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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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在賢
1917년 10월 10일 ~ 2014년 5월 8일
1917년 경상남도 사천군에서 태어났다. 니혼 대학 법학과를 중퇴하였다. 이후 삼천포 출하상사주식회사 사장, 삼천포어업조합장을 지냈다.
1952년 지방선거, 1956년 지방선거에서 모두 자유당 후보로 경상남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자유당을 탈당하여 친여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삼천포시 선거구에 출마하였고, 현역 국회의원인 자유당 정갑주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최석림, 유기수, 현오봉, 박상길 등과 자유당에 복당하였다. 이후 자유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15 부정선거에 가담한 자라는 비판이 있었음에도 자유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그의 출마를 규탄하는 시위가 있었고 개표가 지연되었지만 결국 당선되었다. 1961년 초 대한민국 국회의 3.15 부정선거 가담 반민주행위자에 대한 공민권 제한 대상자 선정에는 제외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경상남도 삼천포시-사천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용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삼천포시-사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최세경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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