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발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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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RI(Ministry of National Defense Agency for Killed In Action Recovery & Identification)

우리는 결코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 대한민국 국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홈페이지 기본 화면에 적힌 글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 유해발굴단 슬로건

1 개요

말 그대로 전사자의 유해 발굴이 임무인 군대 보직. 모든 군대는 여건이 좋다면 전사자의 시체를 후송해서 장례를 치르려고 노력하지만, 변수와 극한상황이 시시각각 벌어지는 전쟁에서는 전사자의 수습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이 때문에 전사자 상당수가 전장에 그대로 버려지거나 아니면 후일을 기약하고 그냥 이름도 모른 채로 매장하기만 하고 물러나는 사례가 많아서, 최소한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 유해라도 발굴해서 유족에게 돌려주는 게 주 임무이다.

미군에는 전쟁중 실종된 미군의 유해 탐색과 수습을 전문적으로 하는 미국 합동전쟁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 Joint POW-MIA Accounting Command)가 있으며, 한국에 방문해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합동 발굴을 한 적도 있다.

땡보직이라고 오해받기 쉽지만, 애초에 유해발굴병의 주 목적이 뭐냐면 등산해서 삽질이다. 농담이 아니다. 그냥 산에 올라가서 땅 파는 게 일의 전부다.[1] 다른 보직이 삽질하는 것 서너 배는 한다. 이걸 두고 땡보직이라 하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라 믿는다. 위 사진도 죄다 유해발굴병 중에서도 짬 안되는 병이 파낸 것이다.

또한, 발굴 이후 감식을 하는 감식팀이 따로 있다. 이쪽은 감식병이 별도로 존재하며 TO는 12명.[2] 대신 생활관은...안습 이기에...그리고 파견기가 되어 파견을 나가면 중앙에는 사람이 몇명없다[3].망했어요 찾아라 드래곤볼

감식병은 기본적으로 감식연구소와 파견지의 임시감식소에서 일을 하며 간부[4]랑 하루종일 같이 있는다.
파견나간 임시감식소에는 간부1 병사1로 상주하며 병사 혼자서 모든 행정을 처리한다.[5][6]
임시감식소 하나에 3~4개의 발굴팀이 연결된다.[7]

발굴병의 병과분류는 일반보병, 특기번호는 111101.275, 감식병의 병과분류는 의무병, 특기번호는 411275이다.[8]

2 대한민국 국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홈페이지.

대한민국은 미국에 이어서 세계 두번째로 전사자 유해발굴 전문 부대를 창설한 국가다. 대한민국 국군의 유해발굴 부대는 주로 6.25 전쟁 당시 전사자 유해의 발굴과 신원파악을 담당한다. 6.25 전쟁은 워낙 단기간에 전선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많은 전투에서 미처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군에 있어서는 꼭 필요한 병과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학과, 고고학과 학생들의 희망.

원래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은 2000년도에 6.25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다부동 지역 전사자 발굴사업에서 시작했다. 원래는 육군내에 있던 일개부서에 불과했으나, 2007년에는 대통령령으로 대한민국 국방부내에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되면서 정식 부대로 승격되었다.

2009년에는 유해발굴사업의 효율성을 늘리기 위해서 각 군단별로 자체 유해발굴팀을 편성,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을 지원하고 있다.

2012년 6월26일 MBC에서 이들을 다룬 2부 구성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1]

참고로 문의전화는 1577-5625다.

2.1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

국방부에서 시작한 사업으로 초기에는 각 부대에서 관련 전공자들을 차출해 파견식으로 운영하던 방식이었으나 사업이 번창(?)할 기미가 보이자 2004년 정식으로 부대가 만들어졌다. 부대를 처음 창단하면서 각 부대마다 전공자들을 영구차출받아 2개 분대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기세좋게 만들고보니 국방부나 육본에 편제가 나질 않아 아래에 나올 09년 국방부 신막사로 이사가기 전까지 대전의 모 부대에 셋방살이를 하게 된다.[9]
아래에도 설명하겠지만 맘은 편하지만 몸은 죽어나는 군생활을 하고 09년에 국방부에 소속될때까지 상당히 고생한다.-사실 셋방살이 하는 부대가 큰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자대는 동작구 현충원 내에 위치. 2009년에 새로 지어진 신막사이다!그래봤자 발굴병들은 1년에 4달빼고 파견이다. 막사내에는 생활관과 전사자 감식과 유해 안치를 위한 시설이 존재한다. 그리고 영현업무를 담당하는 영현소대와 행정지원병, 운전병들이 같이 살고 있다. 현충원에는 국방부 의장대와 국방부 군악대와 PX를 공유한다. 또한 국방부직할부대다 보니 해병대, 해군, 공군도 같이 생활하는게 재미라면 재미. 단, 직접 실무에 나가는 발굴병들은 전부 육군 만 뽑는다. 해공군 인원은 감식단 본부의 조리병이나 행정병 등만 뽑는다.

카투사 등과 같은 개별모집병으로 모집한다. 특기번호는 111101.275. 모집 자격은 사학과나 고고학과, 인류학과 등 관련학과 2년 수료[10] 지원서를 내면 유해발굴감식단에서 평가를 보게된다. 평가 내용은 구두면접과 체력테스트[11]. 구두면접은 기본적인 안보관부터 지원동기같은 간단한 것부터 의외로 전문적인 발굴관련 지식까지 물어본다. 게다가 유해발굴감식단을 목적으로 철저히 준비하고 온[12]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어중간하게 준비했다가는 그냥 불합격한다는건 다 옛날 얘기다. 근래에 들어서는 지원율이 급감하고 있으며 어정쩡한 마인드를 탑재한 신병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곧 전역할 병장을 제외한 일병~상병들의 고민이 많아졌다.

최종 합격자는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대해서 일반 육군 병들과 똑같이 기초군사교육을 이수한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배치된다. 참고로 후반기교육은 없다. 전부 자대에서 배우는 것.

육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서빙고역에서 인사담당관을 만나서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오게 된다. 1~2주일 정도를 유해의 구조와 발굴 절차 그리고 해당 지역 전사 등을 교육받고 자신이 배속될 팀을 지정받게 된다.

가끔 앞에 '국방부'라는 말에 현혹해서 행정작업만 하는 줄 알고 왔다가 발굴기 때 겪는 상황(발굴도구를 잔뜩 들고 산에 오른다던지, 그 오르는 산이 1000고지가 넘는다던지, 산 타는데만 2시간이 넘게 걸린다던지...)에 혼란을 겪는 병들이 많은 편이다.[13]

2015년 현재는 2014년 말에 완성된 신막사에서 현충원 의장대 및 군악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건물이 전형적인 부대건물st라는건 안자랑

2.2 발굴 팀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의 발굴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식편제로는 8명이지만 여러 변수 고려할때[14] 평균적으로 6~7명으로 구성되며 인원난에 허덕이는 팀은 5명이기도 한다. 전국의 부대를 1개월 2개월 단위로 파견나가고 파견나간 곳에서도 아저씨로 불리기 때문에 다른 부대원들과 상호작용도 어렵다. 그리고 국방부에서 보급되는 물품과 일반 보병부대에서 보급되는 보급품이나 복장 등에서 병들간 괴리감을 불러오는 경우도 많아 업무적인 일이 아니면 지원부대와는 대개 친해지기가 힘들다.

발굴기간에 발굴병은 발굴복이라는 특수 피복을 이용한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 등산바지
  • 등산복 상의
  • 춘계 동계 바람막이
  • 발굴조끼
  • 발굴모
  • 정글모(원형 챙)[15] 짬찬자의 특권[16]

이 모든 피복은 무려 사제이다. 옷은 하계 상의를 제외하고는 모두 검정색이다. 전사자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 발굴 기간 중에는 일주일에 5천원에 해당되는 부식비가 따로 나온다.[17] 매주 주말에는 분대장이 팀원 한명과 같이 장을 보듯이 PX내의 먹을것을 싹쓸이 해온다.[18][19]
이 부식을 걸고 팀원끼리 내기도 한다. 걸고 걸고 또 걸다가 그 주 부식이 다 털리면 사비를 털어서 사먹어야 한다.

덕분에 팀내 구성원끼리의 상호작용이 다른 부대보다 특히 많으며 물일병만 되고 상병장급과 농담 따먹으면서 놀수 있을 정도로 친해진다.[20]물론 선임이 개차반인 경우 성립할 수 없다 서로간 친밀도가 높은 대신에 업무는 많다.[21] 사람 수가 적기 때문에 잉여인원이라는 개념이 없다. 말년병장이라고 해도 부대로 귀대하기 전까지는 혼자 산에 안 올라가고 그런 거 없다. 그리고 발굴병의 질은 절대적으로 경험에 비례한다. 아무리 고문관인 병장이라도 발굴능력에 한해서는 절대 늦게 들어온 병장이 이길수 없다.[22] 덕분에 발굴기나 공반기때 각종 고급 작업에 끌려나가는 병장이 많다.

그리고 팀은 부상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일반 병사처럼 쨔쟌!하고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있는 간단한 개념도 아니며 한명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 사람이 맡고 있던 일들은 모조리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서 업무 지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23][24]

발굴팀원들을 세분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행정병

발굴팀은 일일보고, 주간보고, 사단보고를 본대에 보고한다. 일일보고는 당일 진행현황을 구두로 보고하는 것이며 주간보고는 그 주간(월~금) 동안의 과정과 결과를 한글파일로 작업하여 지도를 첨부하고 유해 사진을 같이 상부로 보고한다. 사단보고는 발굴이 끝나고 나서 발굴기간 동안의 발굴 과정, 결과, 등을 종합하여 보고하는 것이다. 이 모든 보고는 일일보고가 기반이 되므로 행정병은 그날 그날 발굴병들을 잡아서 정확한 일일보고 내용을 인지해야 한다. 나중에 일일보고와 주간보고, 사단보고가 서로 맞지 않는 경우 정말 골아프다. 어디서 부터 고쳐야 할지 감도 안온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병이 행정병이며, 사수 부사수가 존재한다. 행정병의 고통은 다름아닌 주간보고를 작성할 때이다. 주간보고를 작성하는 날은 팀장이 주간보고를 위하여 서울 현충원으로 복귀하는 금요일 전날 밤이다. 당연히 연등을 하게 된다. 이날 발굴을 끝내고 나서 모든 역량이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투입된다. 주간보고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자료의 정리가 모두 되있어야 하기 때문에(사진병은 보고서에 이용할만한 사진을 정리하여 따로 분류해주고, 각 지역을 다녀온 발굴병은 GPS의 좌표를 프로그램에 입력하여 미리 정리해준다.), 선행 정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보고서를 작성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 주간보고를 작성하는 시기는 저녁 9시 쯔음 부터 시작한다. 게다가 짬이 딸리면 청소도 해야하니 연등은 불가피 하다. 연등을 하고 이리저리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대개 12~새벽1시에는 마무리가 된다. 간혹 발굴 스케일이 너무 커져서 보고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인 경우, 최악의 경우에는 새벽4시까지 연등 하기도 한다.(쓰면서 눈물이 난다.) 한 행정병은 5시까지 연등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부대 잔류를 요청했으나. 그 당시는 부대 철수 직전이라 일손이 부족하였고 당시 그는 베테랑 급이었기에 거절당했고 결국 좀비가 된 몸을 이끌고 600고지를 올라가 유해 2구를 수습햇다고 한다.

2. 사진병

발굴한 지역의 전경, 유해의 사진, 유품 사진 등을 촬영하는 병이다. 대개 사진기와 표지판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촬영한다. 물론 사진 촬영은 모든 팀원이 다 할 수 있지만 이 사진을 정리하는 병은 따로 있으며, 이걸 전담할 경우 그가 사진병이 된다.

사진병과 행정병이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다면? 상상에 맡긴다.

3. 발굴병

사진병과 행정병도 큰 범주에선 이 발굴병에 해당된다. 운전병을 제외한 모두가 발굴병이다. 결국 사진병과 행정병은 추가 업무가 붙어있는 셈이다. 발굴병은 말그대로 유해를 수습하는 병들이다.

2.3 공반기

유해발굴감식단이 일년 내내 발굴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혹서기와 혹한기에는 현충원으로 돌아와서 전체적인 정비를 한다. 파견 나간 팀의 신병들의 경우는 선임이 7명에서 대략 120명으로 뻥튀기되기 때문에 매우 멍멍이같은 기간이 된다.
돌아와서는 보고서 작성과 다음 발굴기를 준비하는데 폐급 장비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A급 정도로 정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수가 적은 병들만 죽어나갈 정도이다. 팀마다 장비가 매우 많기 때문에 결국 모든 병들이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군단 발굴팀 장비도 유해발굴 감식단원이 정비한다.
또한 다음 발굴지에 대한 사전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본인이 발굴병인지 행정병인지 헷갈릴 정도의 행정작업을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발굴지에 해당하는 군사 지도를 분류도 안되어 있는 지도 창고에서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와 행정병의 전유물이라고 알려진 아스텔지를 붙히고 지역에 해당하는 전사와 요도를 그리는 작업을 하게 된다. 별거 아닌듯 해도 지도 하나를 완성하기 까지 팀장(중~원사급)에게 몇십번이고 검사를 받고 퇴고를 거쳐야 하기 떄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요하는 작업이다.

2.4 군단 유해발굴팀

2009년부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지원을 위해 육군 군단별 예하에 만들어진 유해발굴팀. 이 쪽은 국방부 직할과는 달리 일반 병들중에 차출해서 파견형식으로 만들어지는 형태이다. 원칙적으로는 똑같이 사학과, 고고학과등 관련학과 출신으로 뽑아야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음악목회과, 통계학과 등 굉장히 관련없어보이는 학과에서 오는 경우도 많다.[25]

반년, 혹은 1년 단위로 운용하며, 1년 단위로 뽑는 경우는 그 전해 11월부터 군단 내의 부대에서 지원자를 받아서 모집하는 게 원칙이나, 수가 모자라거나 하면 차출한다. 보통 군단 유해발굴팀은 발굴통제장교가 지휘하며, 병 20명정도를 두 팀으로 나눠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각 팀의 지휘는 중~상사급의 부사관이 맡게 되는데, 이 부사관들도 당연히 차출된 인원들이다.

전반기, 혹은 후반기 유해발굴이 시작되기 전에 야전군 단위로 유해발굴팀을 모아서 국방부에서 약 2주간 집체교육을 실시한다.[26] 당연히 교관들은 유해발굴감식단 병들과 간부, 그리고 감식관들이다.
각 군단별로 자존심 싸움에다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포상을 미끼[27]로 유혹을 하기 때문에, 이곳에 오면 군대에서 공부한다는 게 얼마나 지옥인가를 느낄 수 있다. 2주간 거의 매일 새벽 1시까지 책 붙들고 연등하는 일이 다반사다.[28]
주로 배우는 내용은 인체 뼈대학, 장비, 발굴, 유품구분(피아식별) 등인데, 특히 인체 뼈 공부가 사람을 아주 환장하게 만든다. 농담이 아니라 자고 일어나면 옆사람이 뼈로 보일 지경이다. 특히 유해도[29] 그리기가 평가에서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서, 가면 인체 골격도만 수십장을 그려대는 안습한 모습을 볼 수 있다. 2012년 집체교육부터는 유해도를 그리는 평가가 없어졌다. 그나마 다행 중 다행.

2.5 업무

국방부 소속 유해발굴병과 유해감식병의 시각에서는 군단 유해발굴 감식병은 잉여 덩어리로 보는 경우가 많다. 파견온 인원 중 대부분(70%정도)은 막 전입온 신병보다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길면 1년에 짧아도 2개월 정도는 훈련을 받는다. 1주~2주 교육받고 오는 신병보다 시원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병이 군단발굴병보다 못할 경우 욕을 엄청나게 먹는다. 70%의 인원은 어차피 국방부 인원이 알아서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을 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09~16년도 기준).
자신이 원해서 열심히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국방부소속 감식병과 발굴병이 교육을 할때 질문을 거듭하는 바람에 잠을 못 자 발굴병과 감식병이 괴로워했다.[30] (13~15년도 기준)

발굴시 대부분 중요 업무는 국방부 유해발굴병들이 처리하고 군단 발굴병에게는 웬만한 정보는 넘겨주지도 않으니 군단발굴팀은 알고 있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잉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머지 30%도 실제 베테랑 발굴병과 나란히 발굴할 수 있는 병력은 매우 적다. 이 사람들 중 실제 발굴에 정말 도움이 많이 되며 단독으로 발굴, 차트를 작성하는 중후한 내공을 가진 군단발굴병이 다수 존재하긴 한다. 최전방 부대 출신이어서 국방부 인원 3명이 할 삽질을 혼자 한다던가, 유해도를 거의 예술 수준으로 그려낸다거나[31], 심지어 국방부 소속 발굴병도 처음보는 아리사카 소총[32]탄을 정확하게 맞춰내는 밀덕후 군단발굴병도 있다. 정말 별별 사람이 다 있다고 보면된다(...).

국방부 유해발굴병도 발굴을 하면 호탐사가 주 업무를 이루며 유해가 출토되면 해당 개인호를 인수 받고 1~2일 내에 유해의 발굴을 완료한다. 유해가 출토되고 오랫동안 공기, 태양에 노출되면 백화되기 때문에 서두른다. 물론 원칙이라서 상황이 나쁜 경우 더 시간이 걸린다.[33]

군단발굴병은 여기까지가 주 업무이지만 국방부발굴병은 이후 차트(현재는 노트북으로 대체되었을 것이다.)를 작성하고 주마다 주간보고를 올려야 한다. 매주 목요일이 되면 팀의 행정병은 잠도 못자고 보고서를 작성한 다음 졸면서 산에 올라간다.[34]

군단 유해발굴병의 경우는 주 임무가 탐사, 발굴로 나뉜다. 탐사같은 경우는 발굴 시작전 발굴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산의 개인호[35]의 위치와 수량을 파악하고, 마을을 탐문하며 당시 그 지역에서 벌어졌던 전투나 유해매장에 관해 제보를 수집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36]

발굴같은 경우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함께 발굴부대[37]를 통제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흔히 유해발굴병에 대해 갖고 있는 많은 선입견중 하나가 삽질만 하는거 아니냐는 선입견인데, 사실 삽질은 발굴부대 병들이 다 알아서 하고, 발굴병들은 그냥 여기파라 저기파라 통제만 하면 된다(…). 단 유해가 노출되었을 경우에는 본격적으로 발굴병들 임무의 시작이다. 일부만 노출된 유해를 정밀하게 노출[38]하여서 완전히 식별한 뒤에, 사진기록을 남긴 후에 유해를 전부 수습하여 관에 넣어서 관을 태극기로 싸는 것까지 전부 발굴병이 하는 임무다. "아저씨 뼈 나왔어요!"라는 소리가 동시에 한 세 네곳에서 들리면 발굴병만 죽어나간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난 4개의 발굴팀에게 동시에 받게되는 감식병 또한 죽어나간다.[39]

대한민국은 산악지형이라는 걸 새삼느끼게 되는 보직이기도 한데, 특히 고지가 엄청나게 많은 경기도 동부~강원도 지역에서 하는 유해발굴은 매일매일 6~700고지를 찍고 올라가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강원도 모 군단 유해발굴단 같은 경우는 GOP지역에서 항상 발굴지역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매년마다 1개 중대와 발굴병들이 GOP 초소 운동장에서 텐트를 치고 8주정도를 먹고 자면서 산다.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발굴병의 경우에도 군단 유해발굴병과 업무에서 크게 차이는 없다. 군단 발굴병과 다른 것은 직접적으로 발굴현장에 대해 책임이 따르고, 자료존안 등 여러업무를 추가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모든 업무에 대한 책임은 대부분 국방부 소속 발굴병이 지게 되므로 실력이 뒤떨어지면 개털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2.6 깡패

통제장교들을 짬은 높은데 진급을 못한 사람으로 뽑기 때문에 웬만한 대대장들은 데꿀멍시킬수 있는 엄청난 파워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발굴부대에 끼여서 생활하는 군단 유해발굴병들은 거의 생활에 해당부대의 터치를 받지 않는다. 점호? 10시 취침? 그게 뭐임? 거의 이정도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가면 이게 더 심해져서, 발굴과장인 중령이 사단장의 경례를 앉아서 받는 일도 허다하다.[40] 모 군단 발굴과정에서 있었던 실화로 발굴부대 대위와 유해발굴감식단 이등병이 발굴과정을 놓고 언쟁이 있었는데, 대위가 이등병한테 이 사람이! 같이 잘해보자고 그런건데, 내가 당신일을 망쳐!?라고 말한 사례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위가 이등병한테 한 말이다.[41]

그리고 기본적으로 군단 발굴팀들은 이등병이나 일병선으로 차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친개 상병들에게서 해방이다!"라는 마인드가 서서히 자리잡히기 때문에 매우 망나니로 돌변한다. 거의 다 차출된 아저씨들뿐이고 자신을 크게 터치할 수 있는건 솔직히 말해서 간부들뿐인데 간부들은 정작 "자대에서 힘들게 생활하던 낮은 계급 녀석들이니까 웬만하면 터치는 하지 말자."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래에 있을수록 망나니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 부대 저 부대를 돌아다니면서 타 부대의 간부들도 이래저래 원래 부대와는 다른 시선으로 겪어보기 때문에 상당히 만만하게 느껴버린다.[42]

다만 이 간부와의 관계가 정말 중요한데, 기본적으로 10명 정도 되는 작은 팀이고, 무엇보다도 파견나온 상황이라 선후임 관계가 없거나 약하기 때문에 간부와의 접촉이 정말 많다. 간부가 노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심지어 산을 탐사하러 간다 해놓고 실제로는 아제로스(!)를 탐사하는 경우도 왕왕있지만, 간부가 정말 성격이 더럽거나 바보같은 사람을 만나면 엄청나게 마음고생 몸고생을 하면서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거는 그저 운이 따르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문제는 그 인원들 중에서도 선임급 인원들이 잘 조율을 해준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어차피 아저씨이고, 지내던 부대의 풍습도 다르고, 어차피 계급도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크게 소용은 없다. 이럴땐 그냥 왕따 되지 않게 서로 잘 친하게 지내는게 장땡이다.

또 여기에서 짬을 먹어 계급이 높아진 이등병들은 그냥 말 그대로 깡패가 된다. 타 부대 간부가 뭐라 하든 "배째라" 식으로 행동하는게 다반사이다. 그야말로 군대 깡패가 어떤건지를 보여주는 예.

물론 그 낮은 계급에 있던 군단 발굴팀 장병들은 지정 발굴 기간이 끝나면 원래 부대로 복귀한다. 지옥의 시작. 그래서 웬만하면 전역 날짜 잘 맞춰서 가는 편이 좋다. 그렇게 전역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지만 그게 힘들다는게 문제이다.

간혹가다 발굴이 1년 단위로 진행되는 경우는 이병, 일병선보다는 일말~물상병 위주로 뽑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병, 일병을 뽑아봤자 어차피 장기 파견후 자대로 돌아가서 적응도 못할텐데,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일에 노하우가 쌓인 일말~물상병 라인을 뽑아서 발굴병으로 쓰고 바로 제대시켜버리겠다는 의도이다.[43] 문제는 이 경우에 하반기 발굴이 마무리되는 10월쯤이면 군단발굴팀 10여명중 막내가 꺾상이고 나머지는 다 병장같은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때쯤이면 국방부 감식단원, 현지 발굴부대병들은 물론이고 현지 간부들도 어떻게 손 쓰기 뭐한 군대 깡패를 넘어서 군대 파천황이 탄생하는 현장을 볼 수 있다. 조기 예비군 훈련
  1. 삽으로 사람 키만큼 산을 "깎아"간다. 농담이 아니다. 물론, 이 일은 해당 부대의 지원 인력과 같이한다.
  2. 15년 기준이지만 전역병과 신병으로 인한 업무차질 때문에 추가로 3~4명 더 뽑긴 한다.
  3. 갖들어온 신병을 포함해 5~6명인데 반드시 있어야할 행정업무(일반행정, 대외행정, 유해관리, 유품관리)만 4명이 필요하다.
  4. 인류학, 사학, 유물보전 생물학 등의 전문인력, 군무원이다.
  5. 흙투성이 유해의 이물질 제거, 유품 감식 등이 있다.
  6. 발굴팀과 따로 파견을 나가기에 발굴지가 가까우면 같이 지내지만, 대게 임시감식소는 움직이지않고, 발굴팀은 1개월단위로 부대를 옮기기에 혼자서만 지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파견 부대간부의 참견을 많이 받는다.
  7. 1개의 발굴팀은 8~10명의 발굴병과 1명의 운전병이 소속되어있다. 14년부터 감식 운전병은 감식차량을 놓고 다시 서울로 가게되었다.더 외로워졌다.
  8. 발굴병과 감식병은 다른 병과다. 제발 누가 감식병 문서를 신설해 달라.
  9. 셋방살이만 한게 아니라 실제 그 부대로 편제가 들어갔기 때문에 소속은 그 부대고, 일 자체는 육본 휘하에서 하는 2중적인 부분이 많았다. 웃기지도 않은 예를 들자면 실제 사는 부대마크와 육본마크를 양쪽에 하나씩 두개 달고다녔다. 솔직히 지나가던 헌병도 신기해서 물어보더라.
  10. 그런데 이 2년 수료의 기준이 상당히 애매하다. 지원서를 내는 시점인지, 아니면 입대 시점인지에 대해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일례로 같은 사학과 동기 두명이서 한명은 경기도 병무청에, 한명은 서울 병무청에 지원서를 냈는데 서울병무청에 낸 쪽은 자격미달로 취급된 사례도 있다.
  11. 팔굽혀펴기, 윗몸 일으키기만 본다.
  12. 평가에서 발굴경력이 있으면 가산점을 받는다. 이것만 바라보고 반년간 발굴경력 쌓고 온 사람들도 존재한다.
  13. 감식병은 산을 오르지 않는다. 100여명이 파낸 매일 수습한 유해를 매일같이 혼자서 처리할 뿐.
  14. 말년병장 휴가, 신병의 전입 등
  15. 사실 공식적으로는 사용이 불가능하므로 방송 촬영시에는 쓰지 않는다.
  16. 정글모는 군단팀에서만 쓴다. 13~15년기준.
  17.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국방부에서 따로 나오는 부식비를 받아 씀에도 불구하고 지원부대에서 나오는 부식도 남김없이 챙겨간다. 얄밉게 보일만도 하다.
  18. PX병 입장에서는 골아픈 것이, 똑같은 물건을 8+1개(운전병)씩 사가기 때문에 순식간에 PX 한 군데가 구멍이 뚫린다. 주말이면 PX에 사람이 붐비는 시점임을 감안하면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19. 감식병은 중앙에 있는 감식병이 4~6인분을 구매해서 보내준다. 선택권이 없다. 불쌍하다. 차편이 없으면 도착안하고 관물대에 박히거나 동기 선임 후임이 먹어버린다.그 불쌍한 병사가 나다
  20.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병 때 선임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면 그 선임 전역하기 전까지는 편하게 지내기 힘들다.
  21. 짬이 안되면 신나게 산을 타고 돌아와서도 발굴도구 정비 및 그날의 발굴현황을 정리해서 상부에 보고하는 일을 도맡아야 한다.
  22. 평균적으로 발굴병 1명이 유해 하나를 발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반나절 정도, 병장급은 하루에 3~4구도 발굴하며 부분유해만 발굴할 경우 그보다 더 많이 발굴한다.
  23. 행정병이 갑자기 크게 다쳐 팀에서 열외하게 되면 그 팀은 당장 주간보고부터 막막해진다.
  24. 대개 발굴을 위한 개인호 탐사와 발굴현장 감독, 유해발굴, 발굴자료정리 등 다양한 업무가 존재한다.
  25. 심지어 검정고시만 붙고도 온 사람도 있었다!
  26. 2011년은 2작사와 3군이 같이 교육받았고, 1군지역은 따로 했다. 2012년은 1월 30일~2월 10일까지 '1기'가 제3야전사령군 선봉교육대에서 교육받았다.
  27. 예를들어, 7군단 경우는 6박 7일 포상휴가를 받았다!
  28. 병사들이 포상에 눈이 멀어 새하얗게 불태우기도 하지만, 간부의 반강제적 연등이 다반사이다. 왜냐면 병들 성적=간부 실적이기 때문이다. 2013년 집체교육의 경우,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생활관 문을 밖에서 잠그고 공부를 시켰다!!
  29. 발굴현장에서 나온 유해를 정밀하게 그리는 그림. 발굴병이 직접 그려야 돼서 발굴병을 환장하게 만드는 요인중 하나였지만, 2011년부터 기록이 전부 전산화 되면서 그릴 필요는 없어졌다. 오오 국방부 오오... 2011년 당시 상, 병장급의 발굴병들은 이 프로그램에 대해 매우 거부감이 컸다. 기대치에 비해 막상 나온건은 황당할 정도로 조잡했기 때문이다.
  30. 교육을 해야되기에 짬이 높고 교육받는 군단병사는 짬이 낮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의를 느껴 거절할수가 없었다고한다.
  31. 과거 유해도를 손으로 작성하는 시절에는 군단발굴병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유해도가 전산화 되면서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32. 한국전쟁 초반, 특히 국군에서 미군의 원조 병기와 탄약이 모자랄 때 많이 썼다.
  33. 예를 들어 우천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한지로 유골을 덮고 흙으로 완전하게 덮은 뒤에 물골을 파놓고 표시를 한 뒤 우천이 끝나면 발굴한다.
  34. 매 주마다 하는 보고와 월마다 하는 보고를 올린다. 두개를 함께하는 월말이 가장 괴롭다. 근데 감식병은 그 일도 혼자서 해야한다.감식병은 산을 안오르는것만이 다행이다.
  35. 6.25 전쟁은 고지를 위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고지 주변의 개인호에 주로 유해가 많이 있다. 유해발굴도 이 개인호를 기준 삼는다.
  36. 이게 은근히 꿀인것이, 당시 상황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7~80 노인분들이신데 그런 분들 만나다 보면 당연한(?) 시골 인심으로 인해 이것저것 얻어먹는 경우가 꽤 생긴다. 노인회관에 갔더니 마침 회식중이라 고기에 술까지 얻어먹은 경우도 있다 카더라.
  37. 유해발굴을 담당하는 부대, 발굴 지역 인근의 부대로 정해지며, 1개 대대 정도가 아예 통째로 발굴에 투입된다.
  38. 그 많은 흙을 붓으로 쓸어내린다. 세월이 지나 흩어졌을 수도 있기에 가로세로2미터 어쩔땐 4미터 까지 정밀발굴을 하기도 한다. TV에서 보던 유물발굴현장 생각하면 된다.
  39. 실제로 완전유해를 매일 10구이상씩 혼자서 받은 경우도 있다. 감식병은 꿀이 아니다
  40. 이건 좀 오바고, 예전 발굴과장(국유단 초기부터 있던) 이야기인듯 한데, 워낙에 짬중령이었기 때문에 웬만한 사단장들을 봐도 별로 쩔쩔매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짬중령이라도 중령은 중령. 그런데 중령이면 소위 임관으로부터 30년까지 채운 후 제대하게 되는데 소위 임관 후 27년 정도 되면 사단장이다. 그러니까 거의 전역 일보직전이라는 소리다. 어쨌거나 사단장을 만나면 당연히 하급자인 중령이 형식적으로라도 상급자인 사단장에게 경례했다. 뭐 사석에서는 사단장이 경례를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
  41. 야전부대 간부들은 국방부라는 이름에 좀 약한 듯하다. 뭐 자기 휘하 병이 아닌 탓도 있겠지만 대체로 국방부 소속이면 병이라도 일반 병에게 대하는 것보다 훨씬 친절(?)하게 해준다. 그리고 국방부와 현지부대 간부들이 협의해 발굴을 진행한다고는 해도, 현장에서의 실무적인 진행은 국유단 소속 발굴병들의 지휘를 받아서 발굴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발굴경험 좀 되는 상병장급 병에게 좀 어리버리하다 싶은 중소대장급 지휘관들이 끌려다니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국방부라는 소속 특성상, 또 유해발굴사업 특성상 군생활기간동안 투스타는 물론이요 포스타도 심심치 않게 보기 때문에 웬만한 영관급 장교를 봐도 쫄지 않는다.소대장 정돈 밥이에요 헤헤
  42. 실제로, 유해발굴병으로 파견나오면 주변에 터치하는 사람이 없어 확실히 편하긴 하다.산타는거 빼고. 그러나, 다른부대에서 튀는행동을 보이거나 소위 '병신짓' 하고 다니면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눈초리는 물론, 이게 잘못 꼬이면 해당 대대, 자신이 속한 대대는 물론 여단(연대), 사단까지 올라가 위에서 개털리는 수가 있다. 따라서, 서로가 조심조심하면서 튀는 행동만 안하면 된다.
  43.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국유단 입장에서 보면 군단발굴병은 뭐 제대로 실력을 갖춘 것도 아니고...'배째라' 정신만 강해져서 소수의 바람직한 경우를 제외하곤 딱히 의욕도 없고...그냥 삽셔틀+발굴부대 통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