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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敦
1912년 03월 20일 ~ 1997년 07월 14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청거(靑居)이다.
1912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경성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에 유학가서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경제과를 졸업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49년 이병국 국회의원의 별세로 치러진 충청남도 천안군 선거구의 재보궐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 구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천안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종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1년 다른 민주당 구파 정치인들과 민주당을 탈당하여 신민당을 창당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충청남도 천안시-천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공화당 김종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고흥문 후보와 민주공화당 정래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김종철 전 한국국민당 총재와는 라이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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