독으로 수교하였다.

다만, 대만의 몇 안되는 수교국이다.

엘살바도르와 사이가 좋지 않은 온두라스는 과테말라, 멕시코, 코스타리카와는 관계가 아주 좋은 것으로 나온다. 다만 영연방 회원국인 벨리즈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8 창작물에서의 온두라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서 컴퓨터부 부장의 부모가 살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이다. 왜 하필 이 나라요?

블랙라군에선 FARC시절 로베르타가 테구시갈파의 미국 대사관을 폭파하는 테러를 저질렀음을 발랄라이카가 언급한다. 다만 이것이 쿠바 혹은 소련의 사주였다면?

9 이야기거리

2008년 8월부터 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온두라스 현지에 체류하고 있던 한국인 한지수 씨가 살인 누명을 쓰고 2009년 8월부터 17개월간 교도소에 억류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나마 추적 60분을 통해 방송이 나가는 등 구명 운동이 벌어져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12년 현재 이 나라의 여당인 보수정당 온두라스 국민당(Partido Nacional de Honduras) 당 깃발은 소말리아의 국기와 똑같이 생겼다(...) 그리고 제1야당인 중도좌파 성향의 온두라스 자유당(Partido Liberal de Honduras) 당 깃발은 오스트리아 깃발과 똑같이 생겼다.

주요 관광지로는 로아탄(Roatan)섬 과 우틸라(Utila)섬이 있다. 로아탄은 17세기 유명했던 해적 헨리 모건의 본거지로 유명하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크루즈 여행이나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우틸라도 로아탄 만큼은 덜 유명하지만, 역시 스쿠바다이빙으로 유명하고, 카리브해 근처에서 제일 저렴한 가격에 스쿠버 자격증을 딸수 있는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두 섬들은 육지와 떨어져 있고 외국인들이 찾은 관광지이으로 치안은 그런대로 괜찮은듯
  1. 과테말라 서부 케찰테낭고 일대에 있었던 나라이다.
  2. 이미 뻘짓을 너무 많이해서 지지자들을 잃을대로 잃었던 상황
  3. 전 두목은 자리세를 올렸다가 끔살.
  4. 2009년 이후 이곳의 치안이 많이 나아졌고, 2013년 자료에 따르면 2013년에는 살인 505건에 살인율 37.59로 37위. 그러나 WHO에 따르면 살인율이 10 이상인 곳이 'epidemic violence' (유행성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류하는데, 여기서 벗어나려면 이 도시의 살인을 2013년보다도 4배나 줄여야 한다. 즉, 아직 갈 길이 멀다.
  5. 그런데 일부 출처에 따르면 카라카스의 살인율이 이보다 훨씬 더 높다. 이 비디오에는 98.71이라 나왔지만 여기를 보면 무려 10만 명당 233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