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바실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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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John Basilone (존 바실론)
생몰일자1916년 11월 4일 ~ 1945년 2월 19일

전설의 해병.

1 개요

미국군인이자 HBO 제작 미니시리즈 더 퍼시픽의 등장 인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합중국 해병대전쟁 영웅이기도 하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 미국 명예 훈장(Medal of Honor)과 해군 십자장(Navy Cross)을 모두 수여받은 유일한 해병대 사병이다.[1] 최종 계급은 중사(Gunnery Sergeant). 드라마 더 퍼시픽에서의 배우는 존 세다(Jon Seda).

2 생애

2.1 전쟁 이전

1916년에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2] 원래는 육군 출신으로 필리핀에서 근무했는데, 이때 필리핀에 대한 자랑을 많이 해서 동료들이 그에게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의 이름을 따서 "마닐라 존"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바실론은 태평양 전쟁 발발 전에 퇴역했다가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병대에 재입대했다.

2.2 과달카날 전투

미 해병대 제1사단 제7연대 제1대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1942년 10월 24일 밤, 그가 이끄는 기관총 분대는 룽가 지역을 공격해오는 약 3,000여 명의 일본군 연대 병력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 48시간의 교전 끝에 일본군 연대를 붕괴시키고 공격을 저지해 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미군 사령부는 일본군이 마타니카우 강을 건너 공격해 올 것으로 예상하고 허먼 하네켄 중령에게 마타니카우 강을 수비하도록 명령하고, 바실론이 있는 7연대 1대대만을 마타니카우 강 남쪽 룽가 방면에 배치하였다. 당시 1대대가 담당해야 했던 방어구역은 무려 2천 3백 미터에 달했기 때문에 고작 1개 대대로 방어하기에는 무리였고, 이에 연대장 체스티 풀러 중령은 전선 방어를 기관총 중심으로 하도록 명령해 두었다.

그러나 사령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일본군의 주력은 모조리 룽가 방면으로 몰려왔고, 상당수의 일본군이 해병대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때 바실론은 40미터 떨어진 다른 중대참호까지 달려가 여분의 기관총을 운반해 오거나, 고장난 기관총을 수리해 직접 쏘아가며 증원군이 올 때까지 버텼고, 보급이 끊겨 탄약이 바닥을 드러내자 90미터 떨어진 본진까지 달려가 적들의 저항을 뚫고 탄약을 추진해 오는 등 맹활약[3]을 했으며 결국 바실론은 이 공로로 미국 최고 무공 훈장인 명예 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2.3 전시공채 판매 홍보와 전선 복귀

명예 훈장 수훈 후 바실론은 본국으로 소환되어 전국을 돌며 전시공채 판매를 홍보하게 된다. 그러나 대중의 지나친 관심을 거북해했던 바실론은 상부의 몇 차례나 되는 배려와 회유에도 불구하고 전선 복귀를 끊임없이 강력하게 요청했다. 결국 그 요청이 받아들여져 바실론은 미 해병대 제5사단 제27연대 소속으로 다시 전선에 나가게 되었다.

바실론은 전선 복귀 전인 1944년에 같은 해병대원인 레나 바실론과 결혼했다.

2.4 이오지마 전투와 전사

미 해병대 제5사단 제27연대 제1대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1945년 2월 19일, 이오지마의 레드 비치 2에 상륙한 그는 부하들이 잘 방호된 일본군 방어진지에 저지당하자 단신으로 포화를 뚫고 방어진지 꼭대기에 올라 수류탄과 폭탄으로 방호진지를 무력화시켰으며, 일본군의 중화기 포격을 무릅쓰고 지뢰밭에 갇힌 아군 전차를 안전지대로 유도하는 등 과달카날에 이어 또 다시 큰 활약[4]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공격목표였던 모토야마 1번 비행장 활주로 끝의 참호에서 일어나 비행장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여러 발의 총알이 날아와 그의 오른쪽 사타구니와 목에 명중했고, 왼팔이 완전히 날아가버리면서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5] 실제로는 박격포 파편에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 또 이날은 안타깝게도 그의 아내 레나 바실론의 생일이었다.

사후 이오지마 전투에서의 공로로 해군 십자장에 추서되었다. 그의 시신은 이오지마에 안장되었다가 1948년 3월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 이장되었다.

3 여담

1949년, 전사한 바실론을 기념해 기어링급 구축함 한 척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6] 이 구축함의 진수식 때 바실론의 아내 레나 바실론이 샴페인을 터트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구축함이 퇴역한 후, 2016년 8월 16일, 72번째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에 다시 명명되었다.[7]
또한 미 해병대와 관련된 도로나 낙하산 착륙장, 그리고 여러 민간 시설과 도로 등에도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의 고향인 미국 뉴저지 주의 래리탄 (Raritan)시에서는 아래사진과 같은 동상이 있으며 매년 시가 주관하는 그를 기리는 퍼레이드가 있다. 또 현지 고등학교의 미식축구장이 바실론필드라고 불려지며 래리탄시에 위치한 다리 말고도 뉴저지 다른지역에 바실론을 기리는 도로, 다리, 건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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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실론이 사용한 브라우닝 M1917 기관총은 M16 소총 5정의 무게이고 탄약의 무게[8]까지 합치면 20kg 이상이며, 총기 반동도 무지막지하기 때문에[9] 되기 때문에 들고서는 쏘기만 하는것도 힘든지라 거치시켜서 사용하지만 이 사람에겐 예외였다. 실제로 그가 이 총을 들고 싸웠다는 증언이 많이 남아 있으며, 그의 고향인 래리탄 시 아메리칸 리전 트라이앵글에 세워져 있는 사진 속의 동상도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람보의 대선배라 카더라. 남들이 ARMA할 때 혼자서 콜 오브 듀티를 찍었다.

더 퍼시픽 8화에서 존 바실론이 M1917보다 1kg 가벼운 M1919를 고리쇠를 걸고 도수로 무의탁 사격하는 시범을 보이자 훈련병들이 황당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훈련병이 존 바실론이 총을 거치대에서 빼고 들고 이동하는 시범을 보면서 "저렇게 들고 쏘면 창고 벽도 못 맞추겠네."라고 말하다가, 존이 기관총으로 쏜 표적인 지프차가 벌집이 된 것을 보고는 그 옆의 훈련병이 "그럼 빨리 배워야겠네."고 말한다. 과연 명예 훈장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1. 2차대전기 해병대에서 이 기록의 소유자는 바실론을 제외하면 에이스 파일럿 패피 보잉턴을 비롯해 모두 장교들이었다.
  2. 따라서 원래 이름도 존 바실론이 아니라 조반니 바실로네였을 것이다. 이탈리아계 미국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미국 정체성을 강조하길 원했고 유명 마피아 알 카포네의 경우에도 알 카폰으로 불리길 좋아했으며 영화 대부의 비토 콜리오네도 콜레온으로 불리길 더 즐겼다.
  3. 이때의 활약은 더 퍼시픽 2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그야말로 야수처럼 미친 듯이 싸운다. 그 무거운 수랭식 기관총을 손으로 들고 사격한다. 때문에 왼팔에 화상도 입는다. 심지어 드라마에서는 실제 전투장면을 그대로 재현했다간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들을까봐 그의 활약을 축소해서 표현했다고 한다.
  4. 더 퍼시픽 8화 후반부에 그의 활약이 나온다.
  5. 더 퍼시픽에서도 똑같이 나온다.
  6. 함번은 DD-824. 1977년까지 활약한 후 퇴역, 마지막은 훈련함으로 이용되다 1982년 가을 플로리다 앞바다에서 표적함이 되어 바닷속으로 수장되는 것으로 함의 운명을 마쳤다.
  7. DDG-122 현재 기술 테스트 중
  8. 30-06 탄이다. 이 탄의 반동을 줄이고 가볍게 만든다고 개조한 것이 7.62x51mm NATO 탄이다.
  9. 거치시켜놓고 쏠 때와는 달리 들고 쏠 경우는 반동을 흡수해줄 삼각대도 없고, 수냉식 기관총이라 소총처럼 개머리판으로 어깨에 견착하고 반동을 줄일 수도 없다. 게다가 무거워서 균형을 잡기 힘들다는 것까지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