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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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正熙
1903년 12월 9일 ~ 1981년 9월 1일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공무원, 정치인이다. 자는 맹실(孟實), 호는 효산(曉山) 또는 만정(晩汀)이다.

1903년 경상북도 영천군(현 영주시 상망동)에서 태어났다. 경상북도 도립교원양성소, 경북사범고등학교 강습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1920년대와 1930년대 보통학교, 소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러다가 1938년부터 공무원으로 전직하였다. 1941년 창씨개명을 거부하였다.

8.15 광복 후에도 공무원으로 근무하여 경상북도 문경군, 안동군수, 영주군교육감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5년 자유당 중앙위원회 조직부 차장에 임명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자유당에 몸담았던 친여 무소속 박용만 후보로부터 부정선거(개표 부정)를 이유로 소송을 당하였다. 결국 1959년 말 국회의원직이 상실되고 1960년 1월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 해당 재보궐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1년 3.15 부정선거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5.16 군사정변으로 정치정화법에 의한 정치규제 대상자가 되었다. 1963년 2월 정치정화법 및 공민권 제한 대상자 심사 시, 추가구제대상자로 구제되었다. 이어서 민주공화당에 입당했으나 곧 탈당하고 다시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