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86년 12월, 신한민주당 총재 이민우가 발표한 정국 구상.
2 당시 상황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대통령은 간선제(체육관 선거)였고 국민들이 직접 투표로 의사를 표명할 방법은 국회의원 총선거뿐이었다.
전두환 정권이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등의 무기력한 어용 야당을 내세운 가운데 1984년 1월 김영삼과 김대중이 '민주화추진협의회'을 기반으로 창당한 신한민주당은 창당 50여일만에 치뤄진 2월 12일 총선에서 정권의 온갖 방해와 짧은 선거일정에도 불구하고 제1야당으로 급부상하였다.
당시 정치규제에 묶여 있던 김영삼은 김대중 계파와의 협의를 거쳐[1] 바지사장신한민주당 총재로 이민우를 내세운다. 이민우는 이승만 정권시절부터 꾸준히 야당에서 활동해온 5선 경력의 중진 정치인이라서 총재직에 걸맞는 경륜을 가졌고, 관제야당인 민주한국당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양김씨와의 관계가 좋았기에 선택된 것.
사실 처음에는 이민우가 김영삼의 제안을 극구 사양했다. 총재직은 둘째치고, 정치 1번지라는 종로구-중구에 출마하라는 것부터가 무리수였기 때문. 5선 경력은 있어도 고향인 충청북도와 전국구 국회의원 경력 정도였던지라 전국적인 인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실상의 마지막 정치 일생인 이 선거에서 패할 경우 그야말로 말년이 서글플게 뻔했기 때문. 그러나 "말이 안되는 것을 해내야 전두환 정권에 맞설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민우 동지가 총재를 맡아 바람몰이를 해줘야 합니다."라는 김영삼의 강력한 제안에 결국 이민우는 신한민주당 총재 자격으로 종로구-중구에 출마하게 된다. 그리고 김영삼/김대중 계파의 적극적인 지원에, 선거 직전 김대중이 전격 귀국하면서 서울의 표심이 대거 신한민주당으로 집결, 예상을 뒤엎고 2위로 당선되면서[2] 신한민주당 돌풍을 이끌었다.[3]
결국 군부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화를 이뤄내라는 국민의 요구가 신한민주당의 기적과 같은 약진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이민우 총재 역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주장했는데.....
3 발표
그로부터 거의 2년 정도 지난 1986년 12월 24일, 연말 기자회견에서 "이민우 구상"이 발표된다. 이민우 구상의 골자는 7개항의 민주화 조치(언론자유 보장, 구속자 석방, 사면복권, 공무원의 정치중립 보장, 국회의원 선거법 협상, 지방자치제도 도입등)을 전두환 정권에서 수용해주면 의원 내각제 개헌에 응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민우의 발표에 정국은 요동쳤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차기 유력주자인 노태우가 긍정적 반응을 보였으나 정작 신민당 내에서는 극심한 내홍이 벌어졌다.
왜냐하면 이민우는 당 총재이긴 했으나 바지사장에 불과한 총재였기 때문이다. 실상 당의 대주주는 김영삼, 김대중의 양김씨였다. 김대중은 가택연금중이고 김영삼도 전면에 나설수가 없어서 이민우를 내세웠을 뿐이었는데 바지사장이었던 이민우가 양김씨와 상의도 하지 않고 이런 구상을 발표했으니 당이 뒤집어지는건 당연한 이치였다.
당의 내홍이 극심해지자 이민우는 자신의 구상을 선 민주화, 후 개헌으로 바꾸었지만 이미 틀어진 양김씨와의 관계는 물건너 가버렸다. 게다가 자신은 이철승과 함께 1987년 3월 김영배 당기위원장에 의해 제명되는 처지였다.
결국 1987년 5월, 상도동계(김영삼계) 의원 35명과 동교동계(김대중계) 의원 32명이 신민당을 탈당해 통일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신민당은 박살이 나버렸다. 신민당에는 이민우와 내각제 개헌을 지지하는 소수의 의원들만이 남았고 결국 이민우는 정계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4 결과
민주정의당은 당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거센 탓에 차기 권력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그래서 일각에서는 의원 내각제 개헌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었다.[4]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직선제로 대통령 선거를 치루게 되면 김영삼이나 김대중에게 대통령을 뺏길 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마당에 제1야당 대표 이민우가 조건부로 내각제 개헌수용의사를 밝혔으니 이게 웬 떡이랴 했을듯.
일각에서는 이 때 이민우 구상이 받아들여져서 내각제 개헌이 이루어졌다면 오히려 민주개혁세력의 장기집권도 가능했었다고 주장하며 양김씨의 대통령 욕심이 부른 참사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역사에 만약이란 없는 법. 내각제 개헌으로 인해 되려 민정당의 초장기 집권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게, 선거 방식이 민정당에 유리하게 계속 유지될 경우 개헌을 하나 마나였고 설령 신민당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하나회가 그대로 남아있는 이상 신민당 총재인 통수권자 총리를 군에서 제대로 따르지 않고 쿠데타를 할 가능성도 컸기 때문.[5]
여하간 이민우 입장에서는 자신의 구상대로 이루어졌다면 신한민주당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바지사장에서 실권자로 바뀔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정치9단인 양김씨가 호락호락하지도 않았거니와 윗 문단에서 설명했다시피 민정당의 방안에 따르는 것은 결국 민정당의 장기집권을 부추기는 꼴이었기에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끝장내는 구상이 돼버리고 말았다.
다만 제5공화국의 묘사에 따르면 당시 이택돈, 이택희, 이철승 의원 등이 국가안전기획부와 내통하여 내각제 개헌을 적극 주장했고 특히 이택돈이 이민우 총재를 계속 부추겨서 양김씨와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든다. 때문에 이민우 구상이 이민우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인지는 의문.
이후 이민우 총재와 함께 내각제 개헌 구상을 지지했던 이들은 소위 사쿠라로 찍혀서 야당내에선 완전히 몰락하였다.