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슬레지

Eugene Bondurant "Sledgehammer" Sledge (1923년 11월 4일 ~ 2001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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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유진 슬레지의 사진.

1 개요

미국군인이자 HBO 제작 미니시리즈 더 퍼시픽의 후반부의 주인공이다. 미국 해병대 제 1사단 5연대 3대대 K중대 박격포반 병사로 1942년부터 1946년까지 복무했다. 별명슬렛지해머, 최종 계급상병. 드라마 더 퍼시픽에서의 배우는 조지프 머젤로(Joseph Mazzello)[1]

2 생애

2.1 유년기

1923년 앨라배마 주 모빌에서 부유층으로 태어났다. 증조부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장교였고,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한 경력이 있으며 모빌 지역에서는 유명한 의사였다. 유진은 을 좋아했고 몸이 허약했었다. 그의 아버지는 유진이 바깥에 나가는 걸 장려했고, 유진은 아버지로부터 낚시와 사냥을 배웠다. 시드니 필립스하고는 친구였으며, 거의 주말마다 모빌 외각에 있는 남북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옛 전쟁터로 답사를 나갔다. 당시 유진의 부모님은 그를 위해 자동차를 사주기도 했다.[2] 밀덕질을 좀 했는지 남북전쟁 당시 쓰였던 총알이나 남부군 벨트버클 같은 유물을 파내면서 하악거렸고, 참호나 구덩이를 파서 리인액트먼트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진주만 공습 이후, 둘은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유진이 류머티스성 열을 가지고 있으며, 당시에 다니고 있던 머피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이유로 참전을 반대했다. 류머티스성 심장 잡음[3] 때문에 제때 입대할 수 없었던 유진을 두고 친구인 필립스는 먼저 신병 훈련소로 떠난다. 머피 고등학교 졸업 후, 1942년 가을에 유진은 앨라배마의 마리온에 있는 마리온 군사학교에 입학했으나, 그는 그 학교 대신 1942년 12월에 미 해병대에 지원하여 장교를 양성하는 V-12 프로그램에 배치되어 조지아 공과 대학에 다니게 된다. 그러나 유진은 이 프로그램을 계속 받다가는 직접 전쟁터로 나가서 싸울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일부러 시험 성적을 적당히 낮추어 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고,[4] 자신이 원하던 전투부대인 미 해병대 1사단에 입대하게 된다.

이 당시 유진의 형인 에드워드는 자신이 전쟁터[5]전차 앞에서 찍은 사진을 유진한테 보냈다고 한다. 유진은 사진을 보면서 형이 아직 전쟁터에 나가지 않은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껄끄러웠다고 한다.

2.2 참전

입대 후, 그는 해병 1사단 5연대 3대대 K중대(일명 '킹 중대') 박격포소대[6]에 배치되었고 펠렐리우 전투오키나와 전투를 겪는다. 군생활을 하면서 스내푸하고 꽤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7]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중국 베이징으로 파병됐다. 1946년 상병 계급으로 제대했다.

그는 복무기간 동안 가지고 있던 성경이나 기타 종이에 틈틈이 전쟁에 대한 생각 등을 정리했고, 이는 나중에 그가 회고록을 쓸 때 참고가 되었다.

2.3 전역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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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과 교수 시절의 유진 슬레지.

전역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고자 했으나, 해병대 전투부대에 들어가려고 일부러 낙제한 V-12 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은 것이 의대 진학에 방해가 되었다. 결국 그는 앨라배마 기술대학(오번 대학의 전신)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보험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친구의 결혼식에서 같은 모빌 토박이인 진 아르세노를 만나 1952년 3월 결혼했고, 전혀 즐겁지 않았던 보험회사 일을 때려치우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공부를 재개하여 플로리다 대학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앨라배마 주 북부의 몬테발로 주립대학에서 생물학과 교수가 되어 여생을 보냈다. 이후로는 자신이 전쟁 당시에 성경이나 쪽지에 일일이 메모했던 내용을 정리하여 1981년 참전 수기 <With the Old Breed at Peleliu and Okinawa>를 출판했다. 'With the Old Breed'는 드라마 더 퍼시픽의 엔딩곡 제목이기도 하다.

2001년 3월 3일에 손주, 손녀 6명을 두고 위암으로 사망했다. 1년 뒤인 2002년, 아내인 진 슬레지는 남편이 손으로 쓴 참전 수기의 원래 원고에서 일부 원고를 <중국 해병대(China Marine)>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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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도의 유진 슬레지.

참전 수기를 쓰기 전까지는 스내푸하고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스내푸는 유진의 참전 수기를 읽고 1980년 해병대 참전용사 모임에 참석해 유진과 재회하게 된다. 유진 슬레지의 별명인 슬렛지해머는 스내푸가 지어준 별명이다. 전쟁 당시 참호에서 유진은 스내푸와 같이 지냈는데, 불침번을 서던 스내푸가 교대하기 위해 유진의 귀에다가 '슬렛지해머'라고 속삭여서 깨웠던 경험 때문에 유진은 전쟁이 끝난 지 몇십 년이 지나도 아내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대신 귀에다가 '슬렛지해머'라고 속삭이면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새를 관찰하거나 모짜르트와 클래식 기타를 즐기는 등 사람 자체는 전쟁과 어울리지 않는 편이었다고 한다. 오키나와와 중국에서 주둔하던 시절에는 오키나와 주민들[8]중국인들과 친하게 지냈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 등을 배우며 그들에 대한 동정심과 존경심을 품기도 했다. 물론 적군인 일본인에 대해서는 강한 혐오감을 느꼈다. [9]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개봉됐을 때, 처절했던 상륙전을 흥행 오락물로 여긴다고 영화를 보길 거절했다고 한다.[10] 전쟁 이전에는 취미가 사냥이었다고 한다. 다만 전쟁 이후에는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말미의 내용 중에 리처드 윈터스가 작은 새를 총으로 쏜 후 죄책감을 느껴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로 보아 두 사람 다 전쟁에 참가한 후 생명을 빼앗는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 듯하다. 또한 입대 때까지만 해도 해병대나 전쟁에 대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으나, 종전 때가 되자 해병대나 전쟁에 대해 언급하는 걸 꺼려했다. 그래도 자신이 속한 킹 중대에 대한 애정은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늘 외출할 때마다 군용 수통을 가지고 다녔는데, 아내가 이에 대해 묻자, 그는 "글쎄, 펠렐리우 전투 첫날에 하도 목이 말라서 앞으로는 절대로 물 없이는 안 다닌다고 생각한 것이 머리에 박혔나 봐"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드라마 더 퍼시픽에 등장하는 주인공 3인방(로버트 레키, 존 바실론, 유진 슬레지) 중 유일하게 붕가씬이 없다! 그렇다고 유진의 붕가씬을 억지로 지어내서 만들 수는 없고 극중 10화에서 그의 형이 "그 전쟁통에 니 총각성을 지켰다고?" 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또한 드라마에서 유진 슬레지가 의사인 아버지에게 심장과는 상관없이 해병대에 입대한다고 했을때 아버지는 육체적 부상이 아닌 영혼적 부상을 걱정한다. 전후의 유진 슬레지의 행보를 생각했을때 미묘한 복선.

전역 직후 어번 대학교에 등록하러 갔을 때, 접수원이 해병대에서 뭐 배웠냐고 물어볼 때, "그냥 훈련소서 화기교육 받았죠"라고 답했는데, 접수원이 웃으면서 "해병대에서 뭐 입학에 도움 될 만한 거 안 배웠어요?" 이라고 묻자 유진은 "쪽발이 죽이는 법 배워서 써먹었죠. 제가 그거 아주 잘했거든요"이라는 충공깽한 대답을 했다. 이 대화는 10화에서 나온다.

  1. 쥬라기 공원(영화)에서 존 해먼드의 손자 티미 역을 맡았던 배우.
  2. 1930년대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1위이긴 했지만, 중산층 부모들이 영화에서처럼 자식들에게 자동차를 사줄 정도로 부유해진 것은 1950년대 이후에나 가능해진 일이다. 즉, 유진네 집안은 지역 유지급의 부자였던 셈. 드라마에서도 넓은 마당이 딸린 집에 흑인 정원사와 가정부를 두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3. 드라마 더 퍼시픽 초반에 유진이 아버지로부터 입대 전 심장박동 검사를 받은 것도 이 심장 잡음 때문이었다.
  4. 부모님에게는 일부러 낙제했다는 사실은 알리지 않은 채 '그냥 이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다'고만 알렸다.
  5. 에드워드는 기갑부대 소령으로써 유럽 서부전선에서 나치와 싸웠다.
  6. 60mm 박격포 분대원으로서 포탄을 떨어뜨릴 각도를 재는 역할을 했다. 박격포가 소용없는 근접전투에서는 들것 운반이나 지원 사격수를 맡기도 했다.
  7. 유진의 참전 수기에서 유진은 스내푸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밝혔다.
  8. 이들은 본토의 일본인들과는 민족 자체가 달랐으며, 무엇보다도 일본군의 옥쇄 정책에 희생된 사람들이었다.
  9.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이 보여준 만행들을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도 혐오감이 들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10. 사실 봤더라면 정신적으로 더욱 피폐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 영화를 관람한 노년의 참전용사들이 (특히 초반부의 끔찍한 오마하 비치 장면에서) PTSD가 도졌다는 사례가 많이 보고되어 미국 제대군인부에서 참전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상담, 치료를 실시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