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룡

1 한국무술배우감독

1960~

그야말로 한국 영화사상 최대의 괴객.

본명 김원용. [1] 왕룡은 배우시절 예명이다.

1.1 무술 배우로서의 활약

본래에는 7~80년대에 한국에서 홍콩 무협 영화에 영향을 받은 국산 무협 영화가 다수 만들어 지던 때에 무술 배우로 활동하면서 영화계에 진출하였다. 이때 홍콩의 원로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성인용 권격 영화에서 코믹화가 진행될때 주로 활약했으며 특히, 80년대에 이르어서는 김정용 감독과 무술배우 정진화와 함께 만들었던 영화 <소림사 주방장>이 크게 인기를 끌었는데 이때에 무술 실력을 인정받아 그 속편인 <돌아온 소림사 주방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주연과 무술 감독을 겸하며 끝을 향해 달리던 한국 무협 영화계의 대미를 장식하였다.[2] 이후에도 <무림걸식도사>, <무림사부대행>, <소화성 장의사> 등의 국산 무협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였다.[3]

한국 무협 영화의 인기가 시들어지며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자 이 후에 아동 영화계로 진출하여 여러 영화에서 무술 감독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외계에서 온 우뢰매 2>에서 외계인들에게 조종당하는 불우한 청년 강우[4] 역으로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리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1.2 감독으로서의 활약

이후 대원 비디오의 협찬을 받으며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여 인기가 많았던 일본 만화를 영화화하기 시작했다. 이때 만들었던 북두의 권(실사한국판)이나 정신나간 유령, 드래곤볼(실사한국판) 등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대부분 아동용 저예산 영화라 그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저작권자의 허가도 없이 마구 만들었다.[5]

물론 당시에도 이런 영화들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고, 후에 일본의 TV프로인 <트리비아의 샘>에서 한국에 북두의 권 실사 영화가 있다!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갑자기 회자되며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이때 일본에서의 반응도 정말 컸고(...) 한국에도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뭇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 주었다. 흠좀무.

1.2.1 저작권 논란

왕룡은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일본의 만화나 게임을 영화화하였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일본 본사의 허락없이 저작권을 침해하여 만든 것들이라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드래곤볼이나 유유백서의 경우에는 왕룡을 감독으로 섭외했던 대원 미디어가 한국에서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화 하는데에 법률상 문제가 없었으나, 다른 작품들은 저작권 침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사실 대원이 가지고 있던 판권이 영상물 제작의 권리까지 포함된 판권인지 불분명한 부분이 있으니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었겠지만 그냥 유야무야 넘어간듯.

특히 북두의 권(실사한국판)의 경우에는 당시 일본TV 프로를 통해 처음 알려졌을때 일본 출판사가 저작권 침해로 법적인 조치를 취하려 하였을 정도로 분위기가 심각했다. 그러나 이후에 일본 출판사 관계자들은 영화를 직접 보고나서 그럴 생각을 접었다고 전한다(...). 역시 마스터피스!

다만 동시기에 한국의 저작권 인식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왠만한 만화들은 일본만화의 해적판, 혹은 완벽한 표절판이었다.

1.3 TV에서의 활약

80년대말 90년대 초반에 TV에서도 자주 나왔는데 어린이 무협 장르극 소년 탐정 이지돌과 루팡에서 무술감독으로 크레딧에 올라와 있다. 이 작품은 기암성을 원작으로 했으며 최원석[6]이라는 배우가 이지돌 역으로 나왔다. 그런데 나중에는 뤼팽 시리즈 말고도 여러 해외소설 줄거리를 이지돌을 주인공으로 계속 써먹으며 만들었다. 엘러리 퀸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라든지 코넬 울리치(환상의 여인 원작자로 윌리엄 아이리시는 필명)나 여러 추리소설가들 작품을 무단도용했다.

주로 명절에 소년 탐정 이지돌과 루팡의 멤버들[7]이 찍던 KBS 특집 무협극의 무술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다만 이 시기는 외주제작이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무술감독으로서 액션씬 설계만 했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판에서 화려한 전적 때문에 이런 대목까지 무단도용이라 몰아붙일 근거는 없다.

가끔 단역으로 대사 없이 나오기도 했는데 앞에 말한 무협드라마에서 최종보스 밑의 부하나 말없이 사라지는 강적류의 역을 맡았다. 요새 정두홍 감독과 비슷한 비중. 형사 드라마에서 제비족이나 바람피는 여자의 상대내지는 살해당하는 조폭 부하로 몇번 나오기도 했다.

1.4 그 외에

1994년 성인 영화 <검은사월>의 감독을 한후 현재에는 그 소식이 불분명이나 잘 지내고 있다고 카더라.

'무술 배우 겸 무술 감독 겸 영화 감독 겸 특수효과 담당'(...)이라는 흠좀무한 경력 외에도 초기 비디오 업체에서 여러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제곡도 부른 경력이 있어서, 세인트 세이야슬램덩크등의 주제가도 불렀고 유명한 북두의 권 실사판의 주제가도 본인이 직접 불렀다고 나무위키를 중심으로 알려져있으나[8] 정확한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왕룡이 주제가를 불렀다"라는 인터넷발 정보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부정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팟캐스트 후라이에 패널로 등장하는 탁상.[9]

훗날에 아름답지 못한 일로 유명세를 타긴했으나 그래도 단순히 막장 감독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실 배우 왕룡으로서 활동하던 시기와 배경 자체가, 지금 기준으로는 쌈마이한 B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영화를 찍어대던 게 상식이고 시스템인 시절이었다.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고 홍콩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로 이런 기존의 제작 관행에 반항을 하고 뛰쳐나온 이가 바로 성룡이다. 항목 참조.

또한 90년대엔 저작권 개념이 전무했다. 개념 정도가 아니라 아예 경영이나 무역, 국제정치 쪽과 관련이 없는 일반인은 이런 용어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우르과이 라운드가 타결되고 WTO 체제가 출범하면서 장차 지적재산권 분쟁이 심화할 것이다는 예측이 소수 식자층에서 살짝 논의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게임은 당연히 복사해서 쓰는 것이지 그게 불법이란 사실조차 모르던 대해적시대

차라리 지금처럼 저작권 개념이 아주 빡빡해서 아예 저런 종류의 작품을 찍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면 우베 볼같은 B급 전문 감독 취급은 받을지언정 괴인(...) 소리는 안들었을 터였다. 또한 북두의 권을 제외하면 대부분 판권 해결을 했거나 한 것처럼 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참고로 왕룡 감독의 다른 작품들은 '대원클래식'으로 DVD가 발매됐지만 북두의 권 실사판만은 발매되지 않았다.

그래도 활동 초기에는 화려한 무술 실력으로 한국 무협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액션 배우였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할 부분이다.

1.5 주요 출연작

  • 무림 대협(1978)
  • 소림사 십대장문(1978)
  • 요사권(1980)
  • 대형출도(1981)
  • 소림사 주방장(1981)[10]
  • 돌아온 소림사 주방장(1982)
  • 무림사부대행(1982)
  • 무림걸식도사(1982)
  • 귀문기담(1983)
  • 소화성 장의사(1983)
  • 마검야도(1985)

1.6 주요 감독작

2 대지의 주인공

왕룽의 한국식 독음.
  1. 다만, [1] 에서는 본명이 김성용이라고 등재되어 있으니 확인바람.
  2. 실제 무술 실력도 출중하거니와 얼굴도 꽤 괜찮게 생겼었다.
  3. 이 시절에 출현했던 몇몇 국산 무협 영화들은 훗날에 외국으로 수출되면서 왕룡의 이름도 조금 알려졌다. 흔히 'mike wang'이나 'michel wang'등의 이름으로 알려졌다.
  4. ....불우하긴 한데...누이동생에게 사줄 선물도 없어 훔치다가 차에 치어 죽던 젊은이라면 초라하고 말라야 하는데 에스퍼맨과 싸울때 보면 아주 근육이 불끈불끈...정말 300에서 나오던 스파르타인들 몸집을 보여준다...뭐 외계인들에게 조종당하여 저리 된 것이라고 하면 될려나? 그만큼 이 분이 무술배우로서 노력도 자질도 보였었다.
  5. 그나마 정신나간 유령은 정식으로 라이센스를 얻어서 만든 영화다.
  6. 당시에는 꽤 촉망받은 유망주였는데 별다른 활동 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7. 전우의 강민호, 박상만, 멤버는 아니지만 김희라나 김병기가 들어오기도 한다. 이 가운데 천풍무는 완전히 영웅본색 표절작도 있다
  8. 가창력이 상당히 좋다. 창법이나 발성이 살짝 조용필을 닮았다.
  9. 2014년 1월 25일에 업로드된 후라이 29회에서 왕룡 감독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 이야기를 다시 했으며, 왕룡 감독 인터뷰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10. 이 영화를 계기로 왕룡이 그 실력이 인정받아 본격적인 액션 스타로 거듭났다. 당시에 전국 10만 관객을 동원하여 저예산 무협 영화치고는 상당히 히트했다.이 영화 이후로 김정용 감독의 영화에 자주 출현하였으며 함께 80년대를 풍미했던 무술 배우 정진화의 파트너로 활약했다.문제라면 홍콩의 막가파 제작자 하지강이 배급한 광동어 더빙판이 개판으로 편집한 게 영어더빙되어 DVD로 나온 탓에 해외에선 홍콩영화로 안다는 것. 그러나 이후 김정용 감독은 1984년 <비천괴수>라는 괴작을 제작하는데 좀 심하게 말해서 <울트라 시리즈>를 짜집기하고 거기서 울트라맨같은 울트라성인들만 지운식의 도작이다.
  11. 즉 쿵후보이 친미의 실사판을 두번이나 만들었다는점(...) 다만 쿵후보이 친미 제목으로 된것은 "맹구" 이창훈 주연으로 어레인지되었다. 거기서는 맹구가 통배권을 쓴다카더라.
  12. 표지에 블러처리된 서리한이 박혀있는 바로 그 작품이다(....)
  13. 이름에서 삘이 오겠지만,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영화화했다.
  14. 왕룡의 마지막 작품. 성인 조폭 영화이다. 이후로 소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